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56화
시상식이 끝나고 관객석 앞쪽에 앉아 있던 콩쿠르 참가자들이 하나둘 관객석에 앉아 있는 자신의 일행들에게로 향했다.
상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가족들의 위로를 받으며 홀을 떠났고 수상자들은 축하를 받으며 환한 얼굴로 기쁨을 나눴다.
“형! 은수야!”
초등부 금상 트로피를 든 수빈이도 관객석으로 달려왔다. 폴짝폴짝 뛰는 모습 하며 붉게 물든 두 뺨에 환한 얼굴은 수빈이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름이 불리지 못한 김희상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 1등 했어!”
수빈이의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서준은 웃으며 수빈이에게 보랏빛 라일락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수빈아 축하해. 멋진 연주였어.”
“수빈이 오빠. 1등 축하해!”
“헤헤. 고마워!”
은수도 가지고 있던 분홍빛 장미꽃다발을 수빈이에게 주었다.
들고 있던 트로피와 꽃다발을 아빠에게 재빨리 건네준 수빈이가 활짝 웃으며 두 꽃다발을 받았다. 트로피도 좋지만 서준이 형과 은수에게 받는 꽃다발이 더 좋았다.
“수빈아. 엄마는?”
우리 수빈이! 잘했다 잘했어!
서준과 은수, 어른들에게 부둥부둥 받으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던 수빈이가 김희상의 물음에 얼른 대답했다.
“엄마는 교수님이랑 이야기하고 온대.”
“교수님?”
“응. 빈터 교수님.”
낯설면서도 누군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교수.
율리아 빈터.
뜬금없이 나온 이름에 서준과 어른들은 눈을 깜빡였다.
잠시 후.
이야기가 그렇게 길지는 않았는지 최수희는 금세 돌아왔다. 조금 고민이 있는 것 같은 최수희의 얼굴에 서준과 어른들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자.”
“그래. 수빈이 축하파티도 할 겸.”
김희상과 최수희의 말에 제일 기뻐한 건 오늘 하루 종일 서준이와 함께 있게 된 수빈이와 은수였다.
“정말 서준이 형이랑 같이 우리 집에 가?”
“그럼 나 서준이 오빠랑 같이 탈래!”
“나도!”
서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은 차 한 대에 우르르 모여 타고 다른 차들은 뒤따라 오기로 했다. 수빈이네 차는 꽃다발로 가득했고 은수가 아직 카시트에 앉는 터라 자동으로 아이들은 은수네 차에 타게 되었다.
서은찬이 운전대를 잡고 서준이 조수석에 앉았다. 서은혜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읽은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신이 난 두 아이가 떠들고 있었다.
“수빈아. 은수야. 저녁 뭐 먹고 싶어?”
“난 피자!”
“난 치킨!”
곧바로 나오는 메뉴에 서은찬과 서준이 웃고 말았다.
* * *
저녁은 두 아이의 희망대로 피자와 치킨,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소고기 파티였다.
치킨도 먹고 피자도 먹고 고기도 먹고. 다들 평소보다 많이 먹은 것 같은 식사가 끝나고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첫 화제는 율리아 빈터 교수였다.
“유학이요?”
서은찬과 김수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은혜와 이민준도 다르지 않았다.
수빈이의 아빠, 김희상은 입까지 쩌억 벌린 상태였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최수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수빈이 실력이면 외국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 내 생각에도 수빈이 정도의 재능이면 잘할 것 같긴 해.”
유학.
유럽에서 활동했던 피아니스트 최수희도 눈 깜빡하면 늘어나는 수빈이의 실력에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물론 바이올린 쪽은 잘 모르니까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오늘 바이올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데다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율리아 빈터 교수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니 고민이 되었다.
“어릴 때 가야 적응하기도 쉽고 언어 습득도 빠르다고 하시더라고. 바이올린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만약에 간다면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주시겠대.”
최수희의 말에 김희상이 울상을 지었다.
수빈이를 보내기는 싫은데 그게 또 수빈이를 위한 길이라면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 미국에서도 행복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준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수빈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서준과는 달리 수빈이는 1년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야 할 터였다.
‘게다가 유학이 1년으로 끝나진 않을 거고.’
짧으면 몇 년, 아예 활동까지 외국에서 이어간다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날이 드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도 소개해 준다고 하시고…….’
고민 끝에 가는 쪽으로 결론 내린 김희상이 입을 열려던 찰나,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빈이는 어쩌고 싶어? 유학 가고 싶어?”
서준의 물음에 복숭아를 냠냠 먹고 있던 수빈이가 고개를 갸웃하고 대답했다.
“형. 유학이 뭐야?”
“음. 외국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하는 거야. 멋진 선생님들도 많고 훌륭한 연주자들도 많을 거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들도 많을 거야.”
“레베카처럼?”
‘오버 더 레인보우’의 삼총사 중 하나, 레베카.
레베카도 바이올린 전공자였다.
수빈이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베카 같은 친구도 있겠지.”
으음.
수빈이가 우물우물 복숭아를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른들의 시선이 수빈이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유학을 간다면 외국에서 몇 년이고 생활해야 하는 수빈이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은 상태였다.
“서준이 형은?”
“나?”
“응!”
“나야…….”
미국에 갈 일은 있어도 유럽에 갈 일이 있을까?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계속 한국에 있겠지?”
“으음. 그럼 안 갈래.”
“안 가? 왜? 유학 가면 바이올린 더 많이 배울 수 있는데?”
서준과 수빈이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희상이 물었다.
아빠의 물음에 수빈이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서준이 형이랑 노는 게 좋아. 그리고 서준이 형이랑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도 좋고. 친구들도 여기 있고 선생님도 여기 있으니까.”
“은수도 여기 있어!”
은수가 번쩍 손을 들며 말하자 수빈이가 환하게 웃었다.
“맞아! 은수도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유학 안 갈래!”
수빈이의 말에 김희상과 최수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 가고 싶다고 하니 억지로 보낼 수도 없었다. 더 커서 유학을 보내도 수빈이라면 잘 할 테지만…….
“……안 간다니까 더 보내고 싶네.”
“그러게 말이야.”
아쉬움 가득한 말에 다들 웃고 말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책상 위에 텅 빈 오선지를 펼쳤다.
가끔 영감이 떠오르면 취미 삼아 작곡을 하는 터라 오선지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작곡한 곡을 밖으로 내보인 적은 없었다.
‘이번 곡은…… 모르겠네.’
혼자 연주하는 곡이 아니니까 말이다.
피식 웃은 서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콩쿠르에서 급하게 적느라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 간략하게 단어만 적힌 것도 많았다. 하지만 메모를 보며 콩쿠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이내 떠올랐던 선율이 서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음음.’
서준은 허밍을 하며 다섯 개의 줄이 그어진 곳에 동그란 음표를 그려 내려갔다.
반짝이는 세 개의 능력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서준은 그 선율을 고스란히 오선지에다가 그려냈다. 샤프를 잡은 오른손이 지휘를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오선지 위를 맴돌았다.
이번 곡의 주인공은 서준과 수빈.
서준은 수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을 그대로 악보에 담아내고 있었다.
콩쿠르에서 보았던 부족했던 점들, 평소 연습에서 버릇처럼 나오던 부분들을 떠올리며 음표를 그려나갔다.
기호 하나하나 음표 하나하나 정성껏 그려나가던 서준이 잠시 샤프를 멈추었다.
일반부의 바이올린 연주를 볼까, 키즈카페에 갈까.
두 가지의 선택이 놓였을 때 수빈이의 선택은 키즈카페였다.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수빈이를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었다.
‘나라면 중등부랑 일반부까지 다 봤겠지.’
만약 ‘연기’와 관련된 콩쿠르였다면 ‘2학년의 서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을 터였다.
그게 자신과 수빈이의 다른 점이었다.
서준은 많은 생을 겪은 덕분에 ‘연기’라는 한 길을 어렸을 때부터 쭉 이어올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연기’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빈이는 다르지.’
인생 1회차라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수빈이가 서준처럼 바이올린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건 힘들었다.
‘그래서도 안 되고.’
좀 커서는 몰라도 아직 어렸다.
세상에 즐겁고 신기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에만 목매는 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 수빈이에 대해 많이 알려지겠지.’
오늘 기사가 나가고 한두 명 관심을 두고 다음 콩쿠르에서 또 관심을 끌면 언젠가 주머니 속 송곳니처럼 수빈이의 빛나는 재능이 대중에게 알려질 터였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 속 어린 천재는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배우 이서준이 연기 천재라고 불리며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걸어오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서준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첫 생의 실패와 그 이후의 삶에서 겪은 많은 경험이 있었다. 생의 도서관에 쌓여 있는 삶의 책들은 그것을 끊임없이 서준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인생 1회차인 수빈이에게도 그런 존재가 필요할 터였다.
실패해도 괜찮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들 천재라고 기대할 때 누군가는 평범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서준은 생각했다. 그게 서준 자신이라면 수빈이도 한결 편하게 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제이슨이랑 벤자민 교수님도 소개해 주자.’
특히 제이슨과는 비슷한 재능을 가졌으니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먼저 연락이 올지도 모르겠네.”
어느새 음표로 가득 찬 오선지를 내려다보던 서준이 웃으며 악보에 마지막 선을 그었다.
* * *
“수빈아. 형이랑 이거 같이 연주해 볼래?”
“응!”
서준의 말에 수빈이가 눈을 반짝였다.
무슨 악보인지도 물어보지 않고 대답하는 수빈이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악보인지 안 궁금해?”
“궁금해! 근데 무슨 악보든 서준이 형이랑 연주해 보고 싶어!”
수빈이의 말에 서준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수빈이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제목도 적혀 있지 않은 악보에 수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형이 수빈이랑 연주하고 싶어서 작곡한 곡이야.”
“정말?”
악보의 첫 장을 읽으려다가 놀란 수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곡은 엄청 대단한 사람들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서준이 형이 작곡했다니…… 역시 서준이 형이다!
수빈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래서 수빈이가 형이랑 같이 연주해 줬으면 좋겠어.”
“좋아! 지금 하자, 형아!”
너무 신이 나서 호칭까지 어려졌다.
도도도 방으로 달려간 수빈이가 바이올린을 들고왔다. 서준도 가지고 온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악보부터 볼까?”
“응!”
머리를 맞대고 악보를 읽어 내려가는 서준과 수빈이의 모습을 김희상이 카메라로 찍어 어른들에게 보내주었다.
<서준이가 작곡했다는데
<수빈이랑 같이 연주하는 것 같음.
>최수희 : 어떤 곡인지 궁금하다! 나중에 악보 봐야지!
>이민준 : 뭐 하는지 궁금했는데 작곡했나 보네.
>서은혜 : 그러게. 나중에 연주해 주려나?
>김수련 : ……ㅎㅎ
>서은찬 : 형. 서준이한테 말 좀 전해주실래요?
귀여운 두 아이의 모습에 즐거워하는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서은찬과 홍보팀장 김수련은 미래를 직감한 듯 허허 웃으며 서준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수빈이가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며 악보를 보고 있을 때 김희상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응?”
“은찬이가 그거 공개할 거냐는 데?”
김희상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수빈이에게 물었다.
작곡은 자신이 했지만, 연주는 수빈이와 함께 할 테니 수빈이의 의견도 중요했다. 게다가 이 곡은 수빈이를 위한 곡이 아닌가.
“수빈이는 어쩌고 싶어?”
“음. 다른 사람들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수빈이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열심히 연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응!”
흐뭇한 얼굴로 서준과 수빈이를 바라보고 있던 김희상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김희상 : 공개할 거래.
김희상에게서 도착한 답장에 코코아엔터가 들썩였다.
* * *
즐거운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에 익숙해질 때쯤 너튜브 채널 [JUN]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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