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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00화 (40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00화

내려앉은 적막 속.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민희경 감독이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받는 건 믿기지가 않았지만 서준이 받는 건 단번에 이해가 갔다.

“서준아. 축하해.”

“……어, 네?”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서준이 민희경 감독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민희경 감독의 얼굴에 서준은 제가 들었던 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황금종려상 수상자는 흘러가다, 민희경,’

‘그리고 이서준.’

놀랐던 마음 사이로 천천히 기쁨이 차올랐다.

서준의 얼굴이 천천히 기쁨으로 물 들 때, 서준의 옆에 서 있던 김한석도 깜짝 놀라 함지박만 하게 입을 벌렸다.

“헐…… 미쳤나 봐…….”

하고 저도 모르게 내뱉을 정도였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김한석은 상황을 납득하고 짝짝짝! 있는 힘껏 박수를 쳤다.

‘서준이 형이니까!’

13살 때 오스카상을 받은 서준이 형인데 어떤 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그 상이 지금까지 감독들만 받았던 상이라는 게 정말 특별한 일이긴 했지만.

‘서준이 형이니까!’

짝짝짝!!

들뜬 김한석의 박수 소리에 아직 얼떨떨해하던 관객들도 영화인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관객석에 앉아있던 에반 블록과 리첼 힐 등 할리우드 지인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와아아아!!

칸 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있는 감독과 배우의 황금종려상 공동수상에 아주 커다란 환호를 보냈다.

뤼미에르 극장 안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 * *

와아아악!!

기자실도 마찬가지였다.

김주형 감독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와 민희경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는데 이서준의 공동수상으로 아예 폭발해 버린 상태였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일찌감치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흘러가다, 민희경 감독 황금종려상 수상!]

<오늘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속보)이서준 황금종려상!]

<내용 무>

미리 준비되어 있던 민희경 감독의 속보 기사는 제법 앞뒤를 갖추고 내용도 적혀 있었지만, 정말 예상도 못 한 서준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제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기사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에 집중하지 않았다.

칸 영화제 폐막식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던 KBC도 난리가 났다.

그 이서준의 작품인 만큼 두고두고 방송에 내보낼 수 있을 만한 멋진 장면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대박이 터져 버렸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대박!

[한판]의 그랑프리.

[흘러가다]의 황금종려상.

그리고 배우 이서준의 황금종려상!

그 소식이 알려졌는지 늦게나마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TV를 켜거나 너튜브에 접속했다. 그래서 이 새벽 3시에 시청률까지 오르고 있었다.

이서준의 팬카페 [새싹부터]도 늦게까지 깨어 있는 새싹들의 울음과 감격으로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공지 : 서준이 응원봉 모형이 추가됩니다.]

[글쓴이 : 흙흙]

안녕하세요. 흙흙입니다.

서준이 응원봉 모형이 추가되었습니다.

황금종려상 트로피 모형입니다.

코코아엔터와 함께 ‘새싹부터’에서 제작할 예정이므로 황금종려상 트로피 모형 수요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오스카 트로피 모형은 내일부터 예약할 수 있습니다.

-ㅠㅠ저요!

-이 새벽에 안 자고 보고 있었는데! 생방송으로 봐서 너무 좋았어요!

-진심. 이거 안 봤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네요ㅠ

-진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수상ㅠㅠ

-서준이가 깜짝 놀라는 게 느껴져서 더 그런가 봐요.

-누가 예상했겠어요ㅠㅜ

-소리 지르고 싶었는데 새벽이라 응원봉만 열심히 흔들었습니다ㅎ

-저도요. 낮이었으면 진짜……!

[새싹부터]는 물론이고 다른 커뮤니티들도 들썩거렸다.

금세 생방송 화면이 캡처되고 게시글들이 만들어졌다.

[오스카상×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직도) 아역(인) 배우!]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ㄴㄴ 황금종려상!]

-……미쳤나 봐…….

-와…… 거기서 ‘and’가 나올 줄이야…….

-KBC에서 동시 번역해 주던 사람도 놀랐는지 타이밍 늦었음ㅋㅋㅋ

=자막에서 멈칫함을 느끼게 될 줄이야ㅋㅋ

-다른 건 몰라도 and하고 Lee seojun!은 알아들었짛ㅎㅎ

=난 알아들었는데 순간 이해가 안 갔음.

=22 서준이 이름은 왜 나오고 카메라는 왜 비추지, 했다.

-트로피가 두 개야……!

* * *

“/두 분 다 어서 나오세요!/”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는 사회자의 말에 이지석과 김종호, 그리고 다른 배우들이 흥분한 얼굴로 민희경 감독과 서준을 앞으로 내보냈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서준과 민희경 감독은 무대로 향했다.

무대 위에서 사회를 보던 프랑스 배우와 심사위원장이 민희경 감독과 서준을 반겨주었다. 서준은 두 사람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닮은 트로피에 천천히 현실감이 들었다.

‘……진짜 두 개네.’

민희경 감독님 거 하나.

내 거 하나.

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심장이 너무 뛰어 손끝부터 발끝까지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의 여파로 서준의 아우라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화면에 잡히는 서준의 모습에 방송으로 보고 있던 새싹들이 끙끙 앓았다.

반짝이는 눈빛, 상기된 두 볼, 올라간 입꼬리까지. 온몸으로 기쁨과 행복, 벅찬 감정을 드러내는 서준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새벽에 소리를 지를 수는 없으니, 다들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만 흔들어댔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입을 틀어막고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수상 축하해요./”

심사위원장이 민희경 감독에게 트로피를 건네고, 사회를 보던 프랑스 배우가 서준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민희경 감독은 벅찬 얼굴로, 조금 손을 떨면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받았다. 서준도 활짝 웃으며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누가 먼저 수상소감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민희경 감독이 프랑스 배우의 손짓에 먼저 마이크 앞에 섰다. 공동수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그런 해프닝 하나하나가 모두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 앞에 선 민희경 감독이 침을 꿀꺽 삼키고 앞을 바라보았다. 감독으로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본 게 처음이라 너무 떨렸다. 어깨가 담이 생길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것 같았다.

서준의 눈이 긴장한 민희경 감독에게로 향했다. 빙그레 웃은 서준이 선기를 흘려보냈다.

천천히 풀리는 긴장에, 그나마 옆에 서준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민희경 감독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봉쥬르.”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했다.

“저는…… 이 작품을 못 만들 뻔했습니다.”

시작부터 충격적인 수상소감이었다.

“첫 영화가 망하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작품이 퇴짜를 맞았던 날. 저는 영화감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단홍의 기획팀장과 홍보팀장이 눈을 빛냈다.

그 이야기는 따로 홍보용으로 쓸 이야기였지만, 생각해 보면 여기 이곳보다 주목도가 높은 곳도 없었다.

“친구들과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그 소년은 한눈에 봐도 영화와 연기를 참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저도 모르게 그 소년이 제 작품에 출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영화감독의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겁니다.”

어쩐지 알 것 같은 이야기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소년이 날카롭게 제 대본을 평가해 주기도 했거든요.”

민희경 감독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만들게 된 작품이 바로 ‘흘러가다’입니다. 이 작품 덕분에 꿈꾸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소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통역을 통해 들려오는 수상소감에 모두 민희경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 소년이 누군지 궁금했다.

기자실에 있던 한국 기자들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민희경 감독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분명 한국인이겠지.”

“촬영 중인 학생이면 예고나 예중 학생인가?”

“이런 인연이면 앞으로 민희경 감독 작품에서 한자리 차지할 것 같은데?”

“미래가 기대되는 감독의 작품이라…… 걔도 팔자 폈네.”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이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준, 어쩌면 앞으로 민희경 감독의 사단에 속할지도 모르는, 그 무명 배우는 과연?

민희경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단정한 턱시도를 입은, 연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배우가 황금빛 트로피를 들고 서 있었다.

“정말 고마워, 서준아.”

통역하려던 통역사가 멈칫했다.

한국인들과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자실에 있던 한국 기자들도 입을 쩌억 벌렸다.

‘……이러면 ……누가 팔자를 핀 거지……?’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민희경 감독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 * *

그 뒤를 이어 대본을 선택해 준 제작사 단홍과 배우들,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를 전한 민희경 감독의 수상소감이 끝나고, 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손안에 든 황금종려상의 트로피가 묵직했다.

“메르시(Merci.)”

감사합니다. 라고 말문을 연 서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

“/저는 이번 칸 영화제가 첫 참석입니다. 왜냐하면, 칸 영화제에는 꼭 제가 출연한 작품과 함께 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때문인지 모두의 집중도가 한층 올라갔다.

“/칸 영화제에는 아주 예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습니다. 아주, 아주 예전부터요./”

‘아마 첫 생도 그랬겠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먼저 받긴 했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서준의 이후로 한국 배우는커녕 아시아 배우가 받는 일이 없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아마 칸 영화제의 주연상이 한국 배우에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면서, 가장 높은 상이 아닐까.

다른 배우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며 칸 영화제의 수상을 원하고 서준도 그랬으니, 첫 생의 책이 낡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첫 생도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그래서 초청되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뤼미에르 극장에 제 영화가 걸리고 상영되고 사람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고. 정말 멋진 날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날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다양하고 멋진 영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서준의 말에 다들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영화제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점이었다.

“/언젠가 상을 받는다면 남우주연상이 아닐까 싶었는데……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웃음기 가득한 서준의 목소리에 군데군데 웃음소리가 들렸다.

“/멋진 작품을 만들어주신 감독님과 제작사 여러분, 스태프 여러분, 함께 촬영한 배우분들. 그리고 한국에서 보고 계실 분들과 가족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극장을 가득 채워주신 관객분들에게도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메르시!/”

서준의 진심 어린 감사에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 * *

>안 팀장님! 서준이한테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황금종려상이라니…… 스케일이 너무 큰 거 아니에요?ㅎㅎ

>인터뷰 엄청 들어오고 있습니다.

>출연 요청도요!

<음. 일단 영화 일정과 함께 고려해 보죠.

<시간이 겹치는 건 거절하고 후보부터 정해서 보내주세요.

<모레 귀국 때까지 여기서 검토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누구예요. 다호 형?”

“2팀분들. 다들 서준이 수상 축하한대. 그리고 한국도 떠들썩해서 새벽인데도 연락이 많이 오는 중이래.”

서준의 물음에 휴대폰을 내린 안다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2팀의 축하에 서준이 헤헤 웃으며 안다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흘러가다] 팀은 시상식이 끝나고 공식 기자회견을 위해 프레스센터로 향하는 중이었다.

“서준이 형. 가까이서 보니까 더 빛나는 것 같아요!”

“이걸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요.”

흥분한 김한석과 김호영, 최현희가 [LEE SEOJUN]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연신 신기한 얼굴로 이리저리 살폈다. 스태프 쪽은 민희경 감독의 트로피에 몰려가 있었다.

트로피를 구경하며 걸어가다 보니 [흘러가다] 팀은 어느새 프레스센터의 앞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칸 영화제 직원들이 웃으며 이번 칸 영화제의 주인공들을 바라보았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문 열어드리겠습니다./”

정장을 입은 칸 영화제 직원이 프레스센터의 문을 열어주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서준과 [흘러가다] 팀이 환하게 웃었다.

* * *

해가 뜨고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는 TV를 켜고, 누군가는 라디오를 켜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밤새 있었던 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 프랑스 칸 영화제의 폐막식이 진행되었습니다.]

TV뉴스를 틀어도.

[김주형 감독님의 ‘한판’이 그랑프리를 받았다죠? 전작도 재미있게 봤는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라디오 아침방송을 틀어도.

[한국 최초 황금종려상 수상! 민희경 감독 ‘흘러가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끝은 항상 같았다.

[칸 영화제 최초로,]

다른 말로 하자면,

세계 최초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서준 배우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뒤늦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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