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09화
“……이건 묻자.”
“넵.”
1팀장의 말에 홍보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에는 이미지도 중요한데 잘못하면 꽈배기밖에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상하다.’
왜 처음 입사했을 때가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다들 착한 애들이었는데 묘하게 고생했던 그때가 떠오른 1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황예준. 가이드곡 틀어봐.”
“예이.”
황예준이 웃으며 그 옆에 있던 파일을 클릭했다.
딩-.
“……이건 뭐야?”
“편경이라는 건데 울리는 게 되게 맑지 않아? 이렇게 막대로 달랑달랑 매달린 경이라는 판을 치는 건데 이게 경석이라는 돌로 만들어진 거야.”
투명한 막대를 잡고 어딘가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는 황예준의 모습에 1팀장이 입을 열었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파일 이름 바꿔.”
“옙.”
잠시 후.
37번 곡의 가이드곡이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가사는 아직 붙여지지 않은 상태라서 대충 ‘아-’와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단어들로 이어진 곡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꼭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콘서트 1위에 빛나는, 콘서트돌이라고 불리는 브라운블랙의 보컬 황예준이 직접 부른 덕분인지 가이드곡은 색다른 멋이 있었다. 블루문의 분위기에 딱 알맞은 곡인데도 그랬다.
“……이건 이거대로 좋은데요?”
“상상했던 분위기랑은 좀 다른데 블루문 애들이 부르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가이드곡이 끝나자마자 직원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1팀장도 뿌듯한 얼굴이었다.
‘우리 애가 노래 하난 잘 부르지.’
입을 쩍 벌리며 듣고 있던 블루문이 연신 감탄했다.
가이드곡이 너무 멋져서 자신들이 녹음할 때는 이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도 들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이 멋진 노래가 자신들의 노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단 이렇게 만들어 봤는데. 어때요?”
“엄청 좋아요! 예준이 형.”
서준은 물론이고 회의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들뜬 얼굴로 자신들의 감상을 이야기하자 황예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1팀장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노래도 나왔겠다. 안무도 곡에 맞춰서 수정해야 하니 트레이너한테 가이드곡 전해주고.”
“네.”
1팀 직원이 대답했다. 1팀장이 고개를 돌려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는 춤 연습 안 힘들어?”
첫 댄스 레슨을 시작하고 며칠이 흘렀으니 대충 뮤직비디오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인지 아닌지 파악했을 터였다.
원래는 댄스팀 중 하나를 섭외할 생각이었던 역할이라 배우인 서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었다. 힘들다면 원래대로 배우로서만 출연하는 것으로 바꿀 생각도 있었다.
“네. 걱정 마세요. 재미있어요.”
서준이 웃으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팀장님. 서준이 엄청 잘해요!”
“트레이너 쌤도 잘한다고 하셨어요!”
오히려 블루문 멤버들이 서준의 실력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 모습에 1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가사랑 녹음을 해야 하는데…… 녹음은 예준이가 도와주기로 했어.”
오. 녹음! 하고 들뜬 얼굴을 하고 있던 블루문이 굳어버렸다. 녹음이나 보컬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고 황예준과도 친한 서준만이 멀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예준이 형이요?”
“응. 서준이도 뮤비 나온다며! 어차피 내 곡으로 하니까 녹음까지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 요즘은 시간도 많고!”
황예준이 웃으면서 말하자 최재원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좋아요!”
작곡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으로도 유명한 황예준 선배님이 아닌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다른 멤버들도 벌떡 일어나 황예준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여간 신나고 들뜬 것이 아닌 것 같아, 서준과 다른 직원들이 작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가사 말인데…… 너희가 써볼래?”
“저희가요?!”
1팀장의 말에 백이현이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같은 소속사인 브라운블랙 멤버가 하게 됐잖아. 그리고 뮤비에는 같은 소속사인 배우가 나오게 됐고.”
황예준과 서준이 빙그레 웃자, 블루문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팀장이 직원들과 회의하면서 나왔던 의견을 블루문에게 전했다.
“그러니까 나머지도 최대한 내부에서 해결하는 건 어떤가 하는 의견이 나왔거든. 거기에 너희도 한 손 거들면 화제가 되기 좋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가사는 너희에게 맡기기로 했어.”
“네…….”
블루문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A&R팀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게 써도 돼. 작사가분한테 검토받을 거니까.”
“어, 어렵지 않을까요? 막 이런 가사는 안 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죠?”
박이든의 걱정에 선배 황예준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렇게 까이면서 시작하는 거야. 나도 옛날에는 작곡 잘 못 했거든.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해보면 재미있을 거야!”
황예준의 말에 서준과 블루문이 귀를 기울였다.
“컨셉이 정해져 있으니 처음에는 브레인스토밍하는 게 좋겠네! 컨셉이 자기소개니까 자기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찾고 그걸 표현하고 싶은 말을 찾는 거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할 때도 있겠지만, 자신과 멤버들의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이 완성되면 정말 기분이 좋거든!”
뒤를 이어 A&R팀 직원들도 동의하며 말했다.
“너희들이 직접 자신을 소개하는 게 제일 어울릴 거야.”
“정 안 되면 넣고 싶은 키워드나 이런 분위기의 문장을 썼으면 좋겠다고 써도 괜찮고.”
블루문 멤버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회의는 간단히 일정을 조절하고 끝났다.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온 블루문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김시훈이 입을 열었다.
“뭐, 작사가님이 다시 고쳐준다니까 편하게 써도 괜찮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파트마다 가사 느낌이 다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가사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겁먹은 것도 잠시.
작사가가 붙는다는 이야기에 안심됐는지 블루문 멤버들은 각자 넣고 싶은 말을 들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몇 개의 단어를 선택해도 괜찮다니, 생각보다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러면 여섯 번째 파트는 어떻게 할까요, 재원이 형?”
“그건 다 같이 의논해서 해야겠지.”
최재원의 말에 블루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개의 파트가 어우러진 여섯 번째 파트는 누구 하나의 생각만 넣을 수는 없었다. 최재원의 말대로 다 같이 생각해서 가사를 만들어야 했다.
“여섯 번째 파트는 엄청 어렵겠다.”
“그러게요.”
백이현과 박이든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앗.
그러고 보니 작사에 대해 생각하느라 본의 아니게 서준을 신경 쓰지 못했다. 대화의 주제가 서준도 참여하는 댄스가 아니라 가사라서 더욱 그랬다.
박이든이 놀라 뒤에서 걸어오던 서준을 보았다. 그런 박이든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도 아차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블루문을 뒤따라오던 서준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얼마나 깊게 생각에 잠겼는지 블루문이 돌아본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서준을 부르기에는 중요한 고민 중이면 어쩌나 고민이 되었다.
“서준아. 무슨 생각해?”
조용한 블루문 멤버들 사이, 별생각 없는 정은성이 물었다.
그 부름에 서준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아직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닌 듯 조금 미간을 찌푸린 상태였다.
“별건 아닌데…….”
정은성에게 ‘거기서 부르면 어떻게 해!’ 하고 무언의 타박을 쏟아붓던 블루문 멤버들이 별거 아니라는 서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 공연 대본 말이야.”
“응.”
갑자기 졸업 공연?
블루문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쓰는 건 어떨까 싶어서.”
서준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엄청 별건데?!”
박이든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김시훈과 백이현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성도 오호, 놀란 눈치였다. 눈을 끔벅거리던 최재원이 당황하며 서준에게 물었다.
“그게…… 거울처럼 각색한다는 건 아니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부터 쓰는 거요.”
세상에.
입을 쩌억 벌리고 놀라고 있는 멤버들 사이에서 정은성이 입을 열었다.
“쓸 수 있겠어?”
“음. 나도 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SF라는 장르를 빼놓고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등장인물부터 배경과 에피소드까지 생각하려면 많이 고민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냥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예준이 형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과 멤버들의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이 완성되면 정말 기분이 좋거든.’
그래서 서준은 해보고 싶었다.
자신과 2학기 때 모집할 팀원들의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
“하고 싶어.”
입 밖으로 내뱉으니 ‘시간이 될까?’,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으로 복잡했던 마음이 편해졌다. 고민의 그늘이 걷힌 서준이 밝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전 잠깐만 다호 형한테 다녀올게요. 다들 먼저 연습실에 가세요.”
“어, 응…….”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이는 서준의 모습을 블루문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모습이 서준을 슈퍼스타로 이끌어준 게 아닌가 싶었다.
블루문의 리더, 최재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제대로 해볼까?”
그저 단어나 분위기만 선택하는 컨셉 설정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 문장이 온전히 가사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그러자.”
블루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서준은 곧바로 안다호가 있을 2팀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 서준아.”
“늦게 왔네?”
“안녕하세요! 블루문 회의 갔다가 오느라 늦었어요!”
2팀 직원들이 웃으며 서준을 반기자 서준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평소보다도 반짝반짝한 서준의 얼굴에 2팀 직원들은 직감했다.
‘아하. 서준이가 뭘 찾았구나!’
그게 대본이 됐든 소설이 됐든 동화책이 됐든. 하고 싶은 작품을 찾은 게 틀림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서준의 표정만으로 그걸 알아차린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은 아쉬운 마음에 보고 있던 대본들과 책을 주섬주섬 챙겼다. 서준이 직접 작품을 찾았으니 이제 직원들이 할 일은 끝났다.
배우 이서준의 베테랑 매니저, 안다호도 반짝반짝한 서준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보고 있던 대본을 덮었다.
“서준아. 작품 찾은 거야?”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
자신들의 예상이 틀렸다는 사실에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과 배우 이서준의 베테랑 매니저가 눈을 끔벅였다.
‘……아니 그럼 왜 이렇게 반짝반짝한 거야?’
‘그것 말고는 없을 텐데……’
직원들과 안다호가 고민하는 사이, 서준이 여전히 반짝반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쓰려고요.”
……!
배우 이서준 전담 2팀과 베테랑 매니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대본을 직접 쓰고 싶다고? 각색이 아니고?”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5월부터 찾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안 나오잖아요. 더 찾아봐도 적당한 게 나올까 싶고. 그러면 그냥 제가 쓰는 게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대본부터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서준이 직접 쓴 작품이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평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평가가 서준에게 미칠 영향이 중요했다. 혹시라도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나, 그게 가장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서준의 의지보다 앞설 순 없었다.
안다호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서준에게 물었다.
“정말 하고 싶어?”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안다호는 서준의 도전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무슨 일이 터지든,
‘우리가 커버해 주면 돼.’
그러기 위해 배우 이서준 전담 2팀이 있는 것이었다.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하고 싶어요.”
“그럼 해야지.”
안다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호와 같은 걱정하던 2팀 직원들도 어깨를 으쓱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 쓰는 데 뭐가 필요하죠?”
“서준이가 각색을 해봤으니까 대본의 틀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 아닐까요?”
“서준아. 적고 싶은 건 있고?”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SF니까 자료들도 필요하겠네요. 바로 자료 모을게요.”
“작법서도 필요하겠죠? 평가가 좋은 거로 모아보죠.”
“작가님들한테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준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모습에 서준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요.”
그 진심 어린 감사에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과 베테랑 매니저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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