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78화
“레디, 액션!”
버스정류장 앞.
직행버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중 캐리어를 들고 내리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직행버스에서 내린 정가람은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멀어졌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셀카봉에 휴대폰을 고정하고는 촬영을 하기 위해 꼼지락댔다.
“됐다!”
첫 촬영 때처럼 실수하지 않게 꼼꼼히 확인한 정가람은 휴대폰이 자신의 쪽으로 향하게 들었다. 그러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찍히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가람입니다. 드디어 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직행버스가 있어서 좋네요. 1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당일치기로도 쉽게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촬영 감독의 카메라에 셀카봉을 들고 있는 정가람을 한 번씩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찍혔다.
정가람은 첫 야외촬영이 어색한 모양인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도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먼저 예약해 둔 숙소로 갈 예정입니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화성행궁에 갈 건데요. 오늘 밤에 야간 개장을 한대요. 오늘은 그걸 보고 내일은 낮에 수원화성을 구경할 생각입니다.”
정가람이 옆에 놓아둔 캐리어의 손잡이를 쭉 빼서 잡았다.
“그럼 숙소로 출발해 볼까요?”
셀카봉을 든 정가람이 몇 걸음 걸어가다 제자리에 멈춰 셀카봉의 휴대폰을 꾹 눌렀다. 녹화된 촬영본을 본 정가람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컷, 오케이!”
민희경 감독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바스트샷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준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액션!’이라는 소리와 함께 촬영 감독은 서준의 바로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서준을 촬영했다.
민희경 감독의 모니터에 서준의 상반신이 찍혔다. 풀샷보다 ‘정가람’의 표정이 더욱 잘 드러났다.
도울 일은 없나, 촬영을 보러온 홍보마케팅 팀장이 신기한 눈으로 촬영 현장을 바라보았다.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고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촬영 감독이 셀카봉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너튜브 영상 장면’ 촬영까지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서의 촬영이 끝났다.
민희경 감독이 서준에게 팀장을 소개했다.
“이쪽은 수원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원시 홍보마케팅 팀장님. 이쪽은 아시다시피 우리 영화의 주인공 이서준 배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
서준과 인사한 팀장이 딸이 팬이라며 조심스럽게 사인을 부탁하자 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이름이 쓰인 사인지를 구겨지지 않게 받은 팀장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잠시만요.”
촬영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고 있던 조감독이 팀장에게 다가왔다.
“오늘 촬영하는 곳. 통제가 잘될까요?”
“통제 때문에 모레부터 이틀 동안 입장료를 무료로 할 예정입니다. 관람 시간도 늘렸고요. 통제 공지도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해서 괜찮을 겁니다.”
팀장의 말에 조감독이 오, 감탄했다. 그러면 오늘내일 통제를 해도 그렇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입장료가 없는 곳도 최선을 다해 통제할 예정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멋지게 촬영해 주십시오.”
조감독과 팀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서준에게 촬영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서준아. 왕갈비 먹으러 가자. 여기 홍보팀한테 들은 맛집이래.”
현지인 추천 맛집이라니 서준도 기대됐다.
* * *
맛있는 왕갈비를 먹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니 금세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겨울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해가 빨리지는 모양이었다.
촬영진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화성행궁에 도착한 촬영진이 빠르게 장비를 설치했다. 그중 오늘따라 더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조명팀의 모습이 보였다.
“야간 촬영이라 조명팀 분들 힘들겠어요.”
화성행궁을 비추는 조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서준의 얼굴도 잘 나오게 조명을 비춰야 했다. 조명을 설치할 장소를 표시한 구깃구깃한 종이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조명감독의 모습에서 많이 고심한 것이 느껴졌다.
“화성행궁 조명이랑 어우러져야 멋지니까. 조명팀도 나도 몇 번이나 와서 확인했으니까 걱정할 건 없어.”
서준의 말에 민희경 감독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민희경 감독의 말처럼 모든 준비가 끝나고 테스트 겸 찍은 화면은 엄지를 척 들 만했다.
“레디, 액션!”
“안녕하세요. 가람입니다.”
셀카봉 끝에 달린 휴대폰을 바라보던 정가람이 볼을 긁적였다. 촬영을 시작할 때마다 저절로 인사가 나오게 된다.
수원을 여행하는 동안의 촬영분을 하나로 이어붙여서 [첫 번째 여행지, 수원]이라는 제목으로 올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화면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인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 생각하던 정가람이 피식 웃었다.
“편집하면 되겠지.”
라이브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렇게 길게 딴생각을 해도 괜찮았으니까 말이다.
크흠, 목을 가다듬은 정가람이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편집하기 쉽게 몇 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화성행궁 야간 개장을 보러왔습니다. 다른 관광객분들도 계시네요. 초상권 때문에 저만 찍고 있지만요.”
정가람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에 셀카봉이 움직이면서 카메라 화면도 작게 흔들렸다.
“야간 개장을 하면 저 위의 수원화성도 걸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화성행궁, 홍화문, 용연만 볼 예정입니다.”
화성행궁 안내소에 들른 정가람이 입장료를 내고 그 앞에 놓여 있던 팸플릿을 하나 들었다.
“팸플릿도 하나 챙겨야죠.”
팸플릿을 휴대폰 쪽으로 펼쳐 잘 보이게 찍은 후,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화성행궁은 1796년, 조선의 임금이었던 정조가 만든 곳입니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면서 그곳에서 있던 관청을 대신해 만든 곳으로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네요. 왕이 머무는 곳을 행궁이라고 한대요.”
짧게 설명한 정가람이 몸을 돌려 카메라에 조명이 들어온 화성행궁과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자신이 비치는 화면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정가람이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잠시만요. 좀 더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정가람이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안쪽 카메라가 바깥쪽 카메라로 전환되었다. 화면에는 온전히 화성행궁만이 비쳤다.
노을이 지는 저녁, 조명이 비치는 화성행궁은 광화문이나 경복궁보다는 작았지만, 화성행궁만의 멋이 있었다.
조용히 화성행궁을 바라보던 정가람이 입을 열었다.
“……조명이 있으니까 더 멋진 것 같아요.”
정가람이 다시 카메라를 돌렸다. 자신을 비치는 화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또 화성행궁은 건설할 때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랑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서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이건 그대로 홍보 영상을 써도 될 것 같은데…….’
민희경 감독의 뒤에서 고개를 쭉 빼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홍보마케팅 팀장이 생각했다. 조감독 말로는 이서준이 직접 찍고 있는 영상을 홍보용으로 쓸 수도 있다고 하던데, 꼭 받고 싶었다.
“하지만 본래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고 그 후 새로운 병원 건물을 건축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2002년에 복원공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화성행궁을 둘러본 정가람은 들어왔을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포토존으로 향했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달이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화성행궁 야간 개장에는 이런 포토존도 있네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처럼 혼자 와도 되고요.”
이런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처럼 정가람도 즐거운 표정으로 달 풍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화성행궁에서의 촬영을 모두 끝난 후, 서준이 안다호에게 말했다.
“다호 형. 저 사진 좀 찍어주세요.”
“부모님께 보내려고?”
“네.”
서준이 쑥스러운 듯 헤헤 웃었다.
안다호가 웃으며 어디선가 전문가용인 듯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탑배우의 이런저런 일상생활을 찍어 올리면서 안다호의 실력은 준전문가 못지않아졌다.
화성행궁 앞에서 한 컷, 빛나는 커다란 달 풍선 앞에서 한 컷.
카메라에서 바로 안다호의 휴대폰으로, 안다호의 휴대폰에서 서준의 휴대폰으로 사진이 옮겨졌다.
<(사진1)
<(사진2)
<화성행궁에서 찍었어!
>엄마 : 달 엄청 예쁘네! 서준이도 예쁘고!
<ㅎㅎㅎㅎ
>아빠 : 다음에 다 같이 갈까?
<응!
서준도 안다호를 찍어주고, 촬영 장비를 모두 정리한 스태프들도, 엑스트라들도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10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조감독의 말에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 * *
촬영팀은 장소를 옮겼다. 두 번째 촬영 장소는 아치 형태의 일곱 개의 수문이 있는 화홍문이었다. 수원천과 이어져 지금도 수문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냥 봐도 멋질 것 같은데 조명까지 비추니 더 인상 깊었다.
“여기도 좋네요.”
화홍문에 와본 적이 없는 서준과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이 조감독이 외쳤다.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촬영팀은 감상할 시간도 없이 움직였다.
“레디, 액션!”
수원천 근처로 내려온 정가람이 화홍문을 비추었다.
저녁이었지만 화홍문을 비추는 조명 덕분에 수원천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 소리마저 시원했다.
“화홍문의 원래 이름은 북수문이라고 하는데 수원천과 이어진 수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로 보는 정자로 쓰였다네요.”
정가람이 신기한 눈으로 화홍문을 바라보았다.
“컷, 오케이!”
민희경 감독의 오케이 사인에 서준과 촬영팀은 곧바로 바스트 샷 촬영에 들어갔다.
* * *
“아. 오늘 영화 촬영하는가 보네.”
산책 나온 부부가 한 곳을 바라보았다.
결혼사진 촬영 때나 봤던 밝은 조명과 커다란 카메라들. 통제하는 듯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딱 봐도 촬영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운 것치고는 사람이 적은 것 같은데?”
“그러게. 화홍문 찍는 거 보면 사극인가?”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떨어진 곳, 뒷모습만 보이는 배우가 들고 있는 셀카봉에 도무지 장르를 알 수가 없어 부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되게 작은 영화인가 봐. 개봉은 하려나?”
“개봉하면 보러 갈 거야?”
“우리 동네가 나온다는데 보러 가야지. 데이트도 하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남편에 아내도 미소를 지었다.
“아. 이서준 차기작 준비 중이라며?”
남편의 말에 아내가 눈을 빛냈다. 수원 새싹이 여기에 있었다.
“응. 근데 나온 게 제목뿐이라 장르도, 줄거리도 몰라. 게다가 제목도 임시로 붙인 거라서 언제 바뀔지도 몰라.”
“제목이 뭔데?”
“여행이래. 아역 배우들 오디션을 연 걸 보면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게 아닐까 싶어.”
부부가 멈췄던 발걸음을 옮겨 영화 촬영장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머지않은 미래.
‘수원새댁’이라는 닉네임의 새싹이 글을 남겼다.
-덕계못……!
덕후는 계를 못 탄다.
짧지만 슬픔이 가득 담긴 글이었다.
* * *
“이곳은 용연이라는 곳입니다.”
정가람이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성곽 위의 방화수류정과 그 아래 연못에 비친 방화수류정, 그리고 옆쪽에 정가람이 보였다.
“용연의 용이라는 글자는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연은 당연히 못 연입니다. 미리 조사했죠!”
정가람이 실실 웃으며 잔디밭 위에 앉으며 카메라를 전환했다. 휴대폰 화면 가득 조명에 반짝이는 용연의 풍경이 보였다.
“연못 중앙에 작은 섬이 있고 저기 위쪽에 수원화성 성곽이 보이죠? 거기 있는 건물이 방화수류정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군사 시설이래요. 성곽 위의 방화수류정이 연못에 비쳐서 참 예뻐요. 조명이 반사되어서 그런가? 낮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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