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95화 (39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5화

화면이 밝아지고 정가람의 방이 보였다.

의자에 앉은 정가람이 웃으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영상을 올리는 너튜버 가람입니다.”

조금 쑥스러운 듯한 정가람의 표정이 촬영이 낯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화면은 역광도 없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는 지금부터 바다를 보러, 부산까지 여행할 예정입니다.”

정가람은 카메라를 바라보는 게 어색한 듯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열심히 암기한 말을 뱉어내고는 제비를 뽑았다.

“첫 번째 여행지는 수원이고 저는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앞으로 재미있게 봐주세요.”

꾸벅 고개를 숙인 정가람이 휴대폰에 다가가 녹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조금 들뜬 얼굴로 첫 녹화분을 확인했다.

“악, 녹화 안 됐다!”

초보 너튜버다운 실수에 영화를 보던 영화객과 몇몇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모두 한 번쯤 그런 실수를 해봤던 사람들이었다.

* * *

첫 번째 여행지는 수원.

화면은 정가람이 직접 찍은 듯 연출된 화면과 촬영 감독이 찍은 화면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야간 개장을 하면 저 위의 수원화성도 걸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화성행궁, 홍화문, 용연만 볼 예정입니다.”

촬영 감독이 공을 들인 듯, 장소 하나하나마다 멋들어진 장면이 나오고 있어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한국식 건축물에 익숙한 영화객이 그럴진대 외국인들은 더욱 그랬다.

부드러운 정가람의 목소리와 멋진 화면에 저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용연까지 둘러본 정가람은 숙소로 돌아와 얼른 씻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편집. 편집.”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영상이고 편집도 그저 영상을 적당한 곳에서 자르고 붙이는 정도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내일 것까지 합쳐서 올리자.”

정가람이 환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

정가람은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은 낮의 수원화성을 둘러보겠습니다. 화성행궁부터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갈 예정입니다. 화성행궁이랑 화홍문은 어제 가봤는데 낮에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정가람은 화성행궁 앞에서 무예 공연을 보고 예정대로 움직였다. 재잘대는 목소리와 이국적인 풍경에 관객들은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정가람은 다시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노트북 화면을 보는 눈이 바빠졌다.

“좋아. 올리자!”

정가람이 긴장된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정가람의 뒤에 있던 카메라가 점점 클로즈업되더니 이내 스크린이 너튜브 화면으로 바뀌고 정가람이 움직이는 마우스 커버가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였다.

영화객의 눈에 구독자와 조회수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다.

[구독자 2] [조회수 2]

알림이 울리자마자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야간 개장 멋지네! 달도 엄청 크고!

-다음에 같이 가자!

금세 달린 댓글에 정가람이 히히 웃었다.

* * *

두 번째 여행지는 천안.

먼저 가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단풍나무로 가득한 독립기념관에 들른 정가람은 홍대용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있다가 야간 천체 관람을 할 예정이지만 먼저 천체투영관에서 영상으로 먼저 별자리와 별들을 볼 생각입니다. 그다음에 무중력 체험도 하고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 낮에는 태양 관측이 가능하대요. 흑점과 홍염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천체투영관 안으로 들어간 정가람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상영 중엔 촬영이 금지라고 합니다. 그럼 얼른 보고 올게요.”

그렇게 말한 정가람이 화면 밖으로 손을 뻗고 무언가를 누르는 듯하자 카메라를 끄는 것처럼 스크린이 새까맣게 변했다.

잠시 후, 스크린이 다시 밝아졌는데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숙소였다.

‘……응?’

영화객이 눈을 깜빡였다.

‘다 보여줄 수가 없어서…… 편집한 건가?’

그러고 보면 수원에서도 ‘다음은 화서문으로 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해놓고 영상이 끝나 버렸다. 분명히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갈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영화객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편집을 끝낸 정가람이 천안 영상을 올렸다. 첫 영상과 수원 영상의 조회수가 조금 늘어 있었다. 그래 봤자 이제 겨우 두 자리 숫자였다.

“댓글은 안 늘어났네.”

아쉬운 표정을 짓던 정가람은 이내 밝은 얼굴로 다음 여행지를 뽑았다. 대구였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진 계산성당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온 정가람이 공지 하나를 올렸다.

[일출 라이브 방송 예정]

“얼마나 볼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 있을 부모님과 함께 보고 싶었다.

* * *

“안녕하세요. 가람입니다! 이야! 10분이나 들어오셨네요!”

어두운 새벽.

셀카봉을 든 정가람이 들뜬 얼굴로 바닷가로 향했다.

-ㅋ내일 시험이라 밤새다가 왔음.

-일출 보러 왔어요!

-근데 고등학생 아님? 학교 안 감?

올라오는 채팅들이 낯설면서도 신기해 정가람이 웃으며 말했다.

“저 자퇴했습니다. 제가 영화감독이 꿈이라서 한국의 이곳저곳을 찍어보고 싶어서요.”

-어쩐지……초보라고 하기엔 영상 퀄리티가 있더라.

-어디임? 부산?

“네. 아버지 친구분이 부산분이시라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으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정가람이 카메라를 돌려 바닷가를 비추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지만 제법 잘 보였다.

“으. 춥다!”

패딩으로 몸을 싸매고 있지만 막을 수 없는 맨얼굴은 찬 바람에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도 소년, 정가람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엄청 춥겠네.

-바닷바람 추움ㄷㄷ

“언제 뜨려나?”

마음이 들떴다. 바다가 가까워진다고 해가 빨리 뜨는 것은 아니지만 정가람은 괜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정가람의 시선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정가람이 휙 고개를 돌려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 끝에 걸린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헐. 저게 뭐야?

-사람 아님? 사람?

채팅창도 발견한 듯 채팅이 연신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정가람이 급하게 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밀려들어 오는 파도와 반대 방향으로, 바닷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파도에 밀려 휘청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종아리까지 오던 바닷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고 천천히 허리춤까지 향하기 시작했다.

“어…… 어!?”

놀란 정가람은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셀카봉을 내팽개치고 달려 나갔다. 패딩을 벗을 정신도 없었다.

카메라 렌즈가 모래 속에 묻혔다.

-……와. 이게 뭐야?

* * *

그날부터 정가람은 권윤찬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뭐해?”

“너튜브에 올릴 영상 편집하려고.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거든.”

정가람은 라이브 영상은 쓸 수가 없으니 올리지 않고 대구 영상을 편집해 업로드하기로 했다. 그 옆에는 권윤찬이 앉아 국어 교과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날이 서 있던 권윤찬의 표정이 슬슬 풀어져 가는 것이 관객들의 눈에도 보였다. 아웅다웅 지내는 두 소년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잔잔하다 싶을 때, 일이 일어났다.

“……우리 대문 안 닫고 나갔었나?”

“……? 확실히 닫고 나갔을 텐……!”

의아한 듯 대답하던 권윤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는 경악한 얼굴로 들고 있던 우산과 비닐봉지를 내팽개치고 집 쪽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집 상태는 엉망이었고, 정가람의 노트북은 이미 없어진 뒤였다.

“일단 이거부터 정리하자. 무거워.”

비닐봉지를 드는 정가람의 말에도 권윤찬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야.”

“응?”

“……우리 아버지야…….”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원망과 분노, 미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권윤찬의 말에 정가람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 *

짐을 정리한 정가람과 권윤찬은 따뜻한 유자차가 든 컵을 나눠 들고 마루에 앉았다.

“……초등학생 때 이 집에 왔어. 아버지랑 둘이서. 엄마는 돌아가셨고. 이 집은 아버지 쪽 친척분 집이야. 팔아도 돈 안 된다고 빌려주셨어.”

정가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권윤찬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부산에 내려오니까 더 막장으로 살더라.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야.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초등학생이 어떻게 잘 지내겠어. 중학교만 겨우 끝냈지. 친구는 당연히 없었고.”

그런 권윤찬에게 정가람은 오랜만에 생긴 친밀한 사람이었다. 컵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친구의 소중한 노트북을…….

“이웃집에 도둑이 들면 아버지가 범인이었을 때가 종종 있었어. 아버지는 벌써 사라졌는데 나보고 뭐라고 하더라. 돈도 못 버는 애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럴 때면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었어. 그러다가 익숙해지니까 울음도 안 나오더라.”

권윤찬이 감춰두었던 속마음을 꺼냈다.

“……가끔 그런 생각 들 때 있지 않아? 살고 싶지는 않은데 죽기엔 무서운 거. 지구에 운석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고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점점 늘어났어.”

카메라는 웅크린 권윤찬의 모습을 비쳤다.

“바다에 간 것도 그런 이유야. 거기가 물살이 세서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는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거든. 근데…… 나는 안 나더라. 해가 뜨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나오는 거지.”

수건은 그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근데 거기서 너랑 만날 줄은 몰랐어.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고…… 정말 미안해.”

“아냐.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정가람은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열었다 닫는 정가람의 모습이 순간 짧게 잡혔다.

“난 고등어가 좋아.”

“……응?”

“고등어가 좋다고. 엄마가 냄새난다고 잘 안 해주거든.”

정가람의 말에 권윤찬이 눈을 깜빡였다.

미안하면 고등어를 요리해 달라는 뜻인가.

제 나름 권윤찬을 위로하는 정가람의 모습에 관객들이 작게 웃었다.

* * *

……!

으음?

가늘게 눈을 뜬 권윤찬은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희미한 소리라 고양이라도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내일은 고등어를 구울까.’

옆집에 살았던 할아버지 말로는 생선구이는 석쇠로 굽는 게 최고라니, 마당에서 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시 귀를 기울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역시.

고양이였나 보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리에 권윤찬이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내일이 외롭지 않다는 것이라는 걸 권윤찬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일은…….’

내일을 기대하는 권윤찬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 * *

마당에서 구운 고등어를 먹고 체한 정가람의 손을 따는 장면에서 외국인 관객들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 내일 일출 보러 가려고.”

“……그럼 이제 가는 거야?”

“응.”

아쉬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다음 날. 바닷가.

해가 뜨지 않아서 그런지 바람이 쌀쌀해 정가람과 권윤찬은 가져온 이불로 몸을 감쌌다.

“드디어 보네.”

“나 다른 사람이랑 해 뜨는 거 보는 거 처음이야.”

권윤찬이 웃으며 말했다.

“요 며칠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아.”

밝은 권윤찬의 목소리에 정가람도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는지 바다가 천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도.”

정가람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두 소년의 미소에 관객들까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 뜬다!”

권윤찬이 반짝이는 눈으로 둥그런 끝을 드러내고 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저 매일같이 뜨는 해일 텐데도 말을 잊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래서 매년 새해,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가는가 싶었다.

“아. 너 동영상 안 찍어도 돼? 그때 못 찍었잖아.”

하지만 대답 대신

털썩,

하고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감탄하고 있던 권윤찬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던 정가람이 쓰러져 있었다.

……?!

권윤찬과 함께 일출을 감상하고 있던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 갑자기 정가람이 쓰러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새파랗게 질린 권윤찬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야! 정가람?! 왜 그래?!”

권윤찬은 쓰러진 정가람의 어깨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그 움직임에 정가람의 고개가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천천히 해가 떴다.

밝아진 하늘 아래, 새하얗게 질린 정가람의 얼굴과 굳어버린 권윤찬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정가람! 가람아!”

거대한 파도처럼 뒤덮은 불안에 권윤찬의 비명이 바닷가를 울렸다.

소리 없이 술렁이는 관객석이 민희경 감독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열심히 가라앉혔다.

이제 1부가 지나고 2부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다급한 얼굴로 휴대폰으로 119에 연락한 권윤찬은 정가람의 부모님에게도 연락했다. 금방 갈 거니 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윤찬은 초조한 얼굴로 응급실로 향하는 정가람을 바라보았다.

“가람아!”

서울에 계시다던 정가람의 어머니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권윤찬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정가람의 어머니가 도착하자 상황이 정리되고 정가람은 중환자실로 향했다. 인공호흡기를 쓰고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정가람을 보며 권윤찬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네가 윤찬이지? 가람이한테 많이 들었어.”

“가, 가람이가 왜……?”

“……우리 가람이가 많이 아파.”

중환자실 바깥에서 정가람의 어머니는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다. 정가람이 직접 말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연락하러 떠나고 중환자실의 유리벽 건너, 희미한 숨을 내쉬고 있는 정가람을 보던 권윤찬은 자신이 들고 있던 정가람의 휴대폰을 보았다.

편집되지 않은 영상들이 들어 있는 파일이 있었는데, 그건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보였다.

권윤찬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장 아래에 있는 동영상을 눌렀다.

* * *

스크린이 새까맣게 물들었다가 밝아졌다.

수원이었다.

“다음은 화서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카메라를 보며 그렇게 말한 정가람이 걸음을 옮겼다.

스크린에는 마치 정가람이 셀카봉을 들고 직접 찍는 것 같은, 정가람의 상반신까지 나오고 있었다.

정가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점점 그 흔들림이 격해져 갔다. 호흡 소리도 거칠어졌다. 화면에 보이는 정가람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모습에 누군가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정가람도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걸음 가다 그 자리에 멈춰선 정가람이 후우후우 숨을 골랐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속도 울렁거렸다.

“……이건…… 못 넣겠네…….”

어지러운 듯 머리를 감싸는 정가람의 옆모습이 스크린에 비치고, 바로 이어 두 번째 영상이 재생되었다.

천안, 홍대용과학관 천체투영관.

카메라를 끈 정가람은 의자에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천체투영관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천장의 스크린에 수많은 별이 떴다.

정가람과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가을철 별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보통 이야기 속 주인공이 죽으면 신이 별자리로 만든다고 하죠.]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에 몸을 움찔 떤 정가람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왠지 내레이션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잠시 후, 영화객은 아까 찜찜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천체투영관을 나온 정가람이 로비에 쭈그려 앉았다.

“학생,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아뇨…… 괜찮아요……. 갑자기 일어나서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에요.”

직원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은 정가람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감긴 눈이 가볍게 떨리고 무릎 위에 올려둔 손도 덜덜 떨렸다.

“……야간 천체 관람은 못 보겠다…….”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중력 체험도 하고 싶었는데…….”

다른 관객들도 하나둘 알아차렸다.

2시간밖에 되지 않는 영화 시간을 고려해서 여행 영상을 편집한 게 아니었다.

‘……정가람이 너튜브 영상에 올렸던 그대로 편집한 거야.’

관객들을 속이기 위해, 지금처럼 아픈 모습은 싹 지워 버리고 편집한 것이었다.

그 대담한 편집에 영화객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도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집된 영상들이 이어졌다.

버스에 타고 있던 중 급하게 내려 화장실로 뛰어가는 정가람, 지친 기색으로 눈을 감고 있는 정가람,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약을 꺼내 먹는 정가람.

가볍고 따뜻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편집하기 전에 대구에서 가볼 곳이나 알아볼까?”

안색이 돌아온 정가람이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트북 옆에는 왜 이제야 알아차렸는지 모를 새하얀 약통이 있었다.

“으음.”

갈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마우스를 클릭하던 정가람의 손이 멈추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딕 양식의,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한 두 개의 첨탑과 연둣빛 지붕, 벽을 이루고 있는 붉은 벽돌과 활짝 열린 입구 위 꽃 모양 같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계산성당]

“……성당.”

* * *

대구 계산성당.

몇몇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창밖에서 비치는 빛에 성자들의 모습을 담은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가볍게 두 손을 모으게 만드는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풍경을 주로 비추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카메라가 정가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탓인지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성당에 온 것도 의미심장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펴보던 정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았다.

옆에 내려놓은 셀카봉에 고정된 휴대폰 화면에 정가람의 모습이 조금 기울어져 담겼다. 그리고 정가람은 두 손을 모았다.

조금 숙인 고개와 질끈 감긴 눈.

꽉 다문 입술과 조금씩 떨리는 두 손.

웅크리듯 기도하고 있는 정가람의 뒷모습이 스크린에 비쳤고 관객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관객석에서 불안이 물씬 풍겨 나왔다.

영상이 끝나고 권윤찬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진실을 알고 충격받은 권윤찬의 얼굴과 관객들의 얼굴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하얗게 질린 권윤찬의 얼굴이 중환자실의 유리벽 너머 침대에 누워 있는 정가람에게로 향했다.

“……아!!”

권윤찬이 입을 틀어막았다.

영상으로 찍히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아웅다웅 애들끼리 잘 지낸다고, 귀엽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속에 그런 복선이 숨겨져 있었다.

“……체한 것도 아니었어…….”

아파서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도대체 정가람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숨긴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멍청한 건 자신이었다.

외로움이 사라졌다고 혼자만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가람은 계속 살이 빠졌다. 조금만 정가람을 관찰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행복에 취할 것이 아니라 정가람을 살폈어야 했다.

자책하는 권윤찬에게 문득 어떤 밤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하면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색이 된 권윤찬을 비추던 스크린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카메라는 잠결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드는 권윤찬의 모습을 담고 옆으로 옮겨졌다.

정가람의 방이었다.

또 어떤 편집된 장면을 보게 될지 서늘한 불안감이 관객석을 덮쳐왔다.

그리고 관객들은 보이는 장면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으으……!

정가람은 입술을 악물었다.

자는 도중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아득해지는 머리에 정가람은 정신없이 손을 뻗어 휘저었다. 정가람의 몸이 휘청거렸다.

“흐…… 흐윽…… 윽…….”

그 몇 센티가 얼마나 힘든지, 쟁반에 닿지 못해 달달 떨리는 손가락들이 애처롭게 보였다. 생명줄을 잡는 양, 처절하게 뻗은 손가락이 몇 번 스치더니 마침내 쟁반에 닿았다.

정가람은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쟁반에 걸치고 잡아당겼다. 다급한 손길에 물통이 쓰러졌다.

커다란 소리가 났다.

들키지 않으려 입을 앙다물고 소리 죽이는 정가람의 모습에 관객들이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고등어를 구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권윤찬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동안, 정가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차가운 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찰박찰박한 물 위를 두 손으로 휘저으며 정가람은 약통을 찾았다. 와르르 나오는 알약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정가람은 급하게 물통에 남은 물과 함께 새하얀 약을 삼켰다.

약을 먹었으니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어느새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정가람은 눈물로 범벅된 눈을 힘겹게 떴다.

흐릿한 시야 속.

엉망이 된 이부자리와 바닥에 엎질러진 물, 그 물 안에서 녹고 있는 새하얀 알약들, 엎어진 물통과 컵이 보였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자신의 흔적이 방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가람은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진이 빠져 움직일 힘도 없었다.

고통이 사라지니 절망이 정가람을 가득 채웠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소리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흘렀다.

‘내일은…….’

몇 개 남지 않은 약들이 꼭 제 살날 같아,

정가람은 내일이 무서워졌다.

달빛이 내리는 창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정가람의 처연한 모습에 숨이 턱 막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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