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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82화 (38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82화

“난 정가람이라고 해. 열여덟 살이야.”

“권윤찬. 동갑인데…….”

권윤찬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학교는 안 다녀.”

2학기가 개학한 지금.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이 시간에 학교에 갈 터였다.

어차피 정가람이 떠날 때까지는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숨길 수도 없었다.

“나도 안 다녀.”

정가람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권윤찬은 의아한 눈으로 정가람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다르게 멀끔한 옷차림이라 학교를 안 다닐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체험학습서 같은 걸 내고 여행을 다니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권윤찬은 아주 약간,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여기서 지내.”

권윤찬은 옆방 문을 열고 들어가 소주병과 담뱃갑을 치웠다. 정가람이 캐리어를 들고 들어왔다. 전기장판이 깔린 낡은 이불과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두꺼운 텔레비전이 있었다.

“추우면 전기장판 켜고.”

“응.”

널브러진 옷가지를 든 권윤찬이 말했다.

옷을 보면 권윤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방 같았다.

‘다른 신발도 없고 물건들도 별로 없어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이 방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 없이 차가웠다.

“점심은 같이 먹자!”

캐리어를 바닥에 눕히고 짐을 꺼내려는 정가람이 말했다. 밖으로 나가려던 권윤찬의 몸이 움찔 떨렸다.

“식비는 낼게. 네가 먹으려던 거에 밥이랑 숟가락만 놔줘.”

“……”

점심은 굶을 생각이었던 권윤찬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한 권윤찬에 정가람은 아차 싶었다. 혼자 사는 애가 그렇게 잘 챙겨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반찬 뭐 있어?”

“……김치밖에 없는데.”

냉장고에는 복지센터에서 준 김치뿐이었다.

“그럼 장 보는 김에 나가서 먹을까? 내가 살게.”

정가람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권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꺼내 한쪽에 놓아둔 정가람이 노트북을 꺼내려던 찰나, 권윤찬이 말렸다.

“귀중품은 캐리어 안에 넣어둬.”

“……알았어.”

눈을 데굴 굴린 정가람이 노트북을 다시 캐리어에 넣었다.

캐리어의 지퍼를 닫은 정가람이 신발을 신으려고 할 때 권윤찬이 정가람의 캐리어를 방에서 꺼내 어디론가 향했다.

정가람이 표정이 묘해졌다.

“어, 뭐해?”

“가끔 아…… 도둑놈이 와. 이런 거 그냥 두면 훔쳐가거든.”

……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정가람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 * *

“쌀은 있어?”

“아니.”

산 아래 국밥집.

정가람의 질문에 뜨끈한 국밥을 퍼먹고 있던 권윤찬이 고개를 저었다. 그에 정가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 메모장에 써 내려갔다.

“계란은? 다른 반찬은?”

“……김치는 있어.”

“그건 아까 들었어. 그럼 계란도 사자. 나 계란 좋아하거든. 내 식비니까 내가 낼게. 그리고 햄도 사고. 양파도 사고. 고기도 사고.”

정가람이 신나게 목록을 써 내려갔다. 그 많은 걸 집까지 어떻게 옮길지는 하나도 생각 안 하는 것 같았다.

“왠지 자취하는 것 같다. 나 친구랑 자취하고 싶었거든. 밤새 게임하고 맛있는 거 먹고. 여기 배달되나?”

“……친구?”

권윤찬의 되물음에 정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갑이라며? 동생도 아니고 형도 아니니까 친구지.”

그건 권윤찬에겐 생소한 일이었다.

부모의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는 구석구석에서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또래 아이들은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낮잡아보거나 멀리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3년 내내. 권윤찬은 홀로 지냈다.

“아. 화장실 청소도 해야 돼.”

이런 ‘대화’ 같은 대화도 낯설었다.

정가람의 말에 권윤찬이 조금 늦게 대꾸했다.

“……청소 가끔 하는데.”

“한다고? 곰팡이 못 봤냐!? 난 원래 바닥이 그런 색인 줄 알았어!”

기겁하는 정가람의 모습에 권윤찬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적당히 물 뿌리면 청소지, 뭐.

“냄비도 하나 사자. 프라이팬도.”

“집에 있는데.”

“아까 보니까 코팅이 다 벗겨졌던데? 그러면 계란 다 달라붙어. 아. 나 계란 반숙으로 해줘.”

권윤찬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정가람을 바라보았다. 뽀얀 국물을 떠먹는 얼굴이 참 뻔뻔해 보였다.

“너 원래 성격이 그래?”

“요새 좀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오락가락해. 사춘긴가 봐.”

그런 걸 제 입으로 말하는 애는 처음 봤다. 권윤찬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다.”

오늘 새벽. 그것도 이상하게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될 줄이야.

깍두기를 한입 베어 문 권윤찬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점심을 먹은 권윤찬과 정가람은 국밥집을 나와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안녕히 가세요.”

두 소년이 떠나고 테이블을 치우러 온 국밥집 사장이 혀를 쯧 찼다.

“반이나 남겼네.”

테이블 위에는 텅 빈 그릇 하나, 반이나 남아 있는 그릇이 하나 있었다.

* * *

“팍팍 닦아.”

“이거 안 지워지는 거 아니야?”

“직원한테 물어서 제일 센 걸로 사 왔잖아. 닦일걸. 나중에는 몰라도 내가 있을 때는 화장실 깨끗했으면 좋겠어. 하루 2만 원이나 내고 지내잖아. 여기서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가 하루에 만오천 원인 거 알아?”

“끄응.”

정가람의 말에 고무장갑을 낀 권윤찬이 새로 사 온 솔로 화장실 바닥을 팍팍 닦았다.

권윤찬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집을 빌려주고 하루에 2만 원은 너무 한 것 같았다. 그냥 가라기에는 2만 원, 내일이면 4만 원일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사이 정가람은 부엌을 정리하고 텅 빈 냉장고 안을 채워 넣었다.

“역시 냉장고는 가득 차 있어야지.”

마음이 풍족해진 정가람은 히죽 웃은 후에는 화장실 안에 있는 세탁기로 향했다. 쭈그려 앉아 청소하는 권윤찬을 보며 킥킥 웃고 세탁기를 바라보았다. 언제적 세탁기인지도 모를 오래된 세탁기가 덜컹덜컹거리며 작동하고 있었다.

“권윤찬.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아닐걸.”

잠시 머뭇거리는 권윤찬의 말에 괜스레 불안해졌다.

다행히 빨래는 멀쩡하게 끝났다.

정가람이 탈탈 빨래를 털어 빨랫줄에 널었다. 바닷물에 흠뻑 젖어 소금기가 가득했던 정가람과 권윤찬의 옷들이 빨랫줄에 나란히 걸렸다.

“빨래 끝났어. 화장실 청소는?”

“물만 뿌리면 돼.”

촤아악!

활짝 열린 화장실 문.

그 안에서 권윤찬은 바가지로 새하얀 거품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새하얀 거품 사이로 드러나는 화장실에 권윤찬은 할 말을 잃었다. 정가람도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아. 색깔 완전 다르네.”

“……그러게.”

권윤찬도 이렇게까지 색깔이 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타일은 어두운 회색인 줄 알았는데 밝은 회색이었고 까맣던 줄눈은 원래 새하얀 색이었다. 그 변화에 등이 오싹할 정도였다.

“앞으론 청소 자주 해야겠다.”

“꼭 해.”

한바탕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온 정가람과 권윤찬이 마루에 널브러졌다. 안 하던 일이라 더 힘든 기분이었다.

“몇 시야?”

“4시.”

‘저녁은 6시에 먹으면 되려나?’

항상 배가 고플 때마다 먹었던 권윤찬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시간에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뭐 먹지?”

게다가 메뉴도 골라야 했다. 대부분을 라면으로 때웠던 권윤찬에게 저녁 메뉴 고민은 생소한 일이었다.

고민하는 권윤찬과 달리 정가람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고기 사 왔잖아. 고기 먹자.”

그 말에 권윤찬이 입맛을 다셨다.

고기를 구워 먹은 것도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았다.

‘고기 살 돈으로 라면을 더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온 권윤찬이라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도 생소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컷, 오케이!”

민희경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촬영이 모두 끝났다.

촬영 장비를 정리하는 스태프들과 감독들에게 꾸벅 인사한 김한석이 다시 마루에 드러누웠다. 촬영을 한다고 계속 화장실을 청소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서준도 벽에 등을 기댔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형. 화장실 진짜 달라지지 않았어요? 전 진짜로 놀랐다니까요.”

“나도 놀랐어. 미술팀이 엄청 열심히 만들었나 봐.”

김한석의 말에 서준이 웃었다.

솔직히 서준도 조금 동요할 뻔했다.

* * *

“레디, 액션!”

아침을 먹은 정가람이 부엌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밥상에 올리고 마우스를 연결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권윤찬이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 해?”

“너튜브에 올릴 영상 편집하려고.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거든.”

바닥이 차가운지 전기장판까지 깔아두었다. 권윤찬도 거기에 앉았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누군가와 이렇게 조용히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라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가 들렸다.

집중한 정가람의 모습에 권윤찬도 어쩐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으로 간 권윤찬은 책 하나를 들고 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좁은 부엌 한쪽이 제법 아늑한 거실이 되었다.

여기서 자를까, 저기서 자를까 고민하고 있던 정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책이야?”

“……국어 교과서. 검정고시 보려고.”

권윤찬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대답할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였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공부 좀 했거든.”

정가람의 말에 권윤찬이 피식 웃었다.

“공부 못한다고 하는 애들이 얼마나 있겠냐.”

“진짜라고.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아주 잠시.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 가고 숙제만 하는데…… 거기다 머리도 받쳐주니까 1등이야 당연하지.”

정가람의 웃는 얼굴이 흐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자랑하는 듯한 뒷말에 꽂힌 권윤찬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야. 권윤찬! 난 반숙! 아침처럼 완숙으로 주면 안 먹어.”

정가람의 말에 뒤집개를 든 권윤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하라고!”

“오늘 식사 당번은 너잖아!”

정가람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청소는 했냐?!”

“했거든!?”

낡은 집이 시끌벅적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정가람과 권윤찬은 금세 친해졌다. 식비는 몰라도 숙박비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권윤찬이 생각할 정도였다.

“알바는 구했어?”

투덜거리면서도 반숙을 내온 권윤찬에게 정가람이 물었다.

완벽한 반숙이 젓가락에 반으로 갈라졌다. 밥상을 가득 채운, 반찬 가게에서 사 온 반찬을 하나 집은 권윤찬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미성년자는 안 된대.”

“왜 시켜보지도 않고 그런대? 저번 알바는 어떻게 구한 거야?”

“돈을 작게 받았거든.”

권윤찬이 말하는 시급에 정가람이 이를 갈았다.

“노동청에 신고하자.”

“됐어. 그렇게라도 일하게 해주는 게 어디야. 그 가게 사장이 마당발이라서 소문나면 다른 알바 못 구해.”

“나쁜 놈들!”

정가람의 화풀이에 계란이 잘게 잘게 찢어졌다.

“너도 너튜브 해볼래?”

“그거 카메라랑 노트북 필요하잖아.”

“내 거 빌려줄게.”

“됐어. 뭘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으음.

권윤찬의 말에 정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돈 벌려면 조회 수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나도 조회 수는 별로 안 나오거든.”

“아. 나 봤어. ‘촬영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야!”

자신의 흉내를 내는 권윤찬의 모습에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정가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권윤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컷, 오케이!”

민희경 감독의 외침에 김한석이 온몸에 힘을 풀고 늘어졌다.

“촬영이 너무 빡세요.”

“우리가 잘해서 빨리빨리 끝나는 거니까 힘내자.”

NG가 나면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촬영이 뒤로 밀릴 텐데, OK만 계속 나오니 촬영에 속도가 붙었다. 대본 분석을 전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은 그냥 권윤찬과 정가람으로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저 잘해요?”

“어. 잘해. 엄청.”

서준의 말에 김한석이 히죽 웃었다.

김한석을 보고 따라 웃던 서준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스태프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얼굴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지석이 형?”

후줄근한 야구점퍼를 입은 이지석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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