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11화 (41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11화

다음 날 아침.

서준을 데리러온 안다호가 서준의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꿈이었다고?”

“네. 다 꿈에서 본 내용이더라고요.”

사실은 꿈이 아니라 전생이었지만 꿈이라고 해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잠이 들고 나서야 볼 수 있는 곳이니까.

서준의 말에 어젯밤 내내 고심하던 안다호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무슨 꿈을 그렇게 생생하고 다양하게 꿨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꿈에서 꾼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작가들도 있고, ‘데자뷔’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여러 사람들이 잘 쓰고 있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어디서 봤는지 알아내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마음 편하게 써도 될 것 같아요.”

서준이 밝은 표정으로 웃자 안다호도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대사나 지문을 쓰면 되는 거야?”

“아뇨. 이제 떠오른 키워드 중에 재미있거나 이어지는 키워드들을 모아서 하나의 줄거리로 만들려고요. 줄거리가 잡히면 등장인물들도 설정하고 대사를 넣어야죠.”

서준은 마치 작가처럼 대답했다.

“아마 그때부턴 각색이랑 조금 비슷할 것 같아요.”

그래도 중학생 때 한 번 해봤다고 어떻게 하면 잘 적을 수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모든 등장인물을 ‘이서준’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전제로 빽빽하게 적었던 지문 실수도 이번에는 하지 않을 거다.

‘암. 안 하고 말고.’

서준이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 무대에 어떤 장치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어울리는 조명 효과도 생각해야 해요. 저번에 잠깐 봤을 때는 여울 예중 시설보다 좋은 것 같아서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우리가 알아봐 줄게.”

“그럼 저야 고맙죠. 으음. 그러면 대충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까지?”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뮤비 촬영 끝나면 대본에만 매달릴 수 있을 테니까…… 8월 말이면 끝나지 않을까요?”

“다행이네. 개학하면 바로 모집하면 되겠다.”

“네. 중학교 때랑 비슷할 것 같아요.”

연극 [거울]의 완성도를 생각해 보면 나름 괜찮은 일정이었다.

‘중간에 입시가 있다는 것도 비슷하고.’

물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그때 다들 중학생이었으니까 고등학생인 지금은 더 잘 나오겠지!’

음악과든 미술과든 말이다.

제법 일정이 잡힌 상황에 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끼익!

음악 사이사이로 신발과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춤 대형의 맨 뒤에선 서준이 백이현을 살폈다. 백이현의 춤은 힘이 조금 떨어지지만 그 이상의 부드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춤 선이 하늘하늘했다.

반대로 메인 댄서 김시훈의 춤은 힘이 넘쳤다. 유연성도 남들보다 뛰어났다. 다 같은 동작의 춤을 출 때, 자신의 흥을 가라앉히고 다른 멤버들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자그마한 디테일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그게 제법 큰 차이를 만들어 다 같이 추는 사이에서도 김시훈에게 시선을 쏠리게 했다.

‘그래서 맨 앞에 서는 거겠지.’

춤이 중심이 될 때는 중앙에 서는 메인댄서라고 할 만했다.

서준과 블루문은 현재 수정된 안무를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추가된 안무도 있었고 빠진 안무도 있어서 그걸 이어붙이는 게 조금 혼란스럽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익힐 수 있었다.

물론, 안무의 순서와 종류를 기억한다는 거지 손끝 발끝 디테일까지 맞추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한 번 더!”

김시훈의 말에 다시 대형이 만들어졌다.

이건 배우의 연기 연습인가, 아니면 아이돌의 댄스 연습인가.

뮤직비디오 한 번 찍으려다 아이돌의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고 있는 서준이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섰다.

그래도 배우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이번엔 은성이.’

서준의 반짝이는 눈이 대형을 바꿔 중앙으로 나가는 정은성에게로 향했다.

다른 멤버들보다 아주 조금 빠른 박자로 움직였다가 그걸 알아채고 다시 느려지는 정은성의 모습이 보였다. 서준은 그대로 따라 했다.

서준과 블루문이 땀을 흘리며 연습하고 있을 때, 블루문의 매니저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올 때마다 놀라지만 저기에 배우가 한 명 껴 있다는 게 아직도 조금 낯설었다. 블루문과 함께 춤을 너무 잘 춰서 그렇기도 했다.

“어, 형!”

“무슨 일이에요?”

거울에 비친 매니저를 보고 김시훈이 뒤를 돌아보았다. 서준과 멤버들도 춤을 멈추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블루문의 매니저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가사 나왔어.”

“……오…….”

며칠 전, 블루문이 제출한 가사가 전문가의 수정을 받고 돌아온 것이었다. 멤버들에게 보여주는 걸 봐서는 가수 1팀의 평가도 좋은 듯했다.

매니저가 가져온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어느새 제6의 멤버가 된 서준도 한 장 받았다.

금방이라도 글자 수를 셀 것 같았는데 블루문은 그저 처음부터 악보 아래에 그려진 가사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완성된 곡을 얼마나 들었는지 가볍게 박자를 타며 가사를 읊조리는 모습이 벌써 노래를 부르는 듯싶었다.

서준도 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서준이 가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뮤직비디오는 가사와 조금씩 연관되게 마련이니까.’

가수에게 곡의 가사는 아마 배우에게 대사쯤 될 테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아. 진짜 좋은데?”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이렇게 좋은 가사가 나오는구나.”

메인보컬 최재원과 리드보컬 백이현이 연신 감탄했다.

김시훈과 박이든, 정은성은 제출한 가사지와 받은 가사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열심히 적었던 가사들이 아주 조금의 변형으로 곡과 운율에 맞게 바뀌어 있어 다들 감격한 눈치였다.

“생각보다 우리 가사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 좋다!”

“이 부분은 아예 그대로 들어갔어요!”

“되게 신기하네.”

완성된 곡과 완성된 가사에 블루문 다섯 멤버가 모두 엉덩이를 들썩였다.

“형들, 보컬 쌤 오시기 전에 한번 연습해 볼까요?”

“그거 좋네. 노래는 엄청 들었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

박이든의 말에 최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어떤 노래가 나올지 궁금한 듯, 악보 속에서 자신의 파트를 살피고 있는 블루문을 바라보았다. 최재원이 노래만 틀면 바로 노래를 부를 기세였다.

“그전에.”

블루문의 매니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 다음 주에 녹음이래.”

“……?”

“예준 씨가 열심히 연습해 오라고 하시더라.”

“……!”

팔랑.

블루문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들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자세 그대로 숨까지 멈추고 얼어버린 블루문의 모습에 서준과 블루문의 매니저가 어깨를 떨며 웃었다.

* * *

며칠 후.

블루문의 싱글앨범 녹음 날.

“오늘은 나 혼자겠네.”

집에서도 간간이 글을 쓰고 수정하느라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다니는 서준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차량에 올라탔다.

“안녕! 서준아!”

그리고 거기에 블루문이 있었다.

“……형들하고 너희가 여기 왜 있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고개를 돌려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안다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앉아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일단 출발할게.”

“네!”

이게 무슨 일이지?

뜬금없는 블루문의 등장에 눈을 몇 번 깜빡이니 익숙한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고는 블루문에게 이끌려 건물 안, 익숙한 사무실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어쩐지 얼마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근데 난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런 서준의 물음에 정은성이 대답했다.

“우리 멤버니까.”

그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준과 정은성을 앞세우고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가던 멤버들도 헤헤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속내를 터놓았다.

“완전 긴장된다고. 선배님이랑 있는 건.”

“그냥 조금만 있어 주면 돼.”

“한 시간만, 아니, 삼십 분만이라도.”

코코아엔터 근처에 마련된 황예준의 사무실이 마치 무시무시한 드래곤의 던전이라도 되는 양, 용사 서준에게 달라붙은 블루문 멤버들이 오들오들 몸을 떠는 시늉을 했다.

“저도 대본 작업해야 해요.”

“2팀장님이 기분 전환 겸 장소를 바꿔서 글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하시더라!”

백이현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호 형도 이 계획에 한 손 거든 것 같았다.

‘노트북도 가방에 있고.’

아예 생소한 장소도 아니고 마음 편하게 글을 쓰고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서준도 자주 놀러 오는 황예준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알았어요. 그래도 늦으면 먼저 갈 거예요.”

“그래! 고마워!”

“와아아!”

“서준이 완전 최고!”

“왜 문 앞에서 그러고 있어?”

헹가래라도 칠 듯 흥분하던 블루문이 들려오는 황예준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얌전히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고 예의 바르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서준과 블루문이 황예준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무실에서는 황예준이 프로듀싱하는 노래들을 녹음하고는 했는데, 브라운블랙 멤버들의 노래가 반 이상인 터라 여기저기 브라운블랙 멤버들이 두고 간 물건들이 보였다.

서준이 나왔던 작품들의 포스터와 사진, 응원봉과 스노우볼, 그리고 진 나트라의 피규어들이 있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블루문은 멋지게 장식된 굿즈들에 우와 우와 감탄하며 둘러보고 있고, 황예준은 ‘우리 애가 이렇게 대단해!’ 하며 으쓱해하고 있는 상황에 서준만 조금 뻘쭘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무언의 자랑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블루문의 녹음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최재원이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최재원의 모습에 황예준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로 신인들이랑 작업한 적은 없어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재원아, 편하게 불러! 좋은 노래가 나올 때까지 여러 번 할 수 있으니까.”

-……네!

황예준의 말에 잠시 숨을 몰아쉬던 최재원이 밖에 있던 서준과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황예준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황예준의 신호와 흘러나오는 선율에 보컬 연습 때를 기억하며 최재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예준은 쓰고 있던 헤드폰에 귀를 기울였다.

최재원이 긴장한 것만큼 밖에 있던 다른 멤버들도 긴장했다.

바짝 얼어버린 형들과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녹음실 한편에 있던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을 컵에 받아 나누어주었다.

‘노래 부를 때는 물 마시는 게 낫지.’

그리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 서준은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셨다.

“편하게 해. 예준이 형이 여러 번 녹음한다고 하니까.”

“그래도 잘 못 부르면 어떻게 하지?”

“응?”

어디선가 쌀과자를 가져와 테이블 중앙에 놓아둔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러 번 녹음한다고 했잖아.”

그런 서준의 모습에 블루문 멤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여러 번 녹음해도 잘 못 부르면 어떻게 해.”

박이든의 말에 쌀과자를 입에 문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그거 잘 부를 때까지 녹음한다는 말인데?”

“……!”

“아마 오늘 녹음 못 하면 또 와야 할걸. 브블 형들도 그렇게 하거든.”

서준은 앨범 녹음 때만 되면 녹음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브라운블랙을 떠올렸다.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마 너희 스케줄에도 녹음 일정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을걸?”

브라운블랙도 그랬으니까.

서준의 말에 블루문의 입을 쩌억 벌어졌다.

“그래도 예준이 형이 컨디션 조절 하나는 잘하니까 힘은 많이 들겠지만, 목은 괜찮을 거야. 브블 형들이 몸소 겪어 봤거든.”

전혀 위로가 안 되는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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