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12화 (41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12화

‘다들 잘하니까.’

그리고 녹음할 곡도 한 곡뿐이니 어쩌면 오늘 내로 끝날 것 같았다.

“재원아. 끝부분 조금 올려보자. 잘하고 있어!”

-넵!

‘……아닌가?’

그렇게 삼십 분쯤 블루문의 녹음을 보고 있으니 황예준의 디렉팅이 부드러운 덕분인지 아니면 다들 녹음에 집중한 모양인지 긴장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그런 블루문의 모습에 서준도 마음 편히 대본 작업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예준이 헤드폰을 쓰고 있어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은 들릴 일은 없겠지만, 블루문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준에게 눈짓 손짓으로 나중에 보자고 인사했다. 서준도 손을 휘휘 흔들었다.

녹음실 밖으로 나온 서준은 노트북이 든 가방을 가지고 테이블이 있을 다른 방으로 향했다.

“어라?”

방문을 연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곳은 브라운블랙이나 다른 가수들이 컨셉을 회의하거나 녹음 중 수정할 부분이 있을 때 회의를 하는 곳이었다. 보통의 회의실처럼 벽 쪽에 큰 화이트보드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서준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꽹과리와 첼로처럼 세워서 활을 마찰시키며 연주하는 현악기 해금부터 플루트처럼 옆으로 연주하는 관악기 대금, 양손으로 채를 쥐고 치는 타악기 장구, 한 줄 한 줄 뜯어 연주하는 거문고, 그리고 마치 슬레이트처럼 탁! 소리를 내는 박까지.

그 이외에도 다양한 악기들이 회의실 테이블과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거 예준이 형이 직접 녹음한 거였구나.”

USB에서 완성된 곡 파일을 찾을 때 들려왔던 온갖 전통 악기 소리들.

어디서 샘플로 얻어왔나 싶었는데 직접 악기를 가지고 녹음했던 모양이었다.

쿵!

장구를 한 번 손으로 쳐 본 서준이 이내 여기 온 목적을 떠올리고 다시 회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서는 못 쓰겠네.”

악기들이 놓여 있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서준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여기 말고도 앉을 장소는 많았기 때문에 고민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가 좋을 듯싶었다.

* * *

오전 내내 녹음을 하고 나니 금세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황예준과 아이들은 점심으로는 중식을 먹기로 했다.

총알처럼 배달된 자장면과 짬뽕, 탕수육과 만두 등 따끈따끈한 음식들을 식탁에 늘어놓고 옹기종이 모여 앉았다. 서준도 내내 키보드를 두드렸던 두 손을 스트레칭하며 자리에 앉았다.

“선배님.”

“응?”

짬뽕을 먹던 황예준이 정은성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녹음하는 동안 제법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로 황예준을 편하게 대하는 정은성의 대담한 모습에 블루문 멤버들이 속으로 감탄했다.

“선배님은 녹음실 귀신 보신 적 있으세요?”

“오.”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빛냈다. 자장면을 먹던 서준도 흥미로운 눈으로 황예준을 바라보았다.

녹음실 귀신.

녹음실에서 귀신을 보거나 녹음한 음악 속에 이상한 음이 들어간다면 대박이 난다는 그 미신을 안 들어본 아이돌은 없을 터였다.

서준도 어릴 때 브라운블랙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준이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블루문이 반짝이는 눈으로 황예준을 바라보았다. 브라운블랙 정도의 경력에, 흥행 행렬이면 대박을 부른다는 그 귀신을 한 번쯤 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황예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긴 했는데 한 번도 못 봤어. 이상한 소리가 녹음된 적도 없고.”

“여기가 지하가 아니라 지상이라서 안 나올 것 같긴 해요.”

최재원의 말에 황예준이 탕수육을 하나 찍어 먹으며 대답했다.

“브블 초기에는 지하 녹음실에서 했는데도 못 봤어.”

“아하.”

“응?”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황예준과 블루문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의아해하는 시선에 서준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황예준과 블루문이 다시 녹음실 귀신 이야기로 떠드는 사이, 서준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그게…….’

지하 녹음실 구석에 서 있던 희끄무리한 그것.

브라운블랙의 녹음을 보러 놀러 온, 몬스터 사에서 나온 해태 모양 가방의 가방끈을 양손 야무지게 쥔 꼬꼬마 서준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브라운블랙과 매니저 서은찬은 녹음을 준비하느라 서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빤히 바라보는 서준을 눈치채지 못했다.

새하얀 그것은 불길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형들이 멋진 노래를 녹음하는데 영향을 줄까 봐, 용감한 꼬꼬마 서준은 조막만 한 손에 선기를 두르고 모기를 잡듯 찰싹! 그것을 내려쳤다.

날카로운 발톱에 찢어지듯, 갈라지던 그것의 모습은 마치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용맹한 서준은 오히려 엣헴! 어깨를 들썩였다. 서준의 등에 매달린 화재와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 해태 가방도 따라 들썩였다.

‘서준아, 거기 벌레 있어?’

‘모기 아니에요?’

‘아니야! 없어! 내가 없앴어!’

‘와! 우리 서준이! 모기도 잘 잡네?’

황예준이 서준을 번쩍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자 꼬마 서준이 꺄하하 웃었다. 박서진이 얼른 물티슈를 가지고 왔다.

‘서준아, 손 줘봐. 닦자. 더러워.’

‘그래. 지지야, 지지.’

케빈 킴의 말에 한순간 지지가 돼버린 녹음실 귀신을 떠올린, 고등학생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아, 예준이 형. 회의실에 전통 악기가 많던데, 산 거예요?”

전통 악기?

문득, 코코아엔터 회의실에서 들었던 온갖 악기 소리가 떠오른 블루문이 서준과 황예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군만두를 먹던 황예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는 사람들한테 빌려왔어. 잠깐 쓸 거라서.”

“곡 완성되면 형이 직접 연주할 거예요?”

“연주는 전문가에게 맡기려고 했지! 지금은 그냥 소리 수집 중? 간단한 음이 궁금할 때마다 전문가 부르기는 힘드니까 말이야. 근데 생각보다 소리가 잘 안 나더라. 박이랑 꽹과리가 제일 쉬워! 흐.”

해탈한 듯 웃으며 황예준의 말에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연주 한번 해봐도 돼요?”

그 말에 황예준과 블루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통 악기도 연주할 수 있었어? 언제 배운 거야?”

“옛날에 조금 배웠어요.”

아주 옛날, 전생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자 황예준이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랫동안 서준을 알아왔다. 저 ‘조금’은 결코 일반인의 ‘조금’이 아닐 터였다.

“그럼 지금 연주할래? 녹음해도 되지?”

서준과 황예준 사이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블루문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앨범 녹음을 먼저 해야죠. 예준이 형.”

아차, 싶었던 황예준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블루문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얘들아! 바로 녹음 시작하자!”

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선배님을 보며 블루문 멤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 * *

“이건 뭐랄까…….”

“용사가 병사들의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느낌?”

“아니면 마왕의 제물로 받쳐진 느낌?”

몇 시간 후.

녹음을 끝내고 나온 블루문은 드래곤, 또는 마왕에게 영혼이 빼앗긴 병사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을 배신한 용사 서준이 하하 웃고 말았다.

“많이 힘들었어요? 예준이 형이 그런 스타일은 아닐 텐데?”

“체력보다는 마음이 아파.”

“팩트 폭행 엄청 당한 느낌.”

김시훈과 박이든이 흑흑 과장하며 울었다.

“선배님이 직접 노래까지 부르면서 가르쳐 주시는데…… 내 실력이 이렇게 부족한가 싶고…….”

“오전 녹음보다 빡셌어. 오전 녹음이 ‘아이고, 애기들이네.’였다면 오후 녹음은 ‘자, 이렇게 부를 수 있지?’라는 느낌이었지.”

가장 파트가 많은 보컬이라 가장 많이 시달린 최재원과 백이현이 해탈한 듯 허허 웃었다.

“그래도 많이 배웠어. 역시 브라운블랙이시더라.”

정은성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말을 이었다.

“선배님이 우리보다 우리 목소리랑 노래를 잘 아시는 것 같았지?”

“그렇죠? 내가 뭐가 부족하고 뭘 잘하는지 잘 알 것 같아요.”

“다음 앨범 녹음도 황예준 선배님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최재원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잘 배우고 있는 블루문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서준아, 준비 다 됐어!”

황예준의 부름에 서준과 블루문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 안, 부스에는 해금과 거문고가 놓여 있었다.

블루문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해금과 거문고를 연주할 서준은 부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예준이 형. 듣고 싶은 곡 있어요?”

“아니! 아무거나 좋아!”

서준의 물음에 황예준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에 서준이 눈을 끔벅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해금과 거문고.

서준은 먼저 거문고를 연주하기로 했다.

블루문이 오후 녹음을 하고 있을 때, 잠시 생의 도서관에 들러 읽었던 책 중 어울리는 능력을 꺼내왔던 서준은 그 능력을 발동시켰다.

[(선)태백 구미호의 풍류-중급이 발동됩니다.]

[(선)태백 구미호의 풍류-중급]

한반도의 악기들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음률에 신묘한 기운이 담깁니다.

산속에서 연주 시, 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한반도 동쪽, 태백산맥에 자리 잡은 구미호로, 이름은 따로 없이 태백이라고 불렸다.

음악을 사랑했던 구미호, 태백은 인간으로 변해 여러 악기를 배워나갔다. 산맥 깊은 곳에서 유유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태백의 취미요, 특기요, 행복이었다.

전생에 태백이라 불린, 서준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거문고의 머리 쪽을 무릎에 올려놓고 왼쪽 무릎과 오른발로 거문고를 받쳤다.

그리고 약지에 가죽으로 된 골무가 끼워진 왼손을 여섯 개의 현을 누를 수 있게 그 위에 올리고, 여섯 개의 현을 내려치고 올려 뜨기 위해 오른손으로 술대라는 막대를 잡았다.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녹음실에 있던 황예준과 블루문이 눈을 크게 떴다. 꼭 한복을 잘 차려입고 연주에 임하는, 프로 연주자를 보는 것 같았다.

-형. 시작할게요.

“그래.”

황예준의 대답에 잠시 조용히 있던 서준이 술대로 두꺼운 현을 올려 튕겼다.

둥!

마치 베이스 기타의 음처럼 낮은 선율이 부스를 울렸다. 황예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서준은 현을 누르고 튕기고 흔들었다.

오랜만의 연주에 능력도 신이 난 모양인지 ‘태백’의 아홉 개의 새하얀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묵직한 선율은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았고, 현을 누르고 튕기고 흔드는 두 손의 움직임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문고 연주의 마지막 음이 녹음실을 울릴 때, 선율에 집중하고 있던 황예준과 블루문은 서준의 등 뒤 새하얀 것을 발견했다. 놀라 눈을 깜빡이니, 사라졌다.

멍하니 있던 김시훈이 입을 열었다.

“……녹음실 귀신?”

“……헐. 그럼 우리 앨범 성공한다는 거야?”

오오!

기대하는 블루문 멤버들에 정은성이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나왔다는 건 서준이가 성공한다는 거겠죠.”

“……서준이는 앨범 안 내잖아?”

글쎄.

블루문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예준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거문고를 옆으로 치우고 해금을 연주하기 위해 활을 잡은 서준이 어수선한 녹음실 밖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홉 개의 새하얀 꼬리도 서준을 따라 갸웃 움직였다.

* * *

댄스 트레이너가 연습실 문을 열었다.

녹음도 끝났고 안무도 다 익혔으니 이제 뮤직비디오 촬영 때까지 녹음된 곡을 들으며 디테일만 수정하면 되었다.

제법 순조로운 일정에 미소를 짓던 트레이너의 눈에 연습실 한가운데 모자를 쓰고 홀로 춤을 추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양옆을 쭉 뻗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면서 빠르게 스텝을 밟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춤선이나 스텝을 밟을 때 두 번 움직이는 버릇을 보아하니 박이든이었다.

쉬는 시간까지 연습하는 제자를 보며 트레이너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든이 열심히 하네.”

“네? 저요?”

바로 옆.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려온 박이든의 목소리에 트레이너가 화들짝 놀라 몇 걸음 물러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문 바로 옆, 벽에 기대앉아 수분을 보충하고 있던 박이든이 의아한 듯 트레이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저건 누구야?”

트레이너가 떨리는 눈으로 홀로 춤을 추고 있는, 박이든과 똑같은 춤선을 보이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연습생 때부터 가르쳤던 터라 박이든의 춤을 자신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손과 발 움직임부터 팔을 뻗는 각도나 발을 내딛는 힘의 세기까지.

수업 시간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박이든’이 틀림없었다.

‘……근데 박이든은 여기 있잖아.’

‘박이든’처럼 춤을 추던 소년이 오른쪽 발끝으로 바닥을 짚고 반동을 주었다. 그 반동에 소년의 몸이 휙 하고 도는 순간, 박이든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요. 대본 쓰다가 막혀서 일찍 왔대요.”

뒤를 돌아본 서준이 눈이 마주친 트레이너를 보며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