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27화
>박이든 : 오오!
>박이든 : 연습 되게 잘됨!
>박이든 : (동영상)
박이든에게서 도착한 메시지에 서준이 웃었다.
이틀 전 일요일.
SBC 인기음악의 사전녹화를 마치고 난 후 내내 멍하니 있던 블루문은 숙소로 가던 차를 돌려 연습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무대에서의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듯 연습을 시작했다.
서준도 2시간쯤 블루문과 함께 어울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도 블루문은 내내 연습실에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컴백이 앞당겨져 다른 스케줄이 없는 덕분이기도 했다.
물론 지휘자인 서준이 빠진 만큼, 어느 정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걸 극복하면 또 한 번 실력이 상승하지 않을까 싶었다.
띠띠띠띠.
소파에 기대 박이든에게 답장을 보내고 있던 서준이 들려오는 도어락 소리에 고개를 들어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상자를 든 브라운블랙의 막내, 최시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윤이 형 왔어요?”
“서준아. 먼저 와 있었네?”
안으로 들어오던 최시윤이 잠시 멈칫했다.
실제로 보는 서준의 파란 머리는 낯설면서도 어울려서 눈이 갔다. 사진부터 블루문의 뮤비, 음악방송 무대까지 전부 봤지만, 확실히 실제로 보는 것하고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사진으로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하하. 그래요?”
“응. 잘 어울려.”
최시윤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마주 웃은 최시윤이 집주인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진이 형은?”
“서진이 형은 잠시 장 보러 갔어요.”
“그래? 좀 빨리 올 걸 그랬나? 나 먹을 거 많이 사 왔는데.”
최시윤이 웃으며 들고 있던 상자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서준이 쫄래쫄래 그 뒤를 따랐다.
식탁 위에 내려놓은 상자 안에는 확실히 네 멤버와 서준의 취향에 맞는 과자들과 음식들의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서진이 형은 간장이랑 설탕 같은 거 사러 간 거니까 금방 올 거예요. 케빈 형이랑 예준이 형도 금방 올 거래요.”
“그래? 그럼 형들 오기 전에 우리는 이거 정리해 놓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네.”
서준과 최시윤은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익숙하게 음식 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과자도 한곳에 모아두었다.
띠띠띠띠.
그렇게 정리하고 있으려니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현관 쪽이 시끌벅적해 서준과 최시윤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둘 다 먼저 와 있었네! 내가 제일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와. 밖에 엄청 덥다. 다음 주면 9월이라서 선선해질 줄 알았는데…… 오! 둘 다 잘 있었어?”
황예준이 활짝 웃으며 말하고 더위에 옷자락을 펄럭이던 케빈 킴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두 사람의 손에도 먹을 게 가득했다.
“요 앞에서 만났어. 그 잠깐 사이에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조미료가 든 봉투를 든 박서진이 정신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케빈 킴과 황예준의 모습에 서준과 최시윤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 * *
브라운블랙과 서준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서 과일이나 과자로 조금 배를 채우기로 했다. 브라운블랙과 서준은 그동안 전화나 문자로 충분히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서준인 내일 사진 찍으러 간다고?”
케빈 킴의 물음에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어 물렁물렁해진 복숭아에서 흘러나온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프로필 찍었던 곳에서 찍을 예정이에요. 노을 스튜디오요.”
“거기 예약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
황예준이 포도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원래는 쉬는 날인데 사진 작가님이 시간을 내주셨대요.”
서준의 이름으로 유명해진 노을 스튜디오인 만큼, 서준의 촬영 문의에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그래서 수요일인 내일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다.
“아역 배우 시절 동안의 포토북이라니, 48시간 때 사진도 넣는대?”
박서진이 물었다.
“보정해서 넣을 거래요. 미국에 있을 때 사진도 좀 넣고요.”
“나중에 포토북 나오면 꼭 사야겠네.”
최시윤의 말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헤헤 웃었다.
“다음 주면 개학이지?”
“네. 수요일부터 학교 가요.”
“그럼 머리도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거야?”
“서준이 학교는 예고니까 파란 머리도 괜찮지 않아? 아이돌들도 다니고 있다며.”
케빈 킴과 황예준의 말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파란 머리가 너무 눈에 띄어서 밖에 돌아다니기가 힘들더라고요.”
열심히 능력으로 존재감을 줄이고 있긴 하지만, 검은 머리들 사이에서 파란 머리는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개학하기 전에 염색하려고요.”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졸업 공연 대본은 다 적었어?”
최시윤의 물음에 세 멤버도 흥미로운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거의 끝나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황예준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방송을 하기 전, 황예준의 사무실에서는 이미 대본 작업은 한창 끝을 보이고 있었다.
“네. 이제 조금만 다듬으면 돼요.”
“서준아. 그럼 한번 읽어봐도 돼?”
박서진의 물음에 서준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요. 휴대폰에 저장해 뒀으니까 바로 볼 수 있어요. 바톡으로 보내드릴게요.”
“난 노트북으로 보는 게 편한데…… 서진아. 노트북 어디 있어?”
“잠깐만. 가지고 올게.”
케빈 킴의 말에 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과자를 먹고 있던 최시윤과 황예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서준이 브라운블랙 단톡창에 마무리 작업만 남은 대본 파일을 보냈다.
대본을 다운받으며 최시윤이 서준에게 물었다.
“대본도 다 적었으면 이번 주엔 뭐해? 개학 때까지 놀아?”
“금요일에 여행 가기로 했어요.”
서준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사람 많은 바다는 못 가서 아빠가 수영장 있는 펜션을 빌렸거든요. 수빈이랑 은수도 가기로 했어요.”
“그게 편하기는 하지.”
노트북을 들고 온 박서진과 세 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20년을 알고 지내는 사이니 소속사 사장님의 딸인 은수도, 몬스터 사 사장님의 아들인 수빈이도 잘 알고 있었다.
박서진이 노트북을 케빈 킴에게 건네고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각자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서준도 마무리 작업 겸 대본을 읽기로 했다.
“읽어보고 감상도 말해주세요.”
“이런 건 배우분들에게 묻는 게 낫지 않아?”
볼을 긁적이며 말하는 최시윤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다 보여드렸죠. 피드백 받아서 수정한 대본이니까 그냥 편하게 읽고 말해주시면 돼요. 형.”
“그래. 알았어.”
다들 과자와 과일을 먹으며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 * *
거실 테이블 가득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요리 잘하는 서준과 최시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세 멤버가 열심히 도운 결과물이었다.
자리에 앉은 서준과 브라운블랙이 수저를 바쁘게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인 메뉴인 한우를 중심으로 갖가지 서브 요리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대본 보니까 연극으로 보고 싶더라.”
“소재도 독특한 것 같아.”
브라운블랙의 감상에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던 서준이 활짝 웃었다.
“다행이에요. 이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음? 배우분들이 뭐라고 하셔?”
“아뇨. 다들 재미있댔어요. 그냥 배우가 재미있는 거랑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는 거랑 관점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처음 내보이는 자신의 창작물이라 조금 걱정이 된 것도 있었다.
‘뭐, 완벽한 창작은 아니지만.’
모티브가 된 전생들을 떠올리던 서준의 귀에 최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생존자들만 생각해도…….”
거실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던 케빈 킴이 옆을 돌아보았다. 멍한 얼굴의 황예준이 젓가락으로 딱, 딱, 테이블 위를 헛짚고 있었다.
“예준이 너 뭐 해?”
“아니…… 잠시만……”
넋이 나간 걸까.
뭔가 생각에 빠진 듯한 황예준의 모습에 서준과 브라운블랙이 마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예준이 형이 이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근데 이거 직접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마 정식 공연 때 티켓을 사야 할걸요.”
케빈 킴의 물음에 최시윤이 대답했다. 박서진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서준이 연극을 보고 싶은 게 우리만은 아닐 텐데 말이야.”
“그러게. 사람들 엄청 몰리겠지. 티켓 못 살지도.”
“배우분들은 특별 초청 강의한다면서요? 음악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
최시윤의 말에 박서진과 케빈 킴이 눈을 반짝였다. 그 이야기는 3년 전에도 들었다.
“근데 그쪽은 악기 아니야?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거.”
“나 피아노 칠 줄은 아는데, 누구 가르칠 정도는 아니야.”
부잣집 아들.
미국 한인마켓 중 가장 큰 마켓인 킹즈마켓의 사장, 나라 킴의 동생인 케빈 킴의 말에 박서진이 볼을 긁적였다.
“가르친다고 해도 클래식 같은 곡이지 않을까?”
“그럼 더 안 되는데.”
“블루문 애들도 서준이랑 같은 학교니까 아이돌도 괜찮지 않을까요?”
“형들. 학교에 문의해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요?”
“……그러네?”
서준의 말에 브라운블랙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할까?”
“서준아. 방학 때도 선생님 계셔?”
“네. 계세요. 수업도 하고요.”
그래서 서준도 방학 중에 시간이 있으면 학교에 갈 생각이었다.
‘바빠서 결국 못 갔지만 말이야.’
서준은 국자로 매콤한 닭볶음탕에서 푹 익은 감자와 잘 익은 닭을 한 조각씩 꺼내 자신의 앞 접시 위에 올리고 브라운블랙의 앞 접시에도 올려주었다.
다들 빙그레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내일 하면 되겠네.”
“근데 우리 다 같이 가요? 아니면 따로 가요?”
“따로 가도 문제지 않아?”
“그러게. 강의할 내용이 거의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뭘 가르쳐 주지?”
“난 작곡 알려줘야지! 다들 히트곡만 만들어내는 내 작곡법을 엄청 궁금해할 것 같지 않아? 다 같이 가면 나만 주목받을 것 같은데. 음. 따로 가야 하나?”
어느새 정신을 차린 황예준도 대화에 끼어들어 히히 웃었다.
“……얜 빼고 갈까?”
“그래요. 서진이 형.”
“그러자.”
투닥투닥대는 브라운블랙의 모습에 서준이 하하하 웃었다.
시끌벅적한 저녁이었다.
* * *
>정은성 : 음방 준비 중.
>박이든 : 출근길 장난 아니었음 ㅎㄷㄷ
>박이든 : 너 깜짝 등장할까 봐 온 사람들도 있더라.
>김시훈 : 하지만 안 왔지ㅋㅋ
>백이현 : 인사 돌면서도 다들 너 찾는 눈치였어.
>최재원 : 한 자리 빈 것 같네ㅠ
수영복을 입고 위에는 얇은 겉옷은 걸치려던 서준이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금요일.
저번 주 첫 음방 무대에서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KBC 음악뱅크가 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생방이지?
>박이든 : ㅇㅇ 완전 긴장됨;;;
>정은성 : 오늘 왕좌에는 재원이 형이 앉음.
서준이 빠지고 블루문은 안무를 수정했다. 서준의 자리에는 다섯 멤버들이 차례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박이든 : 내일은 이현이 형. 모레는 시훈이 형.
>박이든 : 그리고 다음 주는 내가 앉아!!
>박이든 : 떨려 죽겠음ㅋㅋ;;;
“서준이 형! 멀었어?”
“서준이 오빠아!!”
“금방 나갈게!”
문밖에서 들려오는 동생들의 성화에 답장을 보낸 서준이 얼른 얇은 겉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알록달록 귀여운 수영복을 입고(출발 전부터 입고 있었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튜브를 낀 수빈이와 은수가 동그란 비치볼까지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서은찬과 김희상이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삼촌들 왜 저래?”
“바람 넣는 펌프, 집에 놓고 왔대.”
의아해하는 서준의 모습에 이민준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튜브와 비치볼에 바람을 불어넣다가 영혼까지 불어넣은 모양이었다.
“형! 빨리 가자!”
“빨리! 빨리!”
수빈이와 은수가 서준의 양손을 잡고 수영장이 있을 밖으로 향했다. 어느새 수영장으로 가는 길까지 알아놓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끌려가던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영장은 펜션의 뒷마당에 있었는데, 다른 펜션들과 조금 떨어져 있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듯했다.
수영장에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세 개의 나무색 선베드와 햇빛을 가려주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파라솔이 있었다. 그 옆에는 저녁때 바비큐 파티를 하며 좋을 듯한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의자!”
“의자다!”
은수와 수빈이가 쪼르르 달려가 선베드 위에 드러누웠다. 허리에 끼운 튜브 때문에 잘 누울 수가 없어 꼼지락 꼼지락대다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따가운 햇볕에 눈을 찌푸린 서준이 햇빛을 막듯 손으로 눈 위를 가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파란 머리카락과 뚜렷한 이목구비, 운동과 댄스 연습으로 만들어진 길쭉하고 다부진 몸매의 서준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컷의 화보 사진을 보는 듯했다.
뒷마당으로 나오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누구 아들인지.
참 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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