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85화
“고등어 사 왔습니다!”
막내 스태프가 사 온 고등어는 손질까지 끝내서 굽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의아한 몇몇 스태프들의 눈빛에 막내 스태프가 웃으며 말했다.
“점심으로 먹을 것까지 사오라고 하셔서요.”
“그래? 요즘 고등어가 제철이라던데…… 맛있겠네.”
석쇠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제철 고등어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던 스태프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촬영인데 너무 잘 먹는 거 아니야?”
“그러게. 나 요즘 살찐 것 같아.”
“저도요. 수원부터 맛집만 돌아다녀서 그런가 봐요.”
서울에서 병원 신을 찍을 때 조금 고생한 걸 빼면 현지인 추천의 맛집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출연하는 배우가 이서준이라서 제작비도 넉넉하고 NG도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촬영도 예상보다 빨리 끝나 여유가 생기기 일쑤였다.
“우리는 이렇게 살찌는데 서준이는 계속 살이 빠지네.”
“자기관리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게다가 저 정도로 식단 관리하면서 연기하려면 짜증 날 텐데도 성격은 여전히 좋고요.”
다이어트를 한다며 며칠 풀만 먹었던 적이 있는 몇몇 스태프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의 사람들도 한두 끼 굶어본 적이 있는 터라 수긍했다.
“배고프면 엄청 예민해지잖아.”
“거기다 울면서 몸부림치는 연기도 에너지 엄청 쓰고.”
“촬영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생각해 보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매번 건강 체크하는 매니저도 대단하고.”
스태프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오늘도 매니저가 붙어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어지럽지는 않고?”
“괜찮아요.”
“손발이 저리다든가?”
서준이 손을 잼잼 쥐며 웃어 보였다.
그에 피식 웃은 안다호가 이것저것 묻자 서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에게 직접 의뢰해 받아온 질문지에 있는 동그라미를 가득 채워 넣었다.
오늘도 건강.
마르기는 했지만, 혈색은 괜찮았다.
이런 데서 새삼 서준이 건강 체질이라는 것을 깊게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던 안다호가 이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 살 빼는 것도 끝나가네.”
더이상 살을 빼도 옷을 입을 때는 티가 거의 안 날 테니, 병원에서의 장면부터는 분장으로 커버할 예정이었다.
“다호 형. 다이어트는 유지가 더 힘들대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 * *
“레디, 액션!”
마당 가득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났다.
반으로 잘린 고등어 두 덩어리가 석쇠에 눌려 불에 구워지고 있었다.
정가람과 권윤찬은 빈 철통 안에 불쏘시개를 넣고 불을 피웠다.
권윤찬이 고등어를 굽고 정가람은 화재 방지를 위해 물이 든 바가지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이게 훈제야? 좀 더 가까이 대야지.”
“뜨거워!”
석쇠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고등어를 굽는 권윤찬의 어설픈 솜씨에 정가람이 키득키득 웃었다.
“혹시나 덜 익었을까 봐 바짝 익혔어.”
그렇게 굽힌 고등어가 접시 위로 올라왔다. 석쇠에 고등어 살이 달라붙어 너덜너덜해졌지만 뒤집으니 그럴싸했다. 정가람이 젓가락으로 고등어의 살을 조금 살폈다.
“겉은 좀 탔는데 속은 잘 익었네.”
“그래?”
혹시나 덜 익었을까 봐 석쇠를 들고 불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권윤찬이 반색했다.
“덜 익었으면 다시 구우려고 했는데!”
권윤찬은 석쇠를 내려놓고 얼른 마루로 달려왔다. 까맣게 탄 껍질을 벗겨내고 새하얀 살을 먹은 권윤찬이 감탄했다.
“오. 맛있어. 너도 먹어봐.”
“그래.”
정가람이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활짝 펴진 정가람의 얼굴에 권윤찬도 환하게 웃었다. 아침부터 고등어를 사러 간 보람이 있었다.
“맛있네!”
정가람의 감탄에 권윤찬은 마음을 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가람과 권윤찬의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어제 사건 이후 더 친해진 것 같아 권윤찬은 기분이 좋았다.
접시 위의 고등어가 반쯤 줄어들었을 무렵, 정가람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
메슥거리는 속에 젓가락을 든 손이 떨렸다. 금방이라도 게워낼 듯, 울렁대는 속에 정가람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정가람의 행동에 권윤찬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우욱. 욱……!
닫히지 않은 문 사이로 게워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어찌할 줄을 모르던 권윤찬이 입을 열었다.
“등, 등 두드려줘?”
“……아냐, 괜찮아…… 들어오지 마.”
속을 게워내는 소리가 제법 길게 들려와 권윤찬은 초조해졌다.
잠시 후.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권윤찬이 허둥지둥 컵에 물을 따랐다. 그 짧은 사이 초췌해진 정가람이 얼굴을 드러냈다.
“괜찮아?”
권윤찬이 물을 건네자 정가람은 천천히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체했나 봐.”
전혀 당황하지 않는 정가람에 권윤찬도 진정했다.
“먹은 것도 별로 없지 않아? 병원 갈까?”
당장에라도 병원에 갈 것 같은 권윤찬의 모습에 정가람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쉬면 나아져. 내가 좀 잘 체하거든.”
그 말 그대로 익숙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새하얗게 질린 정가람의 얼굴에 잠시 생각하던 권윤찬은 어디 구석에서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왔다.
“……너 뭐 하려고?”
어쩐지 그걸 보는 정가람의 얼굴은 더 질린 것처럼 보였다. 권윤찬이 씨익 웃으며 날카로운 바늘을 들어 보였다. 햇빛에 바늘 끝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손 따려고. 급체에는 손 따는 게 직방이야.”
“……할 수 있어?”
민간요법인 건 둘째 치고 바늘을 든 사람이 권윤찬인 게 불안했다.
“내 손도 내가 따는데 뭘.”
권윤찬은 익숙하게 끓는 물에 바늘을 소독하고 정가람의 옆에 앉았다.
“옛날에 복지센터에서 온 분한테 배웠어. 소화제 없을 때는 이게 최고야. 옛날에는 볼펜 같은 걸로 눌렀는데 바늘로 찌르는 게 더 좋더라. 바늘은 소독하고 써야 된대.”
옆에 앉아 등을 두드리는 권윤찬에 정가람이 입을 다물었다.
겨우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는 권윤찬에게 옛날은 얼마나 어릴 것이며 그 어린아이가 소화제도 없이 홀로 아파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권윤찬은 정가람의 오른팔을 쓸어내리고 실로 정가람의 엄지손가락을 묶었다. 피가 고인 엄지손톱 옆을 바늘로 찌르니 피가 나왔다.
“엄청 체했었나 보다. 안 나으면 병원 가 보자.”
“……그래.”
정가람은 둥그렇게 고인 피에 괜히 입안이 씁쓸해졌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았다.
“……나 내일 일출 보러 가려고.”
바늘과 실을 정리하던 권윤찬이 몸을 움찔 떨었다. 정가람이 여기에 머물겠다고 한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가는 거야?”
언제고 집으로 돌아갈 줄은 알았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다.
아니, 생각해 보면 여행치고는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동네에서 너무 머무른 것 같기도 했다.
“응.”
아쉬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컷, 오케이!”
“조금 쉬었다 가겠습니다!”
조감독의 말에 다들 하나둘 장비를 내려놓았다.
서준은 휴지로 가짜 피를 닦아내며 모니터링했다.
클로즈업된 화면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정가람의 미묘한 표정도, 숨길 것이 하나도 없는 권윤찬의 솔직한 표정도 잘 드러나 있었다.
“잘 나왔네요.”
“그치?”
민희경 감독도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그때, 김한석이 서준을 불렀다.
“서준이 형! 촬영 감독님이 고등어 구워주신대요!”
“뭐?”
서준과 민희경 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김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권윤찬’이 불을 피웠던 철통 근처에 김한석과 촬영 감독, 스태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마 예비용이었을 장작이 철통에 가득 들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다 요령이 있지.”
촬영 감독의 손에는 아마 예비용이었을 석쇠가 들려 있었는데 석쇠 사이에는 점심으로 먹을 예정이었을 고등어가 끼워져 있었다.
“딱 여기서 뒤집어줘야!”
오오!
어째서인지 능숙한 촬영 감독의 솜씨에 감탄하는 김한석과 스태프들.
서준과 민희경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레디, 액션!”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까만 새벽부터 정가람과 권윤찬이 움직였다. 추운 새벽바람을 견디기 위해 얇은 이불과 바닥에 깔 것도 챙기고 일출을 기다리면서 몸을 녹일 따뜻한 유자차도 챙겼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권윤찬의 시선이 자꾸만 정가람에게로 향했다. 어제 체한 게 그대로 남아 있는 모양인지 아직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가람이 마음에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소화제 좀 사야겠다.’
그때쯤이면 약국도 열었을 것 같았다.
“갈까?”
“그래.”
정가람과 권윤찬은 도둑이 들지 않게 남아 있는 귀중품을 숨기고 챙길 건 챙긴 다음 녹슨 대문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 언제 돌아갈 거야?”
“내일 가려고.”
“……빠르네.”
터덜터덜.
바닷가로 향하는 두 소년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 * *
정가람과 권윤찬이 도착한 바닷가는 처음 왔을 때처럼 사람이 없었다. 두 소년은 모래 위에 돗자리 용으로 가져온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짐을 올려놓았다.
해가 뜨지 않아서 그런지 바람이 쌀쌀했다.
정가람과 권윤찬은 가져온 이불로 몸을 감쌌다. 정가람은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유자차를 종이컵에 따라 권윤찬에게 건네고 자신도 하나 들었다.
“드디어 보네.”
원래는 더 일찍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이것도 좋았다.
엊그제의 고통이 마치 꿈같았다. 그날 이후로는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한없이 나빠졌다가 뭐든 감사한 마음이 들고, 다시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것처럼 절망스러웠다.
“나 다른 사람이랑 해 뜨는 거 보는 거 처음이야.”
권윤찬이 웃으며 말했다.
“요 며칠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아.”
밝은 권윤찬의 목소리에 정가람도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는지 바다가 천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천천히 마음이 벅차올랐다.
생각보다 힘든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아마도 마지막에 권윤찬의 집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나도.”
정가람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해 뜬다!”
권윤찬이 반짝이는 눈으로 둥그런 끝을 드러내고 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저 매일같이 뜨는 해일 텐데도 말을 잊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래서 매년 새해,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가는가 싶었다.
“아. 너 동영상 안 찍어도 돼? 그때 못 찍었잖아.”
대답 대신
털썩,
하고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감탄하고 있던 권윤찬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던 정가람이 쓰러져 있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권윤찬은 얼어버렸다.
왜 정가람이 쓰러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대로 굳어버려 옴짝달싹도 못 했다. 숨까지 멈춰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파랗게 질린 권윤찬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야! 정가람?! 왜 그래?!”
권윤찬은 쓰러진 정가람의 어깨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별로 힘을 주지도 못했는데 정가람이 그 약한 힘을 따라 끌려왔다. 그 움직임에 정가람의 고개가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헉!
그 모습에 권윤찬은 화들짝 놀라 손을 떼버렸다. 쓰러진 정가람을 바라보는 권윤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천천히 해가 떴다.
밝아진 하늘 아래, 새하얗게 질린 정가람의 얼굴과 굳어버린 권윤찬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정가람! 가람아!”
거대한 파도처럼 뒤덮은 불안에 권윤찬의 비명이 바닷가를 울렸다.
* * *
“……컷, 오케이!”
민희경 감독의 말과 함께 쓰러져 있던 서준이 눈을 떴다. 아픔에 흐릿한 눈빛은 벌써 사라져 있었다.
“서준이 형. 연기 너무 잘하는 거 아니에요?”
멀쩡히 일어나 모래를 툭툭 터는 서준과 달리 아직 권윤찬의 감정이 남아 있던 김한석이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좋은 연기를 위해 최대한 몰입했던 영향이었다.
“형이 아팠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잘하는 거예요?”
따뜻한 몸이 아니라면 서준이 정말 쓰러진 줄 알았을 것이다.
김한석의 말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내의원 때는 더 잘했어.”
희미한 죽음의 냄새를 풍겨 분위기를 만들고 몸의 온도를 낮추고 연기했던 그 장면.
성녕대군의 죽음.
‘너무 잘해서 종호 삼촌이 기겁하게 만들었지.’
아마 김종호가 떠날 때까지 걱정한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서준도 그 이후에는 그 정도로 연기하지 않았다.
어른인 김종호가 그렇게 오래 기억할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나.
이번 [가제 : 여행]도 상대방이 동생인 김한석이니만큼 더욱더 조심해서 조절하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잘 나오면서, 상대역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연기하기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더 재미있었다.
“하긴, 마지막에 아픈 연기도 대단했죠.”
“하하하.”
서준의 말에 마지막 회쯤에 서준이 연기했던 약초꾼 아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한석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뭐, 그건 이제 없으니까.’
배우들 사이의 대화가 끝난 걸 알아챈 스태프들이 하나둘 서준과 김한석에게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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