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94화
[He’s my son-in-law.]
김종호의 말과 함께 뜨는 자막에 순간 관객석이 소리 없이 들썩였다. 이어지는 이지석의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경악이 관객석에 내려앉았다.
세상에.
그제야 영화 속에서 드문드문 등장한 것들이 하나로 연결된 것 같았다.
박만석을 잡기 위해 그 딸을 인질로 삼은 적대 조직이나 행동대장 박만석을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박만석도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딸의 정보를 넘긴 부하들, 그리고 그걸 모두 눈감아주고 있던, 충성을 바쳤던 보스까지.
‘딸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
이라는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잠깐 등장했지만, 그저 악역 캐릭터 소개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중요한 복선일 줄은 몰랐다.
김영호도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행동들과 말투 사이사이에 보였던 침착함과 차분함. 그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느끼는 긴장감 정도로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아니었다. ‘복수 한판’이 시작되기 전, 원래 김영호의 성격이 그랬을 터였다.
‘아내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왔지.’
초반 부분이라서 그저 스쳐 지나갔지만, 도박을 하는 이유도 아내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저 도박꾼들이 자주 내뱉는, 가족을 위해서 돈을 왕창 따서 돌아가겠다는 식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데드플래그라던가.’
그때 김영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있어, 가족이 있다고 말하고 싸우러 가면 죽는 클리셰 같은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인공이 죽는 영화도 드물지만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진짜 아내를 위해서였네.’
두 사람이 다칠 정도의 복수를 죽은 아내가 바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만족한 눈치고.’
택시 안.
오직 복수 하나만을 위해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내뱉으면서 후련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남자의 표정이 정말 인상 깊었다.
영화 내내 대립각을 세우던 김영호와 박만석이 같은 택시 안,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고 어색해서 더 그랬다.
‘이거 보고 나면 다른 영화 볼 때 생각이 많아지겠네.’
알고 보니 주인공이랑 악역이란 한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스크린이 까맣게 물들자 누구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서준과 김한석도 열심히 두 손을 마주쳤다. 그 주위에 앉았던 [흘러가다] 팀도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준이 형 봤어요? 마지막에 자막 나올 때 관객석 반응 장난 아니었던 거.”
자신의 영화도 아닌데 [한판]의 배우들보다 김한석이 더 흥분하는 듯했다.
물론 서준도 김한석 못지않게 기뻐했다. 그동안 칸 영화제를 돌아다니면서 기립 박수를 많이 들었지만, 오늘만큼 감정적인 박수를 듣는 건 몇 번 되지 않는 것 같아 더 기뻤다.
서준이 뒤로 시선을 돌렸다.
손 바쁘게 박수를 치면서도 옆 사람과 함께 끊임없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관객들이 보였다.
김주형 감독이 던져놓은 복선이 마지막 두 대사로 완전히 합쳐져 다들 바쁘게 숨겨진 복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위라니! 어쩐지 정보 빼내는 게 생각보다 쉽다고 했어. 원래 영화가 조금 그런 게 있잖아./”
일반인인데 저렇게 할 수 있다고?
그냥 손만 빠른 도박꾼인데 저렇게 숨어들어 간다고?
일반인인 주인공이 나오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의아함이었고 웬만한 영화에선 알고서도 무시하는 개연성이었다.
관객들이 박수를 멈추지 않고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근데 내부에 조력자가 있으면 말이 다르지!/”
그것도 누구보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고 부하들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정도의 높은 자리에 있는 조력자라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카메라를 들어 기립 박수를 치는 극장 내부를 촬영하던 한국 기자들도 손은 그대로 카메라를 든 채 연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딸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아내 이야기도 계속 나오긴 했지.”
“세상에. 사위를 그렇게 패냐? 오른쪽 눈은 아예 못 쓴다며.”
“그래서 더 박만석을 증오하겠구나 생각했겠지. 우리도 그랬고!”
그래서 김영호 vs 박만석 구도로 이어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끝부분만 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근데 생각해 보면 첫 장면부터 복수 계획의 시작 아닌가?/”
“/아무래도 자기가 속한 조직 내에 있는 사람들까지 속이려면 그 수밖에 없었겠지. 누가 눈이랑 손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랑 피해자가 한 편이라고 생각하겠어./”
“/마지막 난전에서 일부러 칼을 찌른 건가? 행동대장이니까 앞서서 싸워야 하는데 그럼 당하기 쉬우니까 시작부터 큰 상처를 입혀서 몸 사리게 만드는 거지./”
“/그것도 있고 행동대장이니까 적이 간만 보다가 싸울 것 같지 않아서 약하게 만든 것도 있을 것 같은데?/”
“/큰 그림 장난 아니다……!/”
박수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관객들의 말도 끊이지 않았다.
“아마 두 사람은 목숨까지 내놓았을 겁니다. 김영호는 언제 들켜 적에게 죽을지 몰랐고 박만석도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일이었죠. 계획하긴 했지만,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영화객은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감상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빠르게 말을 녹음했다.
“아마 김영호가 죽었을 때도 다른 계획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담한 계획을 세운 두 사람이 그렇게 허술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생존자들] 팀도 영화 [한판]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데이비스 가렛이 박수를 치며 밀란 첼런에게 말했다.
“/진짜 끝에 10분? 10분도 안 됐지? 거기까지 하나도 눈치 못 챘어./”
“/그 10분이 없어도 괜찮은 영화였는데 그 장면 때문에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러니까 말이야. 그 미묘한 연기도 새롭게 다가오고./”
김종호와 이지석의 연기를 보고 느꼈던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그 간질간질함.
거대한 비밀을 숨기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라. 데이비스 가렛이 흥미로운 눈으로 [한판] 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길 생각을 했지?/”
그 옆에 서 있던 제프리 로덕스 감독도 감동한 듯 눈을 빛냈다.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는 것처럼 머릿속에 펑펑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또 어떤 극악한 영화가 나올지는 제프리 로덕스 감독만이 알 터였다.
“벌써 5분이나 지났어…….”
끊이지 않는 박수 소리가 극장 안을 울렸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이어졌고 그 격한 반응들에 기자들은 온갖 기사 제목을 떠올렸다.
카메라가 [한판]의 감독과 배우들을 비추었다.
자신들의 얼굴이 비치는 스크린을 보며 웃고 있던 이지석과 김종호는 기립 박수의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점점 눈을 크게 떴다. 김주형 감독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려]의 6분을 넘어 7분, 8분을 지나고 나서야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한국 기자가 휴대폰을 체크했다.
“……9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장 ‘한판’! 9분간 기립 박수!]
[영화 ‘한판’ 9분! 경쟁 부문 상영작 중 가장 긴 시간!]
[떠들썩한 환호성! ‘한판’ 어떤 내용일까?!]
-반응 좋은가 보네?
=영화객 후기도 좋음!
-벌써 기립 박수 영상 너튜브에 올라옴! (링크)
=소리가 없는데?
=그거 박수 치면서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그렇대ㅋㅋ 스포일러 방지용ㅋㅋ
=아니, 그렇게 오래?
=ㅇㅇ그거 끝나고도 엄청 이야기했대.
=……근데 너튜브 주인이 프랑스인 아닌가?
=ㅇㅇ프랑스인.
=……헐.
* * *
다음 날.
배우 이서준 주연의 [흘러가다]가 상영하는 날이었다.
뤼미에르 극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속 셀카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고 영화객처럼 라이브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네. 오늘은 이서준 배우의 차기작, 그리고 제가 홍보하는 흘러가다의 상영 날입니다. 전 세계 최초로 본다니까 가슴이 무진장 떨리네요.”
-어제도 전 세계 최초로 한판 봤잖아?
-영화객님. 기사 엄청 좋게 났는데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영화객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요. 처음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다가 중반 부분은 되게 긴장감 있고 끝은 진짜…… 말도 못 해요!”
-말하면 스포일러니까요ㅎㅎ
-ㅋㅋㅋㅋㅋ
-영화객님 호평이면 3번은 봐도 재미있을 듯!
-흘러가다 홍보라니까 한판 홍보하고 있어ㅋㅋㅋ
-수려도 그랬잖아ㅋㅋ
-그래서 수려 엄청 기대 중!
“흘러가다도 기대 중입니다. 일단 영화 소개부터 보자면 다른 영화보다 짧습니다. 고등학생이 한국을 여행하면 너튜브를 찍으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데…… 너튜버로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게 말한 영화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판]도 사람이 꽤 오긴 했지만 [흘러가다]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은 채 종이를 들고 있는, 티켓을 구한다는 사람들도 보였다.
-기자 엄청 많네?
-티켓 구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영화객님! 소매치기 안 당하게 조심하세요!
“네. 조심하겠습니다! 지나가다가 들어보니까 꽤 오래 구하고 있는데도 못 구했다고 하네요.”
-워…….
-이것이 월드클래스!
“레드카펫 주변도 북적북적합니다. 어제 한판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한 생존자들 배우들이 또 올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이서준 배우의 팬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도 보고 갈까요?”
-이것이 초대장을 가진 자의 여유……!
-그것도 제작사에서 직접 받았어!
-알고 보면 이서준 바로 뒷자리 아님?
“그랬으면 좋겠네요!”
레드카펫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영화객이 활짝 웃었다.
-영화에 집중 못 할 듯.
-ㄴㄴ 이서준 영화잖아.
-아! 그러네!
* * *
[흘러가다]의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는 붉은 카펫 앞으로 새까만 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차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기자들과 사람들의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졌다.
문이 열리고 차 밖으로 나온 검은 구두가 레드카펫 위를 밟았다.
몸에 딱 맞는 턱시도를 입은 서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다시 한번 해일처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눈이 부실 텐데도 느긋하게 웃는 서준의 모습이 스타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도 존재감이 뿜뿜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조금 긴장되네.’
다른 사람들의 영화 레드카펫에서는 즐겁게 웃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영화 레드카펫에 오게 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더욱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뒤따라 내린 김한석과 민희경 감독도 다른 때보다 얼어붙은 모습이라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하면서 입을 열었다.
“어제 한판 레드카펫하고는 느낌이 다르네요. 조금 떨리기도 하고.”
“서준이 너도 그래?”
민희경 감독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 영화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슈퍼스타도 긴장한다고 하니까 왠지 안심되네.”
김한석과 두 배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긴장이 조금 풀린 [흘러가다] 팀은 여기저기서 부르는 이름들에 몸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히다가 뤼미에르 극장 계단 위로 자리를 옮겼다.
번쩍번쩍.
다시 한번 사진이 잔뜩 찍히고 나니 레드카펫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 * *
“한판 팀은 올 것 같았지.”
이서준은 물론이고 다른 배우들과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판] 팀의 모습이 한국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도요.”
그 뒤를 이어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나타났다.
“리첼 힐 드레스들만 모아서 기사를 내도…… 음?”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차가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라이언 윌 감독과 스왈린 애넘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잠시 플래시가 멈칫했다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오늘 아침에 칸에 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바로 왔네!/”
서준 리와 라이언 윌 감독, 스왈린 애넘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서준 리가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주는 모습도 그대로 담겨 기사로 올라갔다.
그 후로도 스타들의 등장은 끊이지 않았다.
“왔구나! 생존자들! 어제 한판에 갔으니 여기에도 올 거라고 예상했지!”
“그거 예상 못 한 사람이 있겠냐?”
데이비스 가렛, 밀란 첼런, 바네사 올슨과 제프리 로덕스 감독이 레드카펫을 밟았고.
“/오버 더 레인보우!?/”
“/나 엄청 좋아하는데!/”
티켓은 없어도 레드카펫을 구경하던 일반인들이 까치발을 들었다.
사라 로트 감독과 훌쩍 자란 캐서린 밀러, 폴 오든 그리고 그린윙과 스왈로우 선생의 역을 맡았던 와이엇 카터도 나타났다.
“/와이엇 카터……는 좀 애매하지 않나?/”
“/잠깐 나왔지만, 온갖 원망은 다 들었을걸. 그린윙이랑 쉐도우맨은 재미있는 인연도 있고. 게다가 사라 로트가 그린윙 감독이잖아./”
서준 리와 인연이 있는 그들 말고도 서준 리의 연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감독들과 관계자들, 배우들이 하나둘 레드카펫에 발을 디뎠다.
[흘러가다] 팀이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카메라의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
바쁘게 셔터를 눌러대던 한국 기자가 입을 열었다.
“……개막식 레드카펫 다시 본 것 같지 않아?”
“동감.”
[‘흘러가다’레드카펫, 쉐도우맨-에반 블록, 리첼 힐, 스왈린 애넘, 라이언 윌 감독 참석!]
[생존자들-데이비스 가렛, 밀란 첼런, 바네사 올슨, 제프리 로덕스 감독 참석!]
[한판-김종호, 이지석, 김주형 감독 참석!]
[오버 더 레인보우-캐서린 밀러, 폴 오든, 와이엇 카터, 사라 로트 감독 참석!]
[한국 영화 ‘흘러가다’ 레드카펫에 등장한 해외스타들!]
-워……왜 이렇게 많이 와?
=222근데 이름을 안 들어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 것 같음;;;
-제목 길어져서 밑에 있는 건 아예 안 적어놨엌ㅋㅋ
-진짜 좋겠다. 이서준이랑 이야기도 하고ㅠㅠ
=22영화도 보고ㅠㅠ
=333 나도 보고 싶다.
=444 개봉이 언제래?
=5555 5월 말ㅎ
=ㅋㅋ얼마 안 남았네!
* * *
“서준이 형. 저 심장마비 걸릴 뻔했어요.”
자리에 앉은 김한석이 서준에게 말했다. 그 말에 민희경 감독이나 김호영, 최현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그사이에 끼었던 [한판] 팀도 마찬가지였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깜짝 놀랐어. 그렇게 많이 오실 줄은 몰랐는데…….”
“전 스왈린 애넘 배우가 왔을 때부터 심장이 멈춰 버렸다고요. 그 뒤에 만난 분들은 기억이 나지도 않아요……. 근데 다른 배우분들이랑 감독님들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같이 촬영한 적은 없잖아요.”
아니면 몰래 촬영 중인가?
김한석의 물음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미국에 있을 때 종종 파티에 참석했거든. 그때 알게 됐어.”
미성년자이니만큼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다.
물론 전부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친분이 없는 사람들도 온 것 같았다.
‘다들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는데…….’
개봉할 때는 언제나 그렇듯 조금 떨리고 설렜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서준을 김한석이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파티라니.
어쩐지 서준에게서 후광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 * *
잠시 후.
관객석이 모두 차고 시간이 되자 극장 안이 어두워졌다.
배우들과 감독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주 어렵게 티켓을 구한 일반인들과 영화지망생들도 기대감을 가지고 앞을 보았다.
정말로 서준의 근처에 앉게 된 영화객도, 영화객의 옆자리에서 친구의 영화를 보게 된 찰리도 눈을 빛내며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 손으로 직접 쓴 듯한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이번 가을.]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바다.]
사각사각 펜과 종이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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