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60화
민희경은 어색한 얼굴로 한 영화 제작사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바쁘게 뛰어다니는 직원들이 보였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민희경에게 한 직원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제 시나리오 좀…….”
말끝을 흐리는 민희경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제작사인 만큼 시나리오란 단어만 들어도 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메일이나 우편으로 대본을 보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설득하겠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를 제작할 마음이 들 거라고 회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난리 치는 감독들이 몇 명 나타나자 그에 따른 대응 방법이 생겼다.
“먼저 오신 감독님이 계셔서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민희경을 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은 몇 개의 칸막이로 한 테이블씩 나뉘어 있었다. 아마 회의실 대용으로 쓰는 것 같았다. 칸막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 이야기가 모두 들렸지만 다들 상관하지 않는 듯 보였다.
민희경이 자리에 앉았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옆자리에 놓아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나리오를 영화 제작사에 보냈지만 영 답신이 없었다.
‘……까인 거겠지.’
그래도 조금이나마 설득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찾아와 버렸다. 민희경이 가방에서 가지고 온 시나리오를 꺼냈다. 한 장 한 장 삐뚤어지지 않게, 글자 하나도 번지지 않게 인쇄한 시나리오였다.
막 앞장을 열어 읽기 시작할 때 칸막이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된다니까요!”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민희경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커다란 목소리는 열심히 말을 늘어놓았다.
“올여름에 생존자들이 얼마나 화제였습니까! 한 이야기에서 두 개의 결말을 만들어내고! 감독판은 관객들이 애정을 가진 캐릭터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는데도 흥행해서 결국 영화관에서 개봉했죠!”
“네. 할리우드 제작사마저 예상치 못한 흥행이었죠.”
제작사의 직원인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열정적인 상대편과는 달리 차분하다 못해 지루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렇죠! 그러니까 제 시나리오도……!”
“할리우드잖아요.”
감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민희경은 자신에게 하는 말도 아닌데 어깨를 움츠렸다.
“할리우드에, 데이비스 가렛에, 이서준까지 있는데 흥행 못 할 리가 없잖습니까.”
“제 시나리오도 탑 배우들이 나와준다면 흥행……!”
“그리고 제프리 로덕스 감독은 첫 상업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감독입니다. 그래서 ‘그’ 할리우드 제작사가 두 번째 상업영화를 함께 작업했죠. 왜 감독의 역량은 이야기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네요.”
삐딱한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팔랑,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희경이 숨을 죽이고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결말에서 배역들이 전부 죽어버리는군요. 요새 들어오는 시나리오와 시놉시스가 다 이렇습니다. 게다가 비슷한 결말로 촬영에 들어간 영화들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그런…….”
“파격?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첫 번째일 때의 이야기죠. 두 번째, 세 번째일 때는 다들 예상해 버립니다. 아, 결말쯤엔 다 죽겠구나, 하고.”
“……다 죽는 결말은…… 생존자들이 처음은 아닙니다.”
“생존자들이 가장 유명하죠. 아. 감독님이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드실 수 있으면 되겠네요. 그럼 첫 번째가 될 겁니다.”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단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레 놀란 민희경이 몸을 바로 했다.
감독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곧 자신의 모습이 될까 봐 초조해진 민희경이 침을 삼켰다.
곧 직원이 나타나 민희경의 앞에 앉았다.
인사도 없었지만 긴장한 민희경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놉시스 먼저 보죠.”
“아, 네!”
민희경이 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시놉시스를 건넸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직원을 민희경이 숨을 죽이고 살폈다. 미간을 찌푸리던 제작사 직원이 첫 장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입을 열었다.
“민희경 감독님?”
“네.”
“이번이 상업영화 데뷔이신가요?”
“아, 아뇨. 두 번째입니다.”
민희경이 무릎에 올려놓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첫 작품 제목이?”
“우리 동네…… 입니다.”
6년 전 작품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민희경의 말에 기억을 더듬던 제작사 직원이 뒷목을 주물렀다. 들어본 적이 없는 제목인 걸 보니 망했나 보다.
“그래서 그런가?”
“……네?”
아뇨. 하고 고개를 저은 제작사 직원이 시놉시스를 내려놓았다.
민희경의 시선이 잠시 그 옆에 놓인 대본을 향했다가 직원에게로 향했다. 들춰지지도 않은 대본에 민희경이 한숨을 삼켰다.
“요즘 작품 트렌드가 바뀌고 있거든요.”
“……네?”
민희경이 눈을 끔벅이자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그동안 아역 배우 붐이 일었던 건 이서준이라는 슈퍼스타 때문이지 않습니까. 주인공부터 조연까지, 좋은 역할이나 중요한 역할이 있을 때는 대부분 아역을 집어넣었죠. 혹시라도 이서준 배우가 출연할까 봐 말입니다.”
이서준이 출연하지 않으면 다른 아역 배우에게로 자리가 돌아갔다. 수요가 많아지니 공급도 많아졌다. 연기 잘하는 아역 배우가 늘고 그런 아역 배우들과 이서준을 보며 아역 배우를 꿈꾸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그렇게 아역 배우 붐이 만들어졌다.
“아, 네.”
민희경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우 이서준을 대입해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상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나리오가 이서준 배우의 마음에 들어 그가 출연해 줬으면 했다.
‘힘든 일이겠지만…….’
민희경은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근데 이서준 배우가 성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올해 고2인데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잖습니까. 거기에 고3이 되면 대입 실기나 수능, 미리내 예고 졸업 공연 같은 거로 일 년을 날릴지도 모르고요.”
직원의 말에 민희경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 배우가 워낙 유명하니까 연극영화과 합격은 따놓은 거겠지만…… 몇몇 배우들을 보면 다른 경험을 중요시해서 수능 보고 다른 학과로 들어가는 일도 있거든요. 만약에 이서준 배우도 그렇게 되면 내년은 거의 활동 안 하는 거라고 봐도 될 겁니다. 그럼 올해 아니면 내후년에 촬영에 들어갈 건데 올해는 몇 개월 안 남았고…… 내후년이면 성인이잖아요.”
“……네.”
커피로 목을 축인 직원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 아역 배우라서 조금 제한받은 경향이 있어서 폭력 신도 적었고 다치는 장면도 거의 없었고, 직업물은 더더욱 없었고 범죄자는 더더더욱 무리였죠. 그 제한이 풀리는 겁니다. 게다가 20살이면 아직 고등학생 역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이서준 배우가 지금까지 학생 역을 했는데 고등학생 역할이 끌릴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 않습니까?”
직원의 말에 민희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아역 배우로서 남은 시간이라니.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항이라서 머리가 멍해졌다.
“몇몇 제작사들은 그대로 코코아엔터로 대본을 보내고 있지만, 이서준 배우를 노리는 제작사들은 대부분 내후년을 바라보면서 시나리오를 모으고 있습니다.”
제작사 직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시놉시스를 보았다. 첫 장에 적힌 주인공의 나이가 눈에 띄었다.
18살.
현재 18살인 배우 이서준을 노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망한 감독이 이서준 배우를 원한다니.
가벼운 비웃음이 직원의 얼굴 위를 스쳤다.
“그래서 저희 제작사도 주인공이 성인인 작품만 받고 있습니다.”
직원은 이외에도 시놉시스의 결점을 늘어놓았다. 민희경이 놓친 곳도 있었고 이해가 안 되는 설명도 있었다. 제 시놉시스에서 좋은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자 민희경의 어깨가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주인공을 성인으로 수정하시고 지금까지 말했던 부분을 고쳐서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드리겠다고 하는 말을 직원도 민희경도 믿지 않았다. 수정해서 대본을 보내도 창고에 처박히거나 아예 인쇄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민희경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새롭게 들어온 감독에게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희경은 한숨을 삼키며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대본과 시놉시스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하늘 높이 올라간 햇살에 눈이 부셨다.
너무 눈이 부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 *
“……그만할까?”
벤치에 앉아 한강을 멍하니 바라보던 민희경은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몸을 움찔 떨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이었다. 입 밖으로 내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 그대로 모든 게 다 싫어졌다.
“……그만하자.”
지친 얼굴의 민희경이 천천히 손을 움직여 가방에서 시나리오를 꺼냈다.
혹시나 삐뚤어질까 봐 심혈을 기울여 찍은 스테이플러를 만지작거리다가 하나둘 떼어냈다. 어차피 집에 가면 버려야 할 테니까 말이다. 민희경은 폐지가 될 대본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열심히 찍었던 첫 상업영화가 망하고 벌써 6년.
더 이상 찾아주는 제작사도, 사람들도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적은 대본까지 퇴짜를 맞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뭘 하나…….”
평생을 해왔던 영화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민희경의 눈에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이 들어왔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장비들을 풀어헤치며 촬영을 준비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몇몇 아이들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배경이 될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을 때다…….”
잠시 멍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던 민희경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영화 일도 그만두기로 했겠다, 슬슬 집에 가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민희경은 산책 겸 교통비도 아낄 겸 산책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쯤 걷고 있었을까.
“저기…….”
누군가 이어폰을 끼고 있는 민희경의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민희경이 놀라 이어폰을 빼고 시선을 돌렸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듯한 여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민경희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떨어지는데 괜찮은 거예요?”
민희경의 고개가 여성의 손가락을 따라 뒤로 향했다.
“헉……!”
익숙한 종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화들짝 놀란 민경희는 재빨리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
“으아아아…….”
가방이 활짝 열려 있었다.
정신을 얻다 뒀는지 가방 지퍼를 닫는 것을 잊어버렸다. 스테이플러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마치 전단지처럼 흩날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희경은 엉거주춤 허리를 숙여 제 발아래에 있는 시나리오 한 장을 주워 들다가 몸을 멈추었다. 영화도 그만 찍기로 했는데 줍는다고 의미가 있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민희경이 이내 종이를 집어 올렸다.
“……내가 버린 거니까.”
산책로나 근처 잔디로 떨어진 종이들은 쉽게 주울 수 있었지만, 더 멀리 날아간 종이들도 있을지 몰랐다. 그저 보이는 대로 모으고 있던 민희경은 신발 자국이 진하게 남은 시나리오를 보고는 안쓰럽게 보며 주워 들었다.
그렇게 다시 산책로를 되돌아가며 떨어진 종이들을 챙기던 민희경이 눈앞의 종이를 주우려고 할 때 낯선 손이 민희경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놀라 고개를 드니 익숙한 종이뭉치가 먼저 보였다.
아.
다행히 끝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었다.
“……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방이 열린지도 모르고 걷는 바람에…….”
저절로 감사 인사가 나왔다.
그다음 고개를 드니 모자챙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이 빙그레 웃자 민희경은 자신도 모르게 소년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 * *
“우리 동네 감독님이셨구나. 저 봤어요. 우리 동네.”
‘따라가지 않고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괜찮겠지.’
바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은 서준이 순서대로 정리한 대본을 즐겁게 읽어 내려가며 입을 열었다. 군데군데 비는 틈이 있었지만 읽는 데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앞부분을 보니 이제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서준의 미소에 얼떨결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민희경이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귀신에 홀린 것 같네.’
그 잠깐 사이에 감독과 배우라는 정보도 교환하고 말도 편하게 하게 되었다. 감독을 그만두기로 했지만, 자신을 소개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조금 찔리는 기분으로 옆에 앉은 소년을 바라보던 민희경은 이내 웃고 말았다.
대본을 봐도 되냐고 물으며 눈을 반짝이는데 안 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버린, 사람들에게 밟혀 더러워진 대본을 소중히 들고 있는 모습에 조금 울컥해 흔쾌히 보여주었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서준의 능력을 알 리 없는 민희경이 이내 떠올리길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재미없었을 텐데…….”
“음. 확실히 이야기가 단조로워서 그러긴 했어요.”
서준의 말에 민희경이 쓰게 웃었다.
첫 작품을 개봉한 후 많이 듣던 평이었다. 내용이 한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 너무 지루하고 앞으로의 전개도 예상이 간다는 평이 떠올랐다.
“그래도 연출은 멋졌어요.”
서준은 대본을 바라보며 [우리 동네]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들을 이야기했다.
[우리 동네]를 봤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찍은 장면들이 어린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민희경의 눈가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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