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68화 (36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8화

“무명 배우인 줄 아셨구나.”

기획팀장의 확인사살에 책상에 이마를 박고 있던 민희경 감독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 반응에 모두 작게 웃었다.

서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땐 계속 감독님 작품 이야기만 했네요.”

그때 민희경 감독에게 어느 작품에 출연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얼굴도 못 알아보고 그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무명 배우라고 오해할 만했다.

민희경 감독이 서준에게 정신없이 늘어놓던 말과 그동안의 행동들이 떠올린 기획팀장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무명에다가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니까 저희한테 말할 수도 없었군요.”

“네에.”

기획팀장의 말에 책상에 이마를 박고 있던 민희경 감독이 늘어지듯 대답했다.

이름도 경력도 모르는 애를 주인공을 덜컥 앉힐 수도 없고 한강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애를 찾아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대답에 민희경 감독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갔다. 답답하던 기획팀장의 속이 뻥 뚫렸다.

“그 애를 찾으려고 오디션을 여신 거구나.”

그리고 그 애가 이서준 배우였다.

‘한강에서 만난 이 배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기획팀장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스타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서준이 있었다.

무명 배우였더라도 저런 존재감이라면 오디션을 열면서까지 찾을 것 같긴 했다. 아예 서준을 위한 소속사를 만들어서 서포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기획팀장이 제2의 코코아엔터를 꿈꾸는 동안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오디션 저 때문에 여신 거였어요?”

서준의 물음에 민희경 감독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엔 그저 몸을 움찔한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도 모르는 배우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말이야…… 요.”

정체를 안 것만으로도 조금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았다. 민희경 감독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말 편하게 하세요. 감독님.”

“……그럴까?”

민희경 감독이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얼굴의 붉은 기가 조금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각오한 거였어. 그 이서준 배우에게 오디션 제안이라니…… 다른 제작사는 생각도 못 했을걸.”

영화 제작사, 단홍의 기획팀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니…….”

설마 오디션까지 열면서 찾고 있던 소년이 제일 먼저 대본을 보냈던 이서준 배우였다니 지금도 조금 얼떨떨했다.

너무 멀리 돌아온 길에 민희경 감독이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자신이 찾고 있던 배우를 찾았기 때문이리라.

“유명한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벌써 유명한 배우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전 세계적인 배우.

민희경 감독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민희경 감독과 서준을 보고 있던 기획팀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우연히 한강에서 만난 감독과 배우라니. 기사로 낸다면 대중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였다.

오디션도 그렇지만 역시 서준과 함께라면 홍보 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기뻐할 홍보팀의 모습을 떠올리던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이제 오디션을 시작할까요?”

* * *

이윤주가 사무실에서 가져온 서준의 지원서가 감독들의 앞에 놓였다.

서준은 감독들의 앞, 의자 하나만 놓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되기도 했고 조금 들뜨기도 한 서준이 자세를 바로 하고 말간 얼굴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민희경 감독은 가지런하게 정리된 이력을 읽어 내려갔다.

가장 오래된 [쉐도우맨1]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생존자들(개봉판)(감독판)]까지. 전부 재미있게 봤던 작품들이었다.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진짜 이서준 배우구나.’

소년이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으면 서준과 촬영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소년을 반드시 찾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같은 무명끼리, 때로는 실수도 해가며 열심히 촬영할 생각만 했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민희경 감독의 눈동자가 떨렸다.

시리즈물로 대흥행했던 작품부터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까지.

겨우 18살 배우의 필모그래피라고 보기에는 너무 멋지고 화려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배우가 내 작품에 출연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순간 처참하게 망했던 첫 작품이 떠올랐다. 이번 작품도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이런 멋진 필모그래피가 자신의 작품 때문에 망쳐질까 봐 괜스레 부담되었다.

서준과 처음으로 작업하는 캐스팅 디렉터와 미술감독도 같은 마음이었다.

“이 작품도 외국에서 개봉하겠죠?”

“사극도 개봉했는데…… 당연히 하지 않을까요?”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 배우나 연기 못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옥에 티를 만들거나.

그 하나로 영화가 망할 리는 없겠지만, 두고두고 욕을 들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한국뿐만 아니라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러게요.”

긴장하는 셋과 달리, 베테랑 촬영 감독은 못 보던 사이 많이 큰 서준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함께 [역]을 만들었던 기획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가 중1이었을 때니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다.

기획팀장이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지원하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세요.”

오디션을 보는 배우는 차분한데 냉정하게 심사해야 하는 감독들이 긴장하는 이상한 상황에서 [가제 : 여행]의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 * *

서준의 설명을 듣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미술감독에게 속삭였다.

“이거 여행이 아니라 오디션 대본용 캐릭터 해석이네요.”

아무래도 [가제 : 여행]의 대본을 받은 서준이라서 그쪽 캐릭터 해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디션용 대본으로 새롭게 분석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되게 잘했습니다.”

배우의 철저한 준비성에 감독들은 침을 삼켰다. 오디션이 이 정도인데 본 촬영에 들어가면 얼마나 철저할지. 저절로 달달달 떨리려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그럼 연기를 볼까요. 상대역 대사는 제가 하겠습니다.”

“네.”

기획팀장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서준의 자세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거짓말인 듯 의자의 끝 부분에 걸터앉은, 불편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서준의 흔들리는 시선이 오디션장 안을 맴돌았다.

대본의 내용을 아는 감독들과 기획팀장의 눈앞에 대학 병원의 진료실이 펼쳐졌다.

다섯 명 모두 각자 자신들이 아는 진료실의 모습을 떠올렸다. 책상, 의자, 창문 등의 위치는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불안함과 불편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서준의 연기 때문이었다.

대사도 없는데 시작한 서준의 연기에 빠져들던 기획팀장은 서준의 연기에 제법 익숙한 촬영 감독의 두드림에 정신을 차리고 오늘 몇 번이고 반복한 대사를 내뱉었다.

“6개월 남았습니다.”

분위기가 끊어지지 않게 연기하는 것처럼 내뱉어봤지만 역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건 다른 모양이었다. 어색한 자신의 연기에 냉정하게 마이너스 100점을 준 기획팀장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진료실 안을 맴돌고 있던 서준의 눈이 의사에게로 향했다.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네?”

그 한마디로 순식간에 공기가 바뀌었다.

서준의 연기를 바로 눈앞에서 처음 보는 민희경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 미술감독은 저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6개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서준의 모습에 잠시 숨을 삼킨 기획팀장이 다시 대사를 이었다. 지금까지와의 오디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환자에게 시한부를 알리는 의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았습니다. 아직 치료법을 연구 중인 병이라…….”

“저 고2인데요?”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 듯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어느새 일어난 촬영 감독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며 카메라 앵글을 떠올렸다. 캐스팅 디렉터와 미술 감독은 숨소리를 죽였다.

“……그보다 짧을 수도 있습니다.”

“저 이제 열여덟 살이라니까요?”

“……입원 치료보다는…….”

“내년에 수능 쳐야 해요.”

“…….”

“아픈 곳 하나도 없어요. 그냥 기침이 나와서 왔다고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기침이 나서 방해가 되니까!”

서준의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의사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머리는 금세 이해해 버렸다. 폭풍처럼 불어닥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벌벌 떨렸다. 다리가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도저히 떨림을 참을 수가 없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는 자신이 의지하는 부모를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뒤를 돌아봐야 하지만 서준은 오디션 중인 걸 잊지 않았다. 서준의 시선이 민희경 감독 쪽으로 향했다.

설마 하는 불안과 아닐 거라는 부정이 담긴, 혼란이 가득한 눈빛과 표정이었다.

그 표정 연기에 촬영 감독이 다시 자리를 옮겼다. 서준의 눈빛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다. 민희경 감독의 머릿속에 여러 연출 방법이 떠올랐다. 가장 좋은 연출 방법을 고르기도 전에 서준의 대사가 이어졌다.

“엄마! 엄마도 내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잖아! 초등학생 때부터 늦게까지 공부해도 감기몸살 한 번 안 걸린 나라고!”

“아빠! 다른 병원 가자. 여긴……여긴 이상해. 돌팔이인가 봐! 다른 병원 가서 다시 진찰해 보자! 그냥 기침 가지고 육…… 육 개월 남았다니! 이상하잖아!”

서준이 보이지 않은 부모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초조함을 숨길 수 없는 거친 숨소리가 오디션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 숨 쉬는 것도 잊었다.

“……나 이제, 이제 고2야! 열여덟밖에 안 됐어! 왜 나야! 왜 나냐…… 콜록!”

기침을 가리기 위해 입으로 자연스럽게 가져가던 서준의 손이 멈칫 떨렸다.

콜록. 콜록.

마치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처럼 들리는 기침 소리가 진료실 안을 가득 채웠다.

사색이 된 부모님이 의사에게 다가가 사정을 한다. 결과가 잘못된 게 아니냐, 왜 치료법이 없냐, 다시 검사해 보자.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답변할 때마다 서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준은 기침을 참으려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억지로 삼킨 기침에 몸이 떨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콜록.

참을 수 없는 기침이 심장과 머리까지 충격을 주는 듯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서준이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방어하듯 웅크린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절망과 억울함, 무서움을 참지 못한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벌써 끝났으려나?”

차에서 내린 안다호가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일을 마치고 바로 대기실로 가려고 했는데 응원봉 모형 관련 일로 SBC에서 연락이 왔다. 서준의 휴대폰에 문자를 남기고 단홍의 직원에게도 말해두고 SBC로 향했다.

SBC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터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안다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워킹맨으로 나올 디자인은 없을 것 같은데…….”

SBC에서 방영한 [우리는 지금/바다에 있다]가 모형으로 만들기는 좋았지만, 저작권이 미국 ABS에 있어 불가능했다.

MBC는 [봄이 돌아왔다]로, KBC는 [내의원]으로 모형을 만드는데 SBC는 [워킹맨!]뿐이라 초조한 것처럼 보였다.

“드라마는 일반인도 사겠지만, 예능은 서준이 팬분들만 살 것 같은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기던 안다호는 마침 한 사무실에서 나오는 기획팀장과 마주쳤다.

“아! 팀장님……?”

기획팀장을 부르려던 안다호가 순간 멈칫했다. 기획팀장의 눈이 조금 빨갰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안다호가 조금 주춤하는 사이 기획팀장도 안다호를 발견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안다호의 앞으로 걸어왔다. 걱정이 담겼던 안다호의 눈빛에 당황이 가득해졌다.

“팀장님? 어디 안 좋은…….”

“서준이.”

“네?”

매니저의 눈빛이 바뀌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매니저의 눈빛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기획팀장이 말을 이었다.

“서준이 어디 아픈 데 있는 건 아니죠?”

“……예?”

“희소병 판정을 받았다거나…….”

기획팀장이 늘어놓는 말에 안다호의 눈빛이 순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 주인공이 시한부였지.’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라 깜빡했다. 기획팀장에게 아니라고, 건강하다고 설명한 안다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검진 결과지 미리 준비해야겠네.’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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