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45화
[생존자들]의 OST가 흘러나왔다.
아주 짧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꽉 막힌 해피엔딩을 보여준 쿠키 영상에 관객들은 얼마나 울었는지 시뻘건 눈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쿠키 영상도 끝났겠다, 생존자들의 여운을 즐기고 싶은 관객들과는 달리 바로 다음 회차를 이어가야 하는 영화관은 평소처럼 움직였다.
곧바로 상영관 전체가 밝아지고 출입구의 문이 열렸다.
관객들은 깨진 여운에 아쉬워하면서도 짐을 챙기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너무 울고 긴장하고 다시 우느라 온몸이 뻐근한 듯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팝콘 못 먹었어.”
“음료수 얼음도 다 녹았네.”
영화를 너무 집중해서 보느라 간식이 있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팔걸이에 놓아둔 음료수를 발견한 몇몇 관객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우느라 다 빠져나간 수분을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음료수로 보충했다.
“나가자.”
“그래.”
송유정과 임예나는 눈물로 흠뻑 젖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고 영화관 출구로 향했다. 영화관의 출구는 바로 건물 밖으로 이어졌다.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가는 관객들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와. 너무 긴장해서 봤나 봐. 진이 다 빠졌어. 몸도 엄청 뻐근해.”
“울기도 많이 울었지. 네가 준 휴지도 다 썼어.”
“그러게. 너 눈 엄청 부었어.”
“너도 그렇거든. 거울 보여줄까?”
두 사람 다 눈가가 시뻘겋고 조금 부어 있어서 웃겼다. 서로를 바라보던 임예나와 송유정은 킬킬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베어라운드 ‘생존자들’ 오프닝 스코어 110만!]
[관객들을 펑펑 울린 ‘생존자들’!]
[생존자들, 생존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배우 김종호, 성공적인 첫 할리우드 영화!]
-역시나 울고 말았음ㅠㅠ
=22 감동이나 가족애 쪽으로 힘을 줄 거라는 걸 알고도 당해버렸다ㅎ
=333 근데 안 울 수가 없었어ㅋㅋ
=444 진짜 폭탄 터지고 이현우 나올 때부터 눈물이 줄줄 나옴ㅎ
-영화관에서 기다리는데 생존자들 본 사람하고 안 본 사람들하고 너무 확실하게 알 것 같아서 웃겼음ㅋㅋㅋ
=ㅇㅇ 생존자들보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어ㅎㅎ
=그중의 하나가 나!
-역시 김종호와 이서준의 케미는……!
=또 생각난다ㅠㅠ
-한국어 연기한 배우들 괜찮지 않음? 다들 찐 한국인 같아서 몰입 엄청났음.
=22 진짜 이번 영화에 한국어 연기 못했으면 욕 엄청 들었을 듯.
-난 벌써 N차 예매해 놓음.
-빨리 영화객 님 리뷰 올라왔으면 좋겠다!
=22 이번엔 2주 뒤에 한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 N차 뛰면서 예습해야지!
=333 n차 예습>>영화객 리뷰>> n차 복습 ㅎㅎ
* * *
[‘생존자들’ 개봉 2주째! 식지 않는 열기! 천만 관객 돌파 가능할까?!]
[영화관을 가득 채운 생존자들 N차 관람객들!]
[휴지는 필수! 물은 선택! ‘생존자들’ 관람법!]
[이안 위버의 손목시계, 품절!]
[배우 김종호의 등산복, 인기리 판매 중!]
[이현우가 선택한 부모님의 선물은?!]
[이현우 선글라스, 품절!]
[생존자들]이 개봉한 지 벌써 2주가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도 [생존자들]로 떠들썩했다. 영화관은 휴지를 든 사람들로 북적였고 출구는 눈이 퉁퉁 부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영화를 보면 간식을 먹을 정신이 없으니 일시적으로 팝콘 등 간식의 매출이 줄었다는 기사가 날 정도였다. [생존자들]과 관련된 물건들이 품절이 되는 건 평범한 일이었다.
“……미루길 잘했네.”
휴대폰을 내려놓은 영화 배급사 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하면 7월에 개봉할 영화가 [생존자들]의 화제성에 잡아먹힐 뻔했다.
“2주도 간당간당하긴 한데…….”
더 늦게 개봉했다가는 [생존자들] 때문에 미뤄진 영화들이 한꺼번에 몰릴 수도 있었다. 적당한 타이밍을 찾아야 했다.
“실장님!”
직원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사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목소리 톤만 들어도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것 같아 실장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왜, 무슨 일인데?”
안 좋은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스캔들인가, 감독의 사고인가. 스태프들 문제인가.
“생존, 생존자들이 나온답니다.”
창백한 얼굴의 직원이 더듬더듬 말했다.
“……? 그거 개봉했잖아.”
벌써 2주 전에 개봉해 영화관을 싹쓸이하고 있는 영화가 나온다는 말에 실장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문득 실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SNS 말하는 거야? 그거야 2편 이야기겠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감독판이요!”
직원이 비명처럼 외쳤다.
“……뭐?”
“다음 주에 생존자들 감독판이 나온대요!”
또 한 번 전 세계를 뒤덮을 소식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중 대다수가 영화 관련자라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 * *
[생존자들]이 개봉한 후 2주가 지났을 때, 베어라운드의 공식 SNS에 뜬금없는 글이 하나 떴다.
[베어라운드]
‘생존자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생존자들 #새로운 이야기 #데이비스 가렛 #서준 리
[생존자들]에 대해 새로운 게 있나 찾아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그 글이 들어왔다.
-새로운 이야기?
-오오! 벌써 생존자들2 준비 중인 거 아니야?
=생존자들2가……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인가.
=그러게. 다들 다시 만나서 또 위험에 빠지는 건 아무리 영화라도 너무 개연성 없지 않음? 심지어 이현우는 한국인 것 같은데.
-배우들만 바뀌면 꽤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22 LA 폭탄 테러에 무너진 곳이 갤러리아 몰만이 아니잖아. 두 번째로 터졌던 대형마트일 수도 있고 LA다저스 스타디움일 수도 있고.
=333 폐쇄된 지하가 아니라 유원지 같은 야외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지.
=진짜 재밌겠다!!
-아니면 아예 시선을 바꿔서 소방관이나 구조대원이 주인공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오오. 구조대원이라…… 괜찮은데?
=하긴 테러리스트 이야기도 안 나왔으니까.
-LA 폭탄 테러에 미국이 대응하는 게 영화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음.
=스케일 엄청 나겠는데ㅎㄷㄷ
-근데 배우가 바뀌면 그냥 새로운 영화 아닌가ㅋ
=22 이서준×데이비스 가렛×밀란 첼런이×바네사 올슨×앤드류 워커 이상의 조합은 안 나올 것 같은데.
=333 솔직히 이런 거 2편 나오면 망하잖아ㅎㅎ
모두의 관심이 [생존자들]의 새로운 이야기에 쏠려 있었다.
언제 다른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베어라운드의 SNS와 홈페이지를 자꾸만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대답을 알려준 곳은 베어라운드가 아니었다.
베어라운드의 SNS 글이 올라온 다음 날 오후.
스트리밍 사이트 플러스+가 보도자료를 뿌렸다.
[생존자들의 새로운 이야기? ‘생존자들-감독판’!]
[플러스+, 다음 주 ‘생존자들-감독판’ 업로드!]
-헐. 감독판!!
=감독판이었구나. 2편이었으면 개봉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주네ㅎㅎ
=22 빨리 봐서 좋긴 한데……음. 개봉판이랑 많이 다르려나?
=감독판도 재미있어요!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건 아무래도 흥행을 위해서 삭제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개봉판이랑 감독판이랑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음.
=개봉판도 N차 뛰고 있으니 비슷해도 재미있게 볼 것 같음.
=하긴 배우들 연기력하고 감독은 그대로니까.
-영화객 님 리뷰 미뤄졌다!!
=감독판까지 보고 리뷰하신대!!
=감독판도 n차 예습해야겠네!
-근데 다음 주면 무슨 요일임? 월화수목금토일 다 다음 주지 않음?
=22 물어보러 가야겠네.
=333 컴퓨터 켰음.
[플러스+, 다음 주 토요일 ‘생존자들-감독판 업로드!’]
-와…… 플러스 홈페이지 글 엄청 많아. 단합력 장난 아니네;;;
-근데 토요일 몇 시에 업로드되는 거야? 하루 종일 플러스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22 또 물어보러 가야겠네.
=333 나도.
-어쩐지…… 플러스 홍보팀 난리 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
-앜ㅋㅋ 플러스 홈페이지 터짐ㅋㅋㅋ
-플러스 SNS에 떴어! 생존자들 감독판 01시에 업로드된대!
=오오! 금요일 토요일 약속 취소해야지!
=12시부터 대기한다.
=11시부터 기다린다!
그리고 뒤늦게 기사가 떴다.
[플러스+, 다음 주 토요일 01시 00분 ‘생존자들-감독판’ 업로드 예정.]
분까지 알려주는 아주 친절한 기사였다.
* * *
송유정의 자취방.
아침부터 송유정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 괜찮고 TV도 플러스랑 연결도 해놨고…….”
[생존자들-감독판]의 시청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송유정이 시계를 보았다.
벌써 아침 8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감독판 업로드된 지 7시간이나 지났네.”
감독판 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송유정의 기준은 [생존자들-감독판]이 되어버렸다. [생존자들]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느리게 가는 시간을 원망하며 토요일만 기다렸다.
“으악! 시간 진짜 안 가!”
오전 8시라면 여름방학이라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새벽 5시부터 눈이 먼저 떠져서 그런지 오늘 아침이 너무 긴 것 같았다. 평소라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대폰으로 인터넷이라도 했겠지만, 스포일러가 있을까 봐 와이파이도 켜지 못했다.
그래서 송유정은 대청소를 했다.
시간을 때우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자취방이 좁아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시간이 남아돌자 송유정은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고 다리만 달달 떨며 임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딩동.
“왔다!”
초인종 소리에 송유정이 벌컥 현관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아침 식사 거리를 사온 임예나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얼른 들어와!”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송유정의 모습에 임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기다린 모양이었다. 물론 임예나도 오늘을 엄청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 어제 동생 생일만 아니었으면 여기서 자고 같이 보는 거였는데 말이야.”
“지금이라도 보면 되지!”
송유정이 활짝 웃었다.
잠시 후.
임예나가 사 온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끝낸 송유정은 플러스+에 들어갔다. 임예나가 그 옆에 편하게 앉아 익숙하게 쿠션을 끌어안았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은 영화관이 아니라 집이라 마음은 편했다.
검색하며 찾을 필요도 없이 가장 첫 화면에 폐허를 배경으로 다섯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뒷모습만 봐도 누가 누군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아래에 [생존자들-감독판]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개봉판 포스터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게. 많이 다르진 않나 봐.”
[생존자들-감독판]을 클릭하자 화면이 바뀌었다.
감독의 이름과 배우들의 이름들이 나오고 재생 시간과 영상을 본 사람들의 평가들이 나타났다.
“평가부터 볼까?”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으니 본 사람도 많을 터였다.
스포일러는 신경도 안 쓰는 임예나의 말에 스포일러는 무진장 신경 쓰는 송유정이 고개를 돌렸다.
“보고 가르쳐 줘.”
“알았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임예나가 입을 열었다.
“음. 유정이 너도 봐도 될 것 같은데?”
어쩐지 놀란 것 같은 임예나의 목소리에 송유정이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밤새 기다려 새벽 1시부터 [생존자들-감독판]을 본 사람들이 쓴 평가들이 가득했다.
평가를 본 송유정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헐. 이게 뭐야?”
★★★★★
이게 현실적이지.
★☆☆☆☆
안 본 눈 삽니다.
★☆☆☆☆
그냥 생존자들만 볼걸ㅠㅠ
★★★★★
추천! 난 이게 더 좋음.
★☆☆☆☆
최악.
1점 아니면 10점.
중간은 없었다.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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