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86화
영화 제작사, 단홍.
점심을 먹고 기획팀 사무실로 돌아가는 이윤주와 동료의 눈에 홍보팀이 들어왔다.
“예. 아직 촬영 중이라…….”
“인터뷰 건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습니다만…….”
사방에서 전화가 울리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메일로 들어온 인터뷰 제안서에 답장을 해주는 손이 바빴다.
영화 흥행의 시작과 끝이 홍보일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곳이라 그런지 점심도 간단히 때우고 일하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그 앞을 지나친 이윤주와 동료가 기획팀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작품을 기획해야 하는 만큼 초반에는 바빴지만, 지금은 제법 조용했다. 여러 단체와의 협조가 필요했던 로케이션 촬영이 끝난 후라 더 그랬다.
“그래도 이번엔 서준이가 주인공이라서 흥행 부담은 없는 것 같지?”
“그렇지 뭐.”
동료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서준이라는 이름만 들어가도 조회 수가 잘 나오니까 오히려 기자들이 먼저 메일 보낸다고 하더라. 좋은 소스 없냐고.”
“그거 썼어? 민 감독님하고 서준이가 한강에서 만난 거.”
“좀 더 있다가 쓴대.”
“그럼 부산 촬영장에서 김종호 배우랑 이지석 배우랑 만난 건?”
“그건 한판팀이랑 시기 맞춰서 공개한다던데?”
이윤주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그럼 지금 뭐로 홍보하고 있는 거야?”
“출연자나 감독에 관한 정보 같은 기본적인 거? 그래서 더 저렇게 시끄러운 거잖아. 알려진 게 없으니까.”
이윤주와 동료는 이야기를 나누며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시간 돼? 내가 밥 사기로 했잖아.”
“상금 받았어?”
“응. 바로 주더라.”
눈을 반짝이는 동료의 모습에 배우 이서준 응원봉 공모전 1등, 이윤주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계약에 관해서는 모레 설명해 준대. 코코아엔터에서. 그래서 반차 내고 가려고.”
“반차?”
동료가 눈을 끔벅이다가 씨익 웃었다.
“그거 외근이라고 하고 가면 안 돼?”
“외근?”
동료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응원봉도 아니고 우리 영화 주인공인 이서준 배우 응원봉이잖아. 그것도 무려 1등! 딱 봐도 홍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응원봉 공모전 1등이 영화사 직원! 그것도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의 제작사 소속!”
이윤주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게 통할까?”
“일단 해봐. 한강이랑 부산 에피소드보다 약하면서도 흥미를 끄는 이야기잖아.”
이윤주가 떨떠름한 얼굴로 기획팀장에게로 향했다. 동료와 이야기를 들은 근처 직원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팀장님.”
“어?”
고개를 드는 기획팀장에 이윤주가 뻘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덕질을 회사일과 관련해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의아한 얼굴로 이윤주의 이야기를 듣던 기획팀장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서준 배우 응원봉?”
“네.”
“1등?”
“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윤주의 모습에 잠시 생각하던 기획팀장이 전화기로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슬쩍 보니 홍보팀에 연락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인터뷰부터 하자.”
통했다.
* * *
이틀 후.
오늘은 이서준 배우의 응원봉 디자인의 사용과 계약에 대한 설명이 있는 날이었다.
외근 나온 이윤주가 코코아엔터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소속사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오늘 서준이 촬영 있던데…….”
제작사 직원이라 본의 아니게 서준의 스케줄에 대해 알게 돼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윤주는 코코아엔터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직원 하나가 이윤주에게 다가왔다. 사진과 이름을 확인하고 안내하려던 찰나, 직원은 이윤주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윤주의 시선 끝에는 로비 벽을 가득 채운 코코아엔터 소속 연예인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올해 9월에 데뷔하자마자 1위를 차지하고 대세 신인이 된 보이그룹 ‘블루문’의 사진부터 팬이 아니라도 콘서트 한 번쯤은 가 봐야 한다는 가수 ‘브라운블랙’의 사진까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배우 이서준의 작품별 사진이 붙어 있었다.
크기가 커서 그런가, 시선을 사로잡는 듯했다.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이윤주의 옆에서 직원이 잠시 기다려주었다.
“저기…… 이거 사진 찍어도 되나요?”
“네. 괜찮습니다.”
직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윤주는 눈을 빛내며 [생존자들]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은 이윤주가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회의실 같은 곳으로 가나 싶었는데, 마주한 팻말에 이윤주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연습실]
[이서준]
이윤주는 눈을 데굴 굴려 직원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면서도 반짝이는 눈동자에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서준 배우가 직접 오고 싶어 했는데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오지 못했습니다.”
음.
말은 못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윤주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와서 단홍의 직원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연습실이라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헉. 들어가도 돼요?”
‘밖에서만 보는 게 아니었어?’
놀라는 이윤주의 모습에 직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진 찍는 건 안되지만요.”
그렇게 말한 직원이 카드를 꺼내며 도어락 앞으로 걸어갔다. 코코아엔터 내에서도 몇 명밖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문이 열렸다.
잔뜩 기대하는 이윤주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카메라였다.
십여 개는 되어 보이는 새까만 카메라였다.
그에 이윤주는 저도 모르게 몸을 멈칫했다.
‘……무슨 카메라가 이렇게 많아?’
가끔 영화 촬영장을 다녀 촬영용 카메라가 낯설지 않은 이윤주였지만 연습실에 있는 카메라들은 더 무섭게 다가왔다.
“천장에도 있어…….”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배우의 집념이 보여, 이윤주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니 또 다른 것이 느껴졌다.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들의 렌즈가 연습실 중앙을 삥 둘러싸고 있었는데, 마치 그곳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켜진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누가 서 있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서준 배우가 마지막으로 찍었던 그대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연습하는 서준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연습을 하고 저기서 대본을 보고.
‘헉. 대본도 있어!’
테이블에 놓인 대본과 볼펜은 바로 직전까지 쓴 것처럼 보였다. 작은 냉장고와 간식들도 눈에 들어왔는데 서준이 좋아하는 간식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벅찬 얼굴로 연습실을 둘러보던 이윤주에게 직원이 말했다.
“지금 영상 찍을 수 있는데 찍어드릴까요? 편집해서 회의 마치면 바로 보내드릴 수 있거든요.”
“억. 제가요? 저기서요?”
이윤주가 화들짝 놀라 두 발짝 뒷걸음질 치며 손가락으로 연습실 중앙을 가리켰다.
“네. 아까 몇 분 찍고 가셨습니다. 안 찍은 분도 계시지만요.”
직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이윤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안 되니 이런 영상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정면 카메라는 이 카메라입니다. 동영상이니까 마음껏 움직여 주세요.”
직원의 말대로 이윤주가 어색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찍은 영상이 서준이 항상 보는 모니터에 나타나자(서준이도 이렇게 영상을 확인한다고 했다) 이윤주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두 번은 못하겠다.’
* * *
코코아엔터 투어가 끝나고 이윤주는 회의실로 향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데 회의실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부터 중년의 직장인까지 나잇대가 다양해서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이서준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만큼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내의원 스노우볼을 학생이 만들었다고요? 내의원 방송한 게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아니에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구요. 6살 때에요.”
중학생의 말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본방도 봤다고 하던데 지금은 몇몇 장면만 기억나요. 그래서 재방을 봤어요. 언니는 어떤 디자인이에요?”
“나? 난 윌리엄.”
“와! 그거 엄청 귀엽던데!”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서준의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디자인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의 관심이 곧 이윤주에게로 쏠렸다.
“진짜 어떻게 모형을 바꿀 생각을 다 했어요? 그 덕분에 다른 작품들도 굿즈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하긴 쉐도우맨 시리즈를 빼면 공식 굿즈라는 게 거의 없었죠.”
사람들의 말에 이윤주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다들 연습실 보셨어요? 배우 연습실은 처음 보는데 원래 그렇게 카메라 많이 두고 연습하나요?”
“아닐걸요. 보통 한두 개 정도 놓고 찍던데…….”
“와. 전 없던 카메라 울렁증이 생길 것 같던데요.”
“전 하나의 실수도 놓치지 않겠다는 서준이의 집념이 보여서 오싹하더라고요.”
“저도요! 근데 그게 멋지지 않아요?”
중학생의 말에 다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찍으셨어요?”
“두 번은 못하겠더라고요.”
이윤주의 한숨 같은 말에 다들 동의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들 말을 멈추고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남자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의 매니저 안다호라고 합니다.”
안다호라면 서준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일했다던 매니저였다.
‘오늘 촬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팬들의 모습에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이서준 배우가 꼭 제가 가서 이야기해 줬으면 하더라고요. 촬영장에는 다른 직원이 갔으니 괜찮습니다.”
일부러 안다호를 보냈다는 서준의 마음에 팬들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서준 배우가 사인한 포스터들도 있으니까 회의가 끝나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팬들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안다호가 응원봉 디자인 사용과 계약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본형 [새싹] 응원봉과 교체형 [작품별] 모형으로 제작될 예정이며, [새싹] 응원봉은 코코아엔터가, [작품별] 모형은 저작권사와 코코아엔터가 함께 의논할 예정이었다.
“구매하는 사람이 팬분들인 만큼 그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할 계획은 아닙니다.”
이윤주와 다른 팬들도 그저 서준이 좋아서 응원봉을 디자인을 한 것이지 돈을 벌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가격대로 책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다호는 설명을 끝내고 계약서를 나누어줬다.
“가져가셔서 확인한 후에 코코아엔터로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시면 전화나 메일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슬쩍 읽어보니 안다호가 했던 설명이랑 다르지 않은 것 같아, 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포스터들과 작은 선물이 든 종이가방을 품에 든 팬들이 만족한 얼굴로 코코아엔터를 떠나고 안다호는 촬영장에 가 있을 2팀 직원에게 연락했다.
-네. 팀장님.
“촬영은요?”
-마침 쉬는 시간입니다. 잠시만요. 서준이 바꿔드릴게요. 서준아!
-서준이 형…….
휴대폰 건너편에서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요즘 익숙해진 김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싹분들 가셨어요?
“응. 다들 선물 좋아하더라.”
그말에 서준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쁜 듯 웃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근데 한석이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서준이 또 한 번 웃었다. 이번에는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 듯 키득거렸다.
-좀 있으면 기말고사잖아요. 부산 촬영이 더 길었으면 좋았을 거라면서 억울해하고 있어요. 서울 오니까 딱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공부 잘하는 서준이 형은 내 마음을 이해 못 해요…….
희미하게 들리는 김한석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가 빵 터지고 말았다.
* * *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맞이 일출 보러 동해로 인파 몰려!]
[코코아엔터 ‘블루문’ 신인상 싹쓸이 수상!]
[아이돌 명가! 코코아엔터의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벌써 새해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들으며 시작했다!
=222 곡이 너무 귀여워.
-코코아엔터 아이돌 잘 만드는 듯.
=22 나오는 그룹마다 잘 되는 듯. 블루문도 노래 좋더라.
-블루문에 이서준이랑 동갑도 있다며?
=ㅇㅇ 게다가 같은 학교라더라. 미리내 예고.
=이서준이랑 친구인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아이돌 되고 싶은데 코코아엔터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방법 좀 알려주세요!
[배우 이서준 차기작, ‘여행(가제)’ 크랭크업!]
[배우 이서준 응원봉 공모전 1등의 정체는?!]
[영화 제작사 단홍과 배우 이서준의 인연!]
-오. 벌써 크랭크업! 올해 안에 개봉하려나!
=크랭크업이 뭐에요?
=촬영 끝났다는 말임. 근데 편집은 아직 안 했음.
-이걸로 증명됐다! 새싹은 어디에나 있었어!
=22지금 타고 있는 버스에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 1등분은 서준이 맨날 보는 건가?! 부럽다!
=기획팀이라서 오디션 때밖에 못 봤대.
=아…… 그렇구나…… (장래희망 : 영화 제작사 직원(X))
=ㅋㅋㅋㅋ
-이서준 연습실 구경 후기 올라옴 (링크)
=영상은 못 올려서 그림으로 그렸어ㅋㅋ
=근데 잘그려ㅋㅋ 곰돌이ㅋㅋ
=깨알 같은 [허락받음!]
-헐. 뭔 카메라를 앞뒤 양옆 위아래까지 찍냐?
=22 분할화면이 12개래ㅎㄷㄷ
=333 보다가 눈알 빠지겠다.
=444 저렇게 사방으로 날 보고 싶지는 않은데;;;
-이래서 연기를 잘하는 건가…….
=근데 서준이는 연습실 없을 때도 잘했음.
-왠지 이서준 연습실 따라 하는 학원이 많아질 것 같다.
=22 카메라 엄청 팔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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