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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10화 (41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10화

여름방학이라 아침 일찍 코코아엔터에 온 서준과 블루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블루문의 연습실이 있는 2층의 빈 회의실로 들어가는 책상과 의자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은 조금 떨어뜨려서 놓을까요?”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면 그게 낫죠.”

회의실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이어, 이번에는 4단 책꽂이와 책을 양손에 든 2팀 직원들이 서준을 보고 싱긋 웃고는 회의실 안으로 향했다.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벌써 왔어?”

1팀장이 웃으며 서준과 블루문을 반겼다.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팀장님?”

서준의 물음에 1팀장이 웃으며 책상과 의자들이 들어간 회의실 쪽을 가리켰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낫지. 들어가 보자.”

1팀장의 뒤를 따라 쫄래쫄래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회의실 중앙에 마주 보는 형식으로 조금 떨어져서 설치된 여섯 개의 책상이 보였다. 한쪽 벽에는 4단 책꽂이 두 개가 놓여 있었고 2팀 직원들이 그 앞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공부방에 서준과 블루문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전에 회의실로 사용했던 것을 알려주듯 책꽂이 반대쪽 벽에는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었고 그 옆 선반에는 프린트기와 함께 A4용지도 놓여 있었다.

1팀 직원 하나가 손에 바리바리 펜이나 샤프, 지우개 같은 문구류를 바리바리 챙겨와 프린트기가 놓여 있는 선반 위에 잘 정리해 두었다.

“이게 다 뭐예요, 팀장님?”

서준의 물음에 1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서준이 너 이번 작품 창작으로 하기로 했다며.”

그 소식을 안다호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배우가 작품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다니.

하지만 몇몇 배우가 감독까지 하는 걸 보면 아예 없는 일은 아닌 것 같긴 했다.

‘그게 성공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지만.’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영화제까지 진출할 정도로 능력을 보이는 배우 겸 감독도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걸 보면 서준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었다. 나이와 경험이 걸리긴 하지만 오스카상이나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의 나이도 충분히 어렸다.

‘서준이라면 잘할 거야.’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1팀장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호, 2팀장에게 댄스 연습도 꾸준히 할 거라고 들었거든. 네 연습실이 있는 3층까지 왔다 갔다 하긴 좀 번거롭잖아. 블루문도 가사를 생각해야 하니, 아예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하.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다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책상은 학교 책상보다 넓었고 의자도 좋아 보였다. 박이든이 의자에 앉자 김시훈이 뺑그르르 돌렸다.

“으하하. 의자 완전 좋은데?”

두 개의 4단 책꽂이 중 하나에는 작사와 관련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최재원과 백이현, 정은성이 신기한 눈으로 하나둘 빼 보았다. 몇몇 책은 묘하게 사용감이 있었다.

“그건 화이트랑 레드크라운 애들 중에 작사에 관심 있는 애들이 보던 책이야. 3팀에서 받아왔지.”

1팀 직원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반짝였다.

“작곡에 관련된 책도 있네요?”

“관심 가면 한번 읽어봐. 몰랐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이쪽은 A&R팀이 추천한 책들이고 이건 예준 씨가 추천한 책들.”

직원의 설명에 블루문 멤버들이 신기한 눈으로 책꽂이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한 책장에는 서준에게 들어온 SF소설들과 2팀 직원들이 찾아 프린트해 놓은 SF와 관련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아직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주문한 책들은 오는 대로 정리할 예정이야.”

“다호 형!”

반짝이는 눈빛으로 책을 살펴보던 서준이 안다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가져올 책이 남아있던 모양인지 두 팔에 책들이 가득했다.

“집에 노트북 있지? 손으로 대본을 일일이 쓰고 수정하긴 힘드니까 노트북 가져와서 쓰면 될 것 같아. 데스크톱이 편하면 그거 설치해 줄게.”

“아뇨. 노트북으로 괜찮을 것 같아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으며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캐릭터 만들기, 트라우마, 감정의 변화, 에피소드를 만드는 법 등 제목만 봐도 알 것 같은 책들이 안다호의 손에 하나둘 정리되었다. 이쪽도 묘하게 사용감이 있었다.

“누가 보던 책이에요?”

“작가님들하고 감독님들이 추천한 책이야. 서준이 네가 연극을 아예 처음부터 만든다고 하니까 다들 엄청 놀라면서 주시더라. 유청아 작가님이 많이 빌려주셨어.”

다른 작가나 감독들은 경력이 오래되어, 처음 공부했던 책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작년에 [봄이 돌아왔다]로 입봉한 유청아 작가는 제법 많은 입문 책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다고 연락드려야겠어요.”

“그러면 좋지. 다들 모르는 게 있거나 막히는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시더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시간이 많아진 여름방학이었지만 ‘대본 작업’이라는 일정이 새롭게 추가되면서 서준의 하루하루는 더 바빠졌다.

‘으음. 시간이 나면 학교에 갈까 싶었는데…….’

집-댄스 연습-대본 작업-댄스 연습-대본 작업-집으로 이어지는 일정에 아무래도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는 못 갈 것 같았다. 선생님한테는 미리 알려드려서 문제 될 건 없었다.

“다음은 재원이 형이랑 이든이랑 서준이!”

김시훈의 말에 서준과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 추고 있던 정은성, 백이현과 자리를 교체하듯 연습실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V 자 모양으로 박이든과 최재원이 앞에 서고 서준이 홀로 뒤에 섰다. 앞사람들을 보고 따라 하기 쉬운 자리기도 했다.

따단!

음악이 시작되고 거울에 비치는 박이든, 최재원과 동시에 서준이 움직였다.

서준의 두 눈동자가 박이든의 모습을 살폈다.

박이든이 밟는 스텝과 정확하게 박자를 맞추며 손끝 발끝의 타이밍과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타닥!

연습실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 맞는 박자에 발을 딛는 소리도 거의 하나처럼 들려왔다.

다음은 옆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최재원.

서준은 마치 최재원의 안무를 그대로 복사하듯 강약 조절을 하며 상체 동작을 이어나갔다. 가장 크고 반듯하게 보이는 각도로 팔을 올리고 타이밍에 맞게 접어 내렸다.

서준과 박이든, 최재원이 딱딱 맞춰 칼군무를 추자, 블루문의 메인댄서로 연습을 총괄하고 있는 김시훈이 활짝 웃으며 짝짝 박수를 쳤다.

“잘했어! 다들 이제 딱 맞는데? 재원이 형, 이제 같은 부분 안 틀려요.”

“그래? 다행이다.”

지금 서준과 블루문이 연습하고 있는 안무는 37번 곡의 안무였다.

연습을 봐줄 트레이너와 안무팀은 완성된 곡을 듣고 춤을 수정하느라 바빴다. 파트도 하나 늘었고 여섯 번째 선율도 많이 달라져 수정할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준과 블루문은 아직까지 37번 곡의 안무로 반복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세 명씩 나눠서 연습하기도 하고 여섯 명 다 같이 연습하다가 최재원이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조금 쉴까?”

그 말에 서준과 블루문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같은 층에 마련된 공부방.

37번 곡은 제법 익숙해진 안무라, 서준과 블루문은 댄스 연습 쉬는 시간 틈틈이 작사와 창작을 위해 공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단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겠어. 보통 그대나 너를 많이 쓰던데…….”

최재원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방 한쪽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글씨가 가득했다. 모두 블루문의 작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각자 자신만의 가사를 넣어야 하겠지만 곡이 하나인 이상 모든 가사를 하나로 모아줄 규칙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서준은 펜을 휘휘 돌리며 글자가 잔뜩 쓰여 있는 종이를 바라보았다. 장르가 SF인 만큼 상상력의 한계는 없었다.

‘근데 너무 나오는데?’

일단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책의 조언에, 서준은 고등학생 연극이라는 제한을 떠올리지 않고 최대한 생각나는 소재들을 모두 적어 내려갔다.

외계인, 우주선, 행성 등 우주에 관련된 소재부터 마법, 타임머신, 타임 루프 등 초능력과 관련된 소재까지.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대본을 직접 적기로 결심하고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작품의 첫 시작점인 소재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막상 펜을 잡고 있으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젠 너무 많이 나와서 탈이었다.

‘여기서 고르는 것도 쉽지 않겠는데…….’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대본 작업은 소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재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구상해야 했는데, 그 ‘이야기’도 소재처럼 아주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끊임없이 나온다는 건 시나리오 작가가 된 서준의 입장에선 아주 좋은 일이었다.

‘내용이 익숙하지만 않으면 말이지…….’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들.

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짤막하게 쓰인 줄거리들을 읽어 내려갔다. 몇 번을 읽어봐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기시감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이야기가 잘 안 떠올라?”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서준을 조용히 바라보던 안다호가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럼?”

“생각한 줄거리들이 다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근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나요.”

으음.

안다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차라리 흥행이 안된다면 상관없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쉬울지언정 서준의 배우로서의 앞날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표절은 큰 문제였다.

본인의 자각 없이 이루어진 표절이라도 그랬다.

여울 예중의 졸업 공연처럼 미리내 예고의 졸업 공연도 너튜브에 공개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만큼 누군가는 꼭 알아볼 터였다.

그 이후의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서준의 커리어에도 많은 영향을 줄 터였고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걸림돌이 될 터였다.

“영화나 드라마 내용은 아니야?”

“그러면 출연한 배우가 생각날 텐데…… 하나도 안 나서요.”

작품을 볼 때 배우들의 연기까지 세세히 살펴보는 서준이, 배우가 생각이 안 난다니.

그렇다면 확실히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들은 아닐 것이다.

“책은?”

“책 같기는 한데…… 묘하게 영상이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방금 말했던 대로 배우들이 기억나질 않았다.

“으음. 생각한 이야기가 열 개는 넘지 않아? 그게 다 하나의 책에서 나올 리는 없는데…….”

“그러니까요. 책을 열 개나 읽었으면 하나라도 생각이 날 텐데 말이에요.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검색은 해봤어?”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재는 비슷한데 같은 내용은커녕 비슷한 내용도 없었어요.”

결국,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서준도 안다호도 찜찜한 얼굴로 서준의 집에 도착했다.

“일단 내일 2팀도 찾아볼게.”

“네. 저도 열심히 생각해 볼게요. 조심히 가요. 다호 형.”

서준이 떠나는 차에 휘휘 손을 흔들고 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에휴, 한숨을 쉬었다.

“표절이면 안 될 텐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잠든 그 날 밤.

여느 때처럼 생의 도서관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전생의 책을 읽던 서준은 깨닫고 말았다.

“내 이야기잖아!?”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서준이 놀란 표정으로 책꽂이가 가득한 생의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여기일 줄이야.”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이야기들이 전부 여기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어쩐지……!”

묘하게 책을 읽은 느낌이었는데도 영상으로 떠오른다 싶더라니.

마치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대본을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처럼, 아니면 일기장을 읽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서준도 전생의 몇몇 장면들을 영상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서준이 연극으로 쓰기 위해 떠올린 이야기들은 모두 여기 있는 책들의 내용이었고, 여기 있는 책들은 전부 전생의 삶들이니, 기억은 잘 나지 않아도 서준,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럼 표절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안도한 서준이 다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안락한 의자와 편안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실화야? 픽션이야?”

픽션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법한 전생의 삶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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