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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52화 (35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52화

버스에 붙은 광고를 보던 서준이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플러스+에 업로드된 [생존자들-감독판]은 베어라운드와 플러스+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 번 보고 나면 그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다시 볼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독특한 중독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준은 플러스+에서 들어온 정보를 떠올렸다.

한 번 보고 안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다들 [생존자들-감독판]과 제프리 감독의 인터뷰, 너튜버들의 리뷰를 보며 [생존자들]을 해석하고 있을 때쯤, 누군가 [감독판]을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SNS 글을 올렸고 여러 나라의 관객들도 이에 동조했다.

끝없이 올라가는 좋아요 수와 밀려들어 오는 요청에 베어라운드는 이벤트 형식으로 짧은 기간 동안 영화관에 [생존자들-감독판]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물론 홍보는 [생존자들-개봉판]과 비슷할 정도로 진행되었다.

“관객 수도 예상보다 많다며?”

서은혜의 물음에 서준이 킹즈 에이전시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응. 상영 기간을 며칠 더 늘릴까 생각하고 있대.”

아직도 개봉 시기를 잡고 있는 영화계 사람들이 들었다면 좌절할 만한 이야기였다.

[생존자들-개봉판]에 [감독판]까지.

올해 7월, 8월의 영화판은 [생존자들]이 싹쓸이한 것과 다름없었다. 몇 년에 걸쳐서 팬이 쌓인 마린사의 시리즈 영화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저 한 편뿐인 재난영화라서 더 충격적이었다.

영화계로서는 엄청난 흥행의 원인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분석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인터뷰였다.

제프리 감독의 인터뷰에는 배우들에 대한 칭찬이 가득했다. 중심을 잡아주었던 밀란 첼런과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베네사 올슨, 그리고 첫 작품이지만 성인 배우 못지않게 해낸 앤드류 워커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두 배우가 있었다.

<언젠가 두 배우의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쓰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제프리 감독이 그렇게 말할 정도의 배우.

데이비스 가렛과 서준 리.

데이비스 가렛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 영화계가 노릴 수 있는 배우는 한 명뿐이었다.

‘역시 이서준인가.’

아무리 연기력이 좋아도 배우 한 사람만으로 작품을 흥행시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대중의 취향에 맞는 대본, 대본에 어울리는 연출을 할 줄 아는 감독, 함께 연기할 배우들, 충분한 제작비까지. 고려할 것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촬영했던 작품 중 흥행하지 못했던 영화가 없었던 슈퍼스타.

‘작품을 보는 눈이 좋은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물론 운이 좋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작품 한 작품이 도박 같은 이쪽 세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흥행 대박을 바라는 영화계로서는 어느새 흥행의 토템이 되어버린 이서준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관심의 영향으로 코코아엔터로 들어오는 대본과 시놉시스가 더 많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월요일이면 안다호가 집에 들고 올 대본들을 떠올린 서준이 헤헤 웃었다.

“아빠도 엄마랑 같이 영화관 가서 봤는데 텔레비전이랑은 느낌이 다르더라.”

“그치?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해.”

미리내 예고 친구들과 [감독판]을 본 서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관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생존자들-감독판]은 작은 텔레비전 화면과 다른 박력이 있었다.

상영관 사방에 설치된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건물이 무너질 때마다 쿵쿵 울리는 소리는 관객들의 몸까지 불안하게 울렸고 진득하고 선명하게 남은 붉은 색감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식은땀까지 보일 것 같은 배우들의 표정 연기는 저절로 관객들의 숨을 멈추게 했다. 배우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나오는 불안과 초조, 절망은 관객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박력에 다시 [감독판]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기간이 짧으니 더 열심히 보는 관객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이쪽 영화관과 저쪽 영화관에서 동시에 나타났다는 너튜버 영화객의 목격담이 나올 정도였다.

“제프리 감독님 차기작도 베어라운드에서 찍을지도 모른대.”

“그래?”

[개봉판]은 물론이고 추가 촬영 일정 없이 촬영했던 [감독판]마저 생각 이상의 흥행을 거두니 제작을 맡은 베어라운드는 잔뜩 신이 났다. 그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차기작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생존자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좀 있으면 도착하겠다.”

운전대를 잡은 이민준의 말에 서준과 서은혜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서준과 부부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은하수 센터.

어린이 연극 봄을 올렸던 곳이었다.

“저번에 연극 볼 때 왔었지?”

“응. 그거 재미있던데.”

어린이 연극 봄 이후로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 들른 적이 많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준과 부부가 내렸다. 회색 모자를 푹 눌러쓴 서준은 평소보다 존재감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이 많네. 서준아. 꽃다발은 나중에 꺼내자.”

“응.”

서은혜의 말에 서준은 옆자리에 놓아둔 노란색 프리지어 꽃다발과 보라색 라일락 꽃다발을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그사이 이민준이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어. 도착했어. 응.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끊고 말했다.

“안에 있대. 들어가자.”

“별관이었지?”

서준과 부부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가는 은하수 센터 별관 쪽으로 향했다. 다들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본관보다 조금 작은 별관 앞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제8회 ATR 바이올린 콩쿠르]

서은혜와 이민준이 생소한 표정으로 그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하고 연기를 위해 이것저것 배우고 있는 아들이 있으면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근데 콩쿠르는 처음이네.”

“서준이는 대회는 별로 관심 없으니까.”

취미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긴 하지만 콩쿠르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서준이라, 서준 자신도, 부모인 서은혜와 이민준도 콩쿠르나 대회가 조금 낯설었다.

“연기 대회 같은 게 있으면 나갈 거지?”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작게 웃었다.

“서준이는 1등도 하고 싶고 같이 연기할 배우들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꼭 나갈걸.”

“하하.”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엄마 아빠의 말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 * *

은하수 센터 별관 안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ATR 재단에서 주최하는 [ATR 바이올린 콩쿠르]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가 참여하는 큰 규모의 바이올린 콩쿠르였다. 규모가 큰 만큼 본선 참가자도 많았고 참가자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긴장하지 말고!”

“잘할 거야!”

대기실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듯 단정하게 차려입은 참가자들은 응원하러 온 친구들과 친인척과 함께 온 가족들은 별관 로비에서 만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별관 안으로 들어선 서준과 부부가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이민준!”

그때 로비 구석에서 누군가 팔을 번쩍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김희상이었다. 그 옆에는 김희상의 아내, 피아니스트 최수희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준과 부부가 웃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좀 가까이 가서야 귀여운 정장을 입고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 보였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수빈아.”

김희상과 최수희의 사이에 야무지게 바이올린 케이스를 맨 김수빈이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반가운지 알 것 같아 서준과 부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안녕! 형!”

서준이 쭈그려 두 팔을 벌리자 뛰면 위험하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는지, 빠름 걸음으로 다가온 수빈이 서준을 꼬옥 껴안았다.

둥기둥기 꼭 껴안은 두 아이의 모습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형. 그래서 여기서는 약하게 하고 이 부분은 강하게 할 거야. 따따 딴! 하고.”

“음음. 좋은데?”

“정말?”

두 뺨이 붉게 상기된 수빈이가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 아니, 서준과 함께 이곳저곳 연필로 표시된 악보를 보며 열심히 이야기하는 사이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빈이 친구들은 안 온대?”

“수빈이 친구들이 아직 어리잖아. 오래 집중을 못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참가자들 연주할 때 방해하면 안 되니까 못 불렀어.”

최수희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은 아차, 싶었다.

서준은 2학년 때도, 그보다 어릴 때도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아주 얌전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초등부에 2학년은 수빈이뿐이라며?”

“응. 보통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저학년부,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학년부로 나눠서 진행하는데 이 콩쿠르는 다르더라고. 그래서 본선에 진출한 건 5학년, 6학년뿐이야.”

확실히 주위를 둘러보아도 참가자들 중 수빈이의 또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예선전은 언제 한 거야? 예선전 때도 응원하러 왔을 텐데.”

“그러게. 미리 말 좀 해주지. 수빈이가 서준이 안 불렀다고 뭐라고 안 해?”

이민준의 말에 김희상이 허허 웃었다. 확실히 아빠보다 서준이 형을 더 좋아하는 수빈이라면 입을 꾸욱 다물고 삐쳤을지도 몰랐다.

“예선전은 영상 심사라 부를 수도 없었어.”

“영상 심사?”

“큰 회사가 주최해서 그런가, 참가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김희상의 말에 최수희가 말을 덧붙였다.

“ATR재단이 주최하잖아. 여기서 상 받으면 여울 예중하고 미리내 예고 지원할 때 가산점 받을 수 있대. 물론 다른 음대에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뜬 서은혜와 이민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제법 진지한 참가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럼 참가자들 엄청 잘하는 거 아니야? 왜 이런 콩쿠르를 신청한 거야?”

이민준의 말에 김희상이 볼을 긁적였다.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그동안에는 콩쿠르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수빈이었다.

악기는 다르지만, 쭉 음악을 해온 최수희는 대회나 콩쿠르 같은 경쟁이 김수빈의 바이올린 사랑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그동안 묻지 않았다.

“그게…… 수빈이가 콩쿠르 나가고 싶다길래 찾아봤거든. 이것저것 찾아서 보여주니까 제일 큰 콩쿠르에 나가고 싶다고 하잖아.”

최수희도 애매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건 5학년, 6학년 형 누나들이 나가는 대회라고, 엄청 엄청 큰 대회라고 겁주니까…… 더 좋아하는 거 있지?”

……아하.

서은혜와 이민준의 시선이 서준과 수빈이에게로 향했다. 혹시라도 수빈이가 무대 위에서 연주를 잘하지 못해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걱정 근심이 가득한 표정의 김희상과 최수희도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악보를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똑 닮은 두 아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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