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63화 (36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3화

“오디션 말입니까?”

“네.”

민희경 감독이 조금 긴장한 채로 대답하자 기획팀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직원들은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서준 배우를 언급한 건…… 대본이 좋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확정된 게 아니죠. 오디션을 바라신다면 이서준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았을 때 오디션을 열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것도 그런데…….”

민희경 감독은 만에 하나라도 이서준 배우가 덜컥 출연하겠다고 해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싫은 게 아니다.

연기 천재인 이서준이 자신의 작품을 연기한다는데 싫다는 감독이 어디 있겠나. 그저 너무 훌륭한 배우라서 제가 생각했던 주인공의 이미지를 덮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민희경 감독의 귀에 기획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서준 배우가 나오는 것하고 나오지 않는 것하고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비부터 홍보까지요.”

기획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흥행이 될지 말지 개봉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서준이 출연한 작품들은 항상 흥행했다. 민희경 감독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제안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민희경 감독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이것 참.

기가 죽은 감독의 모습에 기획팀장과 직원들이 눈을 데굴 굴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서준 배우 말고 민희경 감독이 주인공으로 생각한 배우가 있는 것 같은데 도통 이름을 말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설마 민희경 감독이 배우의 이름을 모른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기획팀장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그럼 홍보로 쓰는 건 어떻겠습니까?”

“……홍보요?”

“코코아엔터에 이런 대본이 있는데 오디션을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만약에 대본이 마음에 들면 오디션에 참석하겠죠.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기획팀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봐온 이서준 배우는 작품 욕심이 많은 배우라서 오디션이 있어도 대본이 마음에 들면 참가할 겁니다.”

솔직히 이서준 또래의 배우들 중에는 이서준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도 없기도 했다. 오디션을 본다고 해도 십 중 십. 이서준 배우가 합격할 터였다.

직원 하나가 반색하며 말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서준 배우가 오디션에 참가하면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겠죠. 누가 그 이서준 배우가 오디션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하겠어요!”

다들 밝은 얼굴로 홍보 계획을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오디션 보는데 이서준 배우가 끼어 있으면 당연히 내정자로 보이지 않을까요?”

평범한 배우들 중 슈퍼스타가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건 그래요. 이서준 배우가 나온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배우들도 있을 것 같아요.”

직원들의 말에 기획팀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원래 이쪽이 그렇지, 뭐. 자신보다 잘하는 배우가 경쟁자가 되는 건 항상 있는 일이야. 오디션 장소에서 김종호 배우 만나는 거하고 같은 거지. 할리우드와 한국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

그러고 보니 그 사건이 있었지.

직원들과 민희경 감독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같이 오디션 봤던 배우들이 관광객으로 캐스팅됐죠? 만약에 이서준 배우가 참가한다면 저희도 오디션 중에 다른 배역으로 캐스팅하면 될 것 같아요. 미리 공지해 놓죠.”

“오디션 두 번 볼 필요도 없고요.”

“이서준 배우가 있어도 참가한다는 건 연기력도 꽤 있다는 이야기겠죠.”

물론 모두 이서준이 대본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희희낙락 김칫국을 들이마시는 단홍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희경 감독은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

‘이서준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그 애는 이서준 배우가 나와도 오디션에 참가할까?’

오디션이 진행된다고 해도 그게 문제였다.

민희경의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이서준이라는 이름에 막상 겁먹고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민희경 감독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왜 당연히 참가할 것 같지?’

마음에 드는 대본이라면 그 어떤 대단한 배우가 나와도 의욕을 불태울 것 같은, 반짝이던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 민희경 감독이 웃고 말았다.

“그럼 오디션 관련 사항은 좀 더 회의를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기획팀장의 말에 민희경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서준의 팬카페, [새싹부터]가 들썩였다.

작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응원봉 디자인 공모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코코아엔터에서 공모전이 열릴 거라는 걸 미리 공지에 올려뒀기 때문에 다들 공모전이 시작함과 동시에 [새싹부터] 내의 [응원봉 공모전]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서준이라는 화제를 놓치지 않는 기자들도 공모전이 시작함과 동시에 기사를 올렸다.

[배우 이서준, 응원봉 디자인 공모전 시작!]

[배우의 응원봉? 응원봉이 있는 배우들을 알아보자!]

[배우 이서준 응원봉 공모전 상금과 상품은?]

[응원봉 공모전 참가 방법은?]

-드디어……!

=이제 디자인 뽑으니 실물로 나올 때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드디어 나오는구나!

-배우한테 응원봉이라니 신기하네. 언제 쓰는 거야?

=팬미팅? 드라마 볼 때?

=서준이 팬미팅 언제하려나ㅎ

-오…… 상금 꽤 많은데?

=그러게. 1등 말고도 주네. 역시 코코아엔터.

-참가상도 있음.

=서준이 프로필 사진 포스터라니! 바로 펜 들었음ㅎ

=222 그림 못 그리는데 참가해야겠다.

=333 프로필 사진이야 나오자마자 뽑아놨지만ㅋㅋ 회사에서 주는 건 또 다르지.

-공모전 참가 어떻게 함?

=[새싹부터]에 들어가셔서 [응원봉 공모전] 게시판에 올리시면 됩니다:)

[새싹부터]에도 공모전과 관련된 글이 많이 업로드되었다.

-디자인 10개 올리면 포스터 10장 주나요!?

=아뇨. 아이디당 디자인 하나씩만 인정돼서 한 장만 준대요.

=ㅠㅠㅠ하긴 포스터를 노리는 새싹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심사하는 것도 힘들 거에요.

=전시용, 소장용으로 2장 가지고 싶었는데ㅠㅠ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글 올렸어요!

=앗, 디자인 봤어요! 꼭 1등 하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역시……디자인 퀄리티가 장난 아닌데요?

=해외 새싹분들도 엄청 올리셨어요. 덕 중 덕은 양덕……ㅎ

=새싹들이 많으니 금손분들도 많네요. 구경만 해도 너무 좋아요.

=(링크) 이거 보셨어요? 이분은 3d 프린터로 실제로 만든 듯;;;

=……이야……불까지 들어오네요.

-금손들의 홍수 속…… 똥손 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듭니다. 포스터를 위해 그려봤습니다ㅠㅠ

=저도요. 제발 코코아엔터 직원분들이 슬쩍 보고 지나쳤으면 좋겠네요ㅎ

=22 안 보셔도 되는데;;; 눈만 버릴 거예요.

=헐.

=왜 그러세요?

=응원봉 디자인 심사. 서준이도 참가한대요.

=……미술학원 지금부터 다니면 안 되겠죠?

=ㅋㅋㅋㅋ

작년 응원봉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디자인해 온 새싹들과 포스터를 위해 낯선 펜을 든 새싹들의 디자인들이 하나둘 게시판에 올라왔다.

청룡님을 사랑하는 어린 팬들이 크레파스나 색연필로 그린 응원봉 그림부터 3D로 반짝반짝 빛나며 360도 회전 영상까지 첨부된 응원봉까지.

세상은 넓고 금손은 많았다.

코코아엔터 내의 연습실에서 파인패드로 천천히 디자인 하나하나 보고 있던 심사위원, 서준이 크레파스로 그려진 응원봉에 미소를 지었다.

실물로는 만들기 힘든 아이들만의 귀여운 아이디어가 적힌 응원봉들이 서준과 새싹들을 웃음을 자아냈다.

“다호 형. 이건 부메랑처럼 날아간대요.”

“날아가는 건 위험해서 안 돼.”

팬미팅 때 부메랑처럼 날아다닐 응원봉을 떠올린 안다호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안다호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실물로 제작한 게 많네요.”

“응원봉 공모전 시작하고 너튜브에 제작 영상 많이 올라오더라고. 조회수도 꽤 되고.”

어떤 디자인이 응원봉이 될까 궁금해하는 새싹들과 배우의 응원봉 공모전이라는 신기한 화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터였다. 그 배우가 이서준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다호 형. 골라야 하는 기준이 있어요?”

“정해놓은 기준은 없으니까 천천히 살피면서 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봐. 1등은 그중에서 회의로 정할 계획이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다시 파인패드로 시선을 옮겼다.

서준이 배우라서 그런지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과 관련된 디자인들이 많았다.

[어린이 연극 봄에서 디자인을 떠올렸어요.]

손잡이 끝에 달린 동그란 여의주 속 물결치는 갈기를 가진 청룡이 보였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어른스러운 용, 어린 용, 장난꾸러기 용 등 8회차 동안 나왔던 용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목소리도 나온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애들이 엄청 좋아하겠네요ㅎㅎ

-서준이가 목소리 연기를 해주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여의주 안의 청룡이 움직이면 멋질 것 같습니다.

[진 나트라 응원봉입니다!]

중앙의 작고 까만 구에 새하얀 실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주위에 새까만 그림자가 마치 폭발하듯 밖으로 뻗어 나간 디자인이었다. 삐죽삐죽 끝이 솟아 있는 것이 꼭 새까만 왕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멋진데요! 꼭 왕관 같아요!

-역시 서준이하면 진 나트라를 빼놓을 수 없죠!

-저 작고 새까만 구가 진 나트라인가봐요. 빛은 몸이 붕괴하는 걸 나타내는 거죠.

-밑에 윌리엄(곰인형) 응원봉은 아기자기하던데 이건 다크다크하군요ㅎ 쉐도우맨3편이랑 잘 어울립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내의원 응원봉이에요!]

동그란 볼 안에 성녕대군의 거처를 배경으로 성녕대군으로 보이는 작은 인형과 허의관으로 보이는 큰 인형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그림에서는 마치 스노우볼 같이 새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스노우볼이라니……! 스노우볼이라니……!!

-으으. 이건 사고 싶다!

-응원봉 아니라도 파시는 건 어때요?

=저작권 때문에 안 될걸요ㅠㅠㅠ

=일해라!! 코코아엔터!! KBC!!

-다른 캐릭터들도 있었으면 좋겠네요ㅠㅠ 태종하고 충녕대군하고ㅠㅠ

“이건 아이디어가 좋아서 KBC랑 상품으로 만들까 논의 중이야.”

신기하고 멋진 아이디어가 많아 작품과 관련된 제작사나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갖고 싶어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입니다.]

투명한 지구본 안에 바이올린과 활이 교차하듯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티켓처럼 보이는 작은 종이들이 쌓여 있었다. 흔들면 황금빛 티켓들이 스노우볼의 눈처럼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투명한 지구본에는 자신이 갔던, 가고 싶은 나라를 개인별로 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진짜 월드투어같은 느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게 갖고 싶네요.

=앗. 영화객 님 안녕하세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이스케이프 응원봉입니다.]

투명한 박스 속.

위로 올라오려는 좀비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인형이 보였다. 이스케이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블루투스 스피커도 천장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그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금방이라도 기어 올라와 발목을 잡을 것 같은 좀비들이었다.

-ㄱㅆ : 이스케이프 테마파크에서 디자인했습니다. 좀비 체험은 여전히 무섭더라구요ㅋㅋ

-이건 밤에 보면 무서울 듯;;;

-피규어로 만드시는 건 어떨까요? 하나 예약합니다.

=222 예약합니다.

그 이외에도 노란색 우산이 포인트인 [봄이 돌아왔다]와 이현우 구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생존자들] 등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응원봉 디자인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응원봉 공모전은 [새싹부터]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밖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새싹부터]에 가입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서준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흥미를 가졌다. 디자인 중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들은 다른 사이트에도 퍼졌다.

그중 특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응원봉 디자인이 있었다.

[생존자들(감독판) 응원봉 떴다!!]

새싹부터-응원봉 공모전 게시판에 생존자들! 그것도 감독판!! 응원봉 떴다!

(링크)

-감독판ㅋㅋㅋ 응원봉ㅋㅋㅋ

-……감독판에 응원봉이라니…… 생각도 못 했다.

-다 같은 마음인지ㅋㅋ 이서준 팬들도 글 안보고 댓글 먼저 쓰고 있더라ㅋㅋ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안 봐도 혼돈과 절망과 피가 가득할 것 같음ㅎ

-……이 죽일 놈의 호기심…… 보러 간다!

=222 너무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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