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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99화 (39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9화

새벽 1시 50분.

송유정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그 옆에는 임예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손에는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이 들려 있었는데 초록색의 귀여운 새싹이 보였고 그 뒤에는 각자 좋아하는 서준의 프로필 사진이 꽂혀 있었다.

“SNS에도 엄청 올라오네.”

작년 여름, 새벽 1시 [생존자들-감독판]을 본 경험이 있는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이 시간까지 잠이 들지 않는 야행성인지, 광고가 엄청 나오고 있는 KBC 채널과 함께 배우 이서준의 응원봉을 찍은 사진이 SNS에 업로드되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있어.”

“그쪽 시간은 낮이라 좋겠다.”

송유정이 크게 하품을 했다.

“경쟁 부문 시상할 때만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네.”

그때면 새벽 3시쯤 될 텐데 밤을 새우기에도, 일찍 일어나기에도 모호한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레드카펫부터 볼 예정인 송유정과 임예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시작한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2시.

프랑스 시각으로 오후 6시.

칸 영화제 폐막식 레드카펫이 시작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레드카펫 위로 수상을 기대하는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지고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인사를 하고 다시 사진을 찍고. 감독들과 배우들이 입은 옷의 브랜드가 바로바로 알려지고 찍히는 사진 하나하나가 기사에 올랐다.

화려한 스타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TV 화면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왔다!

-다 같이 왔네!

모두 반짝이는 응원봉을 흔들었다.

* * *

차에서 내린 김한석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좀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그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제법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쩌면 수상할 수도 있다는 기쁨과 떨림에 가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열정적으로 플래시가 터져 나오는 곳에 한국 기자들이 있었다. 물론 해외 기자들도 수상 가능성이 큰 두 팀을 주목했다.

번쩍번쩍한 플래시를 한 몸에 받으며 사진을 찍히고 있는데 커다란 카메라와 마이크가 두 팀 앞에 나타났다. 전 세계로 방송 중일 생방송 카메라였다.

익숙한 걸음은 어디 갔는지 두 감독과 아역 배우 하나가 바짝 굳어버렸다.

그 모습에 이지석과 김종호, 서준이 먼저 인터뷰에 나섰다.

능숙하게 폐막식 참석 소감과 칸 영화제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나니, [흘러가다] 제작사와 [한판] 배급사에서 준비해 준 인터뷰 질문지를 떠올린 두 감독이 어색하게나마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뒤를 이어 김한석도 조금 더듬거리며 답변을 하고 나서야 카메라가 다른 팀에게로 향했다.

“……서준이 형.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순식간에 기가 빠진 듯 쭈그러든 김한석의 말에 서준과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잘했어.”

“정말요?”

“그럼.”

서준의 대답에 김한석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 팀은 레드카펫을 지나 뤼미에르 대극장 안으로 향했다.

정해진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흘러가다] 팀의 앞자리가 [한판] 팀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자리를 정해준 건가?”

“편해서 좋은 것 같아요.”

이지석의 말에 그 뒤에 앉은 서준이 말했다.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극장 안으로 들어오고 곧 모든 자리가 가득 찼다.

“매번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봤는데 떨리네.”

“저도요. 상영 때랑은 분위기도 전혀 다른 것 같고.”

김호영의 말에 김한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형. 개막식도 이랬어요?”

“응. 비슷했어.”

김한석의 질문에 서준이 극장 안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근데 시상식이 있어서 그런가. 폐막식이 더 긴장된 분위기인 것 같네.”

폐막식에 참여할 줄 몰라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자신의 작품이면 당연하다는 듯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뤼미에르 대극장 안은 그런 사람들의 들뜸과 기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지.’

서준도 그랬고 [흘러가다] 팀도, [한판] 팀도 그랬으니까.

‘무슨 상을 받을까?’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심사위원상, 그랑프리(심사위원장상).

그리고 황금종려상.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이름들이었다.

* * *

잠시 후.

칸 영화제 폐막식이 진행되었다.

먼저 단편영화 부문을 시상하고 주목할 만한 부문 시상이 이어졌다. 처음 보는 감독이, 몇 번 보았던 감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짝짝!

서준이 이번 칸 영화제에서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 중 반 이상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서준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쟁 부문 시상이 시작되었다.

뤼미에르 극장 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고, 머나먼 한국에서는 경쟁부문 시상 소식에 하나둘 눈을 비비고 일어나 TV를 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자실에 있던 한국 기자들이 노트북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제일 첫 수상은 7개의 상 중 제일 끝부분인 각본상.

“우리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김주형 감독의 말에 이지석이 대답했다.

평점이 2위로 올랐으나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갈릴 수도 있었다.

[한판] 팀의 뒷자리에 앉은 평점 1위인 [흘러가다] 팀도 완전히 안심하지 않고 봉투를 여는 심사위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각본상도 좋지만…….’

평점이 좋고 칸에서의 반응이 좋은 만큼, 서준은 더 높은 상을 노리고 싶었다.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은…… 두 개의 문, 캐럴 앤더슨!/”

폐막식이 시작하기 전 각본상을 예상했던 [한판] 팀은 다른 영화를 호명하는 심사위원에 눈을 깜빡이다가 들리는 박수 소리에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우리 아니었어?”

“그러게. 아닌가 봐.”

김종호의 말에 대답하는 이지석도 놀란 눈치였다. 김주형 감독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박수를 쳤다.

기자실에 있던 한국 기자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한판’,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 [‘흘러가다’,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시원하게 삭제했다.

“그럼 감독상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여자배우는 없었으니 당연히 여우주연상도 아니었다.

“그러면 남우주연상?”

이라고 하기엔 이번 칸 영화제에서 누구보다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이지석과 김종호의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준에게 한 번씩 향했다.

“서준인가?”

“서준이 형인가?”

공동수상이 가능한 각본상과 감독상은 이미 다른 영화들로 넘어간 상태라 남우주연상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남아 있는 심사위원상, 그랑프리,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민희경 감독은 오히려 안심한 눈치였다.

서준이 남우주연상을 받는다면 여기에 초청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남우주연상인가?

-서준아!!

-아무나 받아라!!

-시상식이 왜 이렇게 긴장됔ㅋㅋㅋ

기자실도, 한국에서 생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봉투를 여는 심사위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소리를 죽이고 새싹 응원봉을 흔들었다.

“올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은……!”

모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 글자가 훌쩍 넘고 낯선 이름이 들렸다.

-헐. 아니네.

-아쉽ㅠㅠ

남우주연상도 아니었다.

한국 기자들은 미리 써놓은 기사들을 아쉬운 얼굴로 삭제했고, 방송으로 보고 있던 새싹들이 들고 있던 응원봉의 불빛은 조금 시든 것 같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남자 배우의 모습에 서준은 시원섭섭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배우로서는 남우주연상을 받고 싶었지만, 그러면 심사위원상이나 그랑프리를 받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는 소리니, 못 받게 되어 안심되기도 했다.

작품상이냐, 연기상이냐.

아마 공동수상이 불가능한 칸 영화제에 온다면 항상 고민할 것 같았다.

“에이. 둘 다 받을 수 있었으면 서준이 형이 당연히 남우주연상 받았을 텐데.”

옆을 보니 김한석이 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게 말이야.”

민희경 감독의 말에 김호영과 최현희까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조금 남아 있던 아쉬움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 영화가 더 좋은 상을 받는다는 거잖아요. 작품상은 배우도, 감독도, 스태프분들도 다 잘했다는 거니까 더 좋은 거죠.”

그 말에 다들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이 봉투를 받아 들자, [한판] 팀과 [흘러가다] 팀이 긴장했다. 폐막식에 참석하라고 했으니 상은 받을 테지만 예상보다 순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건 심사위원상이랑 그랑프리랑…… 황금종려상뿐인데…… 잘못 부른 건 아니겠죠?”

“그렇겠죠……?”

김주형 감독의 말에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민희경 감독까지 괜스레 불안해졌다. 언젠가 칸 영화제 측의 실수로 폐막식에 참석했다가 상 하나 없이 돌아갔다던 작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고 대답했다.

“아닐 거에요. 경쟁 부문 감독님도 이제 세 분밖에 없어요.”

남아 있는 상은 3개.

남아 있는 감독은 3명.

두 감독은 어쩐지 손에 땀이 차는 듯했다.

그때,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은……!/”

와아아아!

이름이 불린 감독과 배우들이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객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축하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라? 이러면…….

-헐……??

카메라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프랑스인 감독을 비추었지만, 생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던 한국인들과 기자실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던 한국 기자들은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두 팀을 떠올렸다.

[한판] 그리고 [흘러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모두 당황했다.

-진짜로???

-와…… 누굴 응원해야 하는 거야?

-ㅋㅋ이런 일이 처음이라ㅋㅋ 웃음밖에 안 나옴ㅋㅋ

[칸 영화제, 한판 VS 흘러가다, 황금종려상 수상자는!?]

[칸 영화제의 마지막을 한국 영화가 장식하다!]

곧바로 비슷한 제목으로 순식간에 기사들이 한국 사이트에 업로드됐다. 흥미로운 기사들에 이른 새벽 TV를 켜는 집들이 늘어났다.

-이건 진짜 한국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듯.

-이렇게 안심되는 건 처음임ㅋㅋ

-안심되는데 더 떨림ㅋㅋ

“/올해 그랑프리는……/”

봉투 안을 바라보며 말하는 심사위원의 목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한판, 김주형!/”

김주형 감독이 멍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자 이지석과 김종호가 웃으며 일으켜 세웠다. 서준과 김한석이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축하했다.

“축하드려요! 감독님!”

“얼른 나가보세요!”

아직도 멍한 얼굴로 김주형 감독이 무대 위로 향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각본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등 상인 그랑프리라니.

어느새 손에 들린 상장이 믿기지 않았다.

“봉, 봉쥬르.”

김주형 감독이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말할 때, 그 모습을 기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한 팀의 마음도 일렁이고 있었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김주형 감독이 돌아왔다. 옆으로 주르르 앉아 있던 [한판] 팀에게서 축하의 말이 쏟아졌다. 그때, 서준의 말이 떠올랐다.

‘작품상은 배우도, 감독도, 스태프분들도 다 잘했다는 거니까 더 좋은 거죠.’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진심 어린 그 말에 [한판]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김주형 감독은 손에 들린 붉은 끈으로 묶인 상장이 그 어느 트로피보다 벅차게 느껴졌다.

“/그럼 심사위원장님. 발표해 주시죠./”

심사위원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마지막 시상을 남겨두고 들뜬 관객들을 잠시 둘러본 심사위원장은 간단히 심사 총평을 말했다.

“/세상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새로운 문제점들이 생겼죠. 누구나 ‘나’를 알 수 있는 세상이지만 누구보다 ‘나’를 숨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남의 의견’에 ‘흘러가’ 버리는 세상이기도 하죠./”

은근슬쩍 나온 단어에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남은 작품이 [흘러가다]뿐이란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카메라에 민희경 감독과 서준의 얼굴이 잡혔다. 옆으로 김한석과 김호영, 최현희의 얼굴도 담아냈다. 약간의 환희와 약간의 기쁨과 약간의 기대가 모두의 얼굴에 서렸다.

결과를 알면서도 다들 가슴이 뛰었다.

생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응원봉을 꽉 쥐고 눈도 깜빡하지 않던 새싹들도, 업로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도.

단 문장을 기다렸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심사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흘러가다! 민희경!/”

와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축하드려요! 감독님!”

“황금종려상이래요! 어서 나가보세요!”

“트로피! 트로피 받아야죠!”

이미 [한판] 팀이 그랑프리 상을 받을 때부터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민희경 감독이 서준과 배우들의 성화에 엉거주춤 일어났다. [한판] 팀과 주변에 있던 영화인들까지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민희경 감독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치던 그때,

“/그리고!/”

심사위원장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화면에 심사위원장이 비쳤다.

……?

박수를 치던 사람들은 공중에서 손을 멈추고 얼떨떨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선 심사위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무대 한쪽에 자리를 잡은 8명의 심사위원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표정들이 아무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라고?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을 즐겁게 바라보던 심사위원장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가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배우,/”

뜬금없는 설명에 순간.

뤼미에르 대극장은 물론이고, 생방송으로 칸 영화제 시상식을 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움직임이, 숨이 멈추고 말았다.

“/이서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카메라가 민희경 감독의 옆에 서서 축하해 주고 있던 서준에게로 향했다.

화면에 서준이 나타났다.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멈춰 버린 서준은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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