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74화 (37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74화

영화 제작사, 단홍.

사무실 밖까지 들릴 정도로 연신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질린 듯한 얼굴의 기획팀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일하고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팀장님. 촬영장은 어땠어요?”

“잘하고 있지. NG는 거의 안 나더라. 투자사 간섭도 없고. 여기보다 조용하고. 천국이야. 천국.”

기획팀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도 울리는 전화벨에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무슨 연락이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팀장님.”

“응?”

직원 하나가 기획팀장을 불렀다. 전화를 들고 지쳐 있는 얼굴이 여간 시달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기획팀장이 입을 벙긋거렸다.

‘얼마나 됐어?’

‘1시간요.’

전화기의 아랫부분을 막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통화 중인가 보다. 그 끈질김에 기획팀장이 진저리를 쳤다.

직원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여행하는 도중에 휴대폰 떨어뜨려서 휴대폰을 바꾸는 장면을 넣으면 안 되겠죠? 그럼 두 회사 제품 다 넣을 수 있는데…….”

직원의 말에 기획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중간에 휴대폰 브랜드를 바꾼다니, 아이디어는 좋다.

저것도 시달림의 결과물인 듯싶었다.

“당연히 안 되지. 필요도 없는 장면이고 너 같으면 휴대폰 떨어뜨려서 망가지는 내용을 넣고 싶겠어?”

튼튼하지 않은 휴대폰으로 인상이 깊게 남아버릴 터였다.

‘전망대 같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몰라도…….’

으음. 언젠가 쓸 수 있는 꼼수일 수도 있으니 기억해 두자.

기획팀장의 생각을 모르는 직원의 어깨가 더 축 늘어졌다. 기껏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물 먹었으니, 통화를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그렇겠죠. 근데 저쪽에서 워낙 연락이 와서요.”

“그럼 처음부터 돈을 제대로 썼어야지.”

“그러게요.”

그 말에 다른 직원들도 쓰게 웃었다.

[가제 : 여행]은 이서준의 오디션 기사 이후 대중들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졌다.

물론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고 그저 개봉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마음 한구석에 소중히 간직해 둔 것뿐이라, 관련 기사가 뜨면 언제 잠잠했느냐는 듯 활활 타오를 것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중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거대한 홍보판이나 다름없는 영화가 아닌가.

“어차피 필요한 소품. 돈 안 쓰는 게 좋지.”

플러스+가 투자한 이상 제작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선 아끼는 게 좋았고 제작비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제작사, 단홍은 영화에 나오는 소품들과 관련된 기업들에 제안서를 보냈다.

가장 먼저 보낸 곳은 당연하게도 영화 내, 정가람이 너튜브를 촬영할 때마다 등장할 예정인 휴대폰이었다.

[가제 : 여행]의 시놉시스 일부를 받아본 두 회사가 빠른 반응을 보였다.

“휴대폰으로 찍는 너튜브 관련 영화라니!”

그것도 배우 이서준이 직접 들고! 찍는!

스크린에 꽤 잡힐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서준의 작품은 한국에서뿐만이니라 해외에서 개봉될 확률이 높았다.

“이건 당연히 해야지!”

그 홍보 효과를 단박에 알아차린 두 회사는 영화 제작사, 단홍의 제안을 받자마자 흔쾌히 답변을 보냈다.

그렇게 두 회사 중, 예상보다 훨씬 높은 투자금을 제안한 회사의 휴대폰이 선택되었다. 그 때문에 제작사 단홍이 예상하고, 일반적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투자금을 제안하고 떨어진 회사에서 계속 연락이 오는 중이었다.

“저쪽도 그 돈으로 떨어질 줄은 몰랐겠죠.”

‘도대체 저쪽에선 얼마를 낸답니까!?’

그 말을 돌리고 돌려 묻던 담당자의 말이 떠오른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게 배팅의 묘미지.”

쓸 땐 확실하게 써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간섭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저 이서준 배우와 휴대폰의 투 샷만 잘 찍어달라는 부탁만 있었다. 단홍으로서는 반가운 이야기였다.

직원이 한숨을 쉬며 다시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다른 배역들의 휴대폰은 안 되겠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독점이라 불가능했다.

“팀장님.”

“어?”

“어디서 이야기가 퍼졌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지역에서 계속 연락이 옵니다.”

협찬 전쟁이 일어난 건 소품뿐만 아니라 촬영지도 마찬가지였다.

[가제 : 여행]은 제목 그대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도중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여행하는 것이 초중반의 내용이었다. 수원을 시작으로 총 3개의 지역을 거쳐 부산까지 갈 예정이었고 벌써 정해진 여행지에 촬영 협조 요청을 완료한 상태였다.

그 이서준이 출연하는 영화에 나오게 되다니!

지금까지 이서준이 출연했던 작품들의 촬영지가 후에 얼마나 많은 여행객을 유치한지 알고 있는 지역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연락 오는 곳만 열 군데가 넘습니다.”

촬영 장소가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전국 규모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뒤뚱뒤뚱 자신을 스쳐 옆집으로 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안달이 난 마음은 이해는 가지만 벌써 모든 일정과 계획이 완료되었다.

촬영지로 선정된 지역들도 하루가 뭐냐, 몇 시간도 안 돼 촬영 허가를 내준 걸 보면 다들 이번 기회가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고 있을 터였다.

“촬영 지역에서 다른 곳도 들르면 안 되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안 돼. 어차피 편집될 텐데. 시간 없다고 해.”

“넵!”

단홍의 사무실이 다시 통화 소리로 가득 찼다.

* * *

오늘은 정가람이 시한부 선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오전에 여러 검사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서준이 점심을 먹고 오후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후 촬영장은 대학 병원 대기실이었는데,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이니만큼 엑스트라 배우들도 많았다.

미리내 예고 연기과 2학년 1반 김하운도 그중 하나였다. 김하운은 담당 스태프가 알려준 ‘아버지’, ‘어머니’, ‘형’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있었다. 그다지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오호. 이게 이서준 배우가 찍었던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거기 예약하기 엄청 힘들다던데…….”

이서준이라는 이름에 다른 엑스트라들도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의 놀란 표정에 형 역을 맡은 김진철이 우쭐거렸다.

“포토그래퍼가 얼마나 찍어대는지 점심도 못 먹을 뻔했다니까요.”

있는 트집 없는 트집 다 잡아서 다시 찍게 하던 자신의 행동은 깔끔하게 잊은 김진철이었다. 노을 스튜디오 사람들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았을 터였다.

“하기야 이렇게 잘 나오니 찍는 맛이 있었겠지.”

“얼굴도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니까, 금세 스타가 되겠어.”

배우들이 김진철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허설도 잘 소화해냈고 다른 엑스트라들보다 눈에 띄는 외모인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거린 김진철이 김하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김하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 상황이었다.

김진철이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늘어놓고 감독들과도 친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감탄하거나 출연을 부탁하는 사람들 속에 홀로 가만히 있는 김하운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 제가 아는 감독님이…….”

그때 촬영장이 술렁였다.

“이서준이다……!”

촬영장으로 탑배우 이서준과 ‘정가람의 아버지’ 역을 맡은, [역]에서 김내관 역을 맡았던 김호영 배우, 그리고 ‘정가람의 어머니’ 역을 맡은 최현희 배우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누군가 저도 모르게 뱉어냈다.

“와…… 진짜 배우들은 다르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한순간에 촬영장을 술렁이게 만드는 그 아우라에 김진철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 * *

“잠시만.”

김호영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 최현희도 민희경 감독의 부름에 걸음을 옮겼다.

얼떨결에 혼자 남은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열심히 눈짓 손짓하는 친구의 모습에 눈을 데굴 굴린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이곳저곳을 뒤지느라 뛰어다닌 듯 헉헉거리는 김하운이 나타났다.

“진짜…… 이런 곳은…… 흐엑…… 어떻게 찾은…… 거야?”

“감으로?”

“……촬영 시간까지 못 찾는 줄 알았다고.”

김하운의 말에 웃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아까 왜 그런 거야?”

“아아. 너랑 친구라고 밝혀지면 좀 곤란해질 것 같아서.”

서준의 고개가 더욱 기울자 김하운이 볼을 긁적였다.

“이번 장면만 찍고 촬영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어가 줘.”

“난 상관없지만, 감독님은 알고 계실걸? 촬영감독님도.”

오디션 지원서를 본 사람이라면 김하운이 미리내 예고에 다닌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서준의 말에 김하운은 왠지 불안해졌다.

* * *

“너. 이서준 친구라며?”

불안이 적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은 아는 눈치라 둘러댈 수도 없어 김하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하기야. 그런 탑-스타 옆에 있으니까 내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았겠지.”

“아, 아니. 그게……”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악당 같은 대사를 읊조리고는 자리를 뜨는 김진철의 모습에 김하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왜 말 안 했어? 미리내 예고 다닌다며?”

“이서준 사인받아 줄 수 있어?”

“너도 연기 잘하겠다! 오늘 촬영 일찍 끝나는 거 아니야?”

“촬영 일찍 끝나면 우리야 좋지!”

하하 호호 즐거운 사람들 속.

김하운의 얼굴만 흐려졌다.

* * *

“컷, NG!”

“죄송합니다!”

몇 번이나 계속되는 NG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NG를 낸 당사자 김하운이 질끈 눈을 감았다. 가까이 붙어 있던 김진철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쏠리는 시선에 피부가 따가웠다. 들리지 않아도 어떻게 생각할지 알 것 같았다.

‘이서준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흔들리는 시야 속에 오디션 때 봤던 기획팀장과 캐스팅 디렉터가 보였다. 자신을 걱정하는 서준의 얼굴도 보였다.

김하운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희경 감독이 조감독을 불렀다.

“잠시 쉬었다 갑시다! 밖에 커피차 있어요! 다들 한 잔씩 들고 가세요!”

조감독의 외침에 엑스트라들이 삼삼오오 흩어졌다.

서준에게 다가온 안다호가 말했다.

“강태영 배우가 보낸 거야.”

나이스 타이밍, 태영이 형.

“태영이 형한테 선물이라도 해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서준의 시선이 어깨가 축 늘어뜨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김하운에게로 향했다.

* * *

“NG 좀 작작 내지 그래.”

서준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구석진 곳에서 학원에서 촬영했던 연습 영상을 보고 있던 김하운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김진철이었다. 앉아있던 김하운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김진철이 뒷목을 매만지며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죄, 죄송…….”

“아니, 그냥 웃는 게 그렇게 힘들어? 평소에 웃지도 않나? 하긴 그런 연기력이면 웃음도 안 나오겠다. 지나가던 애를 잡아서 촬영장에 세워도 너보단 잘하지 않겠냐?”

김하운의 사과는 들리지 않는지 김진철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김하운이 고개를 숙였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두 손에서 땀이 번져 나왔다.

“이서준이랑 친구라길래 잘하는 줄 알았더니…… 하긴 엑스트라인 이유가 있겠지.”

김하운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들어보니까 주조연급 되는 애가 너보다 한 살 어리다던데. 걔도 이서준이랑 아는 사이라던데 이렇게 다르냐? 누군 주조연이고 누군 엑스트라고.”

순간 제 처지가 생각난 김진철이 욕설을 내뱉었다.

성인 배우들만으로도 자리가 부족한데 아역 배우들까지 밀려오는 게 거슬렸다. 아역 배우들이 연기했던 역을 자신이 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열이 뻗쳤다.

“씨X. 애새끼들이……”

거친 말투에 김하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에 이서준을 비춰본 김진철이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거칠게 김하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퍽퍽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촬영 잘하자?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 고생하잖아. 웃으라고. 그냥 웃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 건지 모르겠네. 못하겠으면 빠지던가. 아. 그러면 되겠네. 아까 보니까 캐스팅 디렉터도 있던데 새 배우 찾긴 쉽겠다.”

김진철의 날 선 말에 김하운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숙인 고개가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없을 정도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숨을 쉴 틈도 없이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 * *

“흐음.”

그 상황을 듣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한 손에는 오렌지 주스를, 다른 한 손에는 따뜻한 유자차를 든 서준의 검은색 눈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