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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46화 (34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46화

생각도 못 한 평가들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요동치는 눈동자에 긴장감이 돌았다. 특히 짧지만 강렬한, ‘최악’이라고 적힌 두 글자가 눈에 박혔다.

“……봐도 되겠지?”

“……좋은 평가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임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유정이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텔레비전 화면 정중앙에 베어라운드의 로고가 나타났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쿠션과 베개를 껴안고 숨을 죽였다.

그렇게 숨도 못 쉬고 잔뜩 긴장한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주]

[LA]

라는 자막으로 시작한 감독판은 개봉판과 똑같았다.

화면에 하늘에서 LA의 평화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멋들어진 갤러리아 몰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화면이 이현우의 가족들을 보여주었다. 미아가 된 이안 위버와 안내직원 신시아 린드버그가 나오고 폭탄이 터졌다.

기절한 이현우와 친절한 잭슨 밀러가 전직 군인 레이먼드 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생존자 무리를 만났다. 이안 위버는 엄마를 닮은 이현우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바닥이 꺼져 다섯 명이 지하로 떨어졌다.

몇 번이고 봤던 익숙한 전개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어느새 긴장을 풀고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아, 여기.’

송유정과 임예나의 머릿속에 영화보다 먼저 다음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 보니 현재의 화면에 소홀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진득하게 변화한 음악과 미묘하게 바뀐 화면의 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조용함이 지하에 내려앉았다.

생존자들은 이안 위버가 건네준 나침반의 바늘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길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레이먼드 위시가 가장 앞에 서고 그 뒤를 신시아 린드버그, 잭슨 밀러와 이안 위버, 이현우가 쫓았다.

“……밖에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잭슨 밀러는 그렇게 말하며 가장 위험할지도 모르는 맨 뒷자리로 가버린 소년을 돌아보았다.

잭슨 밀러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이안 위버의 시선도 자꾸만 뒤로 향했다. 이현우와 함께 걷고 싶었지만, 얌전히 잭슨 밀러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우는 멀어질 듯 말듯 생존자들의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큰 흔들림이 생겼다.

폭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충격이 이곳까지 전해진 듯했다. 불안정하던 주변의 벽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특히.

이현우의 뒤쪽이 심상치 않았다.

“앞으로!”

레이먼드 위시의 목소리에 신시아 린드버그와 잭슨 밀러가 곧장 앞으로 향했다.

마침 뒤를 돌아보고 있던 이안 위버가 무언가에 걸린 듯 넘어졌다. 손을 잡고 있던 잭슨 밀러도 순간 중심을 잃었다. 두 사람이 마주 잡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

그와 동시에 잭슨 밀러와 이안 위버의 사이로 기둥이 무너져내렸다.

쿵!

쿠웅! 쿵!

무너져내리는 돌무더기 때문에 넘어진 잭슨 밀러의 뒤쪽으로 벽이 생겼다. 잭슨 밀러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쌓여가는 벽을 바라보았다. 신시아 린드버그와 레이먼드 위시도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어?’

송유정과 임예나는 시점이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생존자들-개봉판]에서는 벽 반대쪽에서 이안 위버와 이현우의 보여주었던 카메라가 이번에는 세 어른을 비추고 있었다.

그 변화에 송유정과 임예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면이 더욱 자세히 보이고 이제야 진득하게 늘어진 [생존자들]의 음악이 들려왔다. 그 음침한 선율은 익숙함이라는 껍질을 뒤집어쓰고 송유정과 임예나의 귓속을 파고들어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새까만 불길함이 두 사람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으아아악! 이안!”

벌써 반쯤 막혀 버린 통로.

이현우가 급하게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이현우의 참담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거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슬픈 비명 소리였다.

“이안…… 이안!!!”

이현우의 소리는 들리는데 화면은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세 어른을 비추고 있었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몸을 웅크렸다. 불길함이 발끝부터 올라왔다.

잭슨 밀러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조금 전까지도 이안 위버의 작고 따뜻한 손을 잡고 있었던 잭슨 밀러의 손이 덜덜 떨렸다.

“현, 현우! 무슨 일이야?! 이안! 이안은 괜찮은 거지!?”

아아아악!!

대답 대신 절망이 가득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귀를 막았다.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쿠우웅!

주변이 무너져내렸다.

이현우와 생존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도 벌써 많이 올라왔다.

쿠우웅.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야…… 아니야…….”

이현우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목구멍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괴로운 소리가 아직 이현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시아 린드버그도, 잭슨 밀러도 움직이지 않는 그때.

누군가를 잃는 건 익숙한 레이먼드 위시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고 가로막은 벽에 달라붙었다.

레이먼드 위시와 함께 카메라가 처음으로 벽을 넘었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벽 너머에는 엉거주춤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현우가 있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아예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어느새 흐느낌도 들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현우가 바라보고 있는 아래쪽은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뭐가 있는지 송유정과 임예나는 알 것 같았다.

“뭐 하고 있어?!”

레이먼드 위시의 목소리에 이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밀어 진 큰 손을 보는 이현우는 빛 한 번 비치지 않았다. 많이 보아왔던 텅 빈 눈동자에 다시 한번 짜증이 난 레이먼드 위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리로 나와!”

일그러진 얼굴과 짜증과 신경질이 담긴 목소리에 이현우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레이먼드 위시의 손을 붙잡았다.

……헉.

숨을 크게 들이킨 송유정과 임예나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레이먼드 위시와 마주 잡은 이현우의 손이 붉은 액체에 흠뻑 젖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몸속에 있었을, 굳지도 않은 그 새빨간 액체가 레이먼드 위시의 손까지 물들여 버렸다.

“……미친…….”

우리 이안이가……!

송유정과 임예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직 영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레이먼드 위시는 피가 묻은 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이현우를 잡아끌었다. 반강제적으로 돌벽을 넘은 이현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장면에서 이안이가 현우를 꼭 껴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송유정과 임예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상하다.

제가 앉 아있을 때면 언제나 다가오던, 밀어내고 떨어뜨려도 제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작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현우가 생소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현우의 시야에 돌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잭슨 밀러와 자신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신시아 린드버그, 그리고 더러운 옷으로 피를 닦아내고 있는 레이먼드 위시가 보였다.

……피.

새빨간 피.

이현우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은 새빨간 피가 이현우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조금 전 상황이 이현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콧속을 파고들던 피 냄새와 식어가는 이안 위버의 온기.

“……우……우욱……!”

토악질을 하는 이현우를 보고 놀란 신시아 린드버그가 얼른 달려갔다. 창백한 얼굴의 잭슨 밀러가 몸을 흠칫 떨고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뱉는 레이먼드 위시의 눈초리가 사나웠다.

진동은 잦아들었지만 생존자들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이현우는 닦아냈지만 아직 붉게 물들어 있는 것 같은 제 두 손만 바라보고 있었고, 잭슨 밀러는 조금 전 놓쳐 버렸던 온기가 계속 떠올라 괴로워하고 있었다. 신시아 린드버그는 이안 위버의 가방을 꼭 껴안고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출발합시다.”

냉정한 목소리로 내뱉은 레이먼드 위시가 이안 위버의 나침반을 들고 일어났다.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차갑다 못해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레이먼드 위시의 말에 송유정과 임예나는 어쩐지 배신감까지 들었다.

신시아 린드버그와 잭슨 밀러가 밖에서 기다릴 가족들을 떠올리며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지 않는 건 이현우뿐이었다.

“안 갈 건가?”

“…….”

레이먼드 위시의 말에도 이현우는 군데군데 피가 남아 있는 제 두 손을 보며 침묵할 뿐이었다.

손전등도 없이 어두웠던 벽 너머에서, 몇 초도 안 됐던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안 그래도 창백했던 이현우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것 같은 이현우의 모습에 레이먼드 위시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신시아 린드버그에게서 이안 위버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현우에게 안겨주었다.

자신의 손바닥만 바라보던 이현우의 시선이 노란색 가방으로 향했다.

전직 군인인 레이먼드 위시는 이럴 때 정신을 차리게 하는 괜찮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네가 책임지고 그 가방을 이안의 가족에게 갖다 줘라. 이안 위버의 가족들은 이안의 신발이나 옷자락이라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가족.

죄책감에 멍하니 서 있던 잭슨 밀러가 그 단어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건 이현우의 트리거였다. 잘못하면 상황이 더 악화할지도 몰랐다.

“유품이라도 있는 게 낫지.”

하지만 다행히도 레이먼드 위시의 말에 이현우의 눈에 조금 빛이 돌아왔다.

이현우가 제 품 안의 노란색 가방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형. 이거 먹을래요?’

조금 열린 가방 속, 이안 위버가 주던 과자 봉투가 보였다.

이현우의 눈에 눈물이 일렁였다. 어쩐지 이안 위버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현우가 눈물을 훌쩍이며 가방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레이먼드 위시와 이현우의 눈치만 보고 있던 두 사람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안 위버가 죽은 건 슬펐지만, 레이먼드 위시의 말대로 일단 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신시아 린드버그와 잭슨 밀러가 죄책감을 마음 한구석에 밀어두고 발걸음 옮겼다.

생존자들은 좁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예상외의 사람이었다.

“누나…….”

“어, 응?”

이현우의 부름에 신시아 린드버그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이현우의 목소리에 레이먼드 위시와 잭슨 밀러도 시선을 주었다.

“이안…… 의 가족에 대해서 알아요?”

이안 위버의 가방을 품에 소중히 안고 있는 이현우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소리를 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라 신시아 린드버그는 놓치지 않았다.

“아, 아니. 난 여기서 일하고 있어서…… 이안이 혼자 있어서 미아센터로 데려가려고 했지. 여긴 크기도 크고 하루에 한 명씩은 미아가 꼭 생기거든. 방송할 생각이었는데…….”

이안이 미아였다니.

신시아 린드버그의 이야기에 딸이 있는 잭슨 밀러의 얼굴도 흐릿해졌다. 아직도 제 손에 이안 위버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바지춤에 손을 비볐다가 굳어버렸다.

토할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괴로웠는데 이안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게다가 이안을 잃어버렸을 부모가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을지…… 이 소식을 들은 부모가 얼마나 슬퍼할지…… 이현우는 가슴이 아파져 왔다.

“……그럼 이안이 돌아오길…… 많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노란색 가방을 안은 이현우의 손짓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이현우는 이안 위버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책임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무거운 걸음이었다.

* * *

“……하아…….”

작은 자취방에 많은 의미가 담긴 두 사람의 한숨 소리가 울렸다.

[생존자들-감독판]을 본 모든 시청자들이 내뱉은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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