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01화
-아, 도착했다. 아빠는 나가셨나 봐.
휴대폰 건너 찰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철컥하고 문을 여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집에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래? 아저씨한테 안부 전해줘.”
-그럴게. 영화제 재미있었어.
찰리의 말에 서준이 콧등을 찡긋거렸다.
“생각보다 스케줄이 많아서 잘 못 논 것 같은데.”
-내가 언제 관계자로 참여해 보겠어. 엄청 즐거웠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면 다음에 그레이스까지 모여서 같이 놀면 되지.
“그럴까?”
통화를 하던 서준이 어렸던 두 늑대인간과 한 마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스의 누나가 쓴 소설, 영화로 제작된다며?
“응. 그렇다더라. 벌써 배우까지 모두 섭외한 것 같던데.”
-너한테 대본 안 왔어?
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 왔어.”
-그래? 너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거기 주인공, 우리가 모델이잖아.
“글쎄. 소설은 재미있었는데 대본으로 나오면 어떨지…… 어렵거든.”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웃음기 가득한 찰리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찰리도 웃다가 조금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말 못 했나 보네.
찰리의 말에 서준은 언젠가 언니의 소설에 서준이 출연해 줬으면 좋겠다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그레이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레이스의 언니이자, 작가인 로라 웰튼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게 원작자나, 원작자 동생의 의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나도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할 생각이었거든.”
-그대로 그레이스한테 말하면 되겠네.
“그러게. 나중에 전화해야겠다.”
-아직 공항이야?
“응.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어.”
공항 내 라운지.
어쩌다 보니 함께 귀국하게 된 [한판] 팀과 [흘러가다] 팀의 몇몇은 쇼핑으로 하러 갔고 몇몇은 라운지에 준비된 간식을 즐기며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김한석도 부모님과 신나게 대화하고 있었다.
-한국도 엄청 시끌벅적, 아, 아빠.
-준이니?
-응.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랜만이구나. 준. 황금종려상 수상 축하한다.
서준이 웃으며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 * *
얼마 후.
프랑스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했다.
공항은 금의환향한 배우들과 감독들을 맞이하는 번쩍이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와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흥분한 사람들로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듯해 경비대와 보디가드들이 긴장하던 그때, 공항 안에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 찼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할 것 같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보디가드들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던 이지석이 씨익 웃었다.
“역시, 서준이랑 들어오길 잘했어.”
“그러게 말이다.”
김종호도 다른 관계자들도 ‘이서준 공항 효과’에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황금종려상 ‘흘러가다’, 민희경 감독, 배우 이서준, 김한석 귀국!]
[그랑프리 ‘한판’, 김주형 감독, 배우 이지석, 김종호 귀국!]
-잘 다녀오라니, 정말, 너무, 잘 다녀옴!
=22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싹쓸이하고 왔네!
-서준아, 축하해!!
* * *
“이야. 박 터지네.”
연예부 기자가 2주 동안의 영화 개봉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29일은 한판이 개봉하고 30일은 흘러가다가 개봉하고, 6월 5일에는 수려가 개봉하고. 다음 주는 빡세겠어.”
“근데 이렇게 한꺼번에 개봉해도 되는 걸까요?”
신입 기자의 물음에 선배 기자가 대답했다.
“칸 영화제 화제가 남아 있을 때 관객을 끌어모으려는 거지. 그래서 칸 영화제 초청받았을 때부터 급하게 개봉 연기한 영화들도 있다더라.”
아무래도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홍보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배우들이 배우들인 만큼 수상도 어느 정도 생각해 뒀을 테고.”
“그게 황금종려상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겠지만 말이야.”
“그건 우리도 못 했어.”
기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후배 기자가 외쳤다.
“단홍 쪽에서 보도자료 왔어요!”
“그거지? 민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말했던 거.”
“네.”
시상식 시간이 정해져 있어 짧게 말해야 했던 수상소감이라 축약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은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 했다.
기자가 후배 기자가 가져온 보도자료들을 읽어 내려갔다. 다른 기자들도 하나씩 프린트해 자리에 앉았다.
첫 이야기부터 흥미진진했다.
“민 감독님 작품을 퇴짜 놓은 제작사는 아깝게 됐어요. 황금종려상을 탄 작품을 바로 앞에서 놓쳤으니…….”
“글쎄. 좋은 피드백을 줬다면 감독이 새 작품을 써서 그 제작사로 갔겠지. 그 제작사 갔다 오고 난 후에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좋은 말은 못 들었을 테고…… 어디래?”
누군가 한 제작사 이름을 내뱉었다.
신입 기자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 기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세요?”
“민 감독이 상 받았을 때 그 회사도 난리였다더라. 누가 민 감독을 상대했냐, 대본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그렇게 난리니 밖으로까지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뭐.”
“그전부터 이야기가 좀 나오지 않았어? 이서준 배우랑 같이 민희경 감독 이름 뜰 때부터.”
“그때도 살벌하긴 했지.”
“그때 퇴짜 맞았던 대본이 궁금한데…… 공개 안 하려나?”
“안 할 것 같은데.”
다음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긴 마찬가지였다.
“무명배우인 줄 알았다고? 이서준을 보고?”
“이서준 배우를 못 알아보는 건 꽤 있는 일이지.”
“그래요?”
“연극 거울, 아니, 소설 거울인가? 그거 북 콘서트 할 때도 작가랑 출판사 직원이 못 알아봤다고 하더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그 말에 신입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연극 [거울]이 나올 당시 기사로 많이 읽어보았다.
“하긴, 오스카상이랑 황금종려상을 아역 시절에 받은 배우가 작정하고 일반인 연기를 하는데 알아보는 게 신기하지.”
“할리우드의 어떤 배우는 진짜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고 누가 돈까지 줬다고 하잖아.”
유명한 일화에 여기저기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나왔다.
“촬영하던 애들은 미리내 예고 애들인가. 작년에 졸업 공연으로 나왔던 단편 영화겠지?”
“이서준 배우가 출연했을까요?”
“이서준이 출연했으면 벌써 단편 영화제란 단편 영화제는 다 휩쓸고 영화관에도 걸렸을걸. 플러스에도 업로드되고 말이야.”
그 이후로도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역시 오디션이었다.
“후보에 이서준이 있었는데도 오디션이라. 민 감독님 배짱 장난 아닌걸.”
“이 정도 고집은 있어야 황금종려상을 타나 봐.”
무슨 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한강에서 우연히 만난 무명 배우를 보고 망한 감독이 마지막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슈퍼스타보다는 그 무명 배우와 함께 만들고 싶어서 오디션을 열었는데 거기에 나타난 무명배우가 알고 보니, 그 슈퍼스타라.”
“거기서 끝나도 엄청 재미있었을 텐데……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으니…….”
“칸 영화제 최초로 배우까지 상 받았잖아.”
“역시. 이서준만 있으면 기삿거리는 엄청 나온다니까. 연기도, 대본 보는 눈도 중요하지만 역시 스타는 화젯거리를 몰고 다녀야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 얼른 올리자고.”
다른 곳도 보도자료를 받았을 테니 길게 말할 시간도 없었다.
익숙하게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개의 기사를 써 내려가고 업로드했다.
[‘흘러가다’ 민희경 감독과 배우 이서준의 인연!]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운명이 되다!]
[황금종려상 수상자들이 처음 만난 곳은 한강!]
화제가 쏠려 있는 만큼 올라가자마자 조회 수가 훅훅 올라가고 있었다.
“해피엔딩이네요!”
뒤늦게 보도자료를 읽고 망한 감독에게 감정 이입한 신입 기자의 말에 기자들이 피식 웃었다.
“아직 남았어.”
“네?”
“칸 영화제도, 황금종려상 수상도, 이런 에피소드들도 오로지 하나를 위한 거야.”
영문 모를 소리에 신입 기자가 눈을 깜빡였다.
“흥행.”
누군가의 말에 다들 동의하듯 말을 덧붙였다.
“칸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라고 해도 흥행이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거든. 망한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개봉 후 며칠쯤은 홍보 효과가 있겠지만 역시 입소문이 가장 중요하지.”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끝까지 안심하면 안 되고말고.”
“뭐, 기삿거리로는 망해도 괜찮겠지만.”
이서준의 영화가 망한다라.
신입 기자는 쏟아질 기사들이 예상이 가, 잠시 머리가 아찔해졌다.
* * *
“한판 후기가 엄청 좋네.”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래?”
“액션신도 액션신인데, 반전이 어마무시하대.”
송유정이 [한판]의 포스터를 들어 올렸다.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얍삽하게 웃고 있는 이지석과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종호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나중에 볼까?”
“그러자.”
[한판]의 포스터를 내려놓은 송유정이 그 옆으로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이 오늘 보러온 [흘러가다]의 포스터가 있었다.
“포스터 하나씩이면 되지?”
“응. N차 뛸 때마다 가져갈 거니까.”
“근데 되게 일상사진 같으면서 화보 사진 같다.”
“그러게.”
황금종려상의 나뭇가지가 한쪽에 그려진 포스터는 총 세 개였다.
커다란 보름달 모양 풍선을 배경으로 셀카봉을 들고 수원화성에서 야간 촬영을 하고 있는 서준의 모습과 붉은 단풍나무 길에서 서서 웃고 있는 서준의 모습, 그리고 낡은 집을 배경으로 마루에 나란히 앉아 즐겁게 웃고 있는 서준과 김한석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힐링물인가 봐.”
“근데 힐링물이 눈물이 나올 정도일까? 칸 영화제 후기에 엄청 울었다는 이야기가 많잖아.”
황금종려상을 받은 만큼 영화제에서의 반응도 하나하나 화제가 되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후기를 올리는 사람들과 그 후기를 번역해 기사로 내놓는 기자들에 의해 다들 휴지를 한 움큼씩 챙겨온 상태였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그랬다.
“힐링물은 다른 말로 치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치유물이라는 건 그거지.”
임예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치명적 유해물.”
“……굉장히 불안한 소린데…….”
송유정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생존자들 감독판 같은 건 아니겠지?”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아. 감독판은 반응이 확실하게 두 개로 갈렸는데 이건 평이 좋으니까.”
“아. 그러네.”
송유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제1관! 제1관, 흘러가다를 관람하실 분들은 지금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송유정과 임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1관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1관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송유정과 임예나가 들뜬 얼굴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광고가 나오고 비상구를 알려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요새 한 걸음 방송 많이 나오니까 다시 집중하게 된다. 그치?”
“그러게.”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지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모두 잊지 않게 비상구를 기억하고 나자 상영관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검게 물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글자들이 생겨났다.
[이번 가을.]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바다.]
사각사각 펜과 종이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대에 찬 송유정과 임예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2시간 후.
굳게 닫혀 있던 상영관의 문이 열리고 영화관 직원이 외쳤다.
“휴지 필요하신 분!”
* * *
[‘한판’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신!]
[휴지는 필수! 물은 선택! 온몸의 수분을 뽑아내는 ‘흘러가다’!]
[‘수려’ 조선 시대 좀비물! 대호평!]
[‘흘러가다’의 반전을 숨겨라! 마린사급?!]
[보느냐 마느냐, ‘흘러가다’ 스포일러 전쟁!]
[‘한판’ב흘러가다’ב수려’, 뭘 봐야 할까?]
-수려) 좀비가 이스케이프 좀비라며? 역시 경력직은 달라.
=경력직ㅋㅋ 근데 진짜 무섭긴 했음ㅎㄷㄷ
=첫 장면 좀비부터 몰입해 버림ㅋㅋ
-한판) 이지석과 김종호가 너무 살벌하더라.
=22 근데 긴장감 장난 아니라 심장이 쫄깃쫄깃ㅎ
=N차 뛰니까 숨겨진 복선이 보여서 너무 재밌어ㅋㅋ
=ㅇㅇ 그 미묘한ㅋㅋ
-흘러가다) 대성통곡 함ㅠㅠ 가지고 간 휴지가 모자랐어ㅠㅠ
=22 아니, 이서준이 연기를 너무 잘해……!
-하……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말하면 다 스포일러 같아.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풍경이 참 좋았다는 거? 애들 귀엽다는 거?
=ㅋㅋ진짜 맨 앞부분만 빼면 다 스포일러야ㅋㅋ
=그러니까. 단어 하나면 스포일러가 끝나는데!
-빨리 시간이 좀 흘렀으면…….
=영화객 님 리뷰 나올 때쯤이면 다 봐서 이야기하고 다녀도 괜찮던데.
=나는 빨리 주변 사람들한테 영화 보러 가라고 하고 있음.
=222 모르고 보는 게 좋으니까.
-칸 영화제 초청된 영화 좀 볼까? 세 개 다 너무 재미있어서 취향에 맞을 듯.
=그건 아닐걸. 그냥 저 영화들이 재미있는 거야.
=22 참고로 올해 한국 초청작 4개임.
=……하나 어디 감?
=한판보다 빨리 개봉했는데 망했음.
=……아하.
-근데 한판에 권윤찬네 집 나오지 않았음?
=22 나도 어쩐지 익숙한 것 같았는데.
=333 둘 다 N차 뛰었는데 나도 봤음.
=한판에 권윤찬 집이 나온다고???
=??그게 여기서 왜 나옴??
“떴네요.”
-그럼 바로 보도자료 뿌리겠습니다.
[흘러가다]의 제작사 단홍과 [한판]의 배급사가 히죽히죽 웃으며 촬영했을 때부터 공개할 날만 기다리던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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