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90화
“이것으로 영화, 흘러가다의 제작보고회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마지막 셔터 찬스라도 되는 양, 사방에서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 어색하게 웃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서준만이 여유롭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제작보고회가 끝나고 [흘러가다]팀은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향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질문에 대답하느라 잔뜩 긴장한 탓인지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매니저들이 얼른 마실 것과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감독과 배우들은 물을 마시고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 했던 화장을 지우는 손길을 받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칸 영화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어로도 괜찮겠죠?”
“전 영어도 못 합니다.”
“저도 잘은 못 해요.”
정가람의 부모 역을 맡은 최현희와 김호영의 말에 김한석과 민희경 감독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지만 걱정되는 건 다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통역사분 붙여줄 테니까 괜찮아요.”
“너무 긴장해서 한국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다들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단홍의 기획팀장이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생방송 반응이 좋아요. 흘러가다, 칸 상영 날짜 잡혀서 알려드리려고요.”
그 말에 서준은 물론이고 민희경 감독과 다른 배우들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21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상영 바로 전날인 20일이 한판 상영 날이랍니다.”
“그럼 칸에는 언제 가나요?”
정가람의 어머니 역을 맡은 최현희가 물었다.
“아마 칸 영화제 중에 출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월 18일쯤에요.”
5월 11일부터 5월 25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되는 칸 영화제이니만큼 영화제 기간에 칸에 도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숙소나 체류 비용이 꽤 들기도 했고 칸 영화제를 꽉 채울 정도로 스케줄이 여유롭지 않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기획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초청작으로 발표가 나자마자 스케줄을 정리해서 칸 영화제 기간은 제법 여유로웠다.
그때, 홀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서준이 손을 들었다.
“저, 팀장님.”
“네. 이 배우.”
“조금 전에 연락이 와서 이야기 못 드렸는데…… 저 개막식 레드카펫에 초청돼서요. 먼저 출국해야 할 것 같아요.”
……개막식 레드카펫?
서준의 말에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중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은 아니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촬영하고 오늘도 이렇게 한 방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서준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였다. 오히려 할리우드 스타들도 자주 참석하는 칸 영화제에 이제야 가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놀란 표정이던 기획팀장이 이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따로 가야겠네요.”
서준이 빠지면 사람들의 관심이 줄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서준이 따로 출국하는 만큼 관심이 나뉘어 출국 날 기자들이 좀 빠질 테니까 말이다. 많은 건 좋지만, 너무 많으면 위험했다.
“서준이 형. 그럼 개막식 때부터 계속 칸에 있을 거예요?”
“응. 초청된 영화들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김한석과 민희경 감독이 눈을 깜빡였다.
다른 때보다 화사한 얼굴. 촬영이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밝은 얼굴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막식 레드카펫 때문이 아니라 영화 보러 일찍 가는 것 같은데?’
벌써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을 쫙 뽑아놨을 것 같은 서준이었다.
‘오. 이게 제일 먼저 하네. 그럼 첫날에는 이거랑…… 이거.’
두 사람의 예상대로, 개막식 레드카펫보다는 상영될 영화에 관심이 쏠린 서준은 공개된 상영 일정을 찾아보며 눈을 빛냈다.
* * *
“아직도 고민 중이야?”
안다호가 웃으며 말하자 서준이 고심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대를 잡은 2팀 직원도 미소를 지었다.
“둘 다 줄거리가 재미있어 보여요. 감독님들 연출도 나쁘지 않고요. 왜 비슷한 시간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칸 영화제는 극장이 여러 군데 있는 만큼 비슷한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공식 부문이 아닌 감독주간 같은 비공식 부문의 영화들은 극장이 조금 떨어져 있기도 했다.
“못 보는 건 개봉한 다음에 봐도 되지 않아?”
“그때까지 궁금해서 못 참을 것 같아서요. 영화마다 개봉 날짜가 달라서 길면 10월에 개봉하는 것도 있거든요.”
그것도 자국에서다.
한국에서 개봉하려면 1년이 넘게 걸리는 영화도 있었고 흥행할 것 같지 않으면 수입하지 않는 영화도 있었다.
“그래서 잘 골라야 해요.”
이 두 영화 말고도 겹치는 건 많았다. 이렇게 고민하는 것마저 서준은 즐거웠다.
영화 하나 보는데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는 듯 진지한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와 2팀 직원이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렇게 서준이 고민하는 사이 차가 멈추었다.
“서준아. 도착했어.”
“아, 네!”
차 문이 닫혀 있는데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먼저 내린 2팀 직원과 안다호가 상황을 살피고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번쩍이는 기자들의 카메라에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배우 이서준, 칸 영화제 첫 공식방문!]
[배우 이서준, 칸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초청!]
[‘흘러가다’ 이서준, 프랑스 칸으로 출국!]
-……처음이었어???
=222 자주 간 줄;;;
=앞으로 자주 가면 되지!
-개막식 생중계해 주려나ㅎㅎ
=개막식이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데…… 그때 한국 시간 새벽 2시 반임.
=……ㅋ
-잘 다녀와!
* * *
“크으. 내가 칸에 오다니!”
나진의 첫 팬, 김수한이 감탄하며 니스공항 내부를 둘러보았다.
칸 영화제 포스터로 뒤덮인 공항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자들과 스타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까지. 영화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잠시 칸 영화제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으려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수한!”
“옙! 감독님!”
조감독 김수한이 얼른 달려갔다.
비경쟁부문의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특별상영 중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받은 [수려] 팀이 프랑스 칸에 입국했다.
들뜬 얼굴의 [수려]의 배우들이 몇 안 되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이 김수한과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미드나잇도 뤼미에르 극장에서 하지?”
“뭐, 그렇지. 전이라면 꽤 관심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경쟁 부문에 두 개나 있어서 영…….”
[수려]의 감독, 박중우가 고개를 젓자 [수려]의 배급사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그 두 작품이랑 함께 묶어서 홍보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 조감독님도 계시고 박 감독님도 계시잖습니까. 알아보니까 [흘러가다]의 다른 배우가 김한석 배우라더군요.”
“김한석이라면…….”
박중우와 김수한이 그 옛날 촬영을 떠올렸다.
“네. 감독님하고 조감독님이 촬영했던 한 걸음의 김한석 배우입니다.”
그것참.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서준이도 개막식 참가한다던데 잘하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영화 보러 올지도 모르고.”
“그러면 좋겠네.”
김수한과 박중우 감독의 대화에 배급사 직원의 얼굴이 기대로 물들었다. 이서준이 와서 ‘재미있었다’ 한마디만 해도 다른 홍보보다 큰 효과가 있을 터였다. 좀 더 김수한과 박중우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끝나나 보네요. 이제 갑시다.”
한국 기자들과 몇 안 되는 외국인 기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배우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들 전에 들어온 해외 스타의 앞에 가득했던 기자들과 팬들을 떠올린 것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배우들도 해외 스타 못지않았을 거다.
“뭐, 한국이 아니니까요.”
한국 배우들과 해외 영화제를 몇 번 다녀본 배급사 직원의 말에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앞서 지나갔던 해외 스타보다 큰 소리에 공항 안에 있던 사람들도, 막 자리를 뜨려던 [수려]팀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준! 이쪽이요!”
“이쪽 좀 봐주세요! 준!”
“오늘 개막식에……!”
여러 가지 소음들 속 간간이 들려오는 이름에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린 김수한이 환하게 웃었다.
“오. 서준이네!”
“우리 바로 뒷 비행기로 왔나 보다.”
박중우 감독도 오랜만에 보는 서준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제 좀 잠잠해진 기자들과 팬에 가려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저게 그 ‘이서준 공항 효과’인가 보다.
느긋한 두 사람과 달리 배급사 직원이 안절부절못했다.
마음 같아선 저 안으로 김수한과 박중우 감독을 밀어 넣고 싶었다. 사진 하나만 찍혀도, 한국인 기자보다 외국인 기자가 더 많으니 해외 홍보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배급사 직원이 김수한과 박중우 감독의 등 뒤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배우들은 감탄밖에 내뱉지 못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외국인들에게 이런 환호를 받다니.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야.”
새삼 이서준이 슈퍼스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배우 이서준! 프랑스 칸 입성!]
* * *
“다음 주에 온다고?”
-응. 보고 싶은 영화가 대부분 후반부에 있더라고. 2주 동안 영화만 보기도 힘들고 말이야.
영화를 좋아하지만 너 정도는 아니라는 찰리의 농담 섞인 말에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다음 주에 보자.”
-그럼 혼자서 보는 거야?
“혼자는 아니야.”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리첼 힐과 검은색 정장에 보타이를 맨 에반 블록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서준도 방긋 미소를 지었다.
“리첼이랑 에반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갑자기 튀어나온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에 놀란 찰리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세계적인 영화제니까, 나보다 배우인 네가 아는 사람이 더 많겠다.
“그건 그럴지도.”
서준과 찰리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럼 재미있게 봐. 다음 주에 보자.
“그래.”
통화가 끝나고 리첼 힐이 눈을 반짝였다.
“친구야? 배우?”
“아뇨. 학생이요. 요리를 배우고 있어요.”
아버지의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게 찰리의 꿈이었다.
“프랑스 요리! 맛있지! 이야기 나온 김에 먹으러 갈까? 가까운 곳에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어.”
“거기까지 갈 시간이 있으려나? 내일 뭘 보기로 했지?”
“이거요. 조금 늦긴 하지만 점심은 먹을 수 있겠어요.”
리첼 힐이 에반 블록과 서준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영화 보다가 빈 시간에 밥 먹을 생각을 하다니.
“하루에 도대체 몇 편을 보려고?”
“오후 10시에 상영하는 것도 있으니까 아침부터 보면 4편 정도?”
서준의 말에 에반 블록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리첼 힐이 두 손을 들었다.
“난 빼줘.”
“알았어.”
“네.”
“……너무 쿨한 거 아니야?”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자 두 사람도 웃고 말았다.
그때, 정장을 입은 안다호가 가볍게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이제 시간 됐습니다.”
그 말에 세 명의 스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칸 영화제의 여덟 명의 심사위원이 레드카펫 위를 지나가자 환호성과 함께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한국에서는 방송으로 내보내지는 못했지만 너튜브 라이브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개막작의 배우들과 감독이 레드카펫 위를 걷고 초청받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가수들, 모델들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다음의 새까만 의전차량이 레드카펫 끝에 섰다. 먼저 출발한 배우가 가는 걸 조금 기다린 후 문이 열렸다.
“에반!!”
“에반 블록!!”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에반 블록이었다.
걸음을 옮길 줄 알았던 에반 블록이 조금 옆으로 벗어나 잠시 기다리자 옆으로 새로운 차가 나타났다. 문이 열리고 새하얀 머메이드 풍의 드레스를 입은 리첼 힐의 모습이 보였다.
“리첼!!”
“리첼 힐!! 이쪽 좀 봐주세요!”
에반 블록이 내민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리첼 힐도 조금 비켜났을 뿐,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빙그레 웃는 두 배우를 향해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 하나가 속삭였다.
“다 같이 오나 본데?”
“그럼 다음은 이서준이라는 소리잖아!”
턱시도를 입은 한국 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검은색 차가 레드카펫 앞에 서자 문이 열리기도 전에 플래시가 먼저 터졌다.
문이 열리고 ‘하이브’에서 만든 정장에 나비 모양의 보타이를 맨 서준이 내렸다. 검은 머리칼을 뒤로 넘겨 매끄러운 이마를 드러낸 서준의 외모는 다른 때보다 더 반짝이는 것 같아,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서준의 주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아우라는 서준의 들뜬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와보고 싶은 곳이 아닌가.
‘첫 생도 그랬을 거고.’
지금의 서준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 번 제안이 왔지만 올 거라면 작품과 함께 오고 싶었고, 지금 여기에 왔다.
서준이 들뜬 얼굴로 화사하게 웃었다.
“이서준 배우!! 이쪽 좀!”
“준! 준!”
서준 리, 리첼 힐, 에반 블록이 개막식이 열릴 뤼미에르 극장 계단 위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반짝반짝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화려한 별들의 축제, 칸 영화제 개막!]
[배우 이서준, 리첼 힐, 에반 블록과 함께 등장!]
[배우 이서준, 칸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올라!]
* * *
[칸 영화제, 사흘 동안 상영된 영화들의 평점은?]
[칸 영화제, 오늘 미드나잇 스크리닝 ‘수려’ 상영!]
[‘한 걸음’ 박중우 감독의 ‘수려’ 상영 예정!]
-오. 김주경만 있으면 딱 한 걸음 정모 아님?
=ㅋㅋ 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만나냐?
-근데 서준이는 칸일 텐데…… 왜 목격담이 하나도 안 뜸?
=22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개막식 말고는 영상도 안 뜨고.
=333 서준이 정도로 유명하면 외국인도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영화객 님 너튜브에 서준이 떴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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