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16화 (41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16화

블루문의 뮤직비디오 촬영 날.

며칠 전부터 오늘 뮤비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하나둘 세우고 있던 촬영장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스태프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외부에서 촬영하는 경우만 빼면 모두 세트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라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미술팀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을 점검하기 위해 1팀 직원들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트장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는 오늘 뮤비 촬영을 맡은 장 감독과 코코아엔터의 가수 1팀 팀장이 뮤비 콘티가 그려진 종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말이죠?”

“예.”

뮤비 콘티를 바라보던 장 감독이 턱을 긁적였다.

오늘 촬영을 위해 이전에도 몇 번 코코아엔터와 회의를 했었는데 촬영 날까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1팀장이 조금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뭐, 촬영만 잘하면 되겠지.’

뮤비 촬영을 주로하는 감독들에게도 여러 가지 타입이 있었는데, 자신의 미적 감각을 듬뿍 넣어서 감독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뮤비를 만드는 타입과 그저 소속사에서 정해준 컨셉과 콘티대로 만드는 타입이 있었다.

블루문의 뮤비를 맡은 장 감독은 후자였다.

수정과 수정을 거쳐 힘들게 완성한 콘티를 그대로 찍기를 원해, 가수 1팀에서 일부러 후자의 타입이면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장 감독을 고른 것이었다.

“아, 근데 여기 블루문을 맡은 배우는 누굽니까?”

순순히 콘티대로 찍는 장 감독이라고 해도 자신이 찍을 뮤비에 대한 책임감은 있었다.

경력 중 하나가 될 블루문 뮤비의 완성도를 위해, 장 감독은 문제가 될 만한 점을 언급했다.

“나중에 보정을 한다고 해도, 멤버들이 검은 머리인데 혼자 파란 머리면 배우 쪽이 너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블루문의 의인화’라는 소재는 좋다.

그 어떤 아이돌의 뮤비에서 나오지 않은, 아니, 못하는 소재.

‘표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니까.’

‘블루문’은 그룹의 이름에 ‘블루’라는 색이 들어가 있어, 출연하는 배우를 파란색으로 강조하면 뮤비를 보는 사람들도 훨씬 납득하기 쉽겠지만, ‘나인’이나 ‘ST’같은 이름의 아이돌그룹들은 어떤 점을 잡아야 ‘의인화’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장 감독도 그룹의 이름에 알맞은 이런 시도가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배우가 너무 눈에 띌 것 같은데?’

‘블루문’이 한 번만 등장한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멤버들과 함께 등장하는 만큼 파란 머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연기는 당연히 잘해야 할 테고…… 댄스 파트도 따로 있는데 괜찮습니까?”

배우와 아이돌이 함께 춤을 추면 잘하고 못하고가 눈에 들어올 수 텐데 말이다. 아이돌을 강조하는 연출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전의 회의에서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부분이었지만 회의에 참석했던 1팀장과 1팀 직원들은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장 감독이 보기에도 일말의 불안함이나 걱정도 없는 미소였기에 저 정도의 신뢰와 믿음을 주는 배우가 누구인지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오늘은 촬영이니까 배우가 누군지 가르쳐 주겠지.’

장 감독의 생각대로, 보안을 위해 촬영 날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1팀장도 이제 알려줄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도착했다는 메시지도 받았다.

“네. 괜찮습니다. 연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배우인 데다가 춤 연습도 멤버들과 같이 했거든요. 아, 뮤비가 공개될 때까지 배우에 관한 건 비밀로 해주십시오.”

“보안이야 철저하게 지키죠.”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게, 음원이나 컨셉에 대한 보안을 잘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이제 곧 온답니다.”

1팀장이 빙그레 웃으며 촬영장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장 감독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1팀장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곧 촬영장의 문이 열렸다.

세트장을 돌아다니던 스태프들이나 1팀 직원들도 열리는 문 쪽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블루문입니다!”

이제 데뷔한 지 만 1년이 다 돼가는 블루문이 신인다운 씩씩함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장 감독과 스태프들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저 때가 좋지.’ 하며, 몇 년이 지나면 싸가지 바가지가 되는 아이돌들을 떠올렸다. 경력이 오래될수록 인성이 사라지는 건가, 싶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블루문을 본 스태프들은 다시 세트장으로 관심을 돌렸지만, 장 감독은 블루문의 뒤를 이어 까만 벙거지 모자를 쓴 소년에 관심을 두었다.

소년이 까만 벙거지 모자를 한 손으로 벗자, 파란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보통은 볼 수 없는 파란 머리칼이 몇몇 스태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블루문 같은 씩씩함은 없었지만 정중하고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파란 머리칼이 가장 먼저 장 감독의 눈에 들어왔고, 가수를 해도 좋을 만큼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장 감독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반짝이는 아우라에 온몸의 감각이 쏠린 것 같았다.

“……?”

장 감독이 눈을 끔벅였다.

익숙한 얼굴인데 머리 색이 낯설었다.

머리 색은 낯선데 얼굴이 익숙했다.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조합에 잠시 숨 쉬는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인지 부조화가 왔다.

“……헐. 미친…….”

어디선가 신음 같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감탄을 따라 뇌가 작동하기 시작한 장 감독의 입과 눈을 더는 벌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그렇게 몇 초 동안 넋이 나갔던 장 감독이 겨우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탄식 같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서준 배우……!”

그 한마디에 촬영장이 폭발해 버렸다.

* * *

탑배우 이서준이 촬영 준비를 위해 블루문과 자리를 옮겼지만, 촬영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 코코아엔터 직원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물론, 보안을 위해 스태프들에게 주의를 줄 시간도 필요했다.

그런 소란이, 흥분이 블루문의 뮤비를 볼 대중들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팀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촬영장 안을 둘러보다가 아까부터 별말이 없는 장 감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장 감독은 콘티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서준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촬영을 맡고 질릴 정도로 봤던 뮤직비디오 콘티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블루문’이 나오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니, 이서준 배우가 어느 정도의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이래서 전혀 걱정하지 않으셨군요.”

“하하하. 네. 이서준 배우가 연기하는데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1팀장의 말에 장 감독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바짝 긴장해 있던 자신의 몸을 깨달았다. 그제야 그 이서준을 자신이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잠시 후.

촬영 의상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까지 끝낸 서준과 블루문이 촬영장에 나타나자, 안다호와 1팀장이 촬영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촬영장에 묘한 침묵이 깔렸다. 세트장의 준비가 끝나고 조명과 카메라 설치도 끝났는데 스태프의 수는 그대로였다. 더 늘어나지 않은 걸 보니 보안은 지켜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서준이 머리만 보네.”

“저 같아도 그럴 것 같아요.”

최재원의 말에 백이현이 말했다.

이서준의 실물을 본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이서준이 파란 머리를 하고 나타난다면 정말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블루문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때 1팀장이 손짓했다. 서준과 블루문이 쪼르르 1팀장과 안다호, 그리고 감독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쪽은 이번 뮤비를 찍어주실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블루문입니다!”

서준과 블루문의 인사에 장 감독이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도 손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 * *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촬영은 뮤비에서도 첫 장면으로 쓰일 예정이었고 등장인물은 서준과 최재원이었다.

세트장은 무대였는데 일반적인 무대보다 좁았고 색도 뮤직비디오에 나올 만한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이었다.

그 무대 중앙에 스탠드 마이크가 하나 서 있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말에 무대 위에 서 있던 최재원이 스탠드 마이크 앞으로 향했다.

“레디, 액션.”

장 감독의 신호에 촬영장 내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에 맞춰 최재원이 입을 열었다.

[나 혼자서 꿈꾸던 그때]

최재원은 학교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때를 떠올렸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환호 속에서 최재원은 처음으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너를 모르던 그때]

“컷! 오케이. 바로 다음 갈게요.”

감미로운 선율과 목소리에 스태프들이 막 귀를 기울이려던 찰나, 장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쉬운 얼굴을 하던 스태프들이 최재원의 옆에 최재원의 앞에 있는 스탠드 마이크와 똑같은 스탠드 마이크를 설치하고 내려오자, 그 앞에 서준이 자리를 잡았다.

왜 여기서?

서준의 등장에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눈을 빛냈다.

최재원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1팀장과 안다호, 그리고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반짝였다. 서준의 연기를 보지 못했던 장 감독도 기대 서린 얼굴로 액션을 외쳤다.

촬영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흥미로운 눈으로 세트장의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멈췄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 혼자서 꿈꾸던 그때]

[아직 너를 모르던 그때]

조금 전의 부분이 흘러나오고 잘렸던 부분이 막 나오려고 할 때, 최재원만 비추던 카메라가 빙글 돌아, 마치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최재원의 옆에 서 있던 서준을 비추었다.

최재원이 스탠드마이크를 손으로 잡았다.

이서준이 스탠드마이크를 손으로 잡았다.

[난- 홀로 서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최재원의 시선이 외로움을 표현하듯 아래로 향했다. 동시에 입을 벙긋거리고 있던 서준의 시선도 아래로 향했다.

모니터에 함께 비치는 최재원과 서준의 모습에, 콘티를 미리 알고 있었던 장 감독은 물론이고 무대를 보고 있던 스태프들도 하나둘 놀라움에 입을 쩌억 벌렸다.

박자에 맞춰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는 최재원.

박자에 맞춰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는 이서준.

[노래를 불렀어-]

성대를 울리며 노래를 부르는 최재원.

성대를 울리며 노래를 부르는 이서준.

무대 위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장 감독은 너무 놀라 컷을 외치는 것을 잊고 말았다.

자신의 파트를 지나가도 컷 소리가 들리지 않자 최재원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런 최재원의 모습을 서준이 그대로, 동시에 연기해 냈다.

그 모습에 1팀장과 블루문마저도 입을 벌리고 말았다. 물론 안다호는 흐뭇하게 웃었다.

“커, 컷! 오케이!”

뒤늦게 장 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동시에 마치 하나인 것처럼 움직이던 최재원과 서준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재원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담아내던 서준의 연기가 끝난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최재원과 서준이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

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감상을 떠들어댈 줄 알았는데 조용하니 최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조용해?”

“재원이 형…… 서준이 연기 장난 아니에요…….”

“응?”

경악이 가득 담긴 김시훈의 말에 최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기된 얼굴의 박이든이 연신 감탄하며 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 완전 소름 돋음! 너 재원이 형이 당황하는 것까지 따라 하더라!”

“앞부분이야 몇 번 연습하긴 했지만…….”

모든 일에 담담한 정은성도 제법 놀란 얼굴이었다.

블루문과 1팀장이 뒤늦게 감상을 늘어놓는 사이, 장 감독은 아직도 반복되는 짧은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눈을 깜빡이는 순간까지도 똑같은 것 같았다.

카메라를 보느라 서준의 연기를 못 봤던 최재원은 그런 장 감독의 옆으로 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서준의 연기에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아니……서준아. 왜 이것까지 따라 한 거야?”

“컷 소리가 안 들려서요.”

NG든 OK든.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컷 소리가 들릴 때까지 촬영을 이어나가야 한다.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프로의 모습에 신인 아이돌들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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