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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96화 (39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6화

그 모습이 희미해지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는 정가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가람아!”

권윤찬과 어머니가 옮겨지는 침대 옆에 달라붙었다. 권윤찬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인공호흡기가 벗겨지고 드러난 정가람의 얼굴은 너무도 새하얗고 말라 있어, 아픈 것이 확연하게 티가 났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었다.

일반병실로 옮겨진 정가람은 악몽을 꾸는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천천히 화면이 바뀌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검사를 진행했고 여기를 보시면…….”

의사의 진료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와 부부, 그리고 혈색이 도는 정가람이 거기에 있었다. 의사가 무언가를 설명하고 정가람과 부모가 귀를 기울였다. 세 사람 모두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막으로 표시하지 않아도 지금이 과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가람의 외모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비포&애프터(Before&After)를 바로 이어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차이가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정해진 미래를 아는데도, 아니, 알기 때문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불안해졌다.

“……길면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의사의 말과 아래에 나오는 자막에 관객석이 일순 술렁거렸다.

상태가 안 좋다는 건 알았지만, 시한부일 줄이야. 1부 내내 정가람에게 몰입했던 관객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지금으로서는 수술 확률도 높지가 않아…….”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정가람과 부모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어디 아프지도 않았어요……!”

“가끔 고통을 못 느끼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수술이 어려울 때까지 모르는 환자도 많고요.”

정가람이 당황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진, 진짜…… 진짜 아닌데……”

의사는 부정하는 정가람과 부모를 보며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정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부모도 입을 틀어막고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 * *

정가람과 부모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에 정가람과 부모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 멍해 보였다. 1부 동안 정가람을 보며 내적 친분을 쌓아 올렸던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반대쪽 진료실에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가족이 나왔다. 정가람 또래의 소년과 어머니였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가족에게로 달려갔다.

“어떻게 됐어?”

아버지를 본 소년이 울음을 터뜨렸다.

넋이 나간 듯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던 정가람이 울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쟤도…….’

쟤도 나처럼.

동질감에 울컥한 정가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관객들도 또 다른 불행에 눈물을 글썽이려던 그때,

“아니래. 나 아니래……!”

시끄러운 가운데 그렇게 크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가 정가람의 귀에 꽂혔다. 관객들도 멈칫했다.

“나 아니래……! 다른 병이래! 이건 약만 먹으면 낫는대!”

“그것 봐! 아니라고 했잖아!”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흐어어엉……!”

앞으로의 삶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엉엉 우는 소년의 얼굴이 정가람의 눈에 담겼다. 관객들의 눈에 담겼다.

소년과 가족은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세상에 있는 모든 신께 감사를 드리며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과 함께 기뻐하는 소년의 가족들이 정가람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왜지. 왤까.

시끌벅적하던 대기실의 소음은 갑자기 귀가 먹먹해진 듯 들리지 않았고 시야에는 오직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붙잡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왜 나지?

왜 나야?

쟤는 괜찮은데……

왜 나만……왜 나만……?

정가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숨이 천천히 느려졌다가 가빠져왔다. 입술과 턱이 덜덜 떨리고 꾸욱 주먹 쥔 양손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그때 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울음소리인데도 정가람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나. 진짜 죽는구나.’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정가람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나을 수 없는 병에 대한 절망과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리냐는 분노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에 속이 울렁거렸고, 거기에 자신과 달리 살아갈 수 있는 소년에 대한 질투가 손쓸 틈 없이 온몸을 휘감아 버렸다.

분노, 좌절, 질투…….

온갖 어두운 감정들에 정가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의 대사도 없이, 날것 그대로의 표정으로, 눈빛으로, 떨림으로 정가람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정가람의 절망과 소년의 행복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인 양, 결코 섞일 수 없는 빛과 어둠처럼 스크린에 나타나고 있었다.

관객들은 정가람의 새까만 감정에 휩쓸렸다.

지금까지 정가람을 봐왔기 때문에 몰입은 쉬웠다. 정가람이 어떤 아이인지,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웃고 뭘 좋아하는지 아는 관객들은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소년의 기쁨을 솔직히 축하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뭉근한 책망이 생겨났다.

‘왜 저 앞에서 저러는 거야?’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해지는 법.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생기가 밝으면 밝을수록 관객들은 정가람의 얼굴에 비치는 절망과 질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잘 느낄 수 있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 * *

다른 병원에 가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아냐. 아니야. 엄마…… 엄마! 뭐라고 말 좀 해봐.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된다며? 그럼 다 잘 된다며? 아빠. 아빠도 좀…… 이야기라도 해봐! 하고 싶은 거 커서 하라며! 어른 돼서 하라며……! 나 이제 열여덟 살인데…… 겨우 열여덟 살인데…….”

“가…… 가람아…….”

“6개월이면…… 6개월밖에 안 남았으면…….”

정가람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어른은 못 되잖아…….”

그 이후 정가람은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책꽂이에 몇 개 있지 않은 영상 관련 책들을 흘긋 보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엄마의 물음은 조심스러웠다.

정가람의 분노를 기억했다. 지금까지 계속 엄마 아빠 말만 듣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모든 게 다 쓸모없어졌다고 외치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없어.”

“……영상 찍어볼래?”

아빠의 말에 정가람이 울컥했다.

“이제 와서?! 정작 하고 싶을 때는 못 하게 하더니! 할 이유도 없어진 이제 와서?!”

“가람아…….”

괴로워하는 부모님의 얼굴에 정가람은 이 분노와 절망을 어디에 내뱉어야 할지 몰라 답답해졌다.

안쓰럽고 불쌍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도 어차피 죽을 텐데 이렇게 화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엉엉 울고 싶기도 했다.

미안함과 체념과 분노로 온몸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정가람이 아니라 다른 것이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널뛰었다.

주체못할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마음에 정가람은 울었다.

엉엉 울었다.

“여행, 여행 가고 싶어.”

서울을 떠나, 아무도 자신을, 자신의 병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정가람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 * *

따뜻한 햇볕에 의식을 차린 정가람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편안해 보이는 표정에 관객들은 괜스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앞 장면에서 정가람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감정 변화를 겪었는지 보았고 저런 표정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일어났냐?”

“……흐.”

“웃긴 왜 웃어.”

“……너 눈…… 엄청…… 부었네.”

정가람의 말에 권윤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이 퉁퉁 부어 웃기게만 보였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아픈데 보일러도 없고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집에는 왜 있어? 아, 의사쌤 불러올게. 너희 부모님도 곧 오실 거야. 아저씨 마중 나가셨거든.”

“……응.”

힘없는 정가람을 보던 권윤찬이 등을 돌렸다. 입술을 깨무는 권윤찬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의사가 다녀가고 정가람이 고른 숨을 내쉬었다.

권윤찬은 그 숨소리 하나에 안심했다.

“영상 봤어?”

“……어. 많이 아프다며.”

정가람이 흐릿하게 웃었다.

“……6개월…… 아니다. 한 달 지났으니까 5개월인가. 남았대.”

정가람의 담담한 말에 권윤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손이 벌벌 떨리면서 화가 났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담담하냐고 화를 내기에는 정가람의 표정이 너무 슬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담담한 게 아니라 납득한 거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한 거다. 체념한 거다.

그리고 권윤찬은 체념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대?”

“수술이 있긴 한데…… 그것도 확률이 높지는 않대.”

확실한 건, 삶보다 죽음이 가깝다는 것이었다.

권윤찬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에 정가람이 쓰게 웃었다.

“이런 모습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미안해.”

“뭐가?”

“그냥 다…….”

죽고 싶어 했던 자신을 보는, 정말로 죽어가던 정가람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미안하고 안쓰럽고, 후회스러웠다.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다에 뛰어들던 자신을 끌어내고, 정가람에게 죽고 싶었다고 말하는 자신의 입을 막고 싶었다. 초췌해져 가는 정가람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한 대 패주고 싶었다.

정가람이 누워 있는 것이 모두 제 잘못 같아, 숨죽여 우는 권윤찬을 보던 정가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더 미안해. 속여서. 근데 그 모습이 보기가 싫었어. 그래서 말 못 했어.”

“……”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편했어. 너희 집도.”

“……”

“그냥 내 욕심이었어.”

그 욕심을 위해 아픈 걸 숨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아 권윤찬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 * *

다행히도 정가람의 상태는 차츰 나아졌다.

“내일 서울병원으로 이원해도 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스케줄을 잡아보도록 하죠.”

정가람의 부모가 병실 밖으로 나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매일같이 들르는 권윤찬이 침대 옆에 앉았다.

“아, 내 휴대폰 누가 들고 있어?”

“내가 들고 있어.”

권윤찬이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정가람은 휴대폰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영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권윤찬에게 물었다.

“이거 우리 엄마 아빠가 봤어?”

“아니. 볼 정신이 없었지. 근데 그건 왜 거기 대놓고 놔둔 거야? 대놓고 보라는 듯이.”

“으음.”

정가람이 혹시 엄마 아빠가 들을까, 주위를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나 영화감독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지?”

“응.”

“그래서 옛날부터 영상 같은 거 찍고 공모전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못하게 했거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업 가지고 취미로 하라고. 공부도 어릴 때부터 엄청 시켰고. 근데…… 이렇게 돼버렸잖아.”

권윤찬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들었다.

비가 오던 그날과 반대였다.

“그래서 조금…… 아니, 많이 원망한 것 같아.”

정가람이 휴대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걸 보고 엄마 아빠가 조금이라도…… 그러지 말걸.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둘걸…… 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 놔뒀는데…….”

정가람이 히죽 웃었다.

“너 우는 거 보니까 안 되겠더라. 엄마 아빠도 엄청 울 테니까. 얼른 지워야지.”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권윤찬에게 터놓은 정가람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동영상들을 삭제했다.

홀가분한 듯 시원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바라보다 옆에 내려놓은 정가람이 권윤찬에게 말했다.

“아, 근데 병원엔 반숙 안 나옴.”

“여기서도 반숙 타령이냐?!”

키득키득 웃는 정가람에 권윤찬도 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 날.

권윤찬은 여느 때처럼 병원으로 향했다.

정가람과 부모는 오늘 곧바로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정가람이 서울로 여행 오는 건 어떠냐고 했지만, 자기가 가서 뭘 하나 싶었다.

“그래도 한 번은 가야 될 것 같은데…… 돈은 얼마나 필요하려나?”

적당한 아르바이트를 고민하던 권윤찬이 막 정가람이 입원해 있는 병실 층에 발을 디뎠을 때,

“502호요! 502호!”

“바로 선생님 불러!”

큰 목소리와 함께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502호.

정가람이 있는 곳이었다.

불안이 성큼 다가왔다.

“……컨, 컨디션 좋다고 했는데?”

길고 긴 서울행을 선택할 정도로 정가람의 컨디션은 나아졌다고 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떤 권윤찬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갔다.

4인실. 4인실이니 다른 사람일 터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정가람은 아니어야 했다. 정가람만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권윤찬에게 최악만을 가져다줬다.

정가람의 침대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리고 누군가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뛰어들어왔다. 거기서 방해가 되지 않게 조금 떨어진 곳에 정가람의 어머니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흰색은 분명히 밝은색이며 긍정적인 마음을 불러와야 했지만, 그때만큼은 검은색보다도 더 죽음에 가까운 색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권윤찬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내딛는 바닥에 휴대폰이 떨어져 있었다.

정가람의 것이었다.

누군가의 발에 차인 그것은 정가람의 침대에서 입구에 서 있는 권윤찬의 발아래까지 미끄러져 왔다. 부서진 액정의 화면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권윤찬은 천천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켜는 권윤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직 판도라의 상자의 불행은 전부 나오지 않은 듯했다.

정가람이 마지막으로 봤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권윤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조회 수를 위해서? 나날이 심각해지는 너튜브 조작방송!]

거기엔 정가람과 권윤찬이 처음 만났던 때의 모습이 캡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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