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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79화 (37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79화

다음 날 아침.

[가제 : 여행]의 촬영팀이 화성행궁에서 촬영을 준비하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조선시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촬영장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화성행궁에서 무예 공연을 보여주는 공연팀이었다.

“우리 팀이 영화에 나오다니 별일이 다 있네요.”

“이거 해외에도 상영하면 우리 공연도 다 보겠어.”

“그러니까 잘해야지. 연습도 엄청 했잖아. 저쪽에서 무술 감독도 보내줬는데…….”

겨우 5분의 공연.

편집까지 하면 1분이나 나오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짧은 장면을 위해서 무술 감독까지 보내준 영화 촬영팀이었다.

“그리고 실수했다가는 평생 남아. 평생.”

“근데 실수하면 편집되지 않을까? 통편집.”

한 팀원이 손가락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리다 이내 사라졌다. 벌써 가족들에게 영화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한 팀원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하자.”

“네.”

평생 자랑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촬영에 다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팀! 리허설 갈게요!”

스태프의 말에 웃음기를 지운 공연팀이 마당에 섰다.

민희경 감독과 서준, 무술 감독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속에서는 공연팀이 각 잡힌 움직임으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시대 군복의 선명한 붉은색 천이 회전할 때마다 펼쳐지거나 접혀 멋진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쪽에서 촬영하다가 이렇게 걸어가면 돼. 촬영 감독님도 같이 움직일 거고.”

“네. 근데 다들 잘하셔서 어디서 찍어도 잘 나올 것 같아요.”

무료 공연팀이라서 조금 허술할 줄 알았는데 서로 움직임이 딱딱 맞는 것을 보니 꽤 잘하는 팀인 것 같았다. 관광객 역을 맡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엑스트라들에게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으음.”

연신 감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매의 눈으로 모니터를 살피고 있던 무술 감독은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공연팀에게로 가 피드백을 해주었다.

잠시 후.

엑스트라들과 공연팀이 각자 자리로 향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빙그레 웃고 있는 정가람의 모습이 휴대폰 화면에 비쳤다.

“오늘은 낮의 수원화성을 둘러보겠습니다. 화성행궁부터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갈 예정입니다. 화성행궁이랑 화홍문은 어제 가 봤는데 낮에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정가람은 티켓을 사고 화성행궁 안으로 들어갔다. 낮의 화성행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간에 맞춰 오시면 광장에서 ‘무예24기’라고 하는 공연을 30분 정도 보여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군복차림으로 여러 가지 무기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인데 잠시 보고 갈까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한쪽에 정가람이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됐다.

중앙의 문을 열고 열을 맞춘 무사들이 나타났다.

가장 앞에 있던 세 명의 무사가 커다란 깃발이 달린 깃대를 화려하게 휘둘렀다. 앞으로 찌르고 위아래로 흔드는 깃대에도 꼬이는 것 없이 휘날리는 깃발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사이 중앙에 짚단들이 일렬로 세워졌다.

깃발을 든 무사들이 뒤로 물러나고 검을 든 무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핫!

날카로운 검을 가진 무사들이 일렬로 세워진 짚단을 단칼에 베어내자 엑스트라들 사이에서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무사들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대결을 하듯 겨루었다.

처음에는 다 같은 방식으로 공방을 주고받다가 쓰러질 때에만 순서대로 다른 방식으로 공격해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인 무예24기의 공연을 감탄하며 보는 정가람의 얼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 * *

“수원 화성도 정조가 만든 성입니다. 1796년에 만들어졌죠.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면서 만들어졌고 거중기, 녹로 등의 새로운 장치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오르막길이라서 그런지 정가람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정가람은 신경 쓰지 않고 팸플릿을 읽어 내려갔다.

“화성성역의궤. 수업 시간에 들어보셨죠? 이 책은 화성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발간되었다고 합니다. 축성계획부터 제도, 법식,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과 재료의 출처…… 와. 재료의 출처도 나온다네요. 어느 지역 어느 산에서 온 무슨 돌 같은 건가요? 이때도 원산지는 중요했나 봐요. 그리고 재료 출처 및 용도, 예산과 임금.”

정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일한 만큼 확실히 줘야죠. 시공 기계와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아, 여기가 서장대입니다.”

정가람이 휴대폰에 서장대를 비추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누각이 카메라에 담겼다.

“장대라는 건물은 조선시대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쪽에 있으니까 서장대인가 봐요. 확실히 여기서니까 산 아래가 다 보이네요. 다음은 화서문으로 가보겠습니다.”

* * *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민희경 감독의 오케이 사인에 스태프들이 촬영 장비를 정리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전 촬영을 마지막으로 수원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난 참이라 이제부터 다음 촬영지인 천안에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체크하고 있던 촬영 감독이 조감독에게 물었다.

“촬영은 내일이지?”

“네. 오늘 천안에 도착해서 쉰 다음에 내일 아침부터 촬영할 예정입니다.”

“천안은 뭐가 맛있대?”

촬영 감독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호두과자!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밥은 안 먹고 호두과자만 먹게?”

촬영 감독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촬영 감독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한 건 답사를 다녀온 스태프였다.

“담당자분들한테 물어봐서 리스트 쫙 뽑아놨습니다. 한식, 중식, 양식 다 있어요.”

그 말에 수원에서 아주 멋진 식사를 한 서준과 촬영팀이 반짝이는 눈으로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 * *

정가람의 두 번째 여행지인 천안에서는 독립기념관과 홍대용과학관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두 곳 모두 휴일이 있어서 촬영을 하기 쉬웠다.

천안 촬영 날.

독립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붉고 노란 단풍나무들이 보였다.

한걸음 다가온 가을의 풍경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그 모습에 조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민희경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안쪽에 단풍나무 길이 있으니까 촬영 끝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죠. 많이는 못 드려요.”

민희경 감독의 말에 여기저기서 기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다호는 얼른 카메라를 챙겨왔다.

“액션!”

정가람이 방긋 웃으며 셀카봉 끝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입니다. 입구로 들어설 때부터 멋진 단풍들이 반겨주는 데다가 안쪽에 단풍나무 길까지 있다니, 가을에 오면 참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정가람이 향하는 길 끝에 두 쌍의 커다란 날개 같은 탑이 보였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봐야 할 정도로 높고 컸다.

“겨레의 탑입니다. 높이가 무려 51미터래요. 엄청 크네요.”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겨레의 탑을 지나면 겨레의 집이 나왔다.

겨레의 집은 독립기념관의 맨 앞에 있는 건물로 그 앞, 오른쪽에는 단풍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왼쪽에는 무수한 태극기가 정가람의 키보다 높은 장대에 꽂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에는 모두 815개의 태극기가 있다고 합니다. 진짜 멋있네요.”

동시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잠시 감상하던 정가람이 걸음을 옮기며 설명했다.

“독립기념관은 총 6개의 상설전시관이 있고 한 주제로 열리는 특별전시가 있습니다. 전 오늘 상설전시관만 둘러볼 예정입니다. 제1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제2전시관부터는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제강점기 때 일어났던 독립운동에 관련된 전시들이 가득합니다. 하나씩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휴대폰을 보며 설명하던 정가람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 볼이 붉어진 정가람이 얼른 말했다.

“촬영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 * *

독립기념관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모두 단풍나무 길로 자리를 옮겼다.

“와아.”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오는 길에 군데군데 단풍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지런히 늘어져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진짜 가을이라는 게 느껴졌다.

스태프들도, 엑스트라 배우들도 연신 감탄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서준아. 여기 서봐.”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던 서준이 부탁하기도 전에 안다호가 먼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서준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카메라 앵글 안, 서준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붉고 노란 단풍길 한가운데 서 있는 서준은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 * *

“이곳은 홍대용과학관입니다. 홍대용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셨나요? 국사 공부를 하면 한 번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홍대용은 박제가와 함께 북학파였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보다는 작은 건물 앞에서 있던 정가람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이따가 야간 천체 관람을 할 예정이지만 먼저 천체투영관에서 영상으로 먼저 별자리와 별들을 볼 생각입니다. 그다음에 무중력체험도 하고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 낮에는 태양 관측이 가능하대요. 흑점과 홍염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천체투영관으로 들어가자 정가람도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을 보니 스크린 같은 것이 있었다. 잠시 주위를 살펴본 정가람이 휴대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영 중엔 촬영이 금지라고 합니다. 그럼 얼른 보고 올게요.”

카메라를 끈 정가람은 의자에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편하게 보기 위해 의자가 기울어져 있어서 안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천체투영관이 어두워졌다. 천장의 스크린에 수많은 별이 떴다. 정가람과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우주의 시작부터 별들의 형성까지, 간단히 설명한 영상이 다음 순서를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가을철 별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보통 이야기 속 주인공이 죽으면 신이 별자리로 만든다고 하죠.]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에 몸을 움찔 떤 정가람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을철 별자리에는 뭐가 있을까요? 먼저 페르세우스 자리입니다. 모두 메두사에 대해 아시죠? 마주치면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뱀의 머리카락을 지닌 메두사를 물리친 영웅이 바로 페르세우스입니다. 페르세우스가 죽은 후 아테나 여신이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상 속 별들이 반짝이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 * *

천안의 숙소.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휴대폰 카메라를 앞에 둔 정가람이 신중한 얼굴로 제비를 뽑았다. 잘 접힌 종이를 활짝 펴니 글자가 보였다.

[대구]

“대구! 대구네요. 그럼 다음 영상은 대구에서 뵙겠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던 정가람이 잠시 멈춰있다가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녹화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편집하기 전에 대구에서 가 볼 곳이나 알아볼까?”

제비뽑기로 정해지는 여행지라 출발하기 전에 어디를 갈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정가람은 지금까지 그랬듯 대구를 검색했다.

놀거리 베스트 3, 산책하기 좋은 곳 7, 데이트 장소 추천! 이라고 적힌 블로그에도 들어가 보았다.

[경상감영공원]

[달성공원]

[칠성야시장]

[청라언덕]

“으음.”

갈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마우스를 클릭하던 정가람의 손이 멈추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딕 양식의,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한 두 개의 첨탑과 연둣빛 지붕, 벽을 이루고 있는 붉은 벽돌과 활짝 열린 입구 위 꽃 모양 같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계산 성당]

“……성당.”

시간이 멈춘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던 정가람은 이내 대구역에서 계산 성당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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