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04화 (40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04화

“서준아. 점심 먹고 뭐 할 거야?”

블루문의 메인댄서인 김시훈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졸업 공연 뭐 할지 찾아보려고요. 아직 뭐 할지 못 정했거든요.”

알음알음 서준이 졸업 공연을 한다고 알려진 탓인지 대본보다 소설이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집으로 하나둘 옮기는 것보다야 회사에서 읽고 가는 편이 나았다.

“하긴 옮기는 것도 일이겠다.”

서준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인 최재원은 재작년에, 김시훈과 백이현은 작년에 미리내 예고를 졸업해 미리내 예고의 졸업 공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 음악과만 정식 공연 했었지?”

최재원의 말에 작년까지 음악과였던 김시훈과 백이현이 에헴,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형들은 데뷔 때문에 참가 못 했잖아요.”

정은성의 말에 두 형의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형들의 리액션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점심을 다 먹은 서준이 자신의 연습실로 돌아가고 블루문 멤버들도 매니저에게서 미리 전달받은 대로 회의실로 향했다.

“서준이는 왠지 정식 공연 할 것 같지 않아?”

백이현의 말에 정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튜브에 공개된 거울 댓글에도 직접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정식 공연을 해도 몇 회 안 되니까. 티켓팅이 치열하겠는데…….”

대학을 갈 아이들을 한도 끝도 없이 잡아놓을 수는 없으니 미리내 예고의 정식 공연은 약 두 달 동안의 겨울방학에만 진행되었다.

“음악과 공연이 일주일에 두 번 있었나?”

“네. 주에 2번씩 8주 동안요.”

“그럼 16회 정도일 텐데…… 진짜 피켓팅이겠다. 우리는 못 보겠지?”

“아쉽다. 난 여울 예중 때도 못 봤는데.”

리드보컬인 백이현이 말에 멤버들이 킥킥 웃고 말았다.

“맞아요. 이현이 형은 우리 바로 윗학년이라 졸업한 다음 해에 서준이가 졸업 공연했죠?”

“여울 예중에서도 그랬고 미리내 예고에서도 그랬지. 1년만 더 늦게 태어날걸.”

진심 어린 백이현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웃던 최재원이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회의실 안에는 직원 하나가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브라운블랙과 블루문을 담당하고 있는 코코아엔터 가수 1팀 소속으로 블루문에게도 익숙한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테이블마다 자료를 올려놓던 직원도 웃으며 블루문을 반겼다.

“벌써 왔어? 다들 곧 오실 거야. 기다리고 있어.”

“네!”

블루문 멤버들이 회의실 한쪽에 쪼르르 앉았다.

누가 어디에 앉을 것인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마치 지정석처럼 자리에 앉는 모습이 정말 익숙해 보였다.

준비를 마친 직원이 밖으로 나가자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회의실이 익숙해지다니…… 되게 신기하지 않아요?”

박이든이 익숙한 회의실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데뷔하기 전부터 가수 의견 묻는 소속사는 드물 거야.”

최재원의 말에 다른 소속사에 있다가 코코아엔터로 온 김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있던 소속사는 몇 년 차까지는 입도 뻥끗 못 했어요.”

“아무래도 브라운블랙 선배님들이랑 사장님이랑 같이 만든 곳이라 그런 것 같죠?”

“거기에 서준이까지.”

너튜브 육아 예능으로 시작한 브라운블랙과 서준의 인연은 연예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때 횡령한 사장은 브라운블랙 선배님들이 이렇게 대단해져서 회사가 클 줄 알았을까?”

“전혀 몰랐을걸요.”

백이현의 말에 정은성이 고개를 저었다.

전 사장의 횡령으로 브라운블랙의 매니저가 얼떨결에 코코아엔터 사장이 된 이야기도 이 바닥에서는 유명했다.

일개 매니저로 시작해서 소속 아이돌들이 매번 성공하고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슈퍼스타까지 소속된 소속사의 사장이 되다니, 매니저들의 꿈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슈퍼스타는 혈연(조카)이지만 말이다.

* * *

“자, 그럼 회의 시작합시다.”

큰 테이블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상석에 앉은 가수 1팀 팀장이 입을 열었다.

가수 1팀 팀장은 서은찬 사장 이후에 브라운블랙의 매니저를 맡아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주제는 그대로 가기로 했어?”

1팀장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네. 데뷔 앨범이 블루문의 색보다 대중성을 앞세웠기 때문에, 예정대로 이번 싱글앨범은 오로지 블루문을 나타내는, 소개 같은 곡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 때문에 가수 1팀은 블루문의 다음 앨범을 볼륨이 큰 정규앨범보다 싱글앨범으로 내기로 했다.

“싱글앨범이라 그렇게 위험부담도 크지 않고 팬들도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얘는 이런 매력이 있습니다.’같은 멤버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곡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중성까지 더해진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입맛에 딱 맞는 곡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1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곡이 있어?”

3팀 팀장의 말에 블루문의 앨범 제작 일정이 정해진 다음 날부터 하루 종일 곡만 들은 A&R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당한 곡들은 있는데 딱 이거다, 하는 곡은 없더라고요.”

“그래? 들어오는 곡은 더 있고?”

“곡이야 많이 들어오죠.”

앞서 브라운블랙과 화이트, 레드크라운처럼 시작부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블루문이라 성공은 거의 확실한 상황.

블루문의 곡으로 선택된다면 저작권료는 물론이고 앞으로 작곡 의뢰도 많이 들어올 게 뻔한 데다가 코코아엔터는 신인 작곡가들에게도 좋은 파트너로 유명해 곡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무난한 곡뿐이지만요.”

코코아엔터 아이돌들을 성공으로 이끈 A&R 팀이니만큼 믿을 만했다. 탐탁지 않은 소식에 1팀장이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쪽에 앉아있는 블루문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마음에 드는 곡 있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던 블루문 멤버들 중 최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A&R 팀 직원의 말에 ‘좋은 곡이 없었다고?’라는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떤 곡인데?”

1팀장과 다른 직원들이 눈을 반짝였다.

블루문과는 반대로 ‘좋은 곡이 있었다고?’라는 의아함이 든 A&R 팀 직원들도 몸을 앞으로 당길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37번 곡이요. 저도 마음에 들고 멤버들도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37번? 50번 아래에서는 괜찮은 곡이 없던데?”

고정관념 없이 들어보라는 의미에서 곡의 번호는 무작위였다.

1번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듣고 판단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혹시 놓칠 뻔했던 곡을 찾을 수도 있었고, 어떤 곡이든 자주 듣고 평가를 해야 실력이 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A&R 팀이 금세 회의실과 연결된 노트북에서 37번 곡을 찾아냈다. 재생하니 회의실에 설치된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날 듯하면서도 묘하게 막히는 곡에 1팀장과 A&R 팀, 다른 직원들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블루문의 고개도 갸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아니, 너희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되지!”

A&R 팀 직원의 말에 정은성이 볼을 긁적였다.

“근데 이건, 저희가 들었던 곡이 아닌데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블루문에 다시 한 번, 1팀장과 직원들의 고개가 모로 꼬였다.

그럼 그건 어디서 나온 곡이래?

“곡 가지고 왔어?”

“네. 여기요.”

최재원이 휴대폰을 내밀자, 직원이 얼른 노트북과 연결해 블루문이 말한 37번 곡을 재생했다.

따단.

“오.”

첫 멜로디부터 귀에 쏙 들어왔다. 회의실의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몇몇은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블루문이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 번 더 들어보자.”

1팀장의 말에 곡이 다시 재생되었다.

“여기까지가 1파트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1파트, 2파트, 3파트, 4파트.

총 4개의 특징 있는 파트들이 짧게 이어지고 그 4파트를 모두 합쳐서 만든 듯한 새로운 멜로디가 뒤를 이어 흘러나왔다.

“4파트까지가 조금 어설프긴 한데, 마지막 파트가 좋네.”

“4파트까지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파트가 너무 좋아서 그렇죠.”

A&R 팀의 말에 1팀장도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파트마다 한 사람씩 맡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편곡해서 한 파트 더 집어넣고 마지막 파트를 조금 수정하면 될 것 같은데?”

블루문의 멤버들의 수에 맞게끔, 특징이 잘 나타나는 5개의 파트와 그 모든 파트의 멜로디가 어우러지는 여섯 번째 파트까지.

A&R 팀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너무 좋아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 개인 파트를 하나 더 추가하면 마지막 파트는 아예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겁니다.”

좋은 곡이 나타나니 회의도 활발해졌다. 블루문 멤버들도 37번 곡을 들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이리저리 꺼내놓았다.

“제일 긴 파트를 쪼개면 어떨까요?”

“같은 선율을 나누면 멤버 특징이 잘 안 드러날 것 같아.”

하지만 온전히 곡에 담고 싶은 마지막 파트를 건드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작곡가 이름은 없었어?”

“네. 없었어요.”

최재원의 말에 A&R 팀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흘러들어 간 건지는 몰라도 곡이 좋아서 다른 곡들도 받고 싶은데…….”

“회사 안 컴퓨터는 확실하니까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저기…….”

최재원이 입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저희 추측이긴 한데…… 왠지 예전 브라운블랙 선배님들의 곡들이 떠올라서요. 그쪽에서 온 게 아닌가 싶어요.”

……!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네? 이거 예전 스타일의 브라운블랙이잖아?”

예전 스타일이라고 해서 나쁘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블랙의 곡 스타일은 크게 2개로 나뉘는데 초반의 곡은 네 멤버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 같은 스타일이었고 후반의 곡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스타일이 있었다.

요즘은 개인 활동이 더 많긴 했지만, 가끔 내는 곡들은 브라운블랙 네 멤버의 치열한 자리싸움이 보이면서도 그게 한 곡으로 어우러져서 저절로 감탄이 나오고는 했다.

“브라운블랙 곡이 섞여 들어간 거네.”

“그러게요. 딱 파트도 4개고.”

“브라운블랙 곡, 제출했던 작곡가들 명단이 아직 있어?”

1팀장의 물음에 A&R 팀 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꽤 옛날 일이라……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있어도 일일이 찾으려면 힘들겠지.”

“브라운블랙 멤버들한테 물어보면 어떨까요? 좋은 곡이니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걸 안 쓴 이유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좋은 생각이었다.

이 좋은 곡을 그 당시에 안 썼다면 1팀장도 모르는 일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1팀장이 휴대폰을 들어 브라운블랙의 리더 박서진에게 연락하고 스피커폰 모드로 돌렸다.

“블루문 애들이 좋은 곡을 발견했는데 너희 스타일이랑 비슷해서. 들어봤나 싶어서 말이야.”

-좋은 곡?

37번 곡이 재생되자 휴대폰 건너, 박서진이 음-음, 하고 곡을 따라 부르는 것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선율을 뒤쫓아 가던 허밍이 어느 순간 선율과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는 곡이구나!’

직원들과 블루문의 눈을 반짝였다.

-아, 이 곡.

“알고 있어?”

-예준이가 작곡한 곡이야.

황예준?

블루문과 직원들은 예능에 나올 때마다 큰 웃음을 터뜨리고 가는 브라운블랙 멤버를 떠올렸다. 작곡에 재능이 있어 현재는 여러 가수들과 함께 작업도 하고 있었다.

1팀장은 아차 싶었다.

1팀장이 브라운블랙의 매니저가 되고 얼마 후 브라운블랙의 곡부터 천천히 작곡 활동을 시작한 황예준이었는데, 그때 브라운블랙이 활동했던 곡들은 이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떠올리지도 못했다.

* * *

“원래는 다음 앨범 곡으로 쓰려고 했는데, 우리 스타일이 중간에 바뀌어서 말이야.”

‘그게 아마 팬미팅 때였던가.’

[쉐도우맨2]를 보고 있던 박서진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전 사장의 횡령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코코아엔터를 매니저 서은찬이 인수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걱정하는 팬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팬미팅의 무대.

구속하고 있던 제한에서 벗어난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던 그때부터 브라운블랙의 스타일이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게 아직 남아 있었네. 예준이한테 물어보면 될 거야, 형.”

알았다는 1팀장의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박서진이 리모컨을 눌러 [쉐도우맨2]를 재생했다.

아직 순수한 진 나트라가 쉐도우맨 맥의 손을 잡고 센트럴 파크의 추모관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불러서 서준이랑 밥 먹으러 가야겠네.”

성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꺄르르 웃던 아기 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준을 떠올리며 박서진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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