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87화 (38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87화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3월.

새로운 학년이 되어 새로운 교실로 향하던 서준은 창문에 비치는 제 얼굴을 바라보았다.

“으음.”

겨울 방학 동안 겨울잠 자기 전 먹어대는 곰처럼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얻어먹었던 서준이었다. 자꾸만 나타나는 음식들에 [슬라임의 소화 능력]까지 꺼내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촬영 때문에 빠졌던 살들이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엄마 아빠도 다호 형도 이젠 걱정 안 하는 것 같고.”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 아참. 오늘 안 바쁘지?

>엄마 : 저녁에 은수네랑 수빈이네랑 다 같이 외식할 거야.

<응. 알았어!

서준이 고3이 된 것처럼 수빈이는 초3이 됐고, 은수는 초등학생 1학년이 되었다.

오늘이 은수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못 가는 건 아쉽네.”

엄마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니 은찬이 삼촌에게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서은찬 : 어제저녁부터 이러고 있다ㅋ

>서은찬 : (책가방을 메고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는 은수 사진)

>서은찬 : (새 신발 신고 안 벗는 은수 사진)

>서은찬 : (심각한 표정으로 옷을 고르고 있는 은수 사진)

<삼촌.

<어째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서은찬 : 우리 딸이 제일 귀여워!

서준이 웃고 말았다.

이 사람을 누가 잘나가는 소속사 사장이라고 생각할까.

<사진 많이 찍어와.

>서은찬 : 그래.

>서은찬 : 그래도 매실초에 배정받아서 다행이지.

<ㅇㅇ 수빈이도 있으니까.

3학년과 1학년인 만큼 수업시간도 달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키득키득 웃던 서준이 새로 배정받은 교실 앞에서 섰다.

[3학년 1반]

묘한 기분이 드는 팻말이었다.

“벌써 3학년이네.”

시간 참 빠르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에는 먼저 온 아이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책상 위에 늘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아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상태가 왜 이래?”

“고3이잖아.”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것 같은 양주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

그 한마디에 납득하는 서준의 모습에 책상에 늘어져 있던 아이들이 흐흐흐 소리를 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다.

“작년까지는 먼일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완전 초조해!”

“대학이라니! 수시라니! 수능이라니!”

“으아아아!”

괴로워하는 애들도 있는 반면 낙천적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인 한지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1년만 지나면 성인이잖아. 난 벌써 할 것 다 정해놨어.”

“뭐 할 건데?”

서준은 일단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었다.

원래는 올해 생일이 지나면 바로 딸 생각이었는데 아직 학생이라 내년에 따기로 했다.

“일단 로또를 살 거야.”

“그것참.”

건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절망과 혼돈이 가득한, 전형적인 고3 교실이었다.

* * *

잠시 후.

아침 조회가 시작되었다.

서준의 고3 담임선생님은 정시운이었다.

정시운이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는 고3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지금부터 확실하게 올해 노선을 정해야 해. 목표한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면 작품 활동과 병행해도 되지만 성적이 모자라서 위험하다면 1년 동안은 작품 활동을 쉬는 것도 고려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을 생각해 보라는 선생님들의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날도 없었던 터라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물론, 예대가 목표인 애들은 실기가 중점인 거 잊으면 안 된다. 예대는 수시를 정시보다 많이 뽑고, 수시는 실기 100퍼센트인 곳도 있으니까.”

한지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쌤! 꼭 대학 가야 해요?”

“왜 그 소리가 안 나오나 했다.”

정시운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시운도 웃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다른 직업은 몰라도 배우는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도 대학에 가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난 후에 선택할 일이야.”

정시운의 진심 어린 말을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서준도 정시운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의 인생은 길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 앞으로 너희들이 어떻게 지낼지 모르는 일이잖아. 특히 우리나라는 어디 학교 출신인지 신경 많이 쓰니까 말이야. 정말 많이 생각해 보고 부모님하고 이야기해 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지.”

“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대학은 나이에 상관없이 갈 수 있으니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정시운의 농담에 아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가고 싶은 대학 한둘 정도는 생각해 놨지? 실기 날이나 수능 날에 제 실력을 발휘 못 할 수도 있으니까 다른 학교에 갈 건지, 재수를 할 건지 차선책도 생각해 두고. 부모님이랑 이야기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가고 싶은 대학의 교수님들이랑 커리큘럼도 잘 살펴보고 궁금한 거나 자료 필요하면 나한테 오고.”

몇몇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정시운의 말에 새삼 고3이 된 게 실감이 됐다.

“수시 일정표는 여기 앞에 붙여놓을 테니까 지원하는 거 까먹지 마라? 시간도 확실하게 보고 우편인지 인터넷 신청인지도 확인하고. 잘못 알고 지원 못 하는 애들이 꼭 한 명씩 나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는 정시운의 모습에 서준은 괜스레 자신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애들도 있을 테니까 수능 끝날 때까지는 서로서로 양보하면서 지내보자.”

“네!”

“그리고 졸업 공연은 12월 말에 있으니까 공연할 사람들은 교무실로 와서 신청서 내고. 졸업 공연에서 선생님들 평가가 좋으면 겨울 방학 동안 은하수 센터에서 공연할 수 있는 거 기억하고 있지?”

“네에!”

서준과 아이들이 눈을 빛내자 정시운이 웃고 말았다.

막막한 대학 이야기보다 공연 이야기가 더 좋은 모양인 건 어째 작년 고3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작년에도 음악과에서 한 팀 나왔으니까 올해는 연기과에서도 한 팀 내보내 보자. 두 팀이면 더 좋고.”

빙그레 웃은 정시운이 교실을 나가고 아이들이 긴장이 풀린 듯 축 늘어졌다.

“워…… 진짜 고3 된 것 같아.”

“그러게.”

“근데 대학 꼭 가야 하나?”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이들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그때 서준이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모습이 김주경의 눈에 들어왔다.

[졸업 공연 신청서]

김주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서준아. 졸업 공연하려고?”

“응.”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여울 예중 졸업공연 때 함께 출연했던 전성민과 박시영도, 다른 중학교 출신인 김하운과 정보람도 흥미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대본은 정했어?”

“그건 아직.”

서준의 말에 연극 [거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는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또 각색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그러고 보니 서준이가 졸업 공연 하면…… 오시나?”

양주희의 말에 여울 예중 출신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게. 오시려나?”

“오셨으면 좋겠다!”

“온다고? 누가?”

박시영과 한지호의 말에 다른 중학교 출신인 김하운과 정보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재한이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우리 학교 졸업 공연을 외부인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특별 강의를 해야 하거든.”

그거야 알고 있다.

“여울 예중도 똑같았는데 서준이가 졸업 공연 한다고 특별 강의 하러 오신 강사분들이 있으셨는데 그분들이 또 오셨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누구?”

“김종호 선배님, 이지석 선배님, 박도훈 선배님, 이다진 선배님, 우정한 감독님, 최대만 감독님, 최민성 감독님, 소은진 작가님!”

……? ……!

김주경이 늘어놓는 이름들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김하운과 정보람이 식겁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준과 여울 예중 출신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도 그때 그런 마음이었어.”

“나도.”

“이번에도 오시려나?”

“물어볼까?”

그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준에게로 향했다. 반짝이는 눈들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

“응. 영화 촬영 끝나서 다들 쉬고 계실걸.”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저 올해 졸업 공연 할 건데 오실 수 있어요?

단톡창을 바라보던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읽음 표시는 사라졌는데 아무도 답이 없었다.

‘으음. 반응이 영 시원치 않은데?’

어쩐지 조금 민망해진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하긴 두 번이나 강의까지 하면서 졸업 공연을 오는 건 무리인가.

“왜 그래?”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할 때, 박도훈에게 메시지가 왔다. 같이 있었나 보다.

>박도훈 : ㅋㅋㅋㅋㅋ

>박도훈 : 종호 삼촌이랑 지석이 형이 지금 미리내 예고에 전화한다고 바빠서 나보고 갈 거라고 전해달래ㅋㅋㅋ

>박도훈 : 나도 꼭 보러 갈게.

>이다진 : 나도!

>이다진 : 촬영 중이라 지금 봤어!

“아…….”

도훈이 형의 메시지에 저절로 메시지를 보자마자 스케줄을 확인하며 미리내 예고 교무실로 전화하는 지석이형과 종호 삼촌의 모습이 떠올라,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까는 몰랐는데 답장이 없으니까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던 것 같았다.

휴대폰을 보고 웃는 서준의 모습에 아이들은 연신 궁금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특히 그런 탑배우들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다른 학교 출신 아이들은 정말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다들 오신대.”

“오오!”

기뻐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까지 즐거워졌다.

“중학교 때는 너무 갑작스럽게 오셔서 질문도 제대로 못 했는데!”

“나도! 그동안 궁금했던 거 다 물어봐야지!”

“그거 좋다! 우리 질문지 만들까?”

“연기도!”

“할리우드 오디션도!”

한지호의 외침에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가 이내 폭탄이 터진 듯 시끄러워졌다.

“오오! 그래! 그것도 물어보자!”

“왜 그걸 잊고 있었지!?”

날뛰는 친구들의 반응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할리우드는 나한테 물어봐도 되잖아?”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넌 할리우드에서 데뷔했잖아.”

“한국에서부터 활동한 배우의 상황이랑은 조금 다르달까?”

“오디션도 안 보고.”

묘하게 맞는 말 같아 서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도 [생존자들]도 오디션을 본 적은 없었다.

‘쉐도우맨은 엑스트라 오디션이라서…… 조금 날림이긴 했지.’

오디션이 곧 촬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사이에도 서준의 휴대폰에 졸업 공연을 보러 가겠다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하나둘 도착했다. 그 이름들에 1반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시끄러운 1반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온 2반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2반까지 들썩였다.

* * *

[‘새싹부터’, 배우 이서준 생일맞이 기부 행렬!]

[배우 이서준, “생일 축하 감사드립니다!”]

[고3이 된 이서준 배우! 목표 대학은?]

[작년 예대 수시, 정시에 대해 알아보자!]

[배우 이서준 응원봉 판매 시작!]

-서준아! 생일 축하해!!

-이서준이 벌써 고3이라니! 내년이면 성인이라니!

=22 아직도 귀염뽀짝한 성녕대군이 기억나는데.

-이서준은 대학 어디 가려나?

=이서준 정도면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음.

-예대는 거의 수시로만 뽑는구나.

=정시도 수능 비중은 별로 없음. 실기 위주.

=그래도 요새는 4등급 정도는 되어야 하더라.

-응원봉! 응원봉!

=드디어 나왔구나! 응원봉 이야기 나왔을 때부터 모아둔 돈. 다 써버려야지!

=근데 생각보다 가격이 싸지 않아??

=그러게. 몇 개만 사려고 했는데 몇 개 더 사도 될 듯.

=(주섬주섬)

-사이트 안 터져서 좋다ㅎ

=준비 단단히 한 듯.

=미국 새싹인데 여기도 편안ㅎㅎ

-내의원 스노우볼 디자인 바뀌었네! 이게 더 좋다!

=22 눈은 겨울이 생각나서 슬펐는데, 꽃잎으로 바꾸니까…… 더 슬퍼!

=ㅋㅋㅋㅋ

=333 꽃잎(?)볼로 바꾸니까 배경이 봄 같아서 되게 슬프면서도 좋네. 여기 성녕대군은 봄까지 잘 살아있는 것 같아서ㅠㅠ

=오늘 내의원 정주행해야겠다ㅠㅠ

-오버 더 레인보우도 좋다. 기념 티켓 완전 반짝반짝함.

=다른 것들도 디자인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서 너무 좋음ㅠㅠ

-응원봉 빨리 배송 왔으면 좋겠다!

=222 서준이 영화 볼 때 가지고 가고 싶다!

=333 그래서 언제 개봉하니? 단홍아?

* * *

3월 말.

[가제 : 여행]의 내부시사회장.

내부시사회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 고개를 휘휘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던 기획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서준과 민희경 감독을 발견했다.

“두 분 다 여기 계셨네요!”

“아, 팀장님.”

“안녕하세요. 팀장님.”

인사를 나눈 기획팀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식 하나 전해드리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오늘 내부 시사회를 진행해 봐야 확정되겠지만. 이번 작품. 5월에 열릴 영화제에 출품할 것 같습니다.”

기획팀장의 말에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서준이 오! 하고 감탄했다.

이렇게 찾아서 알려줄 정도의 규모가 있는 영화제에, 5월에 열리는 거라면 생각나는 건 하나뿐이었다.

단번에 알아챈 서준과 달리 민희경 감독은 아직 감도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5월에 열리는 영화제가 뭐가 있었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희경 감독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평소보다 두 배는 반짝반짝한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일까?

‘아카데미 상까지 받은 배우가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의 영화제라고?’

순간.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동시에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 영화제요! 감독님!”

그 말에 민희경 감독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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