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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92화 (39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2화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 조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준과 에반 블록, 리첼 힐도 짝짝 박수를 쳤다.

“예의상 하는 거라고는 알고 있는데 기분 좋네.”

“그러게.”

박중우 감독의 말에 김수한이 동의하며 활짝 웃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기자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쟀다. 칸 영화제의 관행이니만큼 큰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몇 분 동안 기립박수!’만큼 시선을 끄는 기사 제목도 없을 터였다.

“수한이 형. 특수분장은 도화원에서 했어요?”

“응. 어떻게 알았어? 좀비들도 이스케이프에 나오셨던 분들이야. 다들 연기를 진짜 잘해서 제작 계획 잡히자마자 제일 먼저 섭외했지.”

역시.

익숙하다고 했다.

‘좀비들은 잘 못 알아보겠지만.’

한복을 입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서준은 김수한과 작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손뼉을 멈추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계속되자 스크린에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의 얼굴이 비쳤다. 여주인공 ‘수려’의 역을 맡은 배우와 다른 배우들의 얼굴도 보이자 박수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렇게 3분이 지나고, 4분이 지나도 박수 소리는 잦아지지 않았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기립박수에 [수려]의 감독, 배우, 관계사 직원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성공적인 상영회였다.

[박중우 감독 ‘수려’, 6분간 기립박수!]

[박중우 감독, 칸 영화제 성공적 입성!]

[쉐도우맨팀도 기립박수! ‘수려’, 조선시대 좀비는?]

-6분이면 꽤 잘 나온 거 아님?

=ㅇㅇ 보통 기립박수가 관행이라 다 해주긴 하는데 재미없으면 빨리 끝남. 6분이면 반응 좋은 거.

=기대되네ㅎㅎ

-한국 영환데 자막이 따로 있음?

=영어나 프랑스어로 해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Thank you, your highness!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첫 상영작이 호평이라 좋네ㅎ

* * *

소파에 앉은 서준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칸 영화제도 벌써 후반부에 접어들어 [한판]과 [흘러가다]가 상영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오늘 [한판] 팀이 출국했고 그 뒤를 이어 내일 [흘러가다] 팀이 프랑스 칸을 향해 출발한다는 기사가 가득했다.

[‘한판’ 팀, 오늘 오전 10시 출국!]

[‘한판’ 팀, 내일 새벽 프랑스 도착 예정!]

[‘흘러가다’ 팀, 칸영화제 참석 위해 내일 출국 예정!]

[‘흘러가다’ 이서준×김한석! 다시 보는 ‘한 걸음!’]

[3사 방송국, ‘한 걸음’ 재방영!]

[오는 20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한판’ 상영 예정!]

[오는 21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흘러가다’ 상영 예정!]

-그럼 프랑스엔 몇 시에 도착하는 거임?

=오후 5시쯤?

=시차란 참 신기해ㅋㅋ 13시간 넘게 비행기에 있는데ㅋㅋ 도착하니 겨우 7시간 지났음ㅋㅋㅋ

-아역 배우가 둘이나 있어ㅋㅋ

=한 명은 아역 배우라고 하는 게 이상하지만!

-이제 꼭 한 번은 봐야 하는 한 걸음.

=불 날 때면 꼭 한 번씩 인터뷰로 나오는 ‘한 걸음 덕분에’ㅋㅋ

-한판이랑 흘러가다도 평 좋았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에 도착하네.”

“너희 팀?”

나갈 준비를 끝낸 찰리가 묻자 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한판 팀.”

어제 칸에 도착해 서준의 숙소에서 머문 찰리는 오늘부터 서준과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너희 팀은 언제 온대?”

“내일 온대. 근데 그다음부터는 스케줄이 있어서 많이 못 볼 것 같아.”

[흘러가다] 팀이 도착하면 정해진 일정이 틈틈이 있어서 찰리와 함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할 터였다. 아쉬워하는 서준에 찰리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난 이 스케줄이 좋아.”

어제 만났을 때 서준이 보여주는 영화 목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보고 싶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스케줄이 없었다면 하루를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낼 뻔했다. 찰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하루에 한두 개밖에 못 보는데…….”

“그래도 보고 싶은 영화는 다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리첼 : 얼른 내려와!

>리첼 : 에반도 있어!

“둘 다 로비에 있대.”

“그래? 얼른 내려가자.”

서준과 찰리가 모자를 쓰고 방을 나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쉐도우맨3 촬영 때 만난 적이 있긴했지만 두 사람 다 날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그래?”

친구라고는 말했지만 그게 찰리라고는 말하지 않았던 터라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정말 반가워했다. 다음에 찰리의 요리도 먹어보기로 했다.

“근데 계속 네 방에서 지내도 돼?”

“너희 집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불편하고 따로 숙소 잡기에는 벌써 다 찼잖아. 방이 2개나 있으니까 하나 써도 돼. 그리고 여긴 따로 준비된 숙소고 흘러가다 팀 숙소는 따로 있어서 괜찮아.”

“오. 역시 할리우드 스타.”

찰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짝짝 박수를 치자 서준도 씨익 웃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호텔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눈썰미 좋은 서준은 그 안에서 팸플릿을 보며 관광객인 척하는 두 배우를 금세 발견했다.

“오! 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호랑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찰리에 리첼 힐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 속담이야. 한번 쓰고 싶었는데!”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속담이라면 서준이나 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서준의 물음에 에반 블록이 대답하는 사이 리첼 힐은 찰리에게 속담을 설명해 주었다.

“네 졸업 공연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그렇구나.”

아직 연극이라는 것밖에 정해지지 않은,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 서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얼른 가자!”

리첼 힐이 신난 얼굴로 앞장섰다.

오늘 네 사람이 볼 영화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영화로 미국 영화였다.

일반인인 찰리도 있고 그렇게 관심을 끌고 싶지도 않으니 레드카펫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가기로 했다.

뤼미에르 극장에 자리를 잡은 서준이 팸플릿을 꺼내 읽었다. 찰리도 신기한 얼굴로 팸플릿을 바라보았다.

“SF라…… 특이한데?”

“그렇지? 옥수수밭에 떨어진 외계인이라니…… 누가 생각나기도 하고 말이야.”

S자 알파벳을 가슴에 새긴 슈퍼히어로를 떠올리며 서준과 찰리가 키득키득 웃었다. 미국인인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했다.

스크린 가운데 커다란 ‘S’자가 나와 빙글빙글 돌더니 왼쪽 옆으로 향하고 다른 글자들이 순서대로 나타났다.

[Silent 사일런트]

스크린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 * *

그날 저녁.

칸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산 서준은 칸 영화제 사무국에서 마련해 준 숙소로 향했다. 아직 출발도 안 한 [흘러가다] 팀이 아니라 두 시간 전 칸에 도착한 [한판]의 숙소였다.

“종호 삼촌, 지석이 형! 저 왔어요!”

소파에 늘어져 있던 김종호와 이지석이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가 공항과 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붙잡혀 인터뷰하고 사진을 잔뜩 찍힌 것 때문에 피곤한 듯한 얼굴이었다.

“다른 분들은요?”

“다들 벌써 밥 먹고 자러 갔지.”

“이 시간에요?”

아직 8시도 안 됐다.

서준의 물음에 이지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레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니까 내일은 하루종일 놀 거라고 일찍 잔대.”

그 말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아마 [흘러가다] 팀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이건 나중에 드세요. 많이 사 왔는데 숫자가 맞을지는 모르겠어요.”

“종호 형. 우리 건 지금 먹을까?”

“그러지 뭐.”

서준이 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이지석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왔다. 김종호도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각자 취향에 맞는 조각 케이크를 고르고 포크를 들었다.

“이거 맛있네.”

“여기서 제일 맛있는 가게래요.”

“그래? 다들 좋아하겠어.”

두 배우의 칭찬에 헤헤 웃던 서준이 말했다.

“그럼 맛집 가르쳐 드릴까요?”

“맛집?”

“영화 보느라 돌아다니면서 몇 군데 찾았거든요. 꽤 맛있어요.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그럼 우리야 좋지.”

케이크를 조금 옆으로 밀어둔 서준이 팸플릿과 지도를 꺼내 붉은 펜으로 식당을 체크하고 추천 메뉴를 적어넣었다.

뤼미에르 극장만이 아니라 드뷔시 극장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극장들까지, 식사류뿐만이 아니라 간단한 간식류도 있었다.

케이크를 먹으며 붉은 점들이 하나둘 찍히는 지도를 바라보던 이지석과 김종호가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준이 너 일주일 전에 여기 오지 않았어?”

“그러게. 얼마나 돌아다녔길래 지도에 빈틈이 없어. 빈틈이.”

붉은 표시는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칸 영화제가 진행되는 구역 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 있다면 그 근처에 꼭 붉은 점이 하나 이상 찍혀 있었다. 제일 먼 곳에 있는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보고 싶은 영화를 다 보고 다녔더니 이렇게 됐어요.”

서준이 헤헤 웃자 이지석과 김종호가 못 말리겠다는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떤 영화가 마음에 들던?”

김종호의 물음에 서준이 여러 영화를 입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초청된 영화들의 이야기에 김종호와 이지석도 흥미로운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수려도 재미있었어요. 이스케이프 때 연기하셨던 좀비분들이 연기하시고 도화원에서 특수분장을 맡았대요.”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좀비는 확실히 볼만하겠네.”

[이스케이프]의 주연배우, 김종호가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오늘 봤던 영화 중에 사일런트라고 있거든요. 그게 재미있었어요.”

“어떤 영환데?”

“아, 그거 팸플릿에서 본 것 같다. 분명히…… SF라고 봤던 것 같은데?”

“SF?”

이지석의 말에 김종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칸 영화제에 아예 없는 장르는 아니지만 확실히 드문 장르이기는 했다.

“네. SF고 외계인이랑 외계문명이 나오는 영화예요. 안드로이드 같은 거요. 배경은 미국이고요.”

“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

서준이 신나게 [사일런트]의 줄거리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김종호와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즐겁게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로 봐야겠지만 확실히 줄거리는 재밌네.”

“후반부에 반전 있으니까 꼭 보세요. 그건 이야기 안 했어요.”

“그래. 알았다.”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히히 웃다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포크를 내려놓고 음료수를 마시던 이지석과 김종호가 의아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졸업 공연은 SF로 하려고요.”

큽!

뜬금없이 등장한 장르에 이지석이 마시던 음료수를 잘못 삼키고 말았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긴 김종호도 놀라 눈을 끔벅였다.

“……SF?”

격한 반응에 서준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연극이라 영화처럼 이것저것 넣지는 못할 테지만요.”

게다가 학생들의 졸업 연극이니 큰 규모의 연극에 쓸 수 있는 대단한 장치도 쓰지는 못할 거다.

‘음. 미술과 애들을 굴리면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은데.’

미리내 예고 미술과 학생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서준이 하하 웃었다.

“……진짜 SF를 한다고?”

켁켁거리다가 겨우 진정한 이지석에게 서준이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네. 영화처럼 CG를 넣진 못해서 멋진 장면은 힘들겠지만요. SF라고 해도 화려한 것만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찾아보니까 평행세계도 있고 타임머신도 있고. 초능력도 SF에 들어가더라고요.”

아.

그렇다면야.

서준과 SF라면 자동적으로 [쉐도우맨]이 떠올라, 그 정도의 스케일을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지 걱정했는데 착각한 모양이었다.

진정하고 나니 흥미가 무럭무럭 생겨났다.

이지석과 김종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연신 질문을 던졌지만,

“기존에 있는 SF 연극 대본으로 할 거야?”

“아직 모르겠어요. 장르를 오늘 정해서 이제부터 찾아봐야 해요. 일단 한국 돌아가면 다양하게 찾아보려고요.”

“아니면 각색?”

“좋은 소설이 있으면 각색하겠죠?”

“거울처럼 뭔가 반전이 있어?”

“어…… 저도 모르죠?”

오늘 막 SF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서준도 모르는 질문에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으아! 궁금해 죽겠네!”

“그러게. 이건 대본 나올 때까지 모르는 게 좋을 뻔했다.”

진심 어린 이지석과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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