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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58화 (35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58화

>벤자민 : 바이올린 배운 지 이제 3년이라고?

>벤자민 : 제이슨이 3년째 배웠을 때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제이슨 : …….

>제이슨 :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맘때의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어느새 벤자민 교수도 대화에 참여했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의 메시지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제이슨 무어도 수빈이처럼 꿈속에서 바이올린의 꿈요정을 만났다.

하지만 그 이후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벤자민 모튼 교수와 만나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다. 그사이 꿈요정의 축복은 천천히 소멸해 갔을 터였다.

‘하지만 수빈이는 다르지.’

꿈요정에게서 축복을 받자마자 곧바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마 재능이 피어나는 속도도 제이슨 무어보다 빠를 것이었다.

‘그 끝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훗날, 수빈이가 제이슨 무어를 뛰어넘을지 말지는 이제 온전히 수빈이에게 달렸다.

요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제2바이올린 파트’를 마스터하고 ‘제1바이올린 파트’를 연주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수빈이가 떠올라 피식 웃은 서준이 휴대폰을 두드려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수빈이랑 연락해 보실래요?

>벤자민 : 물론!

>제이슨 : 물론이지!

예전 ‘그레이 바이니’를 연기하는 서준을 봤을 때처럼, 재능 넘치는 아이의 등장에 의욕이 넘치는 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 * *

“벌써 2학기라니!”

“이제 몇 달만 있으면 고3이라니!”

2학기가 시작한 지가 벌써 몇 주나 흘렀는데 점점 다가오는 고3과 수능의 압박에 연기과 2학년 1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날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기 위해 급식실로 향하는 중에도 그랬다.

“진짜 한 것도 없는데 시간만 흐르는 느낌이야.”

올해 같은 반이 된 김주경의 말에 양주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 예중 졸업 공연 당시, 형사 역을 맡았던 전성민이 옆에 있는 서준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는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고 바쁜데 말이지.”

화제가 서준에게로 향했다.

볼을 긁적이는 서준을 보며 주경이 웃으며 말했다.

“음악과에서도 공개된 악보로 연습 많이 한다더라. 연습할 때 좋다면서.”

성민과 주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어. 어려운 테크닉만 모아놓은 연습곡 같다나? 근데 연습곡이라고 하기엔 너무 곡이 좋아서 긴가민가하고 있대.”

“너튜브에 다른 악기들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영상도 엄청 올라왔더라. 피아노도 있었고, 첼로도 있었고.”

“난 기타도 봤어.”

악보를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 영상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프로부터 이제 갓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좋아해 주고 있어 서준은 정말 좋았다.

“피아노 두 대로 연주하면 멋있겠다!”

“그래도 원곡이 제일 낫지.”

맛있는 음식이 가득 담긴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고 있는 친구들에게 서준이 말했다.

“나 오늘은 따로 먹을게.”

주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랑 먹으려고?”

“한석이랑 먹으려고.”

“아. 한석이.”

한쪽으로 향하는 서준의 시선을 따라 세 친구의 시선도 옆으로 움직였다. 친구들과 조용히, 하지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한석이 보였다.

“네가 가면 애들 체하는 거 아니야?”

성민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 *

“연주자 빈. 초등부 금상 받은 애 맞지?”

“매실초 2학년 김수빈!”

미리내 예고 1학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악과, 연기과, 미술과 나눌 것 없이 여기 모인 아이들의 공통점은 ATR 바이올린 콩쿠르에 갔다는 것이었다.

“연주 진짜 잘하지 않아?”

“난 음악은 하나도 모르는데 이미지가 딱 떠오르더라. 그래서 그림 그렸어.”

“오오. 역시 미술과.”

아이들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물론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번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은 음악과 바이올린 전공 1학년이 입을 열었다.

“연주자 이름 보고 익숙하다 싶었는데 말이야.”

“나도 기사 찾아봤어.”

연기과 1학년이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찍어놓은 스크린샷을 보여주었다.

[제8회 ATR 바이올린 콩쿠르 수상자들]

<제8회 ATR 바이올린 콩쿠르가 막을 내렸다 …(중략)… 초등부 금상, 김수빈(매실초, 2) …(하략)>

김수빈…… 수빈…… 빈 ……빈!

처음 영상이 올라왔을 때,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처럼 딱 맞는 진실에 놀라지 않은 1학년이 없었다.

“서준 선배님 동생이라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볼 줄이야…….”

“제2바이올린 연주자가 초등학생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겠지?”

그 말에 바이올린 전공의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 연주라기엔 너무 잘했지.”

“오히려 초등학생이라서 더 잘 맞는 부분도 있었고.”

“그건 역시 선배님이 작곡해서 그렇겠지?”

“역시 이서준 선배님……!”

연신 감탄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거 말해도 돼? 빈 찾는 사람들 많던데.”

“그러게. 입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겠어.”

“당연히 안되지. 서준이 형이 밝히려고 했으면 이름을 써놨을걸.”

반찬을 폭풍 흡입하고 있던 김한석의 말에 작은 목소리로, 활활 타오르던 아이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그건 그러네.”

“입에 지퍼를 꽉 채우고 있겠습니다.”

“그럼 정말 고맙지.”

친구들에게서는 듣기 어려운, 귀에 쏙쏙 박히는 발음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김한석과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식판을 든 이서준 선배님이 뒤에서 웃고 있었다.

“서준이 형!”

“선배님!”

화들짝 놀라는 1학년들의 목소리에 급식실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가 사라졌다. 서준이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마나를 충전해 놓은, 급식실 벽의 문양이 반짝였다.

“여기 잠시 앉아도 될까?”

“네넵! 앉으세요!”

“당연하죠!”

서준의 물음에 김한석이 얼른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쩌다 보니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1학년과 서준의 맞은편에 앉게 된 1학년이 김한석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식판을 테이블 위에 놓은 서준이 의자에 앉아 1학년들을 둘러보았다.

여울 예중에서 봤던 아이도 있었고 미리내 예고에서 처음 본 아이도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준을 보는 건 처음인 1학년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빈이 누군지 알게 됐나 보네.”

“……네.”

서준은 웃는 얼굴이지만 괜스레 찔린 1학년들은 소심하게 대답했다. 역시 알면 안 되는 거였나 보다. 침울해 보이는 1학년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혼내는 거 아니야. 그냥 수빈이가 더 클 때까지 비밀로 해줬으면 싶어서, 부탁하러 왔어.”

“당연히 비밀로 할게요!”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김한석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도 참새처럼 짹짹댔다.

“저도요!”

“저만 믿으세요. 제가 애들까지 단속할게요!”

“? 네가 제일 입이 가볍잖아. 선배님. 애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걸요.”

활기찬 1학년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아! 밥 먹던 중이었지.

1학년들도 얼른 수저를 들었다. 그러는 중에도 시선은 서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유로운 건 서준의 전화번호도 아는 김한석뿐이었다.

“근데 왜 이름을 그대로 쓴 거예요?”

“맞아요. 우리 말고도 추리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

제2바이올린 연주자가 초등학생, 그것도 2학년이라는 걸 누가 추리할 수 있을까.

1학년들도 콩쿠르에서 서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터였다.

‘빈이라는 이름도 꽤 있고.’

도대체 빈이 누굴까?

사람들의 궁금증에 정체를 숨긴 ‘빈’을 찾는 너튜브 영상들도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많은 ‘빈’들과(벤자민, 제이슨과의 인연으로) 외국의 ‘빈’들까지. 애칭까지 포함한 목록은 참 길었다. 몇몇 후보가 등장하고 코코아엔터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곧 기사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안다호의 말이 있었다.

‘근데 수빈이는 없었지.’

그 목록에는 수빈이는커녕, 초등학생들도 없었다.

통통한 버터구이 새우를 한 입 베어 문 서준이 말했다.

“원래는 가명으로 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꼭 자기 이름 넣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본명을 넣었다가는 난리가 날 테니까 나도 준이라고 적고 동생도 빈이라고 적었지.”

형이 하는 건 뭐든지 따라 하고 싶은 아홉 살 꼬마의 고집이었다.

“그렇구나.”

냠냠.

그 이서준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심을 먹으려니 역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천천히 식판은 비워지고 있었다.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 들어줄게. 물론 어려운 건 안 된다?”

서준이 찡긋 웃으며 말하자 1학년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 그럼 사인해 주실 수 있어요?”

여울 예중 출신이 아닌 미술과 1학년이 더듬더듬 말했다.

“사인? 해줄게. 다른 건 없어?”

“어어…….”

슈퍼스타의 ‘다른 건 없어?’에 아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포스터요! 사인도 해주시면……!”

“어떤 영화 포스터를 줄까? 회사에 있으면 가져다줄게.”

“저는 응원봉이요!”

음악과 1학년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번쩍였다.

“저도 응원봉이요. 나오면 분명히 품절돼서 못 살 것 같아요.”

“맞아. 분명히 못 살 거야.”

“근데 선배님. 응원봉은 언제 나와요? 저희 누나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저도요!”

아이들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이내 웃으며 말했다.

“글쎄. 슬슬 응원봉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요?”

서준과 아이들이 떠들고 있을 때 흐뭇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던 김한석은 징징 진동하는 휴대폰을 알아차렸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꺼내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낯선 번호에 고개를 갸웃한 김한석이 문자를 읽었다.

첫 번째 문장부터 왼쪽으로 아래로 눈동자가 움직였다. 천천히 김한석의 몸이 굳어갔다.

“……어?”

잘못 본 건가?

눈을 비비고 봐도 문자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김한석의 오른손에 있던 젓가락 두 개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새싹부터]에 올라와 있는 응원봉 디자인 중 어느 것이 가장 멋있는가, 떠들고 있던 서준과 아이들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몇 초 사이 김한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서준과 1학년들이 화들짝 놀라 김한석에게 말을 걸었다.

“한석아.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혀 씹었어?”

“피! 피 나냐?”

완전히 얼어 대답도 못 하는 김한석의 모습에 서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원인을 찾으려는 서준의 눈에 김한석이 들고 있는 휴대폰이 들어왔다.

“한석아. 잠시만.”

서준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김한석의 떨리는 눈동자가 휴대폰을 따라 움직였다. 서준은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문자를 발견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1학년들도 숨을 죽이고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는 서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은영병원입니다.]

[김한석 환자분의 검진 결과, 아래와 같이 정밀검사 요구함으로 나왔습니다. 꼭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시어 재검사 및 치료를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하아.

숨도 안 쉬고 문자를 읽은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건강검진 재검사래.”

“……재검사요?”

어쩐지 그 말에 1학년들이 더 놀라는 듯 보였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왜 그렇게 놀라? 공복이 아닐 때 검사하면 재검사 뜨곤 하잖아?”

작년 건강검진 때 한지호도 그랬다. 도저히 못 참고 뭘 먹었다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공복이 아니거나 몸을 열심히 움직인 후에 건강검진을 하면 가끔 뜨는 게 재검사 요청이었다.

하지만 안도하는 서준과 달리 1학년들까지 김한석과 같이 창백한 얼굴로 변해버렸다. 서준만 이해하지 못한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선배님. 한석이 재검사 벌써 했어요…….”

“……뭐?”

사색이 된 미술과 1학년의 말에 서준이 되물었다.

재검사를 벌써 받았다고?

“……그게 두 번째 결과인가 봐요.”

2번이나 재검사를 받게 되다니.

그러고 보니 문자에도 [건강검진]이라는 말 대신 [검진]이, 일반적인 [병, 의원]이라는 말 대신 [상급종합병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은 대학병원 같은 3차 병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석아…….”

재검사의 재검사라니.

벌써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가득 찬 1학년들이 울멍울멍한 눈으로 김한석과 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슬슬 정신이 드는지 김한석의 표정도 친구들의 표정과 비슷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살짝만 쳐도 펑펑 쏟아낼 것 같았다.

그런 김한석과 1학년들의 모습에 서준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했다.

잠깐 만난 고래도 소중히 여기는 서준인데 주위 사람들의 건강도 챙기지 않았을까.

[(선)로버족 진단사제의 지팡이-중상급]

대상의 상태 이상을 ‘전부’ 알 수 있습니다.

‘로버윈’이라는 신을 모시는 종족의 고위 사제는 모든 상태 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사제와 상태 이상을 전부 알 수 있는 진단사제, 두 가지로 나뉜다.

치료사제의 수명으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상태 이상을 완벽하게 파악하여 치료 범위를 좁힐 수 있는 진단사제의 능력은 필수였다.

치료는 불가능.

오직 ‘알’ 수만 있는 능력.

하지만 그 범위는 아주 넓어 정말 조그마한 상태이상이라도 모두 알아낼 수 있었다.

서준은 이 능력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선)로버족 진단사제의 지팡이가 발동됩니다.]

서준이 다시 한번 [(선)로버족 진단사제의 지팡이]로 김한석을 살펴보았지만, 김한석은 아픈 곳 하나 없이 아주아주 건강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1학년들에게 ‘내 능력으로 진단해 봤는데 한석이는 괜찮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말해도 이상한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속이 답답해진 서준은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여기서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간 김한석도 1학년들도 울음을 터뜨릴 터였다.

‘한석아. 너 완전 멀쩡해.’

그런 서준의 눈빛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대단한 선배님의 짠한 눈빛에 김한석과 1학년들의 표정이 더욱 침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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