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65화 (36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5화

“으으. 서준이 형이랑 같이 오디션을 볼 줄은 몰랐는데…….”

어쩌면 첫 주인공을 할지도 몰라 조금 들떠 있던 김한석이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김한석의 말과 함께 얼어붙어 있던 적막이 깨졌다. 상상도 못 한 소식에 교실은 조금 전보다 더 떠들썩해졌다.

“선배님이랑 같이 오디션 보는 거 처음 아니야?”

“그러게. 우리가 선배님 작품에 오디션을 본 적은 있어도…….”

“그때 무서웠지.”

여울 예중 출신인 아이들이 연극 ‘거울’을 떠올렸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서준은 무섭고 멋졌다. 그런 선배님과 같이 오디션을 본다니 상상도 안 된다.

“선배님이 라이벌이라니…… 우리는 학년이 달라서 실기도 같이 안 봤잖아.”

오디션에 참가할까 생각 중이었던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입시야 재수하면 같이 볼지도 모르지만, 선배님이 재수하실 리는 없고. 어른이 돼서 같이 주인공 자리를 노리기에는 선배님이 너무 잘하시고.”

서준과 경쟁이라니.

어릴 때부터 서준의 대단함을 보고 자라온 아이들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서준의 연기를 보고 배우가 된 아이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왜 여기서 최종 보스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말이야. 2학년 선배님들은 어떻게 선배님이랑 같이 실기 시험 보신대?”

1학년들은 서준과 같은 나이라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언급되고 관심을 받으며, 서준과 같이 실기 시험을 치는 2학년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음. 그래서 안 할 거야?”

누군가의 물음에 교실이 침묵에 잠겼다.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서준과 같은 오디션이라는 게 부담되긴 하지만 오디션은 주인공만 뽑는 게 아니었다.

“선배님…… 주인공 오디션이겠지? 난 조연 지망이니까 도전해 봐야지.”

“나도. 선배님하고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기도 하고.”

하나둘 의사를 표현하는데 아직도 고민에 잠긴 아이가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주연을 노리고 있던 김한석이었다.

“한석이 넌 어떻게 할 거야?”

“으으.”

너무 아쉽다.

본의 아니긴 했지만, 캐릭터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만큼 캐릭터에 잘 이입해서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서준이 형이 나타날 줄이야.’

서준이 형이 자신처럼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연기를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엄청 잘하겠지.’

내의원 때 아픈 성녕대군 연기도 잘했고 몸의 붕괴에 괴로워하는 진 나트라 연기도 잘했다. 생존자들의 이현우는 얼마나 미친놈처럼 보였나.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연기력이 그 정도였다.

‘그래도 서준이 형보다는 못할지도 몰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리를 쥐어 싸매고 끙끙 앓던 김한석이 고개를 들었다. 굳은 표정은 무언가 단단히 각오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김한석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볼 거야. 오디션.”

“오오오!”

김한석의 말에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고 박수를 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업 종 쳤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진 아이들이 천천히 교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과서를 든 선생님이 엄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언제 수업 종이 쳤는지도 모르겠다.

“다 놀았으면 자리에 앉아라.”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도망가는 참새 떼처럼 순식간에 흩어져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다. 그 모습에 선생님이 웃고 말았다.

“발표를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해봐.”

아, 아하하하.

아이들이 영어 선생님과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 * *

“나도 해볼까?”

많은 고민과 각오가 필요했던 1학년들과는 달리, 입시는 물론이고 매년 치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서준과의 경쟁이 익숙한 2학년들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오디션 참가를 결정했다.

‘황금세대’라고 불릴 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고 항상 경쟁하는 대상이 슈퍼스타 이서준이니 대범하기도 했다.

정말로 시간이 안 되는 아이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하자 2반에 들렀다가 온 양주희가 입을 열었다.

“2반 애들도 오디션 참가한대. 이러다가 촬영장에 우리 학교 애들만 있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성민, 김주경, 양주희, 그리고 친구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있어서 누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황금세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들 잘했다.

‘재미있을 것 같네.’

왠지 바이올린 콩쿠르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바이올린 콩쿠르는 지켜야 하는 악보가 있긴 하지만.’

연기는 주관적이었다.

같은 슬픔을 연기하더라도 감독에 따라 마음에 드는 연기가 달랐다.

심사위원 앞에서 각자의 해석이 담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

그 연기가 심사위원이 될 감독의 이미지에 맞을 것.

‘아니면 감독의 이미지마저도 바꿔버릴 정도의 연기를 보여줄 것.’

오디션이야말로 연기의 콩쿠르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간질간질거렸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는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서준의 미소에 김주경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미친! 쟤 본격적으로 할 생각인가 봐!”

“넌 살살해도 된다고!”

“아하하하!”

“웃지 마!”

* * *

-이서준 오디션 본다던데.

=서준이가 오디션? 우리 서준이가?

=동명이인 아님?

=ㄴㄴ 진 나트라 이서준 맞음.

=헐. 무슨 영화길래 이서준이 오디션을 봄?

서준의 오디션 소식이 천천히 퍼져 나갔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코코아엔터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단홍과 미리 이야기를 나눈 코코아엔터는 사실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기사가 떴다.

[슈퍼스타의 오디션? 배우 이서준 오디션 본다!]

[이서준 배우가 오디션 보는 이유는?]

[영화 역逆의 제작사 단홍의 다음 작품!]

[감독 민희경? 민희경 감독에 대해 알아보자!]

[배우 이서준 응원봉 공모전 종료! 발표는 언제?]

-헐.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오디션 보네?

=작년엔 김종호가 오디션을 보더니 올해에는 이서준이 오디션ㅋㅋㅋ

=근데 김종호는 할리우드 오디션이었잖아.

=22 김종호 배우야 할리우드에 아무런 기반도 없고 유명세도 없으니까 오디션을 본 거지만 이서준은 아니잖음.

=33 한국에서도 할리우드에서도 슈퍼스타지.

-미리 짜고 치는 거 아님? 당연히 이서준이 뽑히겠지.

=그럴 바엔 그냥 확정적으로 이서준 출연! 이라고 홍보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22 아직 확정이 아니라서 플러스도 투자 안 하고 있음.

=다들 이서준이 뽑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제작사가 미쳐서 이서준이 주인공에 안 뽑히면 큰일이니까ㅎㅎ

-근데 경쟁률 장난 아닐 듯.

=왜? 어차피 객관적으로 자기 실력 판단할 수 있으면 대부분 자기 연기력이 이서준보다 못할 거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신청하는 사람 적을 거 아님?

=ㄴㄴ 뽑는 게 주인공만이라면 상관없는데 조연도 뽑는다니까. 다들 주연보다는 조연 노리고 참가할 듯.

=그러네. 서준이가 주연 맡으면 흥행을 떼 놓은 당상이고 대사 하나라도 있고 화면에 얼굴이라도 나오면 사람들한테 얼굴 알리기 쉬울 테니까.

=이스케이프에 나온 애들도 그렇고.

=드라마랑 영화 잘 나오더라.

=다들 연기도 잘함.

=게다가 보는 사람들이 한국인만이 아니라는 게 가장 매력적이지. 한국에서 영화 찍었는데 해외에서도 상영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함ㅎㅎ

=나중에 이서준이랑 영화 찍었다는 것도 대단한 이력이 될 것 같고.

-근데 영화 무슨 내용임?

=나는 모르고 갈 거임.

=22 오디션 사이트 들어가면 오디션에서 뽑을 캐릭터들 설명이 있다던데 난 안 볼 거야.

=333 이런 거 모르고 가야 재미있죠.

-(오디션 남았지만) 서준이 차기작 나온다니 너무 좋음ㅎ

=(아직 확정 아니지만) 차기작 나오기 전에 응원봉부터 나왔으면.

=이제 공모전 끝났으니 나오겠지.

-빨리 나와라! 영화관에 가져가고 싶다!(물론 영화 시작하면 가방에 넣을 거임)

-소장용, 실사용용으로 2개 사야지!!

=근데 가장 추천 수 많이 받은 디자인은 종류가 많아서 2개씩 사기 힘들 듯ㅋㅋ난 그거 좋음! 엄청 좋음! 2개씩 살거임!

=22 나도 그거 추천 눌렀는데 실제로 나오면 돈 엄청 깨질 듯 (텅장이 될 통장을 바라본다ㅠ)

=33 영화에 응원봉에…… 돈 쓸데가 너무 많아ㅋㅋㅠㅠ

=444 돈…… 돈을 모으자……!

* * *

영화제작사 단홍.

기획팀 직원들이 메일로 들어오는 오디션 신청서들을 프린트해 분류하고 있었다. 우편으로 들어온 신청서들도 있었다.

“뭐랄까…… 이서준 배우가 참가한다고 해서 신청하는 사람들이 적을 줄 알았는데 더 많은 건 기분 탓일까?”

“아니. 많아. 엄청 많아.”

오늘도 몇 번째 A4용지를 교체하고 있는 이윤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리겠네.”

“그러게 말이야. 근데 민 감독님도 서류심사 하신다며?”

“응. 다 살펴보신대.”

“……이걸 다?”

경력별로 나뉜 상자에 차곡차곡 쌓이는 신청서들이 보였다. 이윤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민 감독님 따로 생각하는 배우가 있는 것 같지?”

“역시 그렇지? 도통 이름을 말 안 해주신다니까. 이름이라도 알면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텐데 말이야.”

이윤주가 신청서들을 모아 정리한 뒤 박스 안에 넣었다. 이제 이 박스는 대본을 세밀하게 다듬고 있을 민희경 감독에게로 전해질 것이었다.

“그거 네가 올린 거 맞지?”

이윤주와 함께 신청서를 정리하고 있던 동료가 입을 열었다.

“그거?”

“추천 수 제일 많은 응원봉 디자인.”

그 말에 이윤주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도 마주 웃었다.

“1등 하면 맛있는 거 사줘.”

“당연하지! 풀코스로 쏠게!”

* * *

며칠 후.

오디션 신청 접수가 끝났다.

영화 제작사 단홍에서 정리한 상자들이 민희경 감독의 작업실로 전해졌다. 민희경 감독의 집이 좁아 단홍에서 마련한 작업실이었다.

“그럼 검토하신 신청서는 이쪽에 모아주십시오.”

기획팀장의 말에 대본의 완성도를 높이느라 초췌해진 민희경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쉬엄쉬엄하시고요.”

“네. 걱정 마세요.”

기획팀장이 떠나고 민희경 감독은 경력별로 나뉜 상자 중 가장 경력이 없는 상자에서 신청서들을 꺼냈다.

이서준 배우가 오디션을 본다고 기사가 났는데도 오히려 신청서가 많았다. 아마 조연이나 엑스트라로도 출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제출한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민희경 감독은 자신이 떠올린 이미지와 어울리는 배우가 있으면 오디션에 부를 생각이었다.

민희경 감독이 신청서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일단 사진을 살폈다. 붙여진 프로필 사진들을 보며 자신이 떠올리는 이미지 속 캐릭터와 비슷한 모습이 있는지 살핀 후 옆에 내려놓았다. 보고 내려놓고 보고 내려놓았다. 한 장 한 장 상자 안에 든 신청서가 줄어들수록 민희경 감독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점점 끝이 보였다.

그렇게 한 상자가 완전히 비워졌다.

“없어……!”

텅 빈 상자를 보며 민희경 감독이 절망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배우여서 ‘경력 0’이라고 적힌 이 상자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강에서 만났던 검은 모자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내 이름을 못 봤나.’

아니면 겨우 몇 달 사이에 한강에서 봤던 대본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려나.

오디션 공고에 올라간 건 대본 전체가 아니라 짧은 캐릭터 소개였다. 개봉할 예정인 작품인 만큼 대본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대본을 보고 고른다던 소년의 모습을 잠시 떠올린 민희경 감독은 침울한 얼굴로 마른세수했다.

“아냐. 내가 몰랐던 것뿐일 거야.”

절망하던 민희경 감독이 애써 희망을 품고 그다음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 상자는 하나의 작품에 출연한 이력을 가진 배우들의 신청서가 모인 ‘경력 1’ 상자였다.

많고 많은 작품을 민희경 감독이 전부 봤을 리는 없었다. 큰 상업 영화부터 작은 독립영화, 너튜브에 올라오는 웹 드라마도 있었고 CF도 있었다.

“거기에 나왔을 수도 있어.”

민희경 감독이 숨을 고른 후 상자를 열었다. 사진을 가장 먼저 살피고 실망한 후 영화 속 이미지와 닮은 캐릭터는 없나 생각했다.

그렇게 경력 1, 경력 2, 경력 3 으로 이어진 신청서 검토에 민희경 감독의 어깨가 점점 아래로 축 처졌다. 결국, 박스 안의 신청서를 모두 봤지만, 한강에서 만났던 검은 모자의 소년은 발견하지 못했다.

“……할 수 없지.”

그 이서준 배우를 보류하고 오디션을 진행한 것만으로도 민희경 감독은 최선을 다했다.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찍을 수 있겠지.”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무거운 한숨을 내쉰 민희경 감독은 [가제 : 여행]에 나오는 조연들이나 엑스트라들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들을 하나둘 분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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