0살부터 슈퍼스타 428화
그런 엄마아빠의 생각은 전혀 모르는 서준은 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영장을 살피고 있었다.
수영장은 가족들끼리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나는 아이들의 발이 닿을 정도의 깊이였고 하나는 어른들에게 맞는 깊이였다.
노란색과 짙은 파란색.
수영장 바닥 타일 색으로도 구별이 되어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았다.
“은수야. 수빈아. 여기 노란색 타일까지는 발이 닿으니까 여기에서만 놀아야 해.”
“응!”
“형이랑 있을 때만 여기까지 들어오고.”
“응응!”
제대로 듣고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의 모습에 피식 웃고만 서준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틀었다. 수빈이도 은수도 아는 만화 캐릭터가 나오는 준비운동이었다.
‘그래도 준비 운동을 빼놓을 수는 없지.’
[하나, 둘! 하고!]
“하나! 둘! 하고!”
팔을 쭉 뻗어 옆으로 숙이며, 시원시원하게 준비운동을 하는 서준을 보며 은수와 수빈이도 꺄르르 웃으며 따라 했다. 허리에 끼워둔 튜브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준비 운동만으로도 프로처럼 보이는 서준과 달리 아이들의 준비 운동은 조금 어설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른들도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준비 운동이라니…… 요새는 이런 것도 잘 돼 있네.”
“여름방학이라서 만들었나 봐요.
“하긴 이런 건 어른들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 만화로 보여주는 편이 좋지.”
[위로 손을 번쩍 들면 끝!]
“위로 손을 번쩍 들면 끝!”
“끄읕!!”
“끝!”
서준과 은수, 수빈이가 위로 손을 번쩍 들었다.
한바탕 준비 운동을 하고 나니 얼른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두 아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서준이 먼저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천천히 들어와.”
서준의 손을 잡고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수영장에 들어온 수빈이와 은수는 이내 발이 닿는다는 걸 깨닫고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빈아. 이거 챙겨 간다며?”
“엄마! 와아아!”
최수희가 무언가를 들고왔다. 돌고래 모양의 물총이었다.
“엄마아빠 쪽으론 쏘지 말고.”
“네에!!”
“나도! 이모! 나도!”
“은수 물총은 여기 있지.”
기운을 차린 김희상이 은수에게 다른 돌고래 물총을 건넸다. 튜브에 몸을 맞기고 둥실둥실 떠다니던 은수와 수빈이가 돌고래 물총으로 서로를 노리기 시작했다.
촤아악!
아이들이 파란색 타일 쪽으로 가지 않게 살펴보며, 수영장에 걸터앉아 튜브에 후후, 바람을 불어넣던 서준이 빛나간 물총에 맞아 머리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흩날리던 파란 머리가 촉촉하게 젖었고 하얀색의 얇은 겉옷도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누구야? 은수야? 수빈이야?”
짐짓 화가 난 듯,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자, 수빈이와 은수가 꺄르르 웃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 나 아니야! 은수야!”
“아니야! 수빈이 오빠가 그랬어!”
서준이 손을 휘저어 물살을 만들어내고 수빈이와 은수도 발장구를 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물방울들이 햇살과 부딪히며 반짝였다.
찰칵- 찰칵-
파라솔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동생 부부를 바라보았다.
서은찬과 김수련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열심히 아이들을 찍고 있었다.
추억 사진을 찍는다기엔 묘하게 전문적이었고 묘하게 여유가 없었다. 카메라 렌즈도 어린아이들보다 서준에게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서준이 찍는 거야?”
서은혜의 물음에 코코아엔터의 사장, 서은찬과 홍보팀 팀장 김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호 씨가 찍어오면 좋겠다고 하더라. 포토북 안에 넣을 거래.”
“저희가 사진을 프로처럼 찍지는 못하니까 최대한 많이 찍어 오래요.”
……그거 반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장에게 부탁하는 매니저도 그렇고, 매니저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장도 그렇고.
“엄청 편한 회사네.”
서은혜와 이민준이 피식 웃고 말았다.
셔터를 누르는 손을 멈추지 않는 서은찬이 말을 이었다.
“계속 찍는 건 아니야. 편하게 쉬러 온 거니까 지금 충분히 찍어 놓으려고.”
서은찬과 김수련은 삼십 분 정도만 바짝 찍고 그만 찍을 생각이었다.
서준에게도 미리 말해놓았다. 지금 찍는 사진이 포토북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동생들과 놀고 있던 서준이 간간이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바톡!
울리는 휴대폰에 아이들과 놀아주다 흠뻑 젖은 서준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아직 파란색인 머리카락은 물로 파랗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찰칵, 찰칵.
서은찬과 김수련의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카메라를 보며 햇살처럼 웃은 서준이 수영장에서 나와 손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은 후 휴대폰을 눌렀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화보 같았다.
>박이든: 뭐 하고 있음?
>박이든: 우리는 이제 리허설 준비 중.
>박이든: (사진)
무대 의상으로 차려입은 블루문 멤버들의 사진에,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수영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사진)
사진만으로 충분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블루문 멤버들에게서 부러움이 가득한 메시지가 쏟아져 서준이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 * *
모자를 쓴 서준이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은 안다호가 서준을 반겼다.
“서준아. 재밌게 놀다 왔어?”
“네. 저녁에 바비큐 파티도 하고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밤에 별도 보였어요. 펜션에서 망원경도 빌려주더라고요.”
안전벨트를 맨 서준이 모자를 벗고 웃으며 펜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즐거워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도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사진도 잘 나왔더라.”
“정말요?”
“다 A 컷이던데? 고르기가 힘들겠어.”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안다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서준의 시야에 창문으로 비치는 파란색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서준이 손을 들어 파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탈색 두 번에 염색했는데도 머릿결은 하나도 상하지 않은 듯 부드러웠다. 이것도 선기의 힘인가 싶었다.
신호에 걸린 동안 잠시 뒤를 살피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서준아. 미리내 예고에도 아이돌들 있잖아? 좀 더 있어도 괜찮지 않아?”
“파란 머리로 있으면 돌아다니기 힘들잖아요.”
“그건 그런데…… 아쉽네.”
볼을 긁적인 안다호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서준아. 그거 알아? 일반인 중에는 이런 파란색으로 염색하는 사람이 드문데 아이돌 쪽에서는 하나둘씩 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그래요?”
“응. 이름도 붙었대.”
“이름요? 뭔데요?”
‘보통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이름이 앞에 붙으니까……’
이서준 블루?
서준이 내심 짐작하는 사이,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블루문 블루래.”
“하하. 잘 어울리네요.”
서준과 안다호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는 오늘의 목적지인 샵에 도착했다. 헤어디자이너가 안타까운 얼굴로 서준을 맞이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새싹부터]에 서준의 흑발 사진이 업로드됐다.
-파란 머리도 좋지만 역시 흑발……!
=22 흑발이 최고야ㅠㅠ
-하아……다른 사진도 올려줬으면……뮤비, 음방만 하고 가니?
=이제 언제 또 볼까요? 블루문 블루ㅠㅠ
-저만 탈색 직후 금발이 좋은 거예요?
=22 진짜 빛처럼 지나간 금발ㅠㅠ
=33 바로 염색해서 뮤비도 음방도 없구요ㅜ
-다른 색으로 염색할 예정은 없을까요?
=색은 많고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색이든 서준이는 서준이.
=22 졸업 공연 기다리고 있을게!
* * *
수요일.
2학기 개학 날이 되었다.
미리내 예고 교문 앞에선 서준이 새삼 학교를 둘러보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학년 2학기였다. 내년이면 졸업이라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았다.
학교야 대학교에 다니겠지만 교복을 입는 건 이제 내년 졸업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아, 아닌가?’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성인이 돼서도 학생 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있으니 서준도 그럴지 몰랐다.
“이서준!”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일찍 등교하던 한지호가 손을 휘휘 젓다가 빠르게 달려와 서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야.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너 아이돌 데뷔하는 줄 알았어!”
“하하하.”
한지호의 시선에 까맣게 물든 서준의 머리칼이 들어왔다.
“파란 머리하고 올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이제 무대에 설 일도 없으니까. 파란색 머리면 돌아다니기 힘들어.”
“하긴. 확실히 목격담이 늘긴 했지.”
서준과 한지호가 교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는데 다들 서준과 한지호의 모습에 눈을 반짝거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1학기가 지나도 서준과 서준의 친구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근데 이 정도 목격담도 적은 거라고 생각함. 너 정도면 밖에 나갈 때마다 다섯 개씩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집에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서준이야 가끔 이 시간에 오긴 하지만, 보통 한지호의 등교 시간은 좀 더 늦었다.
서준의 말에 서준의 어깨에서 팔을 내린 한지호가 눈을 데굴 굴려 운동장 저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데굴 굴려 서준을 보았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그?”
한지호가 답지 않게 턱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졸업공연 공고 보려고.”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다른 팀들은 일찌감치 정해졌으니 남은 공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 꺼?”
“그럼 누구 꺼겠냐? 다른 팀들은 이미 다 정해졌잖아. 너만 남았어. 너만. 대본은 다 적었지?”
“응. 그렇긴 한데……”
“공고는?”
“가방에 있어.”
“그럼 바로 가서 붙이자! 나도 봐야지!”
한지호가 교실로 향하려던 서준을 끌고 게시판으로 향했다.
교실에 가방을 놓고 팀원 모집 공고를 붙이려던 서준은 조금 상기된 한지호의 얼굴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한지호를 따라 공고를 붙일 게시판으로 향했다.
“근데 이번엔 아예 창작 작품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는걸.”
“사람이 적당히 타협도 할 줄 알아야지.”
말을 내뱉은 한지호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모로 꼬았다.
“아닌가. 타협을 안 해서 이렇게 유명해진 건가?”
“하하.”
“그럼 넌 그냥 계속 타협 안 하는 게 낫겠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으니까.”
“지호 넌?”
“원래 평범한 사람은 적당히 타협도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조금 더 좋은 유명해지고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 몰라도. 언젠간 나도 그렇게 되겠지.”
씨익 웃는 한지호의 모습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어? 왔네. 안녕. 서준아.”
“……재한이 너는 왜 여기 있어?”
서준이 게시판 앞에 있는 강재한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드럽게 웃은 강재한이 휴대폰을 두드리며 말했다.
“공고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내 꺼?”
“응. 중학생 때는 원작인 책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창작이라 참고할 것도 없잖아. 조금이라도 빨리 어떤 배역인지 알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강재한의 말에 한지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 공고 붙일 줄은 어떻게 알고? 나 여름 방학 동안 바빴잖아.”
“연극 제대로 준비하려면 연습도 해야 하고 소품도 만들어야 하잖아. 수시랑 수능도 있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서준이 너라면 여름방학 동안 완벽하게 대본 만들어서 올 거라고 생각했지.”
강재한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내가 이렇게 읽히기 쉬운 사람이었나.’
아니면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동안 함께 지냈기 때문인가.
확실히 자신을 파악한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저도 모르게 허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데 한지호와 강재한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기 먼저 왔네!”
위에서 들리는 활발한 목소리에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2층 계단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김주경과 양주희가 보였다. 한지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엄청 빨리 왔네?”
자신만 일찍 온 줄 알았더니, 다들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다른 게시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양주희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재한이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게시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들을 부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모일 일이야?”
당황하는 서준의 모습에 아이들이 웃으며 서준을 쿡쿡 찔렀다.
“어허. 잔말 말고 빨리 공고 붙이기나 해.”
“거울 때보다 배역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이라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더라.”
“SF장르에 들어가는 소재도 많던데?”
“난 SF라는 거 듣고 여름 내내 그것만 연습했음.”
재잘대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지퍼를 연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일까 싶어 걱정도 들었다.
‘감독님들이나 작가님도 이랬겠지.’
새삼 코코아엔터로 들어오는 작품들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작품들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부스럭부스럭.
가방의 클리어 파일에서 한점의 구김도 없는 졸업 공고를 꺼낸 서준이 게시판의 빈 공간에 졸업 공고를 대고 핀으로 고정했다.
드디어 등장한 졸업공연 공고에 친구들이 빼꼼빼꼼 서준의 주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오호, 감탄이 흘러나왔다.
“제목은 완전 SF네.”
“그러게. 우주선 이름인가?”
공고에 집중한 친구들 사이로 서준이 슬쩍 빠져나왔다.
교내로 들어오던 다른 학생들도 친구들이 몰려 있는 모습에 의아해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게시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은 나머지 졸업 공고들을 들고 다른 게시판으로 향했다.
그렇게 교내 게시판이란 게시판에는 모두 졸업공고를 붙인 서준은 마지막으로 붙인 졸업 공고문이 조금 삐뚤어진 것 같아 다시 뗐다 붙였다.
그러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졸업 공고문을 살펴보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MOEB-436]
서준의 고등학교 졸업 공연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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