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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80화 (38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80화

천안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촬영팀은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

적당한 크기로 잘린 삼겹살이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천안에서 대구까지 이동하는 터라 촬영이 없어 반주를 하는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멀미하지 않으려면 적당히 드세요.”

조감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잔을 들었다. 술술 들어가는 술에 촬영 감독이 호쾌하게 웃었다. 민희경 감독과 조감독은 대구 촬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식사자리에 유일한 배우인 서준과 매니저 안다호도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안다호가 집게를 들어 두꺼운 삼겹살을 숯불에 달궈진 판 위에 올렸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했다.

공깃밥의 뚜껑을 연 서준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다호 형. 저 지금부터 체중 조절 시작하려고요.”

“지금부터?”

“네. 대구 촬영 끝나면 바로 부산이잖아요.”

이제 부산에 가면 본격적으로 체중 감량에 들어가야 했다.

엄마 아빠와 한 약속도 있고 그렇게 많이 뺄 생각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식사량을 줄이며 감량할 생각이었다.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준을 보던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정도로 살을 빼지는 않는다고 했으니 더 말릴 수도 없었다.

“그래. 몸에 이상 있으면 바로 말하고.”

“네.”

“그럼 저녁은 많이 못 먹겠네. 점심때 많이 먹일 걸 그랬다.”

고기를 뒤집으며, 한 입 더 먹이지 못해 안타까운 듯 말하는 안다호에 서준이 웃었다.

“그러면 체중 조절에 의미가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안다호는 미리 준비해둔 다이어트 식단을 떠올리며 서준의 앞에 고기를 놓아주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먹은 서준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할 걸 그랬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숙소에 돌아온 서준은 깨끗하게 씻고 폭신폭신한 침대 위에 엎어졌다. 결국, 체중조절을 위해 양껏 먹지는 못했지만, 배가 고플 정도는 아니었다.

으음.

반쯤 졸린 눈으로 침대의 아늑함을 즐기던 서준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가져왔다. 엄마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촬영하는 동안 온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김하운 : 우정한 감독님 오디션 합격함.

<오! 축하! 대본 재미있더라.

>김하운 :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흥행할 것 같네ㅋㅋ

>김하운 : 감독님도 좋아하시겠다.

김하운의 메시지에 서준이 웃었다.

우정한 감독의 촬영장에는 김진철 같은 배우가 없었으면 싶었다.

‘있어도 티는 안 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입술을 삐죽인 서준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촬영은 언제야?

>김하운 :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내년에 들어갈 것 같음.

‘그러고 보니 촬영 감독님이 여기 계시지.’

아마 [가제 : 여행]의 촬영이 끝나고 바로 우정한 감독님의 작품에 가시지 않을까 싶었다.

>김한석 : 서준이 형!

>김한석 : 지금 어디예요?

<천안. 내일 대구 가.

>김한석 : 그럼 좀 있으면 부산이겠네요!

>김한석 : 저도 부산 갈 준비 다했어요ㅋㅋ

>김한석 : 연습도 많이 했구요!

>김한석 : (사진)

김한석이 보내온 사진에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서준이 촬영하는 동안, 김한석도 열심히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습한 모양인지 서준이 추천했던 작품들에 대한 감상문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옆에 보이는 [가제 : 여행]의 대본도 ‘권윤찬’에 대한 분석으로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대본 새 걸로 바꿔야겠는데?

>김한석 : ㅎㅎ 부산에 갈 때는 새것 뽑아서 가려구요.

>김한석 : 부산에서 봐요!

열심히 하는 동생의 모습에 어쩐지 자신이 다 뿌듯해졌다.

서준은 빙그레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그래.

* * *

대구 계산성당 앞.

정가람이 카메라에 계산성당의 모습을 담았다.

“계산성당은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성당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천주교가 박해를 당했잖아요?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수도에서 먼 지역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대구가 그런 곳 중 하나고요.”

우뚝 솟은 두 개의 첨탑과 그 첨탑 끝의 십자가.

녹색의 지붕과 붉은 벽돌이 성당에 멋을 더해주고 있었다.

“또 계산 성당은 전주 전동성당, 서울 명동성당과 함께 한국의 3대 성당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안에는 기도하시는 분도 계시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조용히 하겠습니다.”

정가람은 활짝 열려 있는 계산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조용했다.

‘설명은 나중에 자막으로 넣어야겠다.’

정가람은 조용히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성당의 나무색 의자가 4열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회색빛 벽돌이 둥그런 아치형 모양으로 성당의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새하얀 벽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창문들이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정가람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

성당의 끝에 단상이 놓여 있고 그 단상의 중앙에 금색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 맞은편 벽에는 성모 마리아상, 그 양 옆에는 성모상을 둘러싼 듯한 네 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네 명의 성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몇몇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창밖에서 비치는 빛에 성자들의 모습을 담은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가볍게 두 손을 모으게 만드는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가람의 마음은 오히려 술렁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펴보던 정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았다. 옆에 내려놓은 셀카봉에 고정된 휴대폰 화면에 정가람의 모습이 조금 기울어져 담겼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정가람이 잘게 떨리는 두 손을 모다.

‘아니. 아니…….’

어쩌면 성당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숙인 고개와 질끈 감긴 눈.

꽉 다문 입술과 조금씩 떨리는 두 손.

웅크리듯 기도하고 있는 정가람의 뒷모습이 촬영 감독의 카메라에 담겼다.

* * *

대구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짐을 챙긴 서준과 촬영팀은 부산에 예약해 놓은 숙소로 향했다.

서준을 태운 차가 숙소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서준아. 저기.”

운전석에 앉은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창밖을 바라봤다가 풋, 웃고 말았다. 숙소에는 먼저 온 김한석이 팔을 휘휘 휘두르고 있었다.

“서준이 형!”

“한석아.”

차에서 내리는 서준을 김한석이 반겼다.

“먼저 와 있었네?”

“네. 오늘 아침에 출발했거든요. 아침부터 일어나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지친 듯 울상을 짓는 김한석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안다호와 김한석의 매니저가 인사를 나누었다.

서준과 함께 가고 싶다는 김한석의 말에 같이 보내기는 했는데 폐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며 말하는 김한석의 매니저에 안다호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서준이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덜 심심하고 좋았습니다.”

오히려 연기 연습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스태프들을 태운 버스도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부산 촬영 이후 처음 만나는 민희경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한 김한석은 서준을 도와 숙소로 짐을 날랐다.

* * *

숙소 한곳에 마련된 회의실.

조감독, 미술 감독, 촬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민희경 감독의 시야에 어느새 대본을 꺼내 서로 대사를 맞춰보고 있는 서준과 김한석이 들어왔다.

“서준아. 한석아.”

“네?”

대본을 보고 있던 서준과 김한석이 민희경 감독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 촬영장에 갈 생각인데, 같이 갈래?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도 할 겸 말이야.”

“네.”

“네!”

민희경 감독의 말에 서준과 김한석이 얼른 대답했다.

* * *

촬영장은 숙소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제 : 여행] 속, 부산에서의 배경은 ‘권윤찬의 집’이었는데 권윤찬의 집이 있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모인 달동네였다.

로케이션 매니저가 촬영을 위해 찾아낸 동네도 그런 동네였다. 달동네라서 차가 들어가기는 힘들어 서준 일행은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왔다.

“이 집이랑 이 집은 빈집이고 여긴 아직 사람이 산답니다. 저쪽에는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있는 물건은 별로 없지만요.”

미술 감독의 말에 서준과 김한석이 둥그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텔레비전이나 작품 속에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이런 동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 다다른 낡은 집.

“여깁니다.”

미술 감독의 말에 서준과 김한석이 녹이 슨 대문을 바라보았다. 촬영감독이 입을 열었다.

“장비 들고 오긴 힘들겠네.”

“양옆 집도 고쳐 놨습니다. 여기 장비를 놓고 몇 명이 머무르면 괜찮을 겁니다. 매니저분들이나 스태프들이 쉬는 공간도 있어요.”

촬영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숙소가 따로 있지만 서준과 김한석이 촬영하는 동안 매니저가 있을 공간과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들이 머물 공간도 필요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천막을 치는 것보다는 어디 들어가 있는 것이 나았다.

“그럼 들어가 볼까?”

민희경 감독의 말에 서준과 김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녹이 슨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마당에 수돗가가 보였다.

낡은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의 집은 ㄱ자 모양으로, 두 개의 방이 일자로 이어져 있고 꺾인 부분에 부엌이, 부엌 옆에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방과 부엌, 화장실을 잇는 좁은 나무 마루가 있었다.

“겉모양은 이런데 수리는 다 해놔서 촬영하긴 괜찮아요. 보일러도 새로 깔아놔서 보는 것보다 따뜻할 겁니다.”

미술 감독의 말에 서준과 김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권윤찬 방부터 볼까?”

처음 폐가일 때 찾아오고 수리 중 여러 번 들르고 사진으로 몇 번 확인해 본 민희경 감독이 앞장섰다.

먼저 붙어 있는 두 개의 방 중 왼쪽 방.

가장자리가 조금 부서진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오래되어 보이는 벽지와 낡은 서랍, 잘 정돈된 이부자리가 보였다. 그리고 입구 쪽 벽에는 좌식 책상이 있었는데 그 위에 이리저리 찢어진 책들과 필기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생활감이 묻어나오는 방에 김한석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생각했던 권윤찬이 이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여기서 밥을 먹고 여기 이불을 덮고 자고 여기서 옷을 입고.’

그런 권윤찬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서준과 민희경 감독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방을 살피는 김한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술 감독도 그런 배우의 모습에 뿌듯해했다.

“그리고 이쪽은 아버지 방.”

오른쪽 방은 생활감이 있었던 권윤찬의 방과는 달리 냉막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두꺼운 텔레비전과 널브러진 옷가지 몇 개, 반쯤 뒤집힌 이불. 그리고 텅 빈 소주병들과 구겨진 담뱃갑들이 구석에 널려져 있었다.

“감독님. 이거 나와요?”

김한석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텔레비전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서준의 생각에도 되게 오래 돼 보여 작동할 것 같지 않았다.

미술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되죠.”

“오오!”

서준과 김한석의 리액션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쪽은 부엌. 이쪽은 화장실.”

부엌에 있는 식기들도 일반 가정집 그릇보다 수가 적었다. 냉장고도 되게 오래되어 보였고 냄비도, 프라이팬도 코팅이 다 벗겨진 상태였다.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도 더러웠다.

요동치는 서준과 김한석의 눈동자에 미술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 곰팡이가 아니라 저희가 만든 거예요.”

“……엄청 잘 만드셨네요.”

서준의 감탄에 미술 감독이 히죽 웃었다.

“보일러 새로 깔아서 따뜻한 물도 나오니까 연기할 때는 연기가 안 날 정도로 적당히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면 됩니다. 바닥도 따뜻하고요.”

더 따듯하고 편한 촬영을 위해, 겉은 그대로 두고 내부는 싹 뒤집어 엎느라 미술팀이 고생했다.

“더 고칠 곳은 없겠네요.”

민희경 감독의 오케이와 서준과 김한석의 박수에 미술 감독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부산에서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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