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50화
-즉흥 연기랑 감독판이랑 무슨 상관인지 1도 모르겠다.
-이렇게 갑자기 감독판이 튀어나오다니…….
-그 지옥이 즉흥 연기에서 나왔다고요?
-대단하다. 즉흥 연기.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만들어내네.
격렬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영화객이 웃고 말았다. 다들 감독판에 여간 데인 게 아닌 것 같았다.
-토요일 새벽 1시부터 기다리다가 봤는데 주말 내내 우울했음.
-플러스에 남긴 평가 ‘최악’ 나임ㅎ
-그거 봤음ㅋㅋ 진짜 인상 깊더라ㅋㅋ
-내가 기대했던 감독판은 삭제된 분량이 복구된 감독판이었는데 실제로 나온 감독판은 지옥이 따로 없구요.
-난 감독판 좋던데.
-222 나도. 이게 더 현실적이지 않음?
-그러고 보니 10점도 꽤 많더라.
-취향 존중. 이해는 못 하겠지만 취향 존중.
-ㅋㅋㅋㅋ
[생존자들-감독판]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오갔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고 있던 영화객이 입을 열었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제프리 감독은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 때 안전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아마 생존자들의 원본은 제프리 감독의 전작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오. 그럼 생존자들은 즉흥 연기 때문에 수정돼서 전작이랑 다른 느낌이었구나.
-확실히 느낌이 많이 다르긴 했음.
“제프리 감독은 생존자들을 촬영하면서 데이비스 가렛 배우와 이서준 배우가 보여주는 즉흥 연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답니다. ‘저렇게 해도 되나?’, ‘해도 되겠지?’, ‘하자!’ 하고 나온 게 감독판이랍니다. 최대한 자유롭게 만들어 봤다는군요.”
-두 번 자유로웠다가는 관객 다 죽겠다.
진심이 담긴 댓글에 영화객과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감독판도 많이 수정한 거랍니다. 파일 이름이…….”
모니터에 이름 하나가 떴다.
[생존자들 감독판_수정7_8_최종_마무리_마무리2_최최종_끝_진짜 끝_완성본]
“……이라는 군요.”
-감독판으로 멀어진 느낌이었는데 다시 친근하게 느껴지네……ㅎ
-원래는 어떤 내용이었대요?
한 질문에 영화객이 턱을 매만지며 인터뷰를 떠올렸다.
“인터뷰에는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최악 같은 이야기라더군요.”
-……지금보다요?
-……상상이 안 가는데?
-레이먼드 위시가 결국 터져서 다 죽이기라도 하나?
마지막 댓글에 채팅창도 영화객도 저도 모르게 멈춰 버렸다.
“오…….”
신음 같은 감탄이 튀어나왔다.
-……잊읍시다.
-오블리비아테!
-빨리 플래시를 터뜨려서 기억을 지워!
-레드썬!
-그건 최면 주문 아님?
한바탕 기억을 제거하는 소동이 지나가고 영화객이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 있었죠?”
영화객의 능청에 쿵짝이 잘 맞는 시청자들도 얼른 맞췄다.
-아무 일도 없었다.
-네? 무슨 일 있었어요?
-ㄴㄴ 리뷰 시작합시다!
“여튼 즉흥 연기를 시작으로 수정과 수정에 거쳐 만들어진 게 감독판입니다. 그래도 원본과 수정본에서 바뀌지 않는 점이 있는데 등장인물이 모두 죽는다는 거랍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ㅇㅇㅇ
시니컬한 댓글들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객이 피식 웃고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개봉판이 아니라 감독판을 영화관에 올리려고 했는데 제작사, 베어라운드에서 반대를 했다고 하네요.”
-헐.
-이게 개봉될 뻔하다니…….
-그럼 개봉판은 아예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거네요.
-베어라운드 진짜 칭찬한다!!
-22 이건 칭찬 안 해줄 수가 없어!
“맞습니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다 죽으면 보는 관객으로서도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거든요. 공포영화도 아니고요. 제작사 반대도 있고 흥행 문제도 있어서 결국 감독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천만다행.
-휴. 까딱하면 배틀로얄 볼 뻔했네.
-님. 그거 기억 삭제.
-앗, 죄송.
-얼렁 넘어가시죠!
킬킬 웃은 영화객이 말했다.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해 보죠. 감독판의 첫 부분은 개봉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악과 배경의 색이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축 처지는 느낌이랄까.
-익숙하게 듣고 있는데 정신 차려보면 소름 돋는 음악ㅋㅋ
-‘엄마가 섬 그늘에-’를 공포 버전으로 만든 느낌이에요ㅋㅋ
-배경 색도 선명해진 것 같고.
“네. 두 버전의 연출에도 차이가 있죠. 감독판과 개봉판의 연출 변화는 폭탄이 터지면서 드러납니다. 감독판은 색감이 선명하죠. 개봉판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피나 사람의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폭탄 테러의 피해를 확실히 나타냅니다.”
-확실히 개봉판에는 피가 별로 안 보이는데 감독판은 피가 잘 보임.
-222 분위기도 음침한 것 같고.
-333 개봉판은 사람들이 다 도망가서 텅 빈 건물이 무너진 느낌이라면 감독판은 사람들이 많은데 무너진 건물 느낌이랄까.
-저 돌 사이에 죽은 사람이 껴 있겠구나(소름)…… 라는 분위기가 있지. 감독판이.
-역시 매운맛.
-개봉판은 아마 연령 제한 때문에 순해진 것 같음.
“연출 변화뿐만이 아니라 내용에도 변화가 있었죠. 내용 변화의 시작은 이안 위버의 죽음입니다. 설마 거기서 죽을 줄이야…….”
설명하면서 감독판을 떠올린 영화객은 저도 모르게 한숨처럼 감상을 토해냈다.
-22 생각도 못 해서 진짜 놀랐다.
-앞부분이랑 비슷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더니 죽어버렸어.
-모습은 안 나오고 이현우 비명만 들리는데도 소름 돋더라.
-이현우 비명 소리ㅠㅠ
-피도 장난 아니었잖아요ㅠㅠ
-피 많이 나오는 영화 많이 봤는데도 충격적이더라.
-아마 개봉판보면서 이안 위버를 많이 좋아하게 돼서 그런 것 같음.
-이안ㅠㅠ
금방 정신을 차린 영화객이 리뷰를 이어갔다.
“이안 위버의 죽음의 시기가 아주 절묘합니다. 개봉판에서는 이때를 시작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게 되고 레이먼드 위시와 이현우의 관계도 부드러워지거든요. 이안 위버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 되고요.”
영화객의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근데 딱! 이 중요한 순간에 이안 위버가 죽습니다. 개봉판처럼 레이먼드 위시가 이현우를 구하지만, 그 행위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안 위버의 죽음이란 큰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진짜 삭막하더라;;;
-나도 모르게 숨 안 쉬게 됨.
-??? :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신감 장난 아님.
-맞는 말이긴 한데…… 미래에 아들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가 죽었는데……ㅠ
-근데 지금의 레이먼드 위시는 모르지.
-진짜…… 타이밍…… 인생은 타이밍.
“그리고 레이먼드 위시는 이현우를 움직이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꺼내 듭니다.”
-??? :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 유품이라도 있는 게 낫지.
-진짜…… 보다가 소리 지름. 위버 부부가 유품을 찾을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들지 않음?
-22 진짜 욕밖에 안 나오더라.
-근데 쟤들은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보는 나만 답답함.
-미치고 팔짝 뛰겠네!
“네. 이안 위버가 일찍 죽어버려 생존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도 모르게 됐습니다. 특히, 그대로 묻혀 버린 이안 위버의 이야기가 특히 관객들에게 가슴 아프게 다가오죠.”
-ㅠㅠ우리 이안이ㅠㅠ
-개봉판이었으면 현우가 꼭 안아주고 레이먼드가 업어줬을 텐데ㅠㅠ
-쟤네가 위버 부부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싫음.
-고구마 한 박스는 먹은 것 같다(답답)
-이안이가 죽을 때까지 위로해 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잖아요ㅠㅠ
-ㅠㅠ이안이 엄마 닮았다고 쫓아다니던 이현우도 그때까지 이안을 피하고 있었는데ㅠㅠ
-너무 빨리 죽었어ㅠㅜ
-??? : 그럼 이안이 돌아오길…… 많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으아아아!! 그거 아니라고!!
-이런 걸 착각계라고 하지?
-소설로 나왔으면 망했을 듯.
불타오르는 채팅창에 영화객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렇게 움직이던 생존자들은 또 다른 난관에 맞닥뜨립니다. 레이먼드 위시가 잭슨 밀러와 이현우를 구하려다가 돌에 깔려 버리죠. 이때는 신기하게도 개봉판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개봉판이 ‘구하고 싶다!’라는 분위기면, 감독판은 ‘아차, 몸이 움직여 버렸다!’라는 느낌이었음.
-그 탐탁지 않은 마음이 표정에 다 드러나서 신기하더라.
-데이비스 가렛 연기 잘함.
-잭슨 밀러도 죄책감 때문인지 개봉판이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고.
“레이먼드 위시가 낙오된 후, 이현우의 모습이 바뀝니다. 두 팔로 가방을 끌어안고 있던 이현우는 조그마한 아이를 안은 것 같이 왼손을 가방의 아래에, 오른손은 가방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죠.”
-난 팔 아파서 바꾼 줄 알았는데.
-22 저 자세가 편한 줄.
-333 난 신경도 안 썼음. 설마 떡밥이었다니!
-근데 이때부터 이현우 눈빛이 변한 것 같지 않음? 꼭 이안 위버가 있었을 때처럼.
-근데 개봉판 분위기랑은 느낌이 또 다르고.
-약간 맛이 갈락 말락.
“결국, 잭슨 밀러도 낙오됩니다. 이제 신시아 린드버그와 이현우가 남았군요.”
-하나 더 있음!
-이안 위버!
-의 가방!
-진짜 잘 맞는다니까ㅋㅋㅋ
쿵짝이 잘 맞는 시청자들에 다른 시청자들과 영화객이 빵 터졌다. 킬킬 웃던 영화객이 진정하고 말했다.
“여기서 이현우가 ‘다리 다친 저보다 누나가 낫겠네요.’ 말하고 신시아 린드버그에게 가방을 건네주죠.”
-싸했다.
-22 이때부터 찜찜함.
-난 전혀 몰랐어.
-222 그냥 건네주는 줄.
“이현우의 머릿속에서는 이안 위버가 다리를 다친 이현우보다 신시아 린드버그와 함께 걷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낀 겁니다.”
-갑자기 공포영화로 분위기 전환ㅎㄷㄷ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이현우 모습이 이상하긴 함. 꼭 뭐가 있는 듯이 행동해.
“그리고 그 모든 게 확실히 드러나는 때가 다가옵니다. 두 생존자가 막다른 길에 도달하죠. 이현우가 먼저 올라갑니다. 그다음은 누구였을까요?”
-??? : 누나! 이안부터 올려주세요!
-진심 발끝부터 소름 돋음.
-욕 나올 뻔했다.
-이서준 웃는 연기도 장난 아님.
-222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ktx를 타고 봐도 미친놈.
-솔찍. 신시아 린드버그도 무서워서 못 잡았을 거야.
“그렇게 신시아 린드버그마저 사라집니다. 망연자실한 이현우는 혼자가 된 두려움에 몸을 떱니다.”
영화객은 잠시 [생존자들-감독판]을 떠올렸다.
다시 떠올려도 소름이 돋는 연기였다.
화면 속 이현우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현우의 손에 무언가 닿았다. 생각해 보면 인형이든, 옷이든, 가방이든 상관없었을 터였다.
‘아마 인형인 게 관객들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테니까 그렇게 설정했겠지.’
무언가 손에 닿자 몸을 떨던 이현우가 떨던 것을 멈추었다.
이현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잡아당겼다. 화면이 이현우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이현우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관객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뭔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나 싶었지.’
그들이 아는 ‘이현우’는 똑똑한 아이니까.
“이현우는 손에 닿은, 벽에 박혀 있던 인형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냅니다.”
반쯤 찌그러진 인형이 이현우의 손에 딸려 나오고 이현우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그리고 웃죠.”
부드럽게 휘는 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이안 위버가 걱정할까 봐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 : 가자! 이안!
-??? : 구조대를 불러서 돌아오자!
“개봉판과 같은 대사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죠. 이안 위버가 걱정할까 봐 애써 웃는 표정과 밝은 목소리는 오히려 보는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들었습니다.”
-난 내 귀를 의심했음.
-공포영화인 줄 알았어요ㅠㅠ
-이현우 눈 돌아갔던데……ㅎ
-그때부터 이서준 연기 장난 아니었지.
-연기력 폭발!
영화객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안 위버의 영혼이라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의 대단한 연기였습니다.”
-나도. 이서준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내 눈이 잘못된 줄.
-진짜 숨도 안 쉬고 봤음.
“그리고 드디어 구조된 이현우는 감독판에서도 모두를 구할 방법을 꺼냅니다.”
-뒤통수를 너무 맞아서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은 1도 안 함ㅋ
-전 조금 기대하긴 했어요. 아니었지만ㅎ
-ㅠㅠㅋㅋ
“감독판의 끝부분은 개봉판과는 반대로 연출됩니다. 무너진 갤러리아 몰을 보여주고 구조대원들이 나오죠. 그리고 구조대원의 보고가 들려옵니다.”
-그럴 것 같았지만 역시 셋 다 죽음ㅠㅠ
-너무 슬펐다ㅠㅠ
-거기에 ‘동양인 관광객은 없다’고 응급대원이 말하잖아ㅠㅠ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아저씨 아줌마들도ㅠㅠ 죽었나 봐ㅠㅠ
-살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ㅜ
영화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구급차에 누워 있는 이현우의 모습이 보이고 심장이 멈춘 소리가 들리죠. 응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하러 뛰어 들어오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현우는 웃고 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말이죠.”
영화객의 말하는 동안 채팅창은 천천히 잦아들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결국, 영화객의 말이 끝나자 드립 본능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댓글 하나를 올렸다.
-??? : 형님.
-아아앗……!
-그걸 꺼내다니……!
채팅창에 올라온 건 겨우 두 글자였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들썩이는 채팅창에 영화객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 드립.”
-생존자들 감독판 뜨고 나서 다시 뜨기 시작했음.
-설명도 돌아다니고ㅋㅋ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그사이 누군가 대사를 마무리했다.
-??? : 이 새X 웃는데요?
-으아아아!!
-아 X발 꿈이라니! 꿈이라니!
채팅창이 폭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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