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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70화 (37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70화

서준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보며 김한석을 기다렸다. 쌀쌀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인터넷은 여러 기사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김종호×이지석, 영화 ‘한판’ 촬영 중!]

[최대만 감독의 신작에 김종호, 이지석 출연!]

[오디션 끝! 배우 이서준 캐스팅 완료!]

[배우 이서준의 차기작은?]

[마린사의 새 히어로, 팬텀 등장!]

[새로운 히어로 시리즈의 시작, ‘팬텀’!]

[이번주 토요일 ‘팬텀’ 대개봉!]

-김종호와 이지석이라니, 오랜만의 조합이네!

=거기다 이스케이프의 최대만 감독까지 있음.

=……이서준 없는 이서준 사단인가.

=그래서 서준이가 깜짝 등장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영화 찍어ㅋㅋ

=아쉽.

-내년에는 박 터지겠네.

=222다른 건 몰라도 이서준 작품이랑 ‘한판’은 피해야 할 듯.

=이서준 영화는 제목이 뭐야?

=아직 안 정해진 모양임.

-오오오! 마린사 새 히어로!

=홍보 진짜 많이 하나 봄. TV에서도 계속 나오고 포스터도 쫙 깔림.

=앞으로 한 10년쯤은 이끌어나가야 하는 시즌의 첫 시작이니까. 첫 영화를 잘 만들어야 뒤에 개봉하는 다른 히어로들도 흥행하지.

-첫날 예매했다! 보러 가야지!

=222 스포일러 안 당하려면 첫날!

지석이 형이랑 종호 삼촌이랑 최대만 감독님이 함께 영화를 찍고 마린사에서는 새로운 히어로 영화가 나왔다.

“어떤 영화일지 궁금한걸.”

[한판]도 [팬텀]도.

서준은 일정을 살피며 영화를 보러 갈 날짜를 고민했다. 친구들은 토요일에 보러 간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촬영이 끝날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말이야.’

날씨가 변덕스러울 수도 있고 사람들 때문에 촬영이 중단될 수도 있었다.

언제가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김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형! 부모님 허락받았어요!”

“그래? 그럼 갈까?”

“네!”

* * *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은 김한석이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언제봐도 서준이 형 연습실은 장난 아닌 것 같네.”

한쪽 벽이 모두 거울로 뒤덮인 깔끔한 인테리어에 여기저기 달린 카메라들. 누가 가정집에 이런 연습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주스를 가져온 서준이 연신 감탄하는 김한석의 모습에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대본은 읽어봤어?”

“네. 근데 쉬는 시간에 읽느라 한 번밖에 못 읽었어요.”

“쉬는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한 번 읽은 것도 대단한 거지.”

김한석의 말에 서준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권윤찬’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말해볼래?”

“으음. 네.”

잠시 눈을 굴리던 김한석이 대본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권윤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이 서준은 새하얀 종이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자신에 대한 평가인가 싶어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애써 종이로 내려가는 시선을 붙잡고 ‘권윤찬’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던 김한석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전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한 번 읽은 것치고는 자세히 파악했는데?”

“헤헤.”

서준의 칭찬에 김한석이 한껏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자, 이거.”

서준이 김한석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웃고 있던 김한석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종이에는 짧고 긴 문장들이 쓰여 있었다. 단어도 있었다.

‘……꼭 영화 제목 같네.’

“한석이 네 분석을 듣고 비슷한 감정을 가진 캐릭터들이 나오는 작품들을 적어봤거든.”

“……?”

“드라마나 영화는 너무 기니까 단편 영화나 독립영화뿐이지만 말이야. 그중에서 대본이랑 영상이 집에 있는 작품 목록이야.”

김한석이 다시 서준이 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스무 개가 훌쩍 넘는 작품들이 보였다.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독립영화들까지 섭렵한 것에 대해 놀라야 할지, 영상과 대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야 할지, 이걸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야 할지, 그것도 작품만이 아니라 캐릭터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야 할지.

“서준이 형. 이걸 다 기억하고 있어요?”

“응. 재미있는 건 여러 번 보거든.”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요…….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삼킨 김한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건 왜요?”

“지금부터 보려고.”

서준의 말에 김한석이 눈을 깜빡였다.

“작품 보면서 권윤찬하고는 뭐가 다른지, 뭐가 같은지, 그 같은 점을 다른 배우는 어떻게 연기했는지 분석해 보자. 재밌겠지?”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김한석의 눈이 떨렸다.

* * *

네 편의 짧은 독립영화를 본 후 서준과 김한석은 서은혜가 준비해 준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김한석은 롤케이크의 당분 덕분에 멍하던 뇌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분석해서 영화 보는 거 진짜 힘드네요.”

게다가 계속 ‘권윤찬’과 비교해야 하니 더 힘들었다.

김한석은 손에 든 종이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본 독립영화들의 대본 복사본이었는데 서준과 김한석이 영화를 보며 분석한 것들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배우의 손끝부터 발끝까지, 서준이 물으면 김한석이 대답해야 했다. 그 대답에 정답이 없어서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

“그래?”

난 재미있던데.

지친 듯한 김한석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서준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학교 시험 때도 이렇게 안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공부했으면 전교 1등도 문제없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지 김한석이 피식 웃었다.

배를 채우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분석해 볼까?”

“네!”

펜을 잡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김한석을 보며 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힘들 텐데도 싫은 소리 하나 없는 김한석의 모습에서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었다.

‘조금 도와줄까.’

서준에게서 흘러나간 부드럽고 따뜻한 선기가 김한석의 몸을 둘러쌌다. 그러자 피곤해하던 김한석의 안색이 나아져 갔다.

* * *

서준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은 김한석이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에 앉은 이민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린 서준에게도 인사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요. 서준이 형.”

“잠시만. 한석아, 이거 가져가.”

서준이 김한석에게 가방을 하나 건네주었다. 묵직한 무게에 김한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예요?”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대본들을 모아봤어.”

“……네?”

“읽을 수 있을 만큼 읽고 감상문 써와. 감상문은 아까 영화 봤을 때처럼 권윤찬이랑 관련해서 쓰면 돼. 다른 캐릭터와 권윤찬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적어도 되고 권윤찬이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거라고 적어도 되고.”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김한석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에 이민준은 작게 웃고 말았다.

“금요일이 촬영이라니까 내일까지 캐릭터 분석하고 나머지 이틀 동안은 연기 연습하자.”

묵직한 숙제의 무게에 김한석은 식은땀이 났다.

* * *

촬영을 하루 앞둔 목요일.

캐릭터 분석을 끝내고 수요일부터 본격적인 연기 연습에 들어간 김한석이 책상에 늘어져 있었다.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제는 산더미 같은 대본을 들고 와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내내 읽으며 감상문을 쓰더니 오늘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쓰러져 있었다.

“김한석. 살아 있냐?”

“……아니…….”

“선배님이랑 연습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

친구의 물음에 김한석이 고개를 들었다.

“연기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어? 거기서 좀 더 심해지면 어떤 감정이 될 것 같아? 같은 상황이어도 권윤찬은 어떻게 느낄까?라고 묻는데……그렇게까지 세세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대답하는 게 너무 힘들어.”

서준은 최대한 김한석의 생각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서준의 분석은 서준의 분석이었다. 김한석의 연기이니 김한석의 분석이 필요했다.

대본의 겉만 훑는 김한석의 분석을 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게끔, 깊이 생각할 수 있게끔 자세 하나 연기 하나마다 질문을 쏟아냈다.

“답도 정해진 게 아니고.”

이틀 동안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같은 감정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알게 되었다.

그중 어느 것이 가장 ‘권윤찬’과 닮았으며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할지는 온전히 김한석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서준은 확실히 했다.

“근데 그렇게 급하면 선배님이 연기하고 네가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낫지 않아? 선배님 연기니 당연히 대단할 것 같은데.”

“서준이 형은 그런 거 안 좋아할걸.”

김한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그 정도면 그냥 흉내가 아닌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말했다.

“근데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생존자들 보고 이현우 연기 가능한 사람?”

“그러네. 못 하겠네.”

그 말에 아이들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은 김한석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일 촬영이니까 연습은 오늘로 끝나.”

“그건 다행이네.”

“촬영 갔다 와서 팬텀 볼 거지?”

“김한석! 이서준 선배님 오셨어!”

친구의 질문에 막 대답하려던 김한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1학년들의 시선도 교실 문 쪽으로 향했다.

서준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촬영 하루 늦춰졌대.”

“……네?”

서준의 말에 김한석이 눈을 깜빡였다.

내일이 촬영이었는데 촬영이 하루 미뤄졌다고?

서준의 말을 이해한 김한석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곳에서 연습하려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는데 다행이지?”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김한석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연습이 하루 늘어난 김한석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 * *

“서준이랑 한석이 도착했으려나?”

북적북적 거리는 영화관.

영화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다들 같은 포스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다 같은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건 미리내 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재한의 말에 김주경이 입을 열었다.

“촬영장이 부산이라서 어젯밤에 내려갔대. 아마 오늘 촬영 시작할걸.”

“금요일에 촬영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은 토요일. 그래서 아이들도 영화를 보러올 수 있었다.

한지호의 물음에 양주희가 대답했다.

“하루 늦춰졌대.”

“그래?”

“그래서 한석이가 다 죽어가던데…….”

김주경의 말에 아이들이 킬킬 웃고 말았다.

촬영이 하루 늦춰진 만큼 서준과의 연습이 하루 길어져 버렸다.

“서준이가 연기에 대해선 엄하니까.”

“근데 또 무르기도 하고.”

설렁설렁 연기하는 배우에겐 엄하지만,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에게는 부드러워지는 서준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연습은 힘들어도 얻는 건 많을 거야.”

“난 세상에 영화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 외국 영화도 봤잖아.”

“자막도 서준이가 손수 달아줬고.”

키득키득 웃던 아이들의 귀에 영화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3관, ‘팬텀’의 상영이 곧 시작됩니다! 관람하실 분들은 어서 입장해 주세요.”

직원의 목소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부터 직장인으로 보이는 어른들까지 들뜨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오늘은 마린사의 새로운 히어로, 시즌2의 첫 히어로 영화 [팬텀]이 개봉하는 날이었다.

“우리도 들어가자.”

“그래.”

기대를 가득 담은 아이들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잘 나왔으려나?”

“잘 나왔겠지. 새로운 시리즈를 열 첫 영화잖아.”

“서준이는 부산에서 보려나?”

“그렇지 않을까?”

티켓에 쓰인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천천히 어두워지는 상영관에 입을 다물었다.

곧 비상구를 알려주는 영상이 나오고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마린사의 로고가 화면 중앙에 나타났다.

2시간 후.

제3 상영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레드본처럼 찰떡같은 연기에 감탄할까, 그린윙처럼 감독의 연출에 놀랄까, 아니면 쉐도우맨처럼 울음을 터뜨릴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마린사의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였다.

“……어라?”

몇 주 후에 나올 영화객의 [팬텀] 리뷰에 대해 떠들며 다음 타임을 기다리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눈을 끔벅였다.

격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상영관을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너무…… 얌전하지?’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쿠키 영상의 장인, 마린사의 영화가 끝난 것치고는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얌전했다. 아예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묘한 실망감이 맴돌고 있었다.

송유정과 임예나의 눈이 마주쳤다. 불쑥 불안감이 솟았다.

슬쩍 뒤를 돌아 조금 전까지 [팬텀]을 상영했던 제3관을 바라보던 한지호가 볼을 긁적였다.

“재미있긴 한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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