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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67화 (36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7화

점점 다가오는 오디션 시간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이 보였다. 대기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대본을 보고 있던 김한석이 서준에게 속삭였다.

“형. 이제 시작할 시간이 다 돼가는데 다 온 걸까요?”

“그런 것 같은데.”

그때 문이 열렸다.

“……어?”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린 서준과 김한석이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우리 학교 애들은 전부 다른 타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친구의 등장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하운아.”

별생각 없이 대기실로 들어오던 김하운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번 2학기에 본의 아니게 유명해진 1학년 김한석의 옆에 붙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확 시야에 들어왔다.

서준이었다.

“어, 안녕. 서…….”

서준을 대기실에서 볼 줄 몰랐던 김하운이 깜짝 놀라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반사적으로 서준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자 김한석이 옆에서 파닥거렸다.

아차.

김하운이 얼른 말을 이었다.

“서, 서…… 서울은 많이 복잡하네. 늦을 뻔했다.”

“그렇죠. 저도 늦을 뻔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낯선 곳도 아닐 텐데, 마치 처음 겪는 일인 양 말하는 김한석과 김하운의 모습에 서준이 숨죽여 웃었다. 들켰나, 안 들켰나 김하운은 사람들을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오디션 오늘이었어?”

“응. 다른 애들은 다른 시간인 것 같더라.”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하운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넌 따로 볼 줄 알았는데…… 난 왜 맨날 너랑 붙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신기한 인연이야.”

여울 예중 실기번호 274번 이서준과 275번 김하운.

미리내 예고 실기번호 541번 김하운과 542번 이서준.

실기시험 때마다 순서가 바로 앞뒤였던 서준과 김하운은 올해 같은 반이 되었다.

“……설마 내 앞은 아니지?”

서준의 바로 뒤에 실기 시험을 봤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는 김하운이 조금 걱정하며 말했다.

“몇 번인데? 난 맨 마지막이야.”

“으음.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미묘한 표정의 김하운에 김하운의 번호표를 살펴본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게도 김하운은 서준의 바로 앞 순서였다.

“랜덤인 것 같은데 어째서 매번 이런 순서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김하운의 말에 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김하운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불린 아역 배우가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대기실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김한석 배우님.”

“네!”

직원, 이윤주의 부름에 벌떡 일어난 김한석이 서준과 김하운에게 손을 흔들고는 조금 긴장한 걸음으로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나갈수록 대기실 안의 긴장감이 더 무거워졌다. 김하운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역시…….’

열심히 한다.

서준의 대본에는 이런저런 분석이 쓰여 있었는데 고쳐 쓴 자국은 없이 깨끗하게 필기 되어 있었다. 김하운은 그게 여러 분석으로 지저분해진 대본 대신 새로 뽑은 대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같은 학교가 아닐 때는 몰랐던 서준의 노력이었다.

‘처음에는 서준이 정도면 노력 안 해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함께 수업을 받는 서준은 현재의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더 멋지고 훌륭한 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을 즐기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연기를 좋아한다는 게 김하운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따가운 시선에 서준이 고개를 돌려 김하운을 바라보았다. 왜? 라고 묻는 듯한 서준의 얼굴에 김하운이 고개를 저었다.

싱거운 친구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서준이 다시 대본을 바라보았다.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는 서준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 * *

[김하운]

이름과 나이, 출연한 작품들의 이름이 쓰인 종이에 펜으로 이것저것 표시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하운의 지원서를 훑어보던 민희경 감독이 고개를 들었다.

오디션 지원서는 김하운을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끝인가 보네요.”

민희경 감독의 말에 오디션 심사를 보고 있던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캐스팅 디렉터가 가볍게 어깨를 돌리거나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계속 앉아서 심사를 봐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어제 온 미리내 예고 애들도 잘하더니 오늘 온 애들도 잘하네요.”

“그렇지? 역시 눈에 확 들어온다니까. 화면에도 잘 나올 것 같고.”

캐스팅 디렉터의 말에 촬영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경 감독과 미술 감독도 아역 배우들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디션이 완전히 끝난 듯한 모습에 심사위원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기획팀장이 얼른 입을 열었다.

“감독님. 잠시만요. 아직 한 사람 남았습니다.”

“아, 그래요?”

“지원서를 따로 빼놔서…… 얼른 가져오겠습니다.”

사무실에 따로 보관해 놓은 지원서를 가지러 가기 위해 기획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향하는 기획팀장의 모습에 민희경 감독과 다른 감독들이 눈을 끔벅였다.

기획팀장이 문을 활짝 열었다.

“어?!”

그리고 문 앞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어…… 팀장님?”

막 노크를 하려던 이윤주가 활짝 열리는 문에 손을 움찔 떨었다. 모자를 벗으려고 모자챙을 잡고 있던 서준도 안쪽에서 열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빨리 왔나요?”

눈을 데굴 굴리며 묻는 이윤주에 기획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기획팀장이 서준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이 배우.”

“네. 팀장님도 잘 지내셨어요?”

문이 열리는 바람에 미처 모자를 벗지 못한 서준도 [역] 촬영 이후 오랜만에 보는 기획팀장의 모습에 활짝 웃었다.

* * *

“어!?”

촬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민희경 감독이 기획팀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왠지 들떠 보이는 기획팀장의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모자를 막 벗으려는 듯 모자챙을 만지다가 손을 내리는데 민희경 감독의 시선이 홀린 듯 한곳으로 향했다.

검은색 모자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누굴까요?”

“팀장이 가져올 정도면 한 명뿐이지 않나?”

“아, 그렇네요.”

감독들의 이야기는 민희경 감독에게 들리지 않았다.

민희경 감독이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검은 모자를 쓴 익숙한 실루엣. 자신의 대본 속에서 몇 번이고 떠올렸던 모습.

“먼저 들어가서 감독님들이랑 인사라도…….”

“어? 너!”

민희경 감독의 외침에 기획팀장의 말이 잘렸다. 앉아 있던 감독들과 단홍의 직원들, 기획팀장이 처음 듣는 민희경 감독의 큰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민희경 감독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감독님.

그렇게 말하던 이 목소리도 잊을 수가 없었다.

민희경 감독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지원서에서는 못 봤는데…… 아, 오디션 보러 온 게 아니라 친구랑 온 거야? 내 대본 봤어? 못 봤으려나? 대본 보여주고 싶은데 시간 돼?”

너무 반가운 마음에 민희경 감독의 말이 많아졌다. 잠시라도 말을 멈추면 신기루처럼 소년이 사라질 것 같았다.

“아 참. 지금 오디션 보는 거 괜찮으려나? 팀장님 지금 오디션 볼 수 있을까요?”

감독들과 단홍의 직원들, 기획팀장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수십 개는 뜬 상태였지만 소년이 너무 반가웠던 민희경 감독은 눈치채지 못했다.

“못 만나면 어쩌나 싶었어.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르고 학교도 몰라서 말이야. 대본을 너무 빨리 고쳐서 안 오나 싶기도 했고. 이서준 배우도 오디션을 보기는 하는데 너라면 잘할 거야. 아, 대본! 대본 못 봤겠다!”

했던 말을 또 내뱉을 정도로 정신없던 민희경 감독은 들뜬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대본을 가지고 왔다.

“시간 좀 줄 테니까 이것 좀 읽어보고 오디션 보자. 내 마음대로 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오디션 보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괜찮죠, 팀장님?”

민희경 감독의 말에 기획팀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까 민 감독님하고 이 배우가 아는 사이인데…….’

말을 들어보면 민희경 감독은 이서준 배우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는 사이인데 모른다고?

‘……그게 가능한가?’

????

사방에 물음표가 가득한데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던 소년을 만난 민희경 감독만이 해맑았다.

그런 민희경 감독의 모습에 제 시력에 의문을 가진, 시력에 이상이 있다면 앞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촬영 감독이 캐스팅 디렉터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맞지? 서준이?”

“네. 맞아요.”

오른쪽에서 보나 왼쪽에서 보나 이서준 배우였다.

“아 참! 이번엔 이름이랑 연락처 꼭 들어야지. 이름이 뭐야?”

민희경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말 때문에 영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던 서준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웃고 말았다. 민희경 감독님은 능력이 너무 잘 드는 타입 같았다.

서준은 검은 모자를 벗고 조금 눌린 머리카락을 매만진 후 민희경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짝이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서준이에요.”

“……?”

이미 서준이 모자를 벗기 시작했을 때부터 민희경 감독은 숨 쉬는 것을 멈추고 있었다.

흐릿하던 인상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년의 얼굴을 본 민희경 감독의 눈과 입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알다 못해 익숙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민희경 감독이 들고 있던 대본이 촤르르 새하얀 종이가 마치 한강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는지 정말 알 수가 없는, 온몸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슈퍼스타 이서준이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민희경 감독님. 배우 이서준입니다.”

“……??”

도저히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는 상황에 민희경 감독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 * *

“으아아…….”

민희경 감독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없는 이불을 걷어찰 수는 없으니 그저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가려지지 않은 민희경 감독의 두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준아. 어떻게 된 거야?”

[역]을 함께 찍었던 촬영 감독이 서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상황을 물었다.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사람이 많을 때는 최대한 학생인 척 연기하거든요. 그래서 모르셨나 봐요.”

“그래?”

서준의 대답에도 다들 납득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학생인 척 연기해도,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이서준은 이서준이 아닌가.

“그래도 대화하면서 얼굴을 몇 번 보셨으니까 아시는 줄 알았어요.”

그때 대화를 하면서 몇 번 눈을 마주쳤다.

서준의 말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민희경 감독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는 상태로 변명하듯 말했다.

“아아니. 누가 한강에서 우연히 만난 애가 이서준 배우일 거라고 생각해요? 매니저도 없고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들 텐데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전혀 신경 안 쓰는 눈치고.”

그래서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 이불을 몇 번이고 바꿔 차면서 창피함을 이겨낸 민희경 감독이 겨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걷어냈다. 그래도 아직 얼굴이 붉었다.

“겉으로만 봐선 종이 줍고 있는 착한 학생이었다고요. 분위기도 평범했고요. 저렇게 존재감 넘치는 이서준 배우가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사람들이 안 모였겠어요? 기사도 벌써 났죠.”

민희경 감독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아직도 아우라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서준을 보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건 그렇죠.”

사람들의 공감에 민희경 감독이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서 그냥 잘생긴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이서준의 이응도 생각 못했어요. 게다가 머릿속에 애도 나랑 같은 무명이구나, 같은 처지구나, 하고 콱 박혀 버려서 마음 편히 이야기하느라 다른 생각은 하나도 못 했다고요.”

“무명이요?”

“으아아아…….”

쿵!

제 입으로 뱉어버린 말에 민희경 감독은 결국 책상에 이마를 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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