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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88화 (38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88화

“잠깐 편집본을 봤는데 제 생각에는 꽤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도 몇 번 출품해 봐서 칸 영화제 취향을 조금 알거든요. 심사위원 투표라 심사위원들 취향에 따라 갈리기도 하는데…… 저희는 좀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획팀장의 말에 서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프랑스 칸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며 배우로서 꼭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영화제가 아닌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미 개봉한 영화들의 수상을 위한 짧은 파티라고 한다면, 칸 영화제는 출품된 영화들 중 멋진 작품을 꼽아 상영하고 시상하는 긴 축제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감독이나 배우는 물론이고 인지도 없는 좋은 작품을 자국으로 수입하려는 영화 배급사 같은 영화계 관계자들까지 모이는 곳이라 규모도 컸다.

비교적 친 할리우드적인 영화제라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석하거나 할리우드 영화들을 상영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가 본 적 없지만.’

간다면 꼭 작품과 함께 가고 싶었다.

서준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꼭 됐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서준과 기획팀장이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민희경 감독이 아까부터 조용했다.

가장 들떠 있어야 할 감독이 아닌가 싶어, 서준이 의아한 눈으로 민희경 감독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민희경 감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감독님! 숨 쉬세요! 숨!”

“헉! 민 감독님!”

서준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숨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민희경 감독이 급하게 후우후우 숨을 들이마셨다. 산소가 들어오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화제라고 해서 한국 영화제인 줄 알았지!’

6년 만에 새 작품을 찍었더니, 칸 영화제라니!

무명끼리 함께 오손도손 영화를 찍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무명 배우가 이서준이었다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첫 작품이 망하고 이제 겨우 두 번째 작품인 민희경 감독이 울상을 지으며 손을 달달 떨었다.

“편집! 편집을 다시 해야겠어요!”

“출품 날이 4월 1일까지라서 지금 하셔도 크게 못 고칠 겁니다만…….”

3일밖에 안 남았다.

“……어째서 이제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힘이 쭉 빠진 민희경 감독의 말에 기획팀장이 볼을 긁적였다.

“그거야 이렇게 긴장하실 것 같아서 말이죠. 처음 이름 있는 영화제에 출품하시는 감독님들은 다 이러시거든요. 시간이 많아도 계속 수정할 곳만 보이실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는 완성했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는데, 칸 영화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수정해야 할 부분이 수십 개는 떠오르지 않던가.

근데 그게 또 확실히 수정해야 하는 부분인가 하면…… 아니었다.

‘……통째로 갈아엎어야 하나?’

그렇다기엔 서준과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아까웠다. 모자란 건 자신의 대본과 연출 실력인 것 같았다.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민희경 감독의 모습을 잠시 살피던 기획팀장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출품이야 다른 영화들도 하는 겁니다. 작년에는 한국에서만 12개 정도 출품했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게다가 아직 초청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요. 그냥 출품했다, 정도로만 기사를 내도 홍보가 되니까 홍보용으로 생각하십시오.”

기획팀장의 말에 민희경 감독의 안색이 돌아왔다. 민망한 듯 얼굴이 조금 붉어지기도 했다.

“그렇네요. 제가 너무 앞서 생각했나 봐요.”

벌써 후보가 된 것처럼 착각했다.

‘하긴 이제 겨우 두 번째 작품인데…….’

민희경 감독이 진정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조금 손봐도 될까요?”

“마감일이 4월 1일이라서…….”

“진짜 조금이요.”

“음. 그럼 마감일만 맞춰주십시오.”

기획팀장의 말에 민희경 감독의 얼굴이 활짝 폈다. 당장 출발하려는 민희경 감독을 기획팀장이 말렸다.

“내부 시사회는 보고 가셔야죠. 사람들 반응을 보고 편집에 참고하시면 더 좋을 겁니다.”

“아, 그렇네요.”

“그리고 제목도 빨리 정해주셔야 합니다. 아니면 가제 그대로 출품될 겁니다.”

가제, 여행이 그대로 출품된다고 하면 더는 수정할 수도 없었다. 기획팀장의 말에 민희경 감독이 생각에 잠겼다.

고민에 잠긴 민희경 감독을 보던 서준이 눈을 깜빡이다 기획팀장에게 속삭였다.

“팀장님. 아까는 꽤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몰랐는데…… 민 감독님이 부담을 많이 느끼는 타입인가 봅니다. 우리가 했던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하신 것 같아서 말이죠. 결과가 확실하게 나올 때까지는 그저 홍보의 하나로 생각하시게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내부시사회장 안으로 김한석과 김하운 등 배우들과 스태프들, 영화제작사 단홍의 직원들, 투자사 플러스+의 직원들 등 관계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김한석과 김하운이 놀라 되물었다.

“칸이요?”

“칸? 프랑스 칸?”

“응.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영화제.”

서준의 확인사살에 김한석과 김하운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으음. 출품은 자격만 맞으면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야. 그중에서 심사위원들 눈에 들어서 초청되는 게 어려운 거지.”

서준의 말에 김하운이 진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제법 가능성은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출품하는 거 아니야?”

“맞아. 단홍에서 출품한 작품들 중에 초청작이 몇 개 있어서 칸 영화제의 취향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하시더라. 꽤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싶대.”

“우와! 정말요? 저 엄청 유명해지는 거 아니에요?”

서준 다음으로 많은 분량이 나오는 김한석이 눈을 빛냈다. 김하운도 제법 기대하는 눈치였다.

“꽤 좋은 성적이라면 어느 정도일까?”

“최소 비경쟁 부문이 아닐까 싶은데…….”

“주목할 만한 시선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건 상 주지?”

“응.”

상이라는 이야기에 김한석과 김하운이 실실 웃었다. 서준도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일단 영화부터 보자. 편집본은 아직 못 봤잖아.”

대본이 좋고 연기가 좋다고 해도 사람들이 보는 건 편집된 영화였다. 배우도 손댈 수 없는 감독의 영역이었다.

서준의 말에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던 김한석과 김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가제, 여행의 내부 시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 *

두 시간 후.

스크린이 새까맣게 물들고 밝아지는 시사회장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훌쩍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기획팀장과 함께 맨 뒷자리에 있던 민희경 감독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촬영을 함께하고, 대본을 읽어본 적이 있고, 돈을 투자한 사람들의 평가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보다 날카롭고 매서울 터였다.

조금 긴장하면서 바라보던 민희경 감독이 입을 열었다.

“……반응이 ……좋네요?”

“감독님 작품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이상하다는 듯 말씀하십니까.”

기획팀장이 웃으며 말하자 민희경 감독이 볼을 긁적였다.

“편집을 계속하다 보니까 익숙해져 버려서…….”

칸 영화제 출품 건 때문에 줄어든 자신감도 원인 중 하나일 터였다.

기획팀장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계속 반복해서 돌려본다면 재미도 없어지고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질 터였다.

“가끔은 기분 전환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정을 하러…….”

“조금 쉬었다가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사회 분위기도 좋고, 주연 배우도 지금의 편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고요.”

기획팀장의 말에 민희경 감독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서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떠오르는 곳이었다.

내부 시사회가 모두 끝나자 민희경 감독은 기분 전환 겸, 서준을 처음 만났던 곳으로 나왔다.

한강.

감독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연기를 사랑하는 무명 배우에게서 용기를 얻었던 곳.

겨우 6개월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민희경 감독은 그때 그 벤치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햇살에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저 끝에 바다가 있을 터였다.

넓은 강을 옆에 두고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러 온 연인들, 운동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목적지에 따라 민희경 감독의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른쪽이지?”

“아니. 왼쪽!”

“왼쪽이래!”

민희경 감독의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그 대열에 합류해 왼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강처럼 보였다.

작은 강들이 큰 강으로 흘러들어 가고 큰 강은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민희경 감독의 눈이 순간 빛났다.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팀장님. 제목 정했습니다.

<흘러가다.

<제목. 흘러가다로 하겠습니다.

* * *

[‘여행’에서 ‘흘러가다’로! 이서준 배우의 차기작!]

[배우 이서준 차기작, ‘흘러가다’ 칸 영화제 출품!]

[오스카 다음은 칸? 아역(?) 배우 이서준의 수상 이력을 알아보자!]

[올해 칸 영화제 한국 출품작, 10 작품!]

[이지석×김종호 ‘한판’! 칸 영화제 출품!]

-제목 바꼈네ㅎ

=왠지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다.

=22 잘 모르면 이서준 작품인 줄 알겠음.

=메모) 흘러가다 (별표 10,000개)

-칸? 칸 영화제에 간다고?!

=ㄴㄴ 출품임. 출품은 자격만 맞으면 되는데 거기서 심사위원이 뽑아서 후보에 올림.

=5월에 후보 발표한대요.

=아. 글쿤.

-……기대해도 되나?

=22 이서준이잖아!

=33 그 오스카에서도 상 받았는데 칸이면 한국 작품도 제법 상 받는 추세고.

=근데 감독이 처음 보는 이름.

-헐. 이지석하고 김종호 영화도?

=이러다 셋이서 칸에서 만나는 거 아니냐?

=그러게. 내가 다 기대된다ㅋㅋㅋㅋ

* * *

4월이 순식간에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코코아엔터 주차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준이 차에 오르고 안다호도 운전석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졸업 공연 정했어?”

“아뇨. 이번에도 2학기까지 가야 되나 싶어요.”

그 말에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이러다 또 어디서 책 하나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대학 실기는?”

“그것도 고민 중이에요.”

“천천히 해.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네.”

안전벨트를 맨 서준이 의자에 등을 기대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서준이 휴대폰을 꺼내자 안다호가 물었다.

“누구?”

“지석이 형이요. 여보세요?”

반가운 얼굴로 전화를 받는 서준에 안다호가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너희 쪽은 결과 나왔나 싶어서.

“저희는 아직이요. 같이 알려주지 않을까요?”

올해는 후보작을 발표하기 전, 제작사나 배급사들에는 미리 알려준다고 했다. 그래 봤자 몇 분 차이는 안 나지만 말이다.

-음. 그런가? 아, 서준아. 다음 주 특별 강의 내가 가는데 애들이 뭘 가르쳐 주면 좋아할까?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주는 최대만 감독님 차롄데…… 2학년이나 1학년 아니에요?”

-어? 잠시만. 어디 적어놓았을 텐데. 성오야!

서준과 이지석이 통화하는데 안다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영화 제작사 단홍의 기획팀장이었다. 아주 잠시 고민한 안다호가 가까운 곳에 차를 댔다. 예상하기로는 운전하면서 들을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

“네. 팀장님.”

예상대로 휴대폰 건너가 시끌벅적했다. 기획팀장이 무어라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아.”

“네?”

“후보작 연락 왔대. 근데 저쪽이 너무 시끄러워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휴대폰을 든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휴대폰 저쪽, 단홍에서 들려오는 비명 같은 환호성에 귀를 기울였다.

‘환호성이라기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들이었다.

“그래요?”

-어? 성오야. 후보작 결정 났다고?

이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막힌 차 안이라 이런저런 목소리들이 섞여 버렸다. 휴대폰에 귀를 기울이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흘러가다, 경쟁 부문 진출이래.”

“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상을 받을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시선’ 정도를 기대했는데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도 있는 경쟁 부문이라니!

“정말 경쟁 부문이래요?”

-경쟁이라고? 우리가?

‘응?’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서준이 휴대폰 건너에서 들리는 이지석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석이 형. 한판도 후보작이래요?”

-응. 흘러가다도?

“네. 경쟁 부문이래…… 네?”

-우린 경쟁 부문이…… 응?

“……네?”

-……응?

잠시 침묵이 오갔다.

상황을 파악하던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휴대폰 건너 이지석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다호가 놀란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벌써 발표를 한 모양인지 기사가 떠 있었다.

[배우 이서준 차기작, ‘흘러가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이지석×김종호 ‘한판’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순식간에 한국이 떠들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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