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20화 (4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20화

서준을 집에, 블루문을 숙소에 데려다준 안다호와 블루문의 매니저가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가수 1팀 사무실과 홍보팀 사무실이 아직 훤히 밝았다.

“애들은?”

1팀장의 말에 매니저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팬카페에 글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글쎄. 애들이 글을 올리면 대부분 가라앉기는 하겠지만…… 배우 이름을 확실히 밝히지 않는 이상은 완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는 못할 거야.”

다른 때보다 시원하지 못한 코코아엔터의 대처도 그 원인 중 하나일 터였다.

“일반 배우라면 그냥 이름을 올리고 말겠지만…….”

1팀장이 팔짱을 끼고 무겁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준의 출연은 이번 싱글앨범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하던 1팀장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앞당길 수 있어?”

“네?”

직원들 중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안다호와 블루문의 매니저도 1팀장을 바라보았다.

“일정 말이야. 다른 거 다 빼고 음원이랑 뮤직비디오만 해서. 제작비 상관없이 최대한 빠르게.”

1팀장의 말에 1팀 직원들이 사무실 한편에 놓여있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일정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다호는 1팀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곧바로 이 일정의 변화가 서준의 스케줄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에 잠겼다.

“음원이야 녹음이 다 끝났으니까 바로 올리면 되고…….”

“뮤직비디오는 내일 촬영이 끝나고 바로 편집하고 CG 작업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빨라도 5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만 완성하면 바로 내보낼 수 있다는 거지?”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앨범만 빼면요.”

포토카드나 북클릿 같은 앨범에 들어갈 실물 상품들을 뺀다면 가능했다.

직원들의 대답에 확인차 물어봤던 1팀장이 말했다.

“그럼 일단 다음 주에 그 두 개부터 내보내자.”

“……음원하고 뮤비만요?”

직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론 안되는 건 아니다. 음원만 공개하는 디지털앨범도 있으니까.

문제는 포토카드나 북클릿, 앨범 제작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일정들이었다. 제작을 위해 관련 회사들과도 계약해 놓은 상태였다.

직원들의 걱정을 알아차린 1팀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먼저 내보내자는 거야. 음원이랑 뮤비만 다음 주에 공개하고 앨범은 일정대로 판매하면 되겠지.”

어차피 앨범을 사는 건 팬들이니까 앨범 판매는 조금 늦어져도 괜찮을 터였다.

“지금은 팬들의 걱정을 없애는 게 중요하니까.”

1팀장의 말에 1팀 직원들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코코아엔터는 폭풍을 멈추기 위해, 파란 머리의 배우가 서준이라는 걸 밝히는 대신 블루문의 컴백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계획이 세워졌으니 가수 1팀은 빠르게 움직였다.

“내일 뮤비 촬영이 끝나는 대로 CG팀하고 편집팀에 연락해서 최대한 빠르게 완성해 달라고 해.”

“네!”

“뮤비 완성하는 대로 공개할 수 있게 음원도 확실하게 준비해 두고.”

1팀장의 말에 화이트보드를 보며 앞당겨야 하는 스케줄들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1팀 직원들이 한 단어에서 잠시 멈칫했다.

“팀장님. 음방은 어떻게 할까요?”

“아…….”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음악방송 무대까지는 몇 주나 남은 상태였다.

1팀장의 계획대로 최대한 빠르게 음원을 공개한다면 컴백 무대까지 시간이 텅 비게 된다.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가 핀 1팀장이 입을 열었다.

“방송국에도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지 이야기해 봐야지.”

“음방 스케줄이 있으면 다른 스케줄도 조금 늦어질지도 모릅니다.”

방송국 삼사의 음악방송.

그것만으로도 벌써 일주일에 3일이라는 시간이 가득 차게 되었다. 널널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컴백 전과 달리 스케줄이 빡빡해지는 게 당연했다.

“틈틈이 움직이는 수밖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1팀장이 말을 이었다.

“애들한테도 일정 바뀐 거 전해주고.”

“네.”

블루문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1팀장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서준이는 스케줄 크게 상관없지?”

“네. 서준이는 내일 촬영만 하면 끝이니까요. 괜찮습니다.”

“그래. 서준이도 신경 많이 쓸 텐데……걱정하지 말라고 해. 뮤비 나오면 다들 좋아할 테니까.”

1팀장의 말에 안다호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됐으니까 내일 촬영 때문이라도 다들 울지 말고. 얼굴 부으면 내일 촬영도 망하고 일정도 늦어진다?

“네에.”

최재원이 최대한 멀쩡한 목소리로 매니저 형에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재원이 형……무슨 일이래요?”

최재원이 훌쩍거리는 박이든과 다른 멤버들도 한 번씩 바라보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팬카페를 둘러본 탓인지 다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확실히 이 상태라면 내일 촬영이 망할지도 몰랐다.

“컴백 일정 앞당겨졌대. 음원이랑 뮤비만 최대한 빨리 공개할 거래.”

“어…… 그러면……?”

“응. 배우가 서준이인 것도 금방 밝혀지는 거지.”

“그럼 팬분들도 걱정 안 하겠네요.”

정은성의 말에 멤버들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이 컴백할 때까지 몇 주 동안이나 팬들이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촬영 잘해야 해. 촬영이 늦어지면 음원이랑 뮤비 공개날도 늦어지니까.”

“헐. 저 울어서 눈 부을 것 같은데!”

박이든이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김시훈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얼음! 얼음 있지 않았어요?”

“얼음보다 숟가락 차게 해서 눈에 올려두면 좋대.”

그사이 인터넷에 검색해 본 백이현이 입을 열었다.

“녹차 있어? 얼굴 붓기 빼는 데 녹차도 좋다는데?”

“녹차는 없는데 팩은 있어요.”

정은성이 다섯 개의 마스크팩을 꺼내자, 멤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금세 세수하고 나온 다섯 멤버들이 얼굴에 새하얀 마스크팩이 올려졌다. 거실 바닥과 소파에 나란히 누운 블루문이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리 뮤비 공개되면 좋겠다!”

“그러게. 다들 엄청 놀랄걸.”

“우리 내일 열심히 촬영해서 빨리 끝내요!”

“재원이 형. 그럼 우리 음방도 앞당겨지는 거예요?”

정은성의 물음에 멤버들의 눈이 데굴 굴러, 매니저 형의 전화를 받은 최재원에게로 향했다.

“응. 그렇대. 음원이랑 뮤비가 공개되는 대로 방송에 나갈 수 있게 음방도 앞당길 거래.”

최재원의 말에 블루문이 눈을 깜빡였다.

“근데 이렇게 갑자기 일정을 바꿔도 되는 건가?”

* * *

“아니. 이렇게 갑자기 일정을 바꿔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KBC 음악방송, 음악뱅크의 피디가 투덜투덜댔다. 피디 옆을 따라 걷던 조연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어제 일 때문에 코코아엔터도 많이 급한가 봅니다.”

어제 점심때부터 시작된 블루문의 일은 지금까지도 떠들썩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작년 하반기 카페나 길거리에서 자주 들려왔던 곡을 부른 아이돌이 관련된 화제에 관심을 가졌다.

하루가 지나도 코코아엔터가 배우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탓에 어떤 영화에서 따온,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배우’라는 말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인가 싶지만…….

다른 때보다 연예계가 별 사건사고가 없어 조용한 탓도 있었지만, 아마 코코아엔터를 경계한 다른 소속사들이 사건이 더 커지도록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대한 좋게 이야기하라는 드라마국과 예능국의 말을 떠올린 피디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회의실 안에 있던 코코아엔터 1팀장이 피디와 조연출을 반겼다. 세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순조로웠다.

유명 가수가 신인 가수의 자리를 빼앗는 게 음악방송에선 빈번한 일이었지만, 코코아엔터는 그러지 않았다.

빠지는 팀 없이, 코코아엔터는 블루문의 컴백날인 다음 주 방송에 한해 블루문의 무대 분량을 반으로 줄이고, 음악뱅크는 방송시간을 앞뒤로 조금 늘리기로 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1팀장의 모습에 오히려 피디가 의아할 정도였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다다음주 일정은 아직 확정되기 전이니 별 탈 없이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1팀장에 잠시 생각하던 피디가 입을 열었다.

“근데 지금 화제가 계속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일이 점점 커진다면 블루문은 다음 주 음악방송에 나오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건 코코아엔터로서도 큰 문제일 텐데 1팀장은 처음 봤을 때부터 여유로웠다.

“아, 음악뱅크 방송 이틀 전에 티저를 공개하고 그다음 날 뮤비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다 괜찮아질 겁니다.”

하하하, 다 잘될 겁니다, 하는 여유로움으로 가득한 1팀장의 대답에 피디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배우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문제가 커지면 저희도 큰일이니까요.”

기껏 시간까지 늘려서 편성했는데, 블루문이 빠져버리면 막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네. 그렇죠.”

피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1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 배우가 출연합니다.”

“……!”

1팀장의 말에 옆에서 일정표를 정리하고 있던 조연출은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종이들을 떨어뜨렸고 피디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피디와 조연출은 그저 배우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째서 블루문과 배우가 친해 보였다고 했는지, 코코아엔터가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는지, 그리고 배우가 아이돌이 될 거라는 사람들의 추측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희도 답답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밝히기엔 너무 아까워서 말이죠.”

“……이, 이해합니다.”

아주 절절히 이해한다.

아직도 얼어 있는 조연출과 달리 피디의 머리는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허공을 오르내리던 피디의 시선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회의실을 나갈 준비를 하는 1팀장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저 여유가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거다.

“저, 팀장님.”

“예?”

피디는 땀이 차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을 열었다. 조금 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서준 배우. 음방 무대에 나올 수는 없습니까?”

* * *

오전 촬영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다음 촬영을 준비하던 서준과 블루문이 안다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방 무대요? 제가요?”

“그래. 피디님이 제안하셨대.”

“오오.”

블루문이 감탄하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인 서준이 물었다.

“어디 음악방송이에요?”

“세 방송국 전부 제안하긴 했는데 하나만 골라서 가도 돼.”

“으음.”

서준이 고민에 잠겼다.

블루문은 쿠키를 먹으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9월이라면 몰라도 아직 여름방학인 8월이라 시간도 많았다.

‘대본 작업도 잘돼 가고 있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무대에 한 번쯤 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첫 주만 하면 되죠?”

“그래.”

“그럼 세 개 다 나갈게요.”

“와아아아!”

서준의 대답에 블루문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 * *

[블루문, 이번 주 금요일로 컴백 앞당겨!]

[블루문, 아직 밝히지 않은 배우는 과연 누구?]

[새 멤버 영입?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의문!]

[코코아엔터, 블루문 MV, 음원 목요일 00시 공개 예정!]

[블루문 오늘 저녁 8시 티저 공개!]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일 더 커지기 전에 새 멤버 공개??

=코코아엔터에서 아니라고 하잖아요.

-콬아에서 새 멤버 영입 아니라고 하는데, 계속 기사가 나오는 건 뭐래??

=22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은 아니지 않아??

=아니, 그러니까 배우가 누구냐고.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배우ㅎ

-티저 공개하고 겨우 4시간 만에 뮤비 공개하는 건가?

=22 그럼 티저를 공개할 이유가 없지 않음? 이해가 안 가네.

-앨범은 판매 안 함?????

노이즈 마케팅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사람들의 관심이 블루문에게로 쏠렸고, 앞당겨진 일정과 앨범에서 디지털앨범으로 바뀐 상황은 블루문 팬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수요일 저녁 8시.

일반인들은 흥미를 가지고, 블루문 팬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너튜브에 업로드된 10초짜리 티저를 클릭했다.

* * *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새까만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빛 사이로 진지한 표정을 짓는 백이현의 얼굴이 보였다. 흑백이었다.

그다음,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씨익 웃고 있는 박이든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흑백이었다.

이번에는 화면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서 왼쪽 위 모서리까지 이어지는 사선으로 빛이 스쳐 지나가며 사납게 웃고 있는 김시훈의 얼굴이 비쳤다.

그다음, 화면 왼쪽 아래 모서리에서 오른쪽 위 모서리까지 이어지는 사선으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표정한 정은성의 얼굴이 비쳤다. 역시 흑백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래에서 위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 최재원이 비쳤다. 그렇게 최재원의 얼굴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뒤로 물러섰다.

새까만 정장을 입은 블루문 멤버들의 모습이 한 화면에 잡혔다. 맨 끝에 서 있는 백이현과 박이든의 모습이 멀어져 보이는 걸 보니 나란히 서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블루문의 바로 앞에서 강한 조명을 비추는 듯, 블루문 멤버들의 등 뒤로 다섯 개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블루문 멤버들이 반원 모양으로 둥글게 서 있던 터라 뻗어 나온 그림자들이 하나로 모였다.

그리고 그 하나로 모인 그림자 끝에 뒤돌아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흑백인 세상.

홀로 푸르른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가 공중에서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눈치챈 듯 고개를 돌렸다. 물빛 같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새하얀 뺨과 날카로운 턱선이 보이고 그 얼굴까지 드러나려던 찰나,

화면이 밤하늘처럼 새까맣게 변하며, 푸른 불꽃이 일렁이듯 글씨가 새겨졌다.

[BLUE MOON]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