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73화
촬영진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부산에 남아 있기로 하고 배우들은 먼저 서울로 돌아왔다.
월요일인 내일, 두 아역 배우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새벽같이 출발한 터라 서울에 도착하니 점심시간 전이었다. 비몽사몽 졸음이 가득한 김한석을 집에 데려다준 후 서준도 집으로 향했다.
“조심해서 가요. 다호 형.”
“서준이 너도 푹 쉬고. 모레 보자.”
짐이 든 캐리어를 들고 내린 서준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안다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안다호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신이 들어갈 때까지 떠나지 않을 안다호를 알았기 때문에 서준은 흔들던 손을 내리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서준의 생각대로 서준이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커다란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띠띠띠띠.
안다호에게서 서준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서은혜와 이민준이 익숙한 박자의 도어락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서준이 왔나 보다.”
“그러게.”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부부의 생각대로 부산에 촬영 갔던 아들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잘 다녀왔어?”
밝은 목소리로 반기는 부모님에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서은혜와 이민준을 꼬옥 껴안았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애교가 많은 아들에 부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민준이 코를 킁킁댔다.
“부산에 다녀와서 그런가. 바다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그래? 바다에 그렇게 오래 안 있었는데.”
서준도 코를 킁킁댔다.
똑 닮은 부자의 모습에 서은혜가 미소를 지었다.
“바다에 사람들 많았어?”
“아니. 해뜨기 전에 촬영하기도 했고 광안리나 해운대처럼 커다란 곳도 아니라서 사람은 별로 없었어.”
“몇 시에 갔는데?”
“5시쯤?”
“일찍 일어났네!”
“아침은 먹었고?”
“24시간 하는 식당이 근처 있어서 감독님이랑 스태프분들이랑 같이 거기서 먹었어.”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서준과 부부는 익숙하게 짐을 정리했다.
캐리어를 연 서준이 빨래할 옷들을 세탁기에 가져다 놓는 사이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의 남은 짐들을 정리했다. 미국에 다녀올 때마다 하는 게 짐 정리라서 금세 끝났다.
짐 정리한 후에는 간단히 잔치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따뜻한 국물에 차를 타고 오느라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흐물흐물 풀어지는 서준의 얼굴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 피곤해? 잠깐 잘래?”
“저녁 먹기 전에 깨워줄게.”
엄마 아빠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기본 체력이 있어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잠시 쉬면 금세 풀릴 아주 작은 피로였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평소와 같은 주말이었다.
서은혜는 안방에서 평일에 미처 하지 못했던 번역일을 계속했고 이민준과 서준은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이민준은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준을 흘깃 바라보았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유심히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는 서준의 모습이 어색했다.
‘보통 애들이라면 그다지 어색한 풍경은 아니겠지만.’
서준은 보통 대본을 보거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터라 낯선 풍경이었다. 휴대폰은 화면이 작아서 잘 보지 않는다고 텔레비전이 없을 때만 보고는 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게 있나?’
텔레비전으로 보면 편할 텐데, 리모컨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린 이민준이 입을 열었다.
“아들. 뭐 봐?”
“아, 너튜브 보고 있어.”
이민준의 물음에 서준이 한쪽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대답했다.
“너튜브?”
잠시 생각하던 이민준이 [가제 : 여행]을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이 첫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서준의 작품 선택에는 전혀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본은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렸을 때뿐이었고 서준이 자라면서 잘하는 모습을 보고 점점 손을 떼게 되었다.
‘서준이가 찍은 작품을 모르고 보고 싶기도 했고.’
여름에 개봉했던 [생존자들]은 그런 부부의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아들이라서 더욱 감정 이입해 버려서 펑펑 울었지만 말이다.
‘……근데 이건 대본을 볼 수밖에 없었지.’
이민준이 진지한 얼굴로 너튜브를 보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역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아들이 시한부를 연기한다는 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 * *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고기와 함께 먹을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상추와 깻잎 등 여러 가지 쌈도 준비했다. 양파절임, 고추, 쌈장, 김치 등 함께 먹을 반찬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제주도 흑돼지래.”
“와아!”
치지직.
식탁 한쪽에 놓인 불판 위로 빛깔 좋은 삼겹살이 올라갔다. 집게와 가위를 든 이민준이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 먹기 좋게 잘라 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서준과 부부는 각자의 취향대로 쌈을 싸 맛나게 먹었다.
“다음 주부터 촬영이지?”
“응. 최대한 주말에 촬영해서 학교는 월요일이나 금요일에만 빠지도록 할 것 같지만…… 시간이 안 되면 다른 요일에도 빠질 것 같아.”
“출석 일수는?”
“1학기에 촬영을 안 해서 아직 괜찮아.”
“다행이네.”
“한석이는 잘했어?”
“응. 한 번에 통과됐어.”
오.
부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서준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행복한 식사 시간에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앞니 빠진 은수가 빠진 이를 지붕 위에 던지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은찬과 김수련이 고생한 이야기, 벤자민 교수와 연락한 수빈이가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문학 쪽으로 번역일이 꽤 들어와.”
“정말?”
엄마의 말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서준이 영어 대본을 읽다 보니까 그쪽으로 실력이 많이 늘었나 봐.”
서준이 아기였을 때는 미국에서 잠시 살았었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영어 실력을 유지하던 서은혜였다. 그동안 서준이 보던 영어 대본들을 소설책 삼아 읽으며 문학적 표현력과 단어가 부쩍 늘었다.
“짧은 동화였는데 번역이 좋았대.”
아는 지인에게서 제안받아 번역했던 동화가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어도 꽤 잘 팔린 덕분에 다른 번역 의뢰도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엄청 바빠질 것 같아.”
바빠질 것 같다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 * *
저녁을 먹은 후, 후식으로 과일을 먹기로 했다.
서준과 부부가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오늘은 새빨간 사과였다. 잘 깎은 사과가 접시에 쌓였다.
서준이 포크로 사과를 쿡, 찍어 냠냠 먹을 때 서은혜와 이민준이 눈을 부딪쳤다. 눈짓만으로는 해결이 안된 모양인지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서준아.”
“응?”
“너…… 이번 영화에서 그…… 시한부 연기를 하잖아……?”
아빠의 말에 눈을 데굴 굴리던 서준이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시한부라는 게…… 많이 아픈 거잖아?”
“그렇지?”
“많이 아프면…… 그 증상이…… 밖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말이야.”
서준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당연한 말을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하는 걸까?
“그렇겠지?”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들이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지 아는 부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연기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몸이 상할 정도로는 안 했으면 좋겠어.”
“배우들은 아픈 연기 한다고 몇십 키로씩 막 뺀다고 하더라고…… 서준이 너도 부산 촬영한다고 살 조금 뺐지?”
‘……어떻게 알았지?’
서준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다.
‘엄마 아빠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긴 다호 형도 긴가민가했는데…….’
어쩐지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한숨을 삼켰다.
배우가 시한부를 연기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만큼 어떤 배우가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뼈밖에 안 보일 정도로 살을 뺀 배우도 있었고 움직일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인 배우도 있었다.
보통은 그 정도까지는 못 한다고 하지만.
‘서준이잖아.’
당장 시한부 연기를 위해 몸무게를 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았다.
감독의 의견이라면 믿음직한 매니저가 막겠지만, 배우가 원한다면 어떨까.
배우의 부모로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얼만큼이면 괜찮아?”
“응?”
“살을 빼긴 할 건데…… 볼이 좀 홀쭉해지는 정도는 괜찮지? 이 정도?”
서준이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돼?”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 몰랐던 부부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뭐, 좀 더 빼고 싶긴 하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감량은 생각했는데 걱정하는 부모님을 보니 생각이 바뀐 서준이었다.
“연기로 커버하면 되지!”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었다. 엄마 아빠의 미소에 서준도 활짝 웃었다.
* * *
며칠 후.
두 번째 촬영 날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서준아!”
촬영장에 도착한 서준은 민희경 감독과 촬영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의상을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향했다.
화면 속 변화에 민감한 촬영 감독이 즐겁게 걸어가는 서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희경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게요?”
“서준이가…… 잠을 잘 못 잤나?”
“네?”
“……저번 주보다 조금 부어 보이는데? 아닌가?”
“그래요? 전 똑같아 보이는데?”
“그래? 내가 잘못 봤나?”
촬영 감독이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민희경 감독은 촬영을 준비했다.
“이제 촬영 준비합시다!”
민희경 감독의 말에 스태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명의 방향을 맞추고 세트장을 정리했다. 이번 세트장은 주인공 ‘정가람’의 집이었다.
의상을 갈아입은 서준이 촬영장으로 나오자 촬영 감독이 눈을 빛냈다.
“서준이 너 좀 부었지?”
눈을 깜빡이던 서준이 히히 웃었다.
“부은 건 아니고요. 살을 조금 붙였어요.”
“살을 붙여? 왜? 빼야 하는 거 아니야?”
서준과 촬영감독의 대화에 민희경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편집하면 순서가 바뀌잖아요. 오늘 촬영이 제일 첫 장면이고 저번 주에 찍은 바닷가 장면이 초중반이니까 저번 주에 찍은 상태가 오늘보다 나빠야죠. 그리고 이게 평상시 몸무게예요. 부산 촬영 때가 조금 뺀 거고요.”
“……그랬어?!”
깜짝 놀라는 민희경 감독과 촬영 감독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윤찬 만났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살 빠지기로 했잖아요. 그래도 그전에 증상을 조금씩 보여야 할 것 같아서요.”
서준의 말을 들은 민희경 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감독님! 저번 주 촬영본 있어요?”
어쩌다 보니 저번 주 촬영본까지 나타났다. 모니터로 보이는 저번 주의 서준은 확실히 오늘의 서준보다 조금 살이 빠져 보였다.
“분장 때문인 줄 알았는데…….”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배우의 모습에 민희경 감독의 눈이 감동을 받은 듯 촉촉해졌다.
* * *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다른 때보다 들뜬 민희경 감독이 크게 외쳤다.
“레디, 액션!”
정가람의 방.
의자에 앉은 정가람이 웃으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에 정가람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영상을 올리는 너튜버 가람입니다.”
조금 쑥스러운 듯한 정가람의 표정이 촬영이 낯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화면은 역광도 없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는 지금부터 바다를 보러, 부산까지 여행할 예정입니다. 교통수단은 버스랑 기차고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가는 게 아니라 가는 길에 이곳저곳 들를 예정입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들를 곳을 정할 건데요.”
정가람은 카메라를 바라보는 게 어색한 듯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열심히 암기한 말을 뱉어냈다.
촬영감독이 든 카메라가 휘이 돌아 정가람의 책상 앞에 붙은 대본을 비추었다. 얼마나 고치고 고쳤는지 이곳저곳에 색색의 볼펜이 그어져 있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의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하니 서울 밑의 도시들을 제비뽑기로 만들었습니다. 이 통 안에 들어 있는데요. 하나 뽑아보겠습니다.”
정가람은 통에 손을 집어넣고 만지작거렸다.
‘제발, 볼 게 많은 곳으로!’
종이 하나를 꺼낸 정가람이 심각한 얼굴로 종이를 펼쳤다.
[수원]
“수원! 수원이네요!”
정가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수원이고 저는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앞으로 재미있게 봐주세요.”
꾸벅 고개를 숙인 정가람이 휴대폰에 다가가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조금 들뜬 얼굴로 첫 녹화분을 확인했다.
“악, 녹화 안 됐다!”
초보 너튜버다운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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