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15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두 손을 꼭 쥐며 눈을 반짝이는 헤어디자이너의 반응에, 목 아래로 망토처럼 생긴 아이보리색 커트보를 두르고 의자에 앉은 서준이 하하 웃었다.
서준의 주위에 앉아 있던 블루문 멤버들도, 직원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직원들은 헤어디자이너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곳은 코코아엔터가 예전부터 함께해오던 샵으로 서준도 촬영 외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들르는 곳이었다.
헤어디자이너가 서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고 살펴보면서 말했다.
“배우가 원래 머리에 손을 잘 대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이돌 뮤비에 출연할 줄은 전혀 몰랐어! 아니, 보통 뮤비에 출연해도 염색은 안 하거든. 근데 염색이라니! 서준이가 염색이라니! 아주 멋지게 해줄게!”
“하하. 감사합니다.”
“아, 서준아. 염색하고 사진 많이 찍어서 팬카페에 올려. 팬들도 엄청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네. 그럴게요.”
새싹들이 알았다면 ‘들숨에 재력을! 날숨에 건강을!’이라고 외쳤을, 헤어디자이너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탈색부터 시작할게. 파란색이 잘 나오려면 두 번 정도는 탈색해야 해. 색이 잘 안 빠지면 한 번 더 해야겠지만.”
헤어디자이너의 능숙한 손길에 새까만 머리카락에 치덕치덕 탈색 약이 묻었다.
서준이 신기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탈색이나 염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단계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옷은 뭐 입어? 아이돌 뮤비면 좀 화려하게 입나?”
“그냥 평범하게 입어요.”
“아이고. 그건 좀 아쉽네. 그래도 염색한 김에 이것저것 입고 찍어봐. 언제 이런 색으로 염색해 보겠어.”
“네. 그럴게요.”
서준의 대답에 오늘 함께 온 안다호가 오호, 하며 새로운 스케줄 후보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그럼 편하게 있어. 탈색하고 염색까지 하려면 오래 걸리니까.”
촬영을 위한 스타일링은 대부분 촬영장에서 하는 터라, 샵에서는 거의 가볍게 끝만 다듬어 이렇게 오래 앉아있는 건 처음이었다. 가만히 앉아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서준에게 안다호가 다가왔다.
“서준아. 뭐 먹을래? 오렌지 주스랑 포도 주스도 있고 콜라랑 사이다도 있대.”
“오렌지 주스 주세요.”
안다호가 탈색 약을 다 바른 서준에게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이런 모습은 안다호에게도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
“저도요. 염색은 처음이라서 기대돼요.”
서준도 조금 들뜬 얼굴로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아빠도 궁금해해서 염색이 끝나면 바로 사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서준은 탈색 약을 씻어낸 뒤에 한 번 더 탈색 약을 발랐다. 서준보다 일찍 끝난 블루문 멤버들이 하나둘 서준의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가도 되는데.”
“아냐. 혼자 있으면 심심해.”
박이든의 말에 백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성이 블루문의 숙소에서 가져온 트럼프 카드를 꺼내, 서준과 멤버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커트보 아래로 손을 빼꼼 내민 서준이 받은 트럼프 카드들을 들어 올렸다.
‘이런, 조커네.’
제 손안에 들어온 패를 본 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표정을 숨기고, 같은 카드를 골라 앞에 내려놓은 후, 옆에 앉은 박이든에게 카드의 뒷면을 내밀었다.
어느 것이 조커가 아닐까.
카드 위로 손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서준의 표정을 살피던 박이든을 본 정은성이 입을 열었다.
“걔 배우야.”
“오스카를 받았지.”
“황금종려상도.”
“크윽.”
형들까지 키득키득 웃으며 말하자, 박이든은 자신이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온한 서준의 표정에 아무거나 집었는데 그게 조커였을 때는 저도 모르게 낙담하고만 박이든이었다.
그렇게 도둑 잡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두 번의 탈색 후, 노랗게 변한 머리카락에 서준이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안다호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자 빙그레 웃었다.
“좀 부스스하지 않아요?”
“괜찮아. 잘 어울리는데?”
안다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제법 잘 나온 사진에 서준도 활짝 웃었다.
블루문 멤버들도 햇볕 같은 금색 머리칼로 변한 서준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서준인 진 나트라 때도 흑발이었지.”
“한국인 혼혈이었으니까요.”
최재원의 말에 정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배역들도 다 한국인 캐릭터였고.”
“진짜 배우들은 염색할 일이 거의 없네.”
“사진! 우리도 사진 찍어요!”
커트보를 잠시 벗어도 된다는 헤어디자이너의 말에, 아이보리색의 커트보를 벗자 일상복을 입은 금발의 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울에 비치는 노란빛 머리칼이 어색한 듯 서준이 뒷목을 매만졌다.
그 지금까지 절대로 볼 수 없었던, 화보 같은 금발 서준의 모습에 샵 직원들이 술렁였다. 몇몇 직원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와아!
블루문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와 서준의 옆에 섰다. 거울에 비치는 블루문과 서준의 모습은 마치 한 그룹처럼 보였다.
“진짜 아이돌 해도 되겠다!”
“비주얼 멤버!”
“1팀장님한테 말해볼까? 서준이 데려오자고?”
“시훈이 형. 저기 2팀장님 계세요.”
정은성의 말에 멤버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서준이 하하 웃자, 안다호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블루문도 신나게 서준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럼 염색약 바를게. 탈색이 잘 돼서 색이 잘 나올 것 같아.”
사진을 다 찍고 서준이 자리에 앉자 헤어디자이너가 다시 커트보를 둘렀다.
서준의 금색 머리카락에 염색약이 덮어졌다. 이제 약 30분. 블루문 멤버들과 놀고 있으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샴푸를 하고 나온 서준이 의자에 앉자, 헤어디자이너가 드라이기로 서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날리며 말렸다.
“아까 금발도 잘 어울렸는데, 이것도 잘 어울리네.”
“그래요?”
서준이 물빛 머리카락이 조금 어색한 듯 웃자, 블루문도 잘 어울린다며 연신 감탄하고 샵 직원들도 엄지를 들어 올렸다.
금발은 영화나 영상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조금 익숙했다면, 파란 머리카락은 독특하면서도 특유의 신비함과 청량함이 담겨 있었다.
“너무 원색이 아니라서 좋은 것 같아.”
“그러게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머리색은 쨍한 파랑보다는 하늘색 쪽에 가까웠다.
사각사각.
가위와 빗을 든 헤어디자이너가 스타일리스트의 의뢰대로 서준의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본격적인 스타일링은 뮤비 촬영장에서 할 예정이라 조금 가다듬는 정도였다.
“자. 끝!”
헤어디자이너가 아이보리색 커트보를 걷어내자 여길 보나 저길 보나, 아이돌 같은 소년이 나타났다.
“엄청 잘 어울려!”
아까와 마찬가지로 블루문이 들썩거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 모습이 뮤비에 나올 ‘블루문’이라고 생각하니 더 들뜬 얼굴이었다.
“색 엄청 잘 나왔네.”
“이 색 유행할 것 같지 않아?”
몇몇 샵 직원들이 감탄하며 서준의 머리카락에 쓴 염색약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후, ‘이서준 블루’라는 이름으로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얼굴이 완성……!”
“우리 서준이가 파란 머리라니……!”
서준의 팬이라는 사실을 숨겨왔던 몇몇 샵 직원들이 감격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평소 배우같이 차분한 모습에서 아이돌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변한 서준에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런 서준의 모습을 혼자만 보기엔 아까웠다.
서준이 파란 머리를 한 이유가 블루문의 뮤비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 * *
샵 안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블루문의 매니저가 샵 입구를 조금 지나쳐 차를 세웠다. 전화를 받고 있던 안다호가 서준과 블루문에게 먼저 타라고 손짓했다.
“안녕히 계세요!”
서준과 블루문이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8월이라 더운 바람이 서준의 파란 머리카락을 살랑였고 뜨거운 햇살에 비치니 푸른 머리가 더 반짝였다.
“서준아. 머리색 숨겨야지.”
안다호가 전화를 받은 상태로 얼른 뒤따라 나와 검은색 벙거지 모자를 씌워주었다.
아.
서준의 눈을 동그랗게 변했다.
배우에게 중요한 보안은 대부분이 촬영장 안에 한정되며, 촬영장 밖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나 결말 같은 내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서준은 머리카락 색과 같은 외적인 것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활동인 블루문 멤버들도 아하,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데뷔 때, 백이현과 박이든이 염색을 했지만 그건 흔한 갈색 머리라 숨길 필요도 없어서 몰랐다.
이번에도 검은 머리 그대로 컴백할 예정이라 특별히 숨기지 않아도 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서준이 벙거지 모자를 꾸욱 눌러쓰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다호 형. 누가 봤을까요?”
“괜찮아.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얼른 차에 들어가자.”
안다호의 말에 서준과 블루문이 우르르 차에 올랐다. 통화를 하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안다호도 곧 전화를 끊고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방심하긴 했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블루문이 서준을 둘러싸고 있었던 터라 멀리서라면 서준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코코아엔터는 서준이 블루문의 뮤비에 나온다는 사실은 뮤비가 공개될 때까지 숨길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스케줄을 하려면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 *
띠띠띠띠.
현관문이 열리자 두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높여 반갑게 인사하다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서준이 오빠! 왔……?”
“서준이 형……?”
여름방학을 맞아 서준의 집에서 서준이 오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서은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년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쩌억 벌렸다. 3학년인 김수빈도 멍한 얼굴로 눈만 깜빡였다.
‘머리가…… 파래…….’
어쩐지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은 두 동생의 모습에, 반갑게 인사하려던 서준이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그 대치를 보고 있던 부부와 서은찬, 김수련 그리고 김희상과 최수희가 작게 웃었다. 다들 서준이 염색을 했다고 보낸 사진을 받고 실물이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도 잘 어울리네. 파란색이라고 들었을 때는 어쩌나 했는데…….”
“원래 얼굴이 패션의 완성이잖아.”
“서준이 팬들도 엄청 좋아하겠어요.”
어른들이 속닥거리는 사이, 서준이 바닥에 앉았다. 은수와 수빈이의 시선이 서준의 파란 머리카락을 따라 움직였다. 몇 초가 흐르고, 덜 충격받은 듯한 수빈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준이 형. 염색한 거야?”
“응. 안 어울려?”
수빈이가 고개를 저었다.
“엄청 잘 어울려. 바닷속에서 사는 사람 같아.”
“그래?”
“근데 파란색으로 염색한 사람은 처음 봐서 신기해.”
수빈이의 눈빛에서부터 호기심이 가득했다.
서준이 웃으며 만져보라고 이야기하자, 수빈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파란 물이 묻어 나올 것 같은 머리카락을 만졌다가 조금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그냥 머리카락이네.”
뭘 기대한 모양인지.
수빈이의 말에 서준과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드디어 충격을 가라앉힌 은수가 외쳤다.
“슬라임! 슬라임이야!”
은수의 감상에 다들 저절로 서준부터 수빈이, 은수까지, 모두 애착 인형처럼 가지고 다녔던 파란색 슬라임을 떠올리고는 빵 터지고 말았다.
* * *
[제목 : 지나가다 샵 앞에서 블루문 봤는데.]
지나가다 어떤 샵 앞에서 블루문 봤는데, 멤버 다섯 명 아니야?
엄청 친해 보이는 애가 한 명 더 있던데?
원래 여섯 명이었음?
-블루문 다섯 명임. 잘못 센 거 아님?
-ㄱㅆ) ㄴㄴ 본진이 11명이라 숫자 틀릴 일은 없음.
=ㅋㅋㅋ이유가 너무 웃겨ㅋㅋ
=내 본진도 13명이라 이해함. 사진 찍고 ‘완전체!’ 하고 글 올렸는데 한 명이 없으면 큰일;;;
-같은 샵 쓰는 다른 아이돌 아니야?
=ㄱㅆ) 같은 차 타던데?
=그럼 같은 소속사 아이돌이라거나.
=블루문 코코아 소속임. 바로 위는 레크고 그 위는 화이트. 또래는 서준이뿐.
=이서준인 거 아님?
=ㄱㅆ) ㄴㄴ 그건 확실하게 아님. 머리카락이 파란색이었음. 색 진짜 예쁘더라.
=헐. 새 멤버 영입인가?
=루머 ㄴㄴ
-근데 그건 왜? 블루문이 다섯이든 여섯이든 상관없는 거 아니야?
=ㄱㅆ)……하…….
=ㄱㅆ)……파란 머리가 멀리서 봐도 너무 내 취향이라…….
=앜ㅋㅋ 열심히 찾아봤는데도 없었구나ㅋㅋㅋ
=ㄱㅆ) 연습생들까지 싹 뒤짐……ㅋ
=이러니까 갑자기 궁금해졌다ㅋㅋ
=222 누군지 꼭 맞히고 싶어짐ㅋㅋ 일단 파란 머리 후보들 사진 올려봄.
……
-ㄱㅆ) 전부 아니네ㅠㅠ 파란 머리…… 누군진 모르겠지만 꼭 데뷔하길 기도할게ㅠㅠㅠ
=아련하다ㅋㅋ 근데 이 정도면 잘못 본 거 아닌가ㅋㅋ
=환상 속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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