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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98화 (39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8화

영화가 끝났다.

극장 안이 밝아지고 스피커에서는 [흘러가다]의 OST가 나오고 있었는데 관객석이 조용했다.

신나게 박수를 치려던 김한석이 그 조용함에 눈을 데굴 굴렸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감탄과 박수가 나왔던 [한판]과는 비교되는 상황에 [흘러가다] 팀도 조금 눈치를 보듯 양 옆을 둘러보았다.

“서준이 형. 저는 재미있게 봤는데 외국인들이 보기엔 별로였나 봐요.”

조금 울상인 김한석의 속삭임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네?”

그때 어디선가, 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김한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짝짝!

그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는 듯, 흠칫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린 관객들이 아차 싶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마주쳤다. 몇몇 사람들은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극장 안을 촬영했다.

짝짝짝짝!!

불이 번지는 것처럼 자그마했던 박수 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관객들이 일어나는 모습도 보였다. 군데군데 대성통곡을 하느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커다란 박수 소리와 훌쩍이는 소리가 섞여 뤼미에르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다들 여운에 너무 잠겨 있어서 박수를 쳐야 할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야.”

멀리 살펴볼 필요도 없이 서준의 근처에 앉은 배우들과 감독들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서준은 그 적막은 기립박수보다 더 기뻤다.

“그러게요! 우리는 한 번 봐서 그랬나 봐요.”

서준과 김한석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민희경 감독과 [흘러가다] 팀도 기꺼운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한판]의 김주형 감독이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영화가, 크흠, 3부로 나뉜 건가요?”

먹먹한 목소리에 목이 잠겨 헛기침을 해야 했다.

“네. 행복한 분위기의 1부, 진실이 밝혀지는 2부, 그리고 사건이 몰아치는 3부로 나눠봤어요.”

민희경 감독의 말에 김주형 감독이 연신 감탄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드셨네요. 거기서 라이브 방송이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사소한 사건일 줄 알았던 노트북 도난이 해결책이 될 거라는 것도요.”

“서준, 아니, 이서준 배우가 그전의 대본이 심심하다고 해서 넣어봤는데 결과가 좋네요.”

“그전의 대본이요?”

“흘러가다 전에 시한부를 주제로 잡고 대본을 써 둔 게 있었거든요. 그건 그냥 여행을 떠난 시한부 아이가 바닷가에서 다른 아이를 만나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정도의 이야기였고…… 너튜브 방송 내용도 없었고 편집을 이용해서 관객들을 속이는 내용도 없었어요.”

“그랬군요. 이서준 배우가 대본 보는 눈이 좋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군요.”

김주형 감독은 감탄하며 서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살을 얼마나 뺀 거야?”

“조금 뺐어요. 병원에서는 분장이었고요.”

“앞부분 분위기가 밝아서 그랬는지 눈치채지도 못했어. 눈치챘을 땐 벌써 살이 눈에 띌 정도로 빠진 상태였고.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준은 정말 아프거나 죽는 연기를 잘한단 말이야.”

에반 블록의 진심 어린 감탄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한석도 정말 대단했어! 분석 정말 많이 한 게 보이더라!”

“감사합니다!”

리첼 힐의 칭찬에 김한석이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대단하네요.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프리 감독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쳤다.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에게는 좀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데이비스 가렛의 말에 바네사 올슨과 밀란 첼런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 밀러와 폴 오든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습니까? 어떤 식으로요?/”

“/대중들이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건 미디어를 통해서인데, 미디어라는 건 ‘흘러가다’ 1부처럼 얼마든지 편집될 수 있잖습니까. 3부처럼 왜곡되기도 하고요./”

아…….

제프리 로덕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는 유명인은 모두 공감할 터였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그렇죠./”

묵묵히 박수를 치던 라이언 윌 감독이 입을 열었다.

“/유명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정가람’처럼 밖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숨기고, 집에서나 혼자 있을 때만 드러내고는 하죠. 영화에서처럼 병을 숨기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아주 사소한 것을 숨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스왈린 애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은 SNS라는 게 있으니 남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편집을 해버리고는 하지. 좋지 않은 부분은 다 잘라내고 좋은 부분만 올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3부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버리고 말지./”

사라 로트 감독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권윤찬’처럼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할 때도 있겠죠. 사람들이 원래 자기 일 외에는 잘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때로는 가족도 친구도 전혀 모르는 자신이 있을 수도 있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를 때도 있으니까요./”

밀란 첼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3부만 놓고 보더라도 이야기할 게 많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저런 논란이 생기면 저도 의심할 것 같기는 하거든요./”

“/저도요. 1부에서 완벽하게 속았잖아요./”

캐서린 밀러와 폴 오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생각해 볼 게 많은 영화네요./”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만이 아니라 관객들과 영화관계자들도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탓에 극장 안이 시끌벅적했다. 그런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충분히 수입해 상영할 만한 영화인 것 같았다. 각국의 영화 수입사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코를 팽 풀었다.

그때, 스크린이 밝아졌다.

오오!!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방금까지도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바닷가 앞에 서 있던 정가람이 건강한 얼굴로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배우 이서준이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카메라가 옆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도 수술실 앞에서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권윤찬이 히히 웃고 있었다.

배우 김한석이었다.

김한석이 신이 난 얼굴로 두 손을 열심히 흔들자,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다음으로 상기된 얼굴의 민희경 감독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해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인사를 하는 모습에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김호영과 최현희까지 비춘 카메라가 [흘러가다] 팀을 다 함께 비추었다.

짝짝짝짝!!

기립박수의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환하게 웃고 있던 서준과 김한석의 눈이 점점 커졌다. 민희경 감독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이 [수려]의 6분을 넘어,

7분이 되고,

8분이 되었을 때, 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한판]의 9분을 넘어,

10분에 다다르자 배우, 감독, 제작사 할 것 없이 [흘러가다] 팀 모두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11분.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 *

[‘흘러가다’가 끝나고 찾아온 잠깐의 침묵?!]

[칸 영화제, 뤼미에르 극장에 내려앉은 침묵의 이유는?!]

[배우 이서준 주연 ‘흘러가다’ 기립박수 11분!]

[11분 동안의 기립박수! 현재 가장 긴 시간!]

[외신 극찬! ‘흘러가다’의 수상 가능성은?!]

-누가 영상 찍어놓은 거 없냐?

=그러게. 침묵이라니 궁금하다!

=다들 박수 치다가 허둥지둥 휴대폰 켜는 모습밖에 안 나옴.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지?

-우는 사람 정말 많구나.

=또 휴지 필참인가ㅎㅎ

=개봉하고 영화관 앞에서 휴지 팔면 많이 팔릴 것 같다!

=ㅋㅋㅋㅋ

-이번에도 정말 기대된다!!

-이번 상반기에는 볼 영화가 너무 많아서 좋음ㅎㅎ

* * *

칸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영화 상영이 끝났지만, 아직 [흘러가다] 팀은 할 일이 많았다.

“오전에 포토콜이랑 인터뷰 있고 오후에 잠깐 한국 매체 인터뷰가 있을 거야. 3시 이후로는 자유시간이고.”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 목록을 살폈다.

“3시면…… 이거 보면 되겠다. 한석아. 같이 갈래? 찰리도 갈 거야.”

“무슨 내용이에요? 오. 영어 자막.”

김한석이 반색했다.

“영어를 이렇게 친근하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자막이 영어랑 불어뿐이니까.”

김한석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경쟁 부문에 오른 [한판] 팀과 [흘러가다] 팀은 폐막식이 있을 25일까지 잠깐잠깐 스케줄을 진행하며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했다.

수상 여부는 폐막식 당일 오전에 알려주는 터라 어중간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두 팀이 칸을 즐기고 있을 때, 한국은 기대로 들썩이는 중이었다.

[‘흘러가다’ 평점! 4점 만점에 3.4! 경쟁작 중 최고점!]

[‘한판’ 평점! 3.0! 경쟁작 중 세 번째!]

[‘흘러가다’ 현재 189개국 중 162개국 판매!]

[‘한판’ 현재 189개국 중 133개국 판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 ‘흘러가다’에 호평!]

-워…… 평점 뭐야? 나만 심장 떨림?

=ㄴㄴ 나도 떨림;;;

-진심으로 기대해도 되는 거죠?

=근데 평점은 언론에서 내는 거라…… 심사위원 결정은 아님.

=근데 심사위원 평도 좋다는데!

-한판도 받을 것 같다!

=22 둘 다 받았으면!

[‘흘러가다’ 韓 최초 황금종려상 받나?]

[칸 영화제 내일 새벽(한국 시각) 폐막식 예정!]

[‘한판’ 평점 상승! 3.0 > 3.1!]

-근데 황금종려상 받으면 남우주연상은 못 받는 거 아님?

=ㅇㅇ그렇지.

=배우로서는 좀 아쉬울 것 같네ㅠ

-?? 한판 뭐야? 왜 갑자기 평점 2위로 올라감?

=2위가 0.1점 깎임. 2, 3위가 서로 바뀌었어!

=헐헐, 이게 무슨 일이야?

-KBC에서 칸 영화제 폐막식 생방송 한단다!!

=오오. 새벽 2시지만 봐야지!

=내일 출근이지만 봐야지!

-코코아엔터 타이밍 죽인다ㅋㅋ 이서준 팬들 응원봉 들고 응원한대ㅋㅋ

=아ㅋㅋ진짜 3월에 판매하고 언젠가 있을 팬미팅에서나 쓰나 했는데ㅋㅋ 바로 5월에 쓸 일이 생겼어ㅋㅋ

=응원봉 첫 사용이 칸 영화제 수상 응원이라니ㅋㅋ 스케일 참ㅋㅋ

-지금 응원봉에 무슨 모형 달 건지 토론하고 있음.

=기본형 새싹 VS 각자 최애 작품 모형

=기본형 아님?

=22 여기선 기본형이지.

=오. 솔로몬 나옴.

=뭔데?

=응원봉 2개 사서 각각 달았대.

=ㅋㅋㅋㅋㅋㅋ

* * *

5월 25일.

칸 영화제 폐막식 날.

민희경 감독과 제작사, 단홍의 직원들,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휴대폰 하나.

“여기로 연락이 온다고요?”

“네. 오전 중에 올 거랍니다.”

단홍의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판 팀은 연락 왔대요?”

“아직 안 왔답니다.”

“점심 먹기 전에는 왔으면 좋겠어요. 이대로 점심 먹으면 체할 것 같아요.”

최현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다른 데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죠?”

김한석의 물음에 기획팀장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전부 수신 거부 해놨습니다.”

그것참. 극단적이다.

기획팀장의 말에 모두 실소를 흘렸다.

그래도 그 농담 같은 진담 때문에 긴장으로 가득 찼던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다들 의자에 등을 기대거나 휴대폰으로 점심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서준은 이번 칸 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이건 샀다고 들었고…… 이건 DVD 나오면 해외 직구로 사야겠다.’

호불호가 좀 갈렸다고 했으니, 한국으로 수입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때 테이블 중앙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평범한 벨소리였지만 모두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흘러가다] 팀은 일제히 기댔던 등을 바로 세우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서준도 들고 있던 영화목록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방 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단홍의 기획팀장이 조금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울리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그 모습들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모두 통화하고 있는 기획팀장 쪽으로 귀를 기울였지만, 통화 내용이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서준과 [흘러가다] 팀은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

통화를 하고 있는 기획팀장의 얼굴이 밝아지다 못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들 숨을 죽이고 기획팀장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숨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적막.

기대감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통화를 끝낸 기획팀장이 [흘러가다] 팀을 둘러보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환희에 찬 목소리였다.

“흘러가다. 폐막식에 참석하랍니다!”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흘러가다’, 민희경 감독, 배우 이서준, 김한석 폐막식 참석!]

[‘한판’, 김주형 감독, 배우 이지석, 김종호 폐막식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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