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66화 (36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6화

“안녕하세요. 다호 형.”

서준이 활짝 웃으며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은 안다호도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어서 와. 오디션 준비 잘했어?”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서준의 손에 들고 있는 너덜거리는 대본이 안다호의 눈에 들어왔다. 몇 장 안 되는 오디션용 대본이라 더 구깃구깃해 보였다. 열심히 하는 배우를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어린이 연극 봄 이후로 오디션은 오랜만이지?”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랜만의 오디션에 조금 들뜬 것처럼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서 안다호는 넓은 무대 위에서 모두를 휘어잡듯 연기하던 어린 서준을 떠올렸다.

어린이 연극 ‘봄’.

안다호가 서준의 매니저가 된 후 처음 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떠오르고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때가 8살이었으니…….’

“벌써 10년이나 지났네.”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0년 동안 나름 한다고 했는데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안다호의 귀에 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10년밖에 안 지났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지내요. 다호 형.”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으며 조수석에 놓아두었던 종이 몇 장의 뒤로 넘겨주었다.

“그래. 그러자. 아, 이거 가는 동안 살펴봐 봐.”

서준은 안다호가 건네주는 종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 오디션 보러 가는 거라 새 작품의 시놉시스는 아닐 터였다.

“이게 뭐예요?”

“응원봉 공모전 1등 후보 작품. 네가 고른 것들 중에서 회의해서 골랐어.”

“벌써 1등 뽑았어요?”

“만장일치라 편했어. 그걸 이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가 문제지. 제작 기술이 안 되면 디자인을 수정해야 하겠지만 최대한 그 디자인대로 갈 거야.”

시동을 건 차가 천천히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첫 장을 넘겼다. 디자인만 봐도 뭔지 알 것 같았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렇지? 이게 가장 추천 수가 많으니 팬분들도 좋아할 거고 응원봉으로 쓰지 않을 때는 그냥 장식으로 놔둬도 돼서 활용성도 좋지. 기본형도 아이디어가 좋고. 게다가 방송사나 제작사 쪽이랑 가볍게 이야기해 봤는데 그쪽도 좋아하더라고.”

벌써 방송국과 제작사와 이야기를 나누다니, 실행력이 엄청 빠른 이서준 전담 2팀이었다.

서준이 감탄하며 종이를 보았다.

만장일치로 뽑힌 응원봉 디자인 1등은 ‘성덕되고싶다’ 라는 닉네임을 쓰는 새싹이 올려준 글이었다.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서준이 작품을 모아봤습니다!]

[글쓴이 : 성덕되고싶다]

새싹분들도 디자인들을 보며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 한 작품만 갖기엔 다른 작품이 눈에 밟힌다……! 내의원 스노우볼도 가지고 싶고 오버 더 레인보우 티켓(?)볼도 갖고 싶고! 진 나트라는 물론이고 아기 서준이까지!

서준이의 작품들은 어느 작품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디자인했습니다.

<빠!!>바꿔 끼울 수 있는 응원봉! <밤!!>

손잡이는 그대로 두고 손잡이 위의 모형을 새싹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모형을 끼울 수 있습니다! (물론 모형의 규격이나 이런저런 협의 그리고 디자인은 코코아엔터에서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탁해요. 콬아:))

그리고 서준이와 새싹분들을 위한 응원봉이니만큼 새싹이 빠질 수는 없죠!

응원봉 기본 디자인도 준비했습니다.

정사각형의 투명 케이스.

중앙에 초록색 생기 가득한 새싹을 놓습니다.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면 예쁘겠죠.

이것만 있으면 아쉬우니 초록색 새싹볼(?)을 넣어줍니다. 흔들면 하늘에서 새싹들이 내려오겠죠ㅎㅎ 가만히 놔두면 새싹들이 깔린 푸른 초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포인트!

정사각형의 투명 케이스 한쪽 면에 틈을 만듭니다. 바로 사진을 끼워 넣는 장소죠! 언제든 어느 작품의 서준이든 교체 가능! 합니다.

좋아하는 서준이의 사진을 넣어서 다 같이 서준이를 응원해요!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가……!

-작품별로 모형을 산다면 돈은 엄청 깨지겠지만 전 이 디자인, 두 손 두 발 다 들고 찬성합니다.

-기본 디자인도 너무 좋아요!

=인기 많은 디자인은 전부 작품 디자인이라서 새싹(팬)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많이 아쉬웠는데ㅠㅠ

-서준이 사진을 끼워넣다니…… 응원봉 하나만 있어도 괜찮겠네요.

=22 텅장뿐인 저에게는 정말 좋은 응원봉입니다.

=333 아직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중간까지는 아쉬웠는데ㅠㅠ 서준이 오빠 프로필 사진 넣고 싶어요!

댓글들의 일부도 프린트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새싹들의 반응에 서준까지 행복해졌다.

“그 밑에 허락 댓글들도 있어.”

“허락 댓글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에 안다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의원 스노우볼 만든 팬분이랑 오버 더 레인보우 스노우볼…… 티켓볼인가? 여튼 그 디자인 만든 팬분이랑. 그 이외에도 추천 수가 많았던 디자인들을 만든 팬분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는 댓글들이야.”

“와아…….”

서준을 향한 사랑으로 모인 팬들이었다. 자신의 디자인이 멋진 응원봉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 뿌듯한 마음으로 허락했다.

-콬아에서 안 만들면 저희가 만들까요!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인 시점에서 벌써 계획을 세우고 계신 느낌적 느낌ㅋㅋㅋ

=ㅋㅋㅋㅋ 수량 조사는 언제하실 건가요!

코코아엔터가 만들지 않으면 직접 제작할 생각이 가득한 몇몇 댓글들을 떠올린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디자인을 쓰는 만큼 새싹분들이랑 계약을 할 예정이야. 게다가 작품의 저작권은 방송국이랑 제작사에 있고 디자인은 새싹분들이 만들었으니 이래저래 나눌 이야기도 많을 거고.”

계약.

그 단어에 평범한 일반인일 뿐인 팬들이 걱정된 서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새싹분들 잘 부탁드릴게요. 다호 형.”

서준의 부탁에 안다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영화 제작사, 단홍.

차에서 내린 안다호가 검은 모자를 쓴 서준에게 말했다.

“서준아. 먼저 들어가 있을래? 위에 전해줄 게 있어서.”

“네. 알았어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안다호와 헤어진 서준은 걸음을 옮겼다.

A4용지에 오디션장이라는 글자와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 쪽으로 향하는 서준과 반대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저 도착한 아역 배우들의 보호자들인 듯했다.

아무래도 다들 고등학생인 만큼 어린이 연극 ‘봄’처럼 오디션 끝까지 함께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디션장에는 심사위원들과 배우 한 명만 들어간다니까 그때처럼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

그건 좀 아쉬웠다.

그때 바짝 얼어서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던 아이나 일찌감치 신나게 탈출한 아이와는 달리 여기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실력 있는 배우들일 텐데 말이다.

“학원에서 꼭 나가라고 하더라고.”

“나는 내가 나가라고 했지. 그 이서준이랑 같은 영화에 나가는 거잖아.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아까워서 어떡해.”

으음.

나이가 적든 많든 부모의 강요로 오디션을 보는 아이들은 항상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학원까지 추가된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인 서준이 안쪽으로 향했다.

아역 배우들을 안내하고 있던 단홍의 직원, 이윤주가 서준을 발견했다.

“오디션 보러 오셨어요?”

이윤주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름이?”

이윤주는 듬성듬성 체크되어 있는 오디션 참가자 리스트로 시선을 내렸다.

혹시라도 서류심사에서 떨어진 사람이나 이서준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몰래 들어온 사람이 있을까 봐 리스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서준이요.”

“네. 이서…… 이서준?”

무의식중에 이름을 따라 말하던 이윤주가 놀라 서준을 바라보았다. 검은 모자를 쓴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

응원봉 공모전 1등 후보, ‘성덕되고싶다’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윤주가 입을 쩍 벌렸다.

이서준이었다.

진짜 이서준이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왜 이서준의 목격담이 거의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앞에서 봤는데도 이름을 가르쳐 주기까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다. 길에서 봤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거다.

‘아니.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겠네.’

잠시 얼어 있던 이윤주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이서준 배우가 여긴 어떻…… 아! 오늘 오디션 보시기로 했지!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이서준 배우가 오면 안내할 말이 있었는데……!

잠시 고장 난 듯한 이윤주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아니면 따로 대기실을 준비했는데 그쪽으로 가실래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이윤주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은 왜 저렇게 길고 피부는 왜 이렇게 좋고 이목구비는 왜 저렇게 뚜렷한지……!’

실제로 본 이서준은 화면에서 봤던 것보다 더 잘생겨서 엄청 떨렸다. 1분 1초가 아까웠지만 떨려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상기된 얼굴의 이윤주가 얼른 리스트로 고개를 내려 서준의 이름을 체크하고 번호표를 꺼내려다가 손을 멈칫했다.

‘서준이는 순서가 따로 있었는데…….’

기획팀장이 순서를 따로 정해놓았는데 실제로 서준을 만나는 바람에 정신이 아득해져 잊어버리고 말았다.

움직임이 멈춰 버린 이윤주의 모습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가까스로 서준은 맨 마지막에 오디션을 보기로 정해진 것을 기억해 낸 이윤주는 맨 마지막 번호표를 꺼냈다.

이윤주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조금 떨리는 손으로 서준에게 번호표를 건넸다.

“순, 서는 마지막이니까 편하게 기다려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스타를 만난 이윤주는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막 들어오는 아역 배우에게로 향했다.

닉네임을 바꿔야겠다. ‘성덕되고싶다’에서 ‘성덕됐다’로.

* * *

번호표를 받고 대기실로 들어온 서준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회의실로 사용하던 사무실을 대기실로 바꿔놓은 것 같았다. 추워지는 날씨에 따뜻한 음료도 있었고 낱개로 포장된 과자들도 있었다.

먼저 들어온 아역 배우들은 다들 긴장해서 음료나 과자는 입도 못 대는 것 같았다.

1차 서류면접을 통과한 아역 배우들에게 오디션용 대본이 주어졌다. 단홍에서 서준에게 보내주었던 [가제 : 여행]이 아니라 서준이 한강에서 해바라기 씨를 모으는 햄스터처럼 주웠던 대본을 고친 것이었다.

대본에는 주인공뿐만이 아니라 함께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대사도 있었다.

처음부터 조연을 노리고 온 아이들도 있었고 주인공과 조연을 함께 준비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 어떤 역이든 다들 들고 있는 대본에 집중했다. 중얼중얼 입 밖으로 대사를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긴장감이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엑스트라 자리는 무난히 받겠지 하며 생각하며 찾아온 아역 배우가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다가 자리에 앉아 침을 꼴깍 삼키고 대본을 꺼냈다.

그런 긴장감에 서준은 어쩐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대본을 펼쳤다. 연습실에서 연습했지만,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연기를 떠올렸다.

“으억!”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아이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대기실로 들어오다가 검은 모자를 쓴 서준을 발견한 김한석이 낸 소리였다. 아무래도 능력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눈이 마주친 서준이 작게 웃자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던 김한석이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고 죄송합니다, 하며 사과했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김한석이 얼른 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형도 이 타임에 오디션 보는 거예요?”

“응. 너도?”

“네. 깜짝 놀랐다니까요. 형은 오디션 따로 볼 거라고 생각해서 여기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김한석은 대기실 안 사람들이 서준을 알아보지는 않았는가 조심스럽게 살피며 물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오디션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김한석처럼 같은 연기학원이나 같은 학교의 아이들이 대기실로 들어올 때마다 아는 사람들에게로 향해 조금 어수선해진 분위기 덕분이기도 했다.

“근데 이 타임에는 우리 학교 학생은 우리밖에 없네요.”

“그러게.”

김한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많이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시간에 몰린 것 같았다.

김한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내 예고 재학생들이 가득한 오디션이라니.

‘그쪽도 엄청 치열했겠다.’

오늘 오디션을 보는 게 다행인 것 같아 안도하던 김한석의 눈에 대본을 보고 있는 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쏟아지는 시선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김한석이 미묘한 표정으로 서준을 보고 있었다. 서준이 손을 들어 양쪽 뺨을 매만졌다.

“뭐 묻었어? 왜 그렇게 쳐다봐?”

“다른 선배님들이 앞 타임에 몰려서 좋아해야 할지, 형이랑 같은 시간에 붙어서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한석의 말에 서준은 작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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