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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47화 (3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47화

세 어른과 한 아이가 얼마나 걸었을까.

우우웅.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진동음이 들렸다. 몸을 흠칫 떤 생존자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터뜨릴 폭탄이 남아 있는 건가…….”

한 사람을 잃고 신경이 바짝 선 레이먼드 위시가 귀를 기울였다. 마치 다시 전쟁터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뒤 양옆 아래위.

어디 한 군데도 방심할 곳이 없었다.

“뒤쪽 같아요.”

“앞으로 갑시다.”

다리를 다친 이현우를 부축한 잭슨 밀러가 걸음을 옮겼다. 레이먼드 위시가 사방을 주의하며 움직였다.

그때였다.

무언가 잘못 걸린 것인지 잔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쿠우웅!

레이먼드 위시의 시야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떨어지는 돌들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위에 쏟아지려는 돌무더기가 보였다.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저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죽어버린 이안 위버와 넋을 놓은 이현우로 인해 떠오른 감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몸에 박힌 직업병 같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재수도 없지.’

무언가에 밀쳐진 잭슨 밀러가 이번에는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이현우를 보호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동이 잦아들고 하나둘 주춤주춤 일어났다.

피어오르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

“레이먼드!”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두 어른과 소년이 황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바닥에 쓰러진 레이먼드 위시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의 허리 아래는 돌무더기에 깔렸었다. 그리고 돌무더기 틈새로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

“잠시만 참아봐요. 바로, 바로……”

신시아 린드버그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였다. 잭슨 밀러가 얼른 돌무더기를 살폈다. 어떻게든 레이먼드 위시를 꺼내려는 잭슨 밀러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치, 치울 수 있을 겁니다…….”

이안 위버의 가방을 꼭 껴안은 이현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착하던 이안 위버는 물론이고 그 강하고 무섭던 레이먼드 위시마저 어둠에 삼켜지고 말았다.

이현우는 도저히……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후두둑.

아직 진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듯 모래가 떨어졌다.

“여기도…… 무너질 겁니다.”

레이먼드 위시의 냉정한 말에 두 어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눈가가 붉어진 신시아 린드버그가 넋이 나간 이현우가 들고 있던 이안 위버의 가방에서 물병과 음식을 꺼냈다.

“여기 물이랑 먹을 거 두고 갈게요.”

“……가져가십시오. 하반신이 완전히 짓눌렸습니다.”

“여기! 두고 갈게요! 그러니까……우리가 구조대를 불러올 때까지 버티세요.”

찢겨나갈 것 같은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던 레이먼드 위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신음 소리가 레이먼드 위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자.”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은 쉬웠다.

세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옮겼다.

“빨리 나가서 구조대를 불러오자. 우리가 빨리 갈수록 레이먼드를 구할 확률이 높아져.”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신시아 린드버그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진득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OST라 이제는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생존자들-개봉판]보다 아주 약간 어두워진 화면에 선명해진 색들이 보였다. [생존자들-개봉판]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죽음의 흔적’이었다.

여기저기 남겨진 핏자국과 누군가 신었던 신발이 돌과 돌 사이에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부서진 안경과 옷자락 같은 것들이 송유정과 임예나의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 화면 너머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나침반을 든 신시아 린드버그가 앞장섰다. 이현우가 중간에 서고 잭슨 밀러가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현우가 돌아보자 아직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잭슨 밀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리 다친 너보단 빨리 피할 수 있어.”

“…….”

말없이 이안 위버의 가방을 껴안은 이현우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이현우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글쎄. 우리는 과연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아니야. 힘내자.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이안 위버의 가방이 묵직했다.

하지만 역시나.

불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아아앙!

제법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터졌고, 이현우보다 빠르게 피할 수 있다고 말했던 잭슨 밀러는 쏟아지는 잔재들을 피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막혀 버린 통로에 잭슨 밀러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게 된 이현우가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고맙다고, 구해줘서 고맙다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진작 말할 걸 그랬어. 그치?’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 위버의 가방을 안고 울고 있는 아이를 얼렀다.

이제 아이를 지켜야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가자. 가야 해. 빨리 구조대를…….”

신시아 린드버그는 눈물과 함께 두려움을 삼켰다.

* * *

다리를 다친 이현우에게 노란색 가방이 짐이 될까 싶어 신시아 린드버그는 이현우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았다.

“확실히 다리 다친 나보다는 누나가 낫겠어요.”

“어? 응. 그렇지?”

나침반을 든 이현우가 절뚝거리면서 앞장섰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 위버의 가방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

“누나. 더는 길이 없어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운을 차린 것 같은 이현우의 말에 신시아 린드버그가 속으로 안심하며 얼른 생각에 잠겼다.

그렇겠지.

두 사람은 오래 걸어왔다. 북쪽 게이트에 다 와서 지하 1층이 끝난 것일 수도 있고 붕괴한 잔재들에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일 수도 있었다.

신시아 린드버그는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위로 가자!”

“……위요?”

“북쪽 지하 1층이 그렇게 크지 않거든. 우리 다 왔나 봐!”

신시아 린드버그의 밝은 목소리에 이현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이현우의 밝은 모습은 처음 본 신시아 린드버그가 조금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위로 가자.”

“네!”

빛을 비추니 위쪽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이현우가 천천히 돌을 타고 위로 향했다. 돌들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서 몇 번 발을 헛디디긴 했지만, 무사히 구멍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네!”

이현우가 환하게 웃었다.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어쩐지 자신까지 힘이 솟는 느낌이라 신시아 린드버그도 미소를 지었다.

“누나! 이안부터 올려주세요!”

“……!”

노란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르려던 신시아 린드버그가 황망한 얼굴로 위를 바라보았다. 한 점의 이상함도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이현우가 보였다. 멈춰 버린 신시아 린드버그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누나. 빨리 이안을…….”

이현우가 재촉하며 마치 어린아이의 두 팔을 잡으려는 듯 두 손을 뻗었다.

굳어버린 신시아 린드버그는 손을 뻗지 못했다.

불행은 갑작스러웠다.

폭발음이 들려왔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잡고 올라오던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가방을 멘 신시아 린드버그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현우와 신시아 린드버그의 시선이 멀어졌다.

“누나! 이안!”

무너지는 잔해 속.

신시아 린드버그는 비명도 없이 사라졌다.

이현우는 그 어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끝부터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자신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적막함에 토할 것 같았다.

모두 구하지 못했다. 또 구하지 못했다.

또 나만 남아버렸다.

나만…….

패닉에 빠져들려는 이현우를 따뜻한 온기가 감싸 안았다. 흠칫 몸을 떤 이현우가 눈을 떴다. 걱정스러운 듯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

아직.

이안 위버와 눈이 마주친 이현우가 볼 안쪽을 깨물었다. 자신도 무섭고 슬프면서도 이현우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마음이 울렁였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다.

“가자! 이안!”

이제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구조대를 불러서 돌아오자!”

이현우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밝아지는 이안 위버의 표정에 이현우는 그제야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더운 여름 아침이었지만 후덥지근한 공기는 느끼지 못했다. 화면 속, 환하게 웃는 이현우의 얼굴에 등골이 오싹했다. 싸늘함이 작은 자취방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

이현우는 엉금엉금 기어 통로를 이동했다. 아직 어린 이안 위버가 울지도 않고 잘 따라와 이현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튀어나온 철근에 얼굴을 긁히고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많이 지친 아이는 기어가다가 쉬고 다시 움직였다.

“막혔네…….”

점점 좁아지던 통로가 완전히 막혔다. 돌을 치워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첩첩산중이라고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휴대폰 조명까지 꺼져 버렸다.

어둠.

모두를 잡아먹은 어둠이 찾아왔다.

이현우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사실을 알아챈 착한 이안 위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말과는 달리 이현우의 숨이 가빠졌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덜덜 떨리는 이현우의 모습에 이안 위버가 이현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좁은 통로는 그것만으로 가득 찼다.

딱딱한 온기가 느껴지자, 이현우는 반사적으로 그 온기를 껴안았다.

많은 일이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버렸다. 이현우는 자신의 체온에 물든 희미한 온기를 위안 삼아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럴까?”

이현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적막한 공간. 숨소리는 하나밖에 들리지 않았다.

-----!

그때, 소리가 들렸다.

이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리가 들렸다.

폭발의 진동인지, 자신에게만 들리는 환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현우는 제 품에서 식어가는 체온을 되돌리고 싶었다.

구하고 싶었다. 이 아이만은.

“……사……!”

크게 소리를 지르려던 이현우는 바짝 마른 목에 캑캑거리고 말았다.

‘안 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른팔을 들어 주먹보다 조금 큰 돌멩이를 잡았다. 그리고 근처를 더듬더듬 만졌다.

조금 넓고 튼튼할 것 같은 곳을 발견했다. 이안 위버를 꼭 껴안은 이현우가 손에 쥔 돌멩이로 그곳을 내려쳤다.

퍽!

한 번.

퍽!

두 번.

퍽!

세 번.

바짝 마른 입술에 목 밖으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 이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 다였지만 이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퍽!

제발.

퍽!

여기에.

퍽!

사람이 있어요.

퍽!

……구해주세요.

퍽!

……우리 좀 구해줘요.

짧았지만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흘러갔다.

이현우의 힘도 점점 빠져가는 듯 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그때.

후두둑,

모래가 떨어졌다.

이현우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겪은, 학습된 공포였다.

무너질 거다.

이현우가 오른손에 쥔 돌멩이를 버리고 이안 위버를 꼭 껴안았다.

무섭다.

무서워.

정말……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까지 참은 이현우의 새까만 머리카락 위로 조금 커다란 돌멩이들이 떨어졌다. 몸을 한껏 웅크린 이현우가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생존자 발견. 생존자 발견.]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게 몸을 움찔 떤 이현우가 들리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빛이 보였다.

‘아…….’

이현우가 눈물을 흘렸다.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안도감에 금세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구조대원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잔재들을 치우고 통로를 확보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소리가 가득 찼다.

[정신 드십니까? 지금 꺼내드리겠습니다.]

끊어지려는 정신 줄을 붙잡은 이현우는 넓어지는 통로에 가쁜 숨을 내쉬고는 움직였다. 좁긴 하지만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

소년의 아래쪽에서 소년의 손과는 다른, 작은 손과 팔이 나타나자 구조대원들은 순간 말을 잃었다.

이미 말할 기운도 없는 송유정과 임예나가 참담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인형?]

의아한 표정의 구조대원이 조금 거칠게 이안 위버를, 아니, 아기 인형을 구멍에서 꺼냈다. 반쯤 구겨지고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아기 인형이 테러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서야 이현우가 밖으로 나왔다.

[구급차!]

들것에 실린 이현우의 옆에 있던 구조대원이 무언가 잡아당기는 느낌에 옆을 돌아보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던 이현우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에 구조대원이 입을 열었다.

[바로 구급차로 병원에…….]

창백한 얼굴임에도 이현우의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이현우가 입을 달싹였다. 말을 멈춘 구조대원이 무릎을 구부려 귀를 기울였다.

“……아……아래쪽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어요.”

……!

숨을 들이마신 구조대원이 떨리는 눈으로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이현우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기, 기어서 30분쯤 걸린 것 같아요. 이름은 신시아, 신시아 린드버그예요…….”

바싹 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기서 남쪽으로 10분…… 서, 서쪽으로 5분…… 이름은 잭슨 밀러예요.”

구조대원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손짓했다. 누군가 빠르게 녹음기를 켰다. 구조대가 분주해졌다.

“그리고,”

눈을 감은 이현우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거기서 동쪽으로 5분, 남쪽으로 15분…… 다시 동쪽으로 15분쯤…… 남쪽으로 5분…… 이름은 레이먼드 위시예요.”

이현우는 정말로 모두를 구하고 싶었다.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현우의 모습에 구조대원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제야 구조대원의 옷을 잡은 이현우의 손이 풀렸다. 텔레비전 화면에 들것에 실린 이현우의 안심한 얼굴이 비쳤다.

* * *

두두두-

돌을 뚫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돌멩이가 후두둑 떨어졌다. 텅 빈 공간이 나타나자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춰보던 구조대원이 무전기를 들었다.

[……실종자 발견. 실종자 발견.]

침통한 목소리였다.

[……레이먼드 위시로 보이는 시신 발견.]

* * *

핏빛 노을이 지상을 비추었다.

하늘 위에서 찍는 카메라에 무너진 갤러리아 몰과 수십 대의 구급차와 소방차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구조견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가 점점 아래로 향했다.

한 구조대원의 무전기로 보고가 전해졌다.

[신시아 린드버그로 보이는 시신 발견.]

[잭슨 밀러로 보이는 시신 발견.]

조금 전.

마지막 보고가 들어왔다.

[레이먼드 위시로 보이는 시신 발견.]

착잡한 표정을 짓는 구조대원의 얼굴을 카메라가 스쳐 지나갔다.

활짝 열린 구급차 밖.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와 연락하고 있었다.

갤러리아 몰은 신원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관광객들이 많아 구조대는 생존자들의 확인을 위해서 영상통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생존자들 중에 동양인 관광객 있어?”

-아뇨. 지금까지 발견한 생존자 중에 동양인 관광객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구급대원의 시선이 무너진 갤러리아 몰 쪽으로 향했다. 갤러리아 몰에 들른 적이 있는 구급대원은 이곳에 얼마나 많은 동양인 관광객들이 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병원 자리 없지?”

-네. 들어오는 환자가 워낙 많아서…….

씁쓸한 두 사람의 대화를 뒤로하고 카메라가 구급차 안으로 향했다.

구급차 안에는 응급처치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호흡기를 쓴 이현우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숨소리는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이어져 송유정과 임예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에 맞춰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심장이 멈춰 버리고 말았다.

야속한 소리가 스피커를 울리자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심장이 멈춘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소리가 뒤엉겼다.

그 시끄러운 소리들 사이로, 화면 가득 이현우의 얼굴이 비쳤다.

모두를 구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정말 있는 힘껏 노력했던 소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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