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05화 (40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05화

박서진과의 통화를 끝낸 1팀장이 황예준에게 연락했다.

잠시 신호음이 흐르고 황예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그 목소리를 뒤덮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상을 썼다.

1팀장이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얘 오늘 쉰다고 안 했어? 도대체 집에서 뭘 하길래 꽹과리 소리가 나?”

“그러게요.”

블루문이야 대선배님과의 통화가 그저 신기할 뿐이었고 다른 직원들은 익숙한 듯 웃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형?

주변의 소리가 진정되고 황예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이 말로는 이 곡 네가 작곡한 거라던데, 맞아?”

1팀장의 손짓에 스피커에서 37번 곡이 흘러나오고 황예준의 휴대폰까지 전해졌다.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에 잠겨 있던 황예준에게서 놀람과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러네? 오랜만에 듣는다! 내 곡 맞아!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나 보네! 그때 다 옮겨온 줄 알았는데 남아 있는 게 있을 줄이야. 회사 한번 가야겠다!

황예준의 곡이 맞았다.

직원들과 블루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 편곡해서 블루문 애들이 써도 돼? 이번에 싱글앨범으로 나갈 건데.”

-나야 좋지! 우리가 부르기엔 곡 분위기가 너무 어려서 안 어울리거든.

황예준이 흐흐 웃었다.

-블루문은 데뷔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어울릴 거야.

시원스러운 황예준의 허락에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기뻐했다. 잠시 황예준의 스케줄을 생각하던 1팀장이 입을 열었다.

“예준아. 너 요새 시간 좀 널널하지? 편곡도 부탁하고 싶은데…… 브라운블랙 인원수에 맞춘 곡이라서 그런지 4파트뿐이라서 한 명이 남거든.”

-알았어. 그러지 뭐. 옛날에 만들어놓고 손도 안 댄 거라 지금 트렌드에도 안 맞고. 고치는 김에 다 고쳐도 되지?

“그럼 우리야 좋지.”

편곡까지!

황예준의 말에 최재원이 주먹을 꼭 쥐고 백이현과 김시훈이 들뜬 표정으로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박이든과 정은성도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환호했다.

-그럼 블루문 애들 노래 연습한 것 좀 보내줘, 형. 영상도 좋고 그냥 녹음본도 좋고. 그리고 오늘 노래한 것도 보내줬으면 좋겠어. 전부 손대지 않은 원본으로.

“알았어. 오늘 내로 보내줄게.”

1팀장이 황예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전화를 끊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블루문과 직원들이 떠들썩해졌다.

“난 오늘도 노래 못 정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큰 시름을 던 A&R 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브라운블랙의 이름으로 홍보할 생각이 가득한 홍보팀도 기뻐했다. 좋아하는 선배님의 곡으로 작업하게 된 블루문 멤버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앨범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곡이 대충 정해졌으니 회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곡 작업, 자켓 촬영,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대강의 일정과 함께 작업할 업체 후보를 대충 선정하고 나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1팀장의 말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회의실에서 열심히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았던 블루문도 마찬가지였다.

“앉아서 이야기한 것밖에 없는데 지치네.”

최재원이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니 우둑우둑 뼈 소리가 났다.

“그러게요.”

박이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브블 선배님들 곡이 될 뻔한 곡으로 앨범 만든다니까 되게 신기하지 않아요?”

“거기에 황예준 선배님이 직접 작곡, 편곡까지 해주시고 말이야.”

“곡 진짜 멋지게 나올 것 같지 않아?”

브라운블랙을 좋아하는 블루문으로서는 들뜰 수밖에 없었다.

“근데 뮤비는 어떻게 찍을까요?”

“데뷔 앨범처럼 우리가 찍을 것 같은데.”

정은성의 물음에 백이현이 대답했다.

“보통 뮤비는 가수가 나오니까 말이야.”

최재원과 김시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박이든은 아까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배우를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우리 말고 배우가 나온다면 서준이가 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브블 선배님들하고 인연도 있고 연기도 잘하고!”

박이든이 농담으로 꺼낸 이야기에 블루문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서준이가 뮤비에 나온다고?”

“우리 뮤비에 나오기엔 서준이가 너무 아깝지!”

“황금종려상을 받은 배우를 뮤비 배우로 쓰려고 하다니, 확실히 화제는 되겠네.”

상상도 되지 않는 모습에 블루문 멤버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여기.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서준이를 뮤직비디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블루문 멤버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헉! 팀장님!”

자신들의 이야기를 1팀장이 듣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1팀장이 눈을 빛내며 휴대폰을 꺼내 ‘블루문 싱글앨범 관계자’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직전에 끝난 회의였는데 다시 회의실로 모이라는 소리에 직원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블루문 멤버들도 갑작스러운 회의에 당황하며 회의실로 향하는 1팀장의 뒤를 쪼르르 따라갔다.

다시 회의실이 가득 차자 1팀 직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빠뜨리신 거 있으세요, 팀장님?”

“뮤직비디오 말이야.”

“네.”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들은 귀를 기울이고, 블루문 멤버들은 설마, 설마 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서준이가 나오면 어떨까?”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저 빠뜨린 공지사항이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리 꽤 커다란 화제였다.

“서준이요?”

“이서준 배우요?”

여기서 나올 줄 몰랐던 이름에 회의실이 들썩였다.

직원들의 반응에 블루문 멤버들이 흔들리는 눈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박이든을 바라보았다. 박이든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저 농담으로 꺼냈는데 왜 이렇게 일이 커진 건지 모르겠다.

“저희야 좋죠!”

홍보팀이 반색하며 말했다. 브라운블랙과 이서준이라니, 보도자료 하나만 뿌려도 수십 개의 기사가 나오고 사람들도 엄청 관심을 가질 게 뻔했다.

“근데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고 뮤비인데 이서준 배우가 할까요?”

“스토리 형식이 있잖아.”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생각에 잠겼다.

“스토리 형식은 이제 좀 한물가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스토리가 들어간 드라마형의 뮤직비디오가 꽤 나왔었지만, 요즘은 스토리보다 곡과 댄스를 보여주는 이미지형의 뮤직비디오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뮤비를 주로 보는 사람들은 아이돌의 팬이었고 팬들의 관심은 뮤비에 나오는 배우들보다 아이돌 멤버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야기에 따라서 흘러가야 하는 드라마 형식에 비해 이미지 형식은 표현의 제한이 거의 없고 온갖 화려한 배경과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여줄 수 있었다.

“게다가 스토리 형식은 발라드처럼 잔잔한 곡에 잘 어울리는 방법인데 아까 37번 곡은 그렇게 차분한 곡은 아니었습니다만.”

금세 여러 의견이 나와 회의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스토리 형식이라고 이서준 배우가 꼭 출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수 3팀에서 레드크라운 때도 제안하긴 했는데 까였었거든요.”

홍보팀 직원은 서준이 출연하기만 하면 서준의 이름으로 잔뜩 홍보하려고 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브라운블랙 때는 안 했나요?”

“그땐 이서준 배우가 너무 어렸죠.”

절절한 사랑 노래를 불러도 초등학생 배우가 나온다면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 이후는 이미지 형식이 대세가 되었고요.”

다들 고개를 끄덕일 때, 누군가 말했다.

“뭐, 형식은 둘째 치고 블루문은 괜찮을까요?”

응? 우리?

갑자기 시선이 몰리자 블루문 멤버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서준 배우가 나오면 관심은 그쪽으로 확 쏠릴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기대도 높아질 텐데…… 노래가 사람들 마음에 충분히 들지 않으면 이런저런 말이 생길 거고요.”

“그리고 해외에서도 분명 볼 텐데…… 아직 해외 진출까지 노릴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해외팬들이 많이 생기면 좋다.

하지만 그게 블루문 멤버들 때문이 아니라 배우 서준 리의 힘이라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직원들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죠. 일단 얼굴을 알려야 관심을 갖죠.”

“맞습니다. 한 곡 들어보면 다른 곡도 들어보고 싶어지죠. 레드크라운도 해외에 그렇게 알려졌고요.”

반박하는 직원들까지 나오면서 회의실이 달아올랐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1팀장이 블루문을 바라보았다.

“너희 생각은 어때?”

그 물음에 블루문 멤버들이 눈을 마주쳤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겁이 나고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곡도 좋고 잘할 자신도 있었다.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속삭이는 멤버들의 말에 블루문의 리더, 최재원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좋아요. 뮤비를 보는 분들이 모두 저희 노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겠습니다!”

블루문의 대답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도 아이돌에게 중요한 능력이었다.

“근데 서준이는 대학 실기도 있고 졸업 공연도 한다고 바쁠 텐데…… 괜찮을까요?”

누구보다도 서준의 스케줄을 잘 알고 있는 홍보팀 직원의 말에 아, 하고 탄성이 들려왔다. 몇몇은 너무 김칫국을 먹고 있었던 것 같아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1팀장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바쁘면 알아서 거절하겠지. 서준이가 그런 덴 굉장히 단호하니까 우리가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고. 일단 제안이나 해보자고.”

1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집중했다.

각오를 다진 블루문도 진지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서준이가 출연해 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건 뮤직비디오 줄거리야. 서준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이 나와야 해.”

1팀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자신이 관심이 가는 작품에만 출연한다는 이야기는 코코아엔터 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

“근데 그 기준을 모르니…….”

“일단 최대한 빨리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자고. 졸업 공연 정해지고 서준이가 연습 시작하면 제안도 못 하니까.”

작품 준비에 들어간 서준에게는 진짜 흥미로운 작품이나 제안이 아니면 전혀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일단 37번 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테니, 그걸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스토리 형식부터 이미지 형식까지, 블루문도 곡을 고르면서 생각했던 뮤직비디오의 구성을 이야기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분위기에 홀로 눈을 깜빡이던 박이든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농담이었는데.”

* * *

“으음.”

폭신한 의자에 등을 기댄 서준이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이것도 별로네.”

SF를 하고 싶어 코코아엔터로 온 책 중 그쪽 장르의 책들만 가져왔다.

최신 소설부터 예전에 나왔던 소설까지. 소설 [거울]을 찾아준 [(선)민들레 홀씨의 인연-최하급]까지 써봤지만, 민들레 홀씨는 싹을 피웠던 그때와는 달리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을까 봐 읽어보긴 했지만.’

물론 재미있는 소설도 있었고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도 있었다.

‘근데 연극으로 만들 정도로 끌리지는 않는달까.’

서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한쪽에 놔둔 책들을 가방에 넣었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곧 있으면 다호 형이 올 터였다.

“집에 가서는 실기 대본을 찾아야겠네.”

서준이 목표로 하는 한국예술 대학교의 전형은 지정연기와 자유연기였다. 지정연기의 대본은 한국예대에서 줄 테니, 자유연기만 준비하면 됐지만 3분 이내의 연기를 고르기도 쉽지는 않았다.

할 일이 많았다.

10월은 대입 수시, 12월은 졸업공연이 있으니 아마 올해 하반기에는 따로 작품 활동을 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서준아. 다 읽었어?”

연습실의 문이 열리고 안다호가 들어왔다. 서준이 웃으며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가요, 다호 형.”

서준과 안다호가 연습실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진 차로 향했다.

“서준아. 가면서 이거 읽어봐.”

차에 오른 서준이 가방을 옆자리에 놓고 안전벨트를 매려고 하자, 운전석에 앉은 안다호가 몇 장의 종이를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뭐에요, 형?”

종이를 받아 든 서준이 종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쪽 손으로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이번에 들어온 제안. 드문 제안이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촬영 일정도 짧아서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끌기는 했다.

[블루문-싱글앨범 뮤직비디오 출연 제안서]

의자에 등을 기댄 서준이 오호, 눈을 빛내며 첫 장을 넘겼다. 안다호가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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