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14화 (41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14화

“진짜 블루문을 연기한다고?”

여기서 집중해야 할 단어는 ‘블루문’이 아니라 ‘진짜’였다.

1팀장의 말을 이해한 직원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블루문의 의인화가 이서준 배우의 흥미를 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이서준 배우의 관심을 끌고 계약까지 했죠.”

블루문의 의인화.

그것이 이번 블루문 싱글앨범 뮤직비디오의 중점이었다.

“그저 그룹의 이름일 뿐인 ‘블루문’을 의인화한다면 서준이도 흥미로워할 테고 팬들이나 일반인들에게도 색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우리 계획이었지.”

1팀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뮤직비디오 내용은 이렇다.

한 소년이 다섯 군데의 장소를 지나가며 가수가 되기를 꿈꾼다. 그 다섯 군데의 장소는 블루문 멤버들이 처음 가수가 되기를 꿈꿨던 장소였다.

소년(얼굴을 가린 댄서)이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블루문의 멤버들이 하나씩 나타나 모습을 보인다. 카메라는 소년(댄서)보다 블루문의 멤버를 집중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소년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블루문 멤버들의 능숙한 모습이 교차하며 나타나다가 마지막으로 소년, 블루문이 사라지며 다섯 명의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저희가 원한 ‘블루문’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서준의 성격이나 행동을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았고 서준이 직접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도 괜찮았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일 뿐인 ‘블루문’을 연기하는 것이었기에 어떤 분위기의 소년이라도 1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희는 캐릭터 이름만 ‘블루문’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블루문 멤버들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그 누구도 그 이상의 연기를 떠올리지 못했던 이것이 원래 1팀이 생각하던 블루문, ‘가짜’ 블루문이었다.

“그런데 진짜를 가지고 왔지.”

1팀장의 말에 다들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라는 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무생물인 나무나 돌이라면, 어렵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형체도 없는 ‘개념’이라면?

“이서준 배우는 장소마다 그 장소에서 가수라는 꿈을 꾸게 된 멤버들을 연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학교 강당에서는 최재원을, 텔레비전 앞에서는 박이든을, 비보잉 댄서들 앞에서는 김시훈을, 라디오 앞에서는 백이현을, 영화관에서는 정은성을.

그렇게 배우 이서준은 멤버들을 연기해 ‘진짜 블루문’을 만들어낼 예정이었다.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한 연기였지만 이서준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년, 블루문에게서 다섯 멤버의 버릇과 특징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뮤직비디오의 분위기는 확 바뀔 거예요.”

멤버들과 조금도 연관성이 없는 가짜에서 멤버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진짜로.

멤버들을 잘 아는 팬들은 ‘블루문’에게서 묘한 느낌을 감지할 터였다.

“다섯 멤버가 곧 블루문이며, 블루문이 곧 다섯 멤버인 거지.”

1팀장의 말에 다들 침음성을 삼켰다.

그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연기니까 서준이가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하고 넣었던 ‘의인화’ 요소가 상상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고 다가왔다.

“평범한 소년의 연기를 생각했는데…… 저희 상상력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봅니다.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오죠?”

“해석뿐이면 다행이게요. 실행 일보 직전인걸요.”

모두 블루문 멤버들과 함께 춤을 추던 서준을 떠올렸다. 정말로 서준은 ‘블루문’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준이가 이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을 줄, 누가 예상했겠어요.”

“아마…… 한계 때문이겠지.”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눈을 끔벅였다.

“한계요?”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은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연기는 여기까지가 전부라고, 한계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야. 예를 들어 예전만 해도 일반인들은 스마트폰 같은 걸 몰랐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때 스마트폰을 연구하고 있는 개발자와 일반인들이 스마트폰 그림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개발자는 가능성을 알고 있으니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냥 작은 텔레비전? 정도로 생각하겠지.”

아하.

1팀장의 비유에 모두 단번에 이해했다.

“이번 경우도 같은 거겠지. 우리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서준이는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한 걸 거야.”

그러니까 배우 이서준의 연기력이 1팀의 예상을 훌쩍 넘었다는 것이었다.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들고 있던 것이 귀한 보석인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바람에 보석을 꾸밀 장식이 빛이 바래버린 것 같았다.

장식이 빛이 바랬다면 어울리는 장식으로 바꿔야 할 터.

1팀 직원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팀장님! 뮤비 내용 조금 수정해도 괜찮을까요?”

“아니.”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하긴, 촬영도 얼마 안 남은 지금은 콘티를 수정하기도 어려운 일이겠지. 아쉬워하는 직원들을 보며 1팀장이 씨익 웃었다.

“싹 다 갈아엎자.”

눈을 동그랗게 뜬 직원들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연습실에 있던 서준과 블루문이 눈을 끔벅였다.

해석만 바뀌고 뮤직비디오 콘티는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전부 수정할 예정이란다.

“촬영 일정은요?”

“아마 그대로 갈 거야.”

최재원의 물음에 1팀 직원이 대답했다.

촬영 준비 기간이 짧아져서 바빠지기야 하겠지만 그건 1팀 직원들의 일이었다. 반대로 수정 콘티가 빨리 끝나면 준비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니 최대한 빨리, 멋지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래서 너희 의견도 좀 들으려고.”

“저희 의견도요?”

“특히 서준이 의견이 많이 필요하지.”

종이에 써서 제출해 달라는 1팀 직원의 말에 서준과 블루문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그래도 일단 적어볼까? 서준아. 시간 괜찮아?”

“네. 괜찮아요.”

대본 작업도 순조로웠고, 자신의 해석 때문에 콘티가 바뀐다니 흥미도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구성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 서준은 기쁜 마음으로 고민에 잠겼다.

블루문도 생각에 빠졌다.

“따라 하는 연기라……. 서준아. 어디까지 가능해?”

“글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목소리도?”

“목소리도?”

서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김시훈의 목소리에 블루문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자 서준이 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성대모사야 누군가를 따라 할 때 확실히 드러나면서도 제법 쉬운 일이었다.

“근데 목소리는 안 넣잖아요.”

“서준이가 우리 대신 노래 부를 수도 없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은성과 최재원, 백이현이 진지한 얼굴로 콘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김시훈과 박이든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서준과 놀고 있을 때,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돌아간 줄 알았던 트레이너였다.

“어? 쌤! 오늘 연습 끝나지 않았어요?”

“너희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서준과 블루문이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우고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너는 조금 들뜬 얼굴이었다.

“뮤비 콘티 바꾼다며?”

“네! 서준이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요!”

박이든이 밝은 얼굴로 말하자 트레이너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바꾸자!”

“네?”

“춤도 조금 바꾸자!”

트레이너의 말에 김시훈의 귀가 쫑긋 섰다. 서준과 다른 멤버들이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며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춤을요?”

“좀 더 서준이의 연기가 잘 드러나게 말이야. 전부는 아니고 조금만! 대형을 조금 바꾸고 동선도 조금 바꾸고.”

손짓 발짓, 그리고 몸짓으로 트레이너의 설명이 이어졌고 서준과 블루문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멤버들 중 가장 춤이 약한 최재원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전의 안무와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김시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쌤. 이건 뮤비 대형이에요? 공연 대형이에요?”

“둘 다 써도 될 것 같아. 공연 대형에서는 서준이 대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거지.”

“오호.”

트레이너의 대답에 블루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흰 좋아요.”

“그럼 1팀장님한텐 내가 말해 놓을게. 디테일도 조금 수정하면…… 아마 모레부터 바로 연습할 수 있을 거야.”

“네!”

트레이너가 밝은 얼굴로 연습실을 나가고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저 뮤비 콘티 하나 생각났는데요.”

“그래? 뭔데?”

“연기하는 부분 있잖아요. 이렇게 넣으면 어떨까요?”

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서준의 설명에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서준이 네 분량이 줄어드는 거 아니야?”

“형들 뮤비잖아요. 전 괜찮아요.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서준의 의견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의견들이 흘러나왔다. 서준이 연기하는 ‘블루문’을 이해했기 때문인지 독특한 의견들도 있었다.

“이것도 넣자!”

“이걸? 갑자기?”

김시훈의 말에 백이현과 최재원이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이돌이면 이 정도 목표는 가져야지!”

“배경은 이걸로 해요!”

“그럼 이것도 넣죠.”

박이든도 두 팔 걷어붙이고 의견을 냈고 정은성이 마무리로 콘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건 안 될 것 같은데……?”

최재원과 백이현의 떨떠름한 반응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틀 후.

안무 마지막 부분에 수정할 게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트레이너의 말에 서준과 블루문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할 때, 1팀장이 밝은 얼굴로 연습실에 들어왔다.

“이렇게 만들기로 했다.”

1팀장이 흐뭇한 얼굴로 웃으며 수정된 뮤직비디오 콘티를 서준과 블루문 멤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서준이 콘티를 읽어 내려갔다. 처음 콘티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서준이 연기하는 ‘블루문’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콘티를 읽고 있던 서준이 맨 마지막 부분에서 풉, 하고 웃고 말았다.

이 부분은 김시훈과 박이든, 정은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것 같았다.

“이거…… 안 될 줄 알았는데…….”

최재원과 백이현도 마지막 부분을 봤는지 떨리는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콘티를 보았다. 하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신이 나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박이든과 김시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은성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콘티를 살펴보고 있는 서준에게 물었다.

“너 할 수 있겠어?”

이번 콘티가 마음에 든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연기는 원래 뻔뻔하게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오후에 도착한 트레이너의 수정된 안무는, 알고 보니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최재원과 백이현은 한 번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블루문의 싱글앨범은 수정된 뮤직비디오 콘티와 안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가수 1팀은 자켓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감독과 스태프들을 구하고 있는 중이었고, 블루문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대략 정해진 이번 싱글앨범의 컨셉을 구체적으로 잡아 블루문들에게 어울리는 옷들과 스타일을 궁리하고 있었다.

서준과 블루문 멤버들도 수정된 안무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서준아. 오늘은 대본 작업하러 안 가?”

“뮤비 촬영 때까지는 연습에 집중하려고요. 며칠 안 남았잖아요.”

서준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이 감격한 듯 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닮은 다섯 명의 얼굴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이번에도 염색할까요?”

“컨셉을 봐선 그렇게 엄청 눈에 띄는 색으로는 안 할 것 같던데…….”

박이든의 물음에 백이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작년 블루문 데뷔 당시, 백이현과 박이든만 진한 갈색 머리로 염색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준이 너 이번에 염색해? 아니면 가발 써?”

최재원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염색하기로 했어요.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 너 염색해?”

박이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정은성이 서준 대신 대답했다.

“뮤비 설명에 나와 있잖아. 서준이 스타일링.”

“못 봤음.”

박이든이 히히 웃으며 뮤비 콘티를 꺼내 읽었다. 몰랐던 눈치인 김시훈도 조용히 박이든의 옆에 앉아 종이를 읽어내려갔다. 그러고는 이내 크게 뜬 눈으로 서준과 콘티를 번갈아 보다가 외쳤다.

“파란 머리?!”

깜짝 놀라는 두 멤버의 모습에, 현직 아이돌보다 화려한 색으로 염색을 하게 된 배우,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