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51화 (35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51화

일명, 꿈 엔딩.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무(無)로 되돌리는 마법과도 같은 엔딩이었다.

이번 [생존자들]과 같은 경우에는 모두를 감동시켰던 완벽한 해피엔딩이 꿈이 되어버리고 모두를 낙담하게 만들었던 배드엔딩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터라 사람들의 반응이 더 격렬했다.

-마지막에 웃는 표정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행복했던 개봉판은 이현우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22 솔직히 그렇게 죽은 사람 하나도 없이 살아남는다는 건 좀 이상하지.

-돌에 깔렸는데 살아남는 것도 이상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영화잖아. 영화.

-근데 영화니까 그 모든 게 꿈일 수도 있음.

-진짜 꿈이었냐! 개봉판ㅠㅠ!

-꿈이라니……! 꿈이라니……!

예상대로 채팅창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영화객이 적절히 개입했다.

“네.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던 개봉판과는 달리 감독판은 애매하게 끝납니다. 개봉판과 감독판을 따로따로 본다면 상관없겠지만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면 많은 생각이 드는 결말이죠. 먼저 첫 번째 의문이 떠오릅니다. 미쳐 버린 이현우의 환상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영화객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난 꿈 아니었을 것 같음. 이안 위버의 과거까지 이현우가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음.

-22 그런 과거가 없는 보통 아이라면 이현우에게 달라붙지도 않지.

-글쎄. 그냥 이안 위버가 사교성이 좋은 애가 아니었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함. 이안 위버의 과거는 이현우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 것 같음.

-……이안 위버의 과거가 환상이라고?

-……안돼…… 개봉판이 의심 가기 시작했어(절규)

-222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수상해지기 시작했다(의심)

-왠지 연극 ‘거울’이 떠오르는 이 기분.

-ㅋㅋㅋㅋㅋ

-영화객님은 꿈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청진기를 주시하게 만들었던 연극 ‘거울’을 잠시 떠올리던 영화객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 영화를 따로따로 생각한다면 이안 위버의 죽음 사건으로 나눠진 평행세계일 수도 있고 두 영화를 하나로 생각한다면 이현우의 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하네요.

“원래 영화란 게 개인의 해석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꽉 닫힌 이야기도 좋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품은 일상생활을 할 때도 떠오르고 자기 전에도 떠오르는 법이죠.”

-으으. 그래서 잠을 못 자겠음.

-평행세계라도 슬픈데, 꿈이라면 더 슬퍼ㅠㅠ

-난 평행세계로 생각할래.

-22 꿈이라면 너무 꿈도 희망도 없는 듯.

-꿈이라는 결말도 괜찮지 않나?

-ㅇㅇ 갑자기 꿈이었다!는 것도 아니고 이현우가 앞에서 어떻게 미쳐가는지 보여줬잖으니까.

-근데 꿈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개봉판도 못 볼 듯.

-나도ㅠㅠ

“개봉판이 꿈이었는지, 평행세계였을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그럼 감독판 결말의 두 번째 의문. 이현우는 죽었을까요? 안 죽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죽었을 것 같음. 삐이-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응급처치를 하면 살아나는 사람도 있으니까.

-22 제목이 생존자들이잖아. ‘들’이긴 하지만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난 죽었을 것 같은데. 제목이야 개봉판에 맞춘 걸 수도 있지.

-하긴. 등장인물이랑 줄거리도 비슷한데 다른 이름으로 나오는 게 더 이상했을 것 같음.

-바로 옆에 구급대원 있었으니까 안 죽었을 것 같다!

분분한 의견에 영화객이 웃으며 말했다.

“제프리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독판에도 완벽한 배드엔딩을 위해 쿠키영상이 있었다고요.”

-‘사실은 전부 꿈이었다’ 엔딩에 너무 놀라서 이젠 무섭지도 않음.

-진짜 뭐가 나와도 안 울 자신 있어요.

-다 죽는 엔딩보다 배드엔딩이 어디있냐.

영화객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합동 장례식 장면이랍니다.”

-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

뭐가 나와도 울지 않겠다던 채팅창이 순식간에 눈물로 가득찼다.

-장례식이라니ㅠㅠ 갑자기 확 와닿네.

-안 울겠다고 했는데ㅜㅜ

“이현우, 이현우의 부모, 레이먼드 위시, 위시 가족, 잭슨 밀러, 신시아 린드버그의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하더군요.”

-……? 영화객님. 한 사람 빠졌는데요?

-우리 이안은?

“자, 생각해 봅시다.”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인터뷰에선 ‘합동 장례식’과 ‘영정사진’ 이야기뿐이었지만 영화객은 더 깊게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감독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영화객의 일이었으니까.

영화객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안이 거기 있었다는 걸 누가 알고 있을까요?”

-? 이현우 있잖아.

-걘 죽었다잖아. 합동 장례식.

-그러네.

-같이 다녔던 레이먼드, 잭슨, 신시아도 죽었고.

-위버 부부가 알고 있겟지.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영화객이 얼른 되물었다.

“갤러리아 몰에 버린 자식을 과연 그 부부가 찾으러 왔을까요?”

-왜 아이 혼자 놔뒀냐고 물을까 봐 안 나타날지도.

-……헐?

-그러네?

-그런 최악이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지독하지.

-시체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님?

영화객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들것에 실려가던 이현우는 말했습니다. 레이먼드 위시와 잭슨 밀러, 신시아 린드버그의 위치를. 근데 단 한 군데만 말하지 않았죠.”

영화객이 낮은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이현우가 구했으니까요.”

채팅창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구조대원의 손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아기 인형을 떠올렸다.

-……워…….

-이미 구했으니까(환각이지만) 알릴 필요가 없었겠구나ㅠㅠ

-이안ㅠㅠ

-그래도 구조대가 샅샅이 찾아봤다면 나오지 않았을까?

“구조대가 이안 위버의 시체를 찾을 동안 갤러리아 몰은 그 상태로 있었을까요? 묻혀 있던 폭탄이 터져 무너졌을 수도 있고 화재가 일어날 수도 있죠. 실제로도 이런 사고가 있을 때 시체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이안ㅠㅠㅠ

-이현우는 노력했는데ㅠㅠ

-근데 이안이 죽을 때는 이현우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길을 제대로 기억할 수도 없었어ㅠㅠ

-안타깝네ㅠㅠ 이안은 죽어도 울어줄 사람도 없고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구나.

-장례식 때도 사진도 없으니…… 정말 아무도 모름ㅠ

-그렇게 착한 아이가 학대받고 자라다가 그렇게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고 죽어버렸음ㅠㅠ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지ㅠㅠ

-아무도 이안 위버란 착하고 귀여운 아이가 있었다는 걸 알지못하겠지.

-그 짧은 생에 행복한 기억도 별로 없을 텐데ㅠㅠ

-ㅜ계속 눈물만 나옴ㅠㅠ

“원래는 이런 내용의 쿠키영상까지 넣은 배드엔딩을 구상했는데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현우의 죽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려던 쿠키 영상이 빠지자 이현우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편집 전 : 이현우(빈사상태)-쿠키영상(이현우 죽음)/영화 끝/

-편집 후 : 이현우(빈사상태)/영화 끝/쿠키영상(삭제)

-오. 설명 감사합니다.

-배드엔딩 쿠키영상은 잊어야겠다. 이안이 너무 불쌍해.

-22 이현우도 살아 있다고 믿어야지.

-근데 다들 죽었는데 혼자 살아 있는 것도 굉장히 슬픔.

-ㅠㅠ눈물이 앞을 가리네ㅠㅠ

-결국 다 죽었다는 거잖아ㅠㅠ

-생존자들이 아니라 생존(했었던)자들 아님?

-오…….

생존했었던 자들.

감독판의 내용을 꿰뚫는 제목에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생존자들은 같은 세트장에서 같은 날, 감독판과 개봉판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같은 배역, 비슷한 줄거리, 비슷한 대사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력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 * *

[플러스+, 업로드 5일째! ‘생존자들-감독판’ 조회 수는?]

[‘생존자들’의 제프리 로덕스 감독 인터뷰 전문(번역)!]

[데이비스 가렛과 이서준의 즉흥 연기!]

[수정과 수정과 수정! 촬영하면서 만들어진 ‘생존자들’!]

[평행세계냐, 꿈이냐. ‘생존자들’의 진실은?]

[‘생존자들’ 감독판의 새로운 이름?]

-감독판 다시 보기 너무 힘들어.

-솔찍, 나는 재미있었음.

=222 뭐랄까. 영화계의 단짠단짠이랄까.

=단맵단맵이겠지.

=그것도 눈물이 안 나올 정도로 매운맛……ㅋ

=222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물도 안 나옴ㅋㅋ

-평행세계겠지?

=꿈 아니려나?

=정신 건강에 좋은 쪽으로 생각해ㅎ

-개봉판이 너무 희망차서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감독판은 너무 현실감 넘치구요???

=전 앞으로 그냥 현실감 없는 영화만 보기로 했습니다. 영화는 현실감이 없어야죠!!

=개봉판(꿈과 희망)을 봤는데 그냥 눈물만 나더라. 우리 이안ㅠㅠ 현우야ㅠㅠ

-난 재미있게 봤음. 물론 영화라서 배드엔딩도 괜찮다는 거임.

=22 나도 감독판 잘 봤음.

=제프리 감독 차기작도 궁금하네요!

-새로운 이름이 뭐야?

=생존(했었던)자들. 영화객 라이브에서 나옴.

=제목부터 안 좋은 예감이 팍팍 드네.

개봉한 지 3주가 넘어가면서 점점 줄어들던 [생존자들]의 관람객들이 다시 한번 늘어났다. 누가 봐도 [감독판]의 효과였다.

“감독판도 플러스에서 영화 부분 1위하고 있네.”

플러스+에 접속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던 송유정의 말에 임예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에서도 1위래! 억. 유정아. 이거 봐!”

임예나가 휴대폰을 송유정에게로 들이밀었다. 송유정의 눈이 화면으로 향했다.

[제목 : 이안 위버 이야기 봤음?(감독판)]

감독판에선 아무도 이안 위버의 이야기를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함.

게다가 쿠키 영상(안 나왔지만)에선 시체도 못 찾는다며?

난 꿈 엔딩보다 그게 더 싫음ㅠㅠ

-근데 더 헬게이트도 있음.

=ㄱㅆ) 뭔데?

=이안 위버 보험금.

=ㄱㅆ) 오……(심한 욕)

“오……미친…….”

“근데 진짜로 이럴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임예나의 옆에 앉은 송유정도 임예나처럼 휴대폰으로 [생존자들]의 해석과 후기를 읽어갔다.

“영화객님 리뷰도 재미있었는데 다른 사람들 해석도 재미있네.”

“오오. 이것 봐.”

임예나가 다시 휴대폰을 내밀었다. 송유정의 눈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영화 ‘생존자들’ 불판(개봉판+감독판)]

-엄마 아빠 살아 있어서 좋았음. 영상 통화하던 엄마 아빠 근처에 등산복 보이더라. 다른 관광객들도 살아남은 것 같음.

=옷이 화려해서 눈에 띔ㅋㅋ

-폭탄이 터진 것치고는 화면에 나왔던 사람들 중에는 특별히 죽은 사람은 별로 없는 듯.

=순한 맛이라서 그래.

=22 진짜 제작사 때문에 시청 가능 연령 낮추려고 피나 시체 같은 안 좋은 이야기는 거의 지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한곳에 모은 매운맛이 나올 줄이야.

=그걸 보고 나니 개봉판이 얼마나 행복한 결말인지 알게 됨.

-난 내가 이렇게 꿈과 희망이 가득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줄 이제 깨달음.

=22 해피엔딩은 꽉 닫은 해피엔딩이 최고지. 그 누구도 절대 죽어선 안 돼!

=개봉판 봤을 때는 이게 말이 되냐고, 다 살아 있다니 너무 현실성 없는 거 아니냐고 불평했는데…… 매운맛은 너무 맵고요?

=222 맵찔이는 그냥 순한 맛만 먹어야 할 듯.

=333 나도 생존자들 후기에 그렇게 적음ㅎ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으나 전부 살아서 현실감이 없다. 적어도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근데 감독판 본 뒤에 후기에서 석고대죄함ㅎㅎ

=444 설마 다 죽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555 이안 위버가 그렇게 빨리 죽을 줄이야. 게다가 갤러리아 몰에서 대사했던 등장인물들은 다 죽었어.

-감독판 보고 개봉판 봤는데 아기 인형 개봉판에도 있더라.

=22 처음 개봉판 볼 땐 그냥 스쳐지나갔는데 설마 이렇게 쓰일 줄이야.

-개봉판이랑 감독판은 비슷한 장면에 비슷한 대사가 많은데도 완전 다른 느낌.

=그 괴리감이 너무 좋아ㅋㅋ

=오…… 취향 존중.

-정말 신기함. 장소도 똑같고 음악도, 등장인물도 비슷한데 사건 하나 바뀌었다고 다 바뀜.

=등장인물이 똑같은 전혀 다른 영화 보는 느낌.

=22 두 개 다 재미있어ㅋㅋㅋ

-끝부분에 하늘에서 구조대원들 돌아다니는 장면 보여주잖아? 근데 개봉판에서는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감독판에서는 들것이 하나도 없음.

=오…… 와…….

=더 이상 생존자들이 없다는 소리잖아.

“그렇구나.”

송유정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장면까진 신경 쓰지 못했다. 임예나가 신이 나서 말했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은 노을빛이 개봉판보다 색이 강해. 완전 피빛!”

“으. 얼른 보자.”

오늘 두 사람은 임예나의 본가에서 큰 텔레비전으로 [생존자들-감독판]을 보기로 했다.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에 베어라운드의 로고가 뜨자 송유정과 임예나가 실소하며 말했다.

“감독판 처음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원래 매운맛이 중독성이 있잖아.”

송유정과 임예나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주]

[LA]

아래로 새하얀 갤러리아 몰이 보였다.

“이거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송유정의 말에 임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보. 서준아. 저것 좀 봐.”

서은혜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이민준과 그 뒷자리에 앉은 서준이 서은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서은혜가 앉은 조수석 쪽으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대중 취향이란 건 참 알 수가 없는 것 같아.”

“그러게.”

이민준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렇게 될 줄은 서준도 전혀 몰랐다. 서은혜가 웃으며 서준에게 물었다.

“제프리 감독님은 좋아하시지?”

“응. 엄청 좋아하셔.”

잔뜩 흥분해서 연락한 제프리 감독을 떠올린 서준이 피식 웃고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버스 옆에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가 보였다.

[절찬리 상영 중]

[생존자들]

[감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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