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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44화 (34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44화

“이안. 나가면 바로 신고하자.”

“그래. 아저씨도 도와주마.”

“형이 증인 할게.”

“지낼 곳 없으면 아저씨 집에 오고.”

이안 위버가 헤헤 웃었다.

이안 위버는 레이먼드 위시에게 업혀 있었고 이현우는 조금 혈색이 도는 얼굴로 그 옆에서 걷고 있었다. 다리의 상처 때문에 이현우가 이안 위버를 업지는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 뒤를 걷던 신시아 린드버그와 잭슨 밀러가 안심한 얼굴로 속삭였다.

이안 위버의 이야기 때문인지 날이 서 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다들 의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레이먼드 위시가 옆에서 걷는 소년을 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조금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현우는 생명줄처럼 이안 위버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괜찮을 거다.”

“……네?”

“건물이 튼튼하니까 다 무너지진 않았을 거야. 우리처럼 잘 피하고 있을 거다. 남쪽 게이트 쪽이라면 가장 먼저 구조가 됐을지도 모르지.”

레이먼드 위시의 위로에 이현우가 입을 앙다물었다. 눈물이 고였지만 금세 닦아내었다.

“……아저씨 가족도요.”

“그래.”

둘 다 그게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힘들면 말해. 휴대폰 조명 켜줄 테니까.”

“괜찮아요. 배터리 아껴야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이현우는 최대한 레이먼드 위시가 비추는 밝은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 * *

어두운 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북쪽으로 가기 위해 생존자들은 이곳저곳을 헤맸다.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하기도 했고 꽉 막힌 길에 뒤로 돌아오기도 했다. 상영관도 어두웠고 시선이 스크린 쪽으로 고정되어 있어 관객들도 생존자들과 함께 폐허 아래를 떠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우웅.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진동음이 들렸다. 몸을 흠칫 떤 생존자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터뜨릴 폭탄이 남아있는 건가…….”

레이먼드 위시가 귀를 기울였다.

앞뒤 양옆 아래위.

어디 한 군데도 방심할 곳이 없었다.

“뒤쪽 같아요.”

“앞으로 갑시다.”

잭슨 밀러가 이안 위버를 업고 이현우는 신시아 린드버그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레이먼드 위시가 사방을 주의하며 움직였다.

그때였다.

무언가 잘못 걸린 것인지 잔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쿠우웅!

레이먼드 위시의 시야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떨어지는 돌들 사이로 잭슨 밀러와 이안 위버가 들어왔다. 그 위에 쏟아지려는 돌무더기가 보였다.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데…….’

무언가에 밀쳐진 잭슨 밀러가 최대한 이안 위버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엎어졌다.

‘……멍청한 놈.’

진동이 잦아들고 하나둘 주춤주춤 일어났다.

피어오르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아저씨……!”

“레이먼드!”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두 어른과 두 아이가 황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바닥에 쓰러진 레이먼드 위시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의 허리 아래는 돌무더기에 깔렸 있었다.

“……가.”

“잠시만 참아봐요. 바로, 바로……”

신시아 린드버그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였다.

이안 위버를 이현우에게 맡긴 잭슨 밀러가 얼른 돌무더기를 살폈다. 어떻게든 레이먼드 위시를 꺼내려는 잭슨 밀러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치, 치울 수 있을 겁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이안 위버를 덜덜 떨리는 손을 안은 이현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주 끔찍한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이제 겨우 다 같이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겨우 레이먼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는데…….

후두둑.

아직 진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듯 모래가 떨어졌다.

“……잭슨. 신시아.”

레이먼드 위시에게 이름이 불린 두 어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눈가가 붉어진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 위버의 가방에서 물병과 음식을 꺼냈다.

“여기 물이랑 먹을 거 두고 갈게요.”

“……가져가십시오.”

“여기! 두고 갈게요! 그러니까…… 우리가 구조대를 불러올 때까지 버티세요.”

레이먼드 위시가 작게 웃고 말았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가자.”

“하지만 아저씨가……!”

주저하는 두 아이와는 달리 어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안 위버를 번쩍 안아 들었고 잭슨 밀러가 이현우를 끌었다.

두 아이의 시선이 돌무더기에 깔린 레이먼드 위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레이먼드 위시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본 남겨진 자의 눈빛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후두둑, 쿵!

레이먼드 위시와 생존자들 사이에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아, 아저씨가……”

“현우. 정신 차려. 빨리 나가서 구조대를 불러오자. 우리가 빨리 갈수록 레이먼드를 구할 확률이 높아져.”

소리 없이 우는 이안 위버를 꽈악 껴안은 신시아 린드버그가 말했다. 이현우는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시아 린드버그는 이안의 손을 잡았다. 뒤쪽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 잭슨 밀러가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장서게 된 이현우가 주저했다.

잭슨 밀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리 다친 너보단 빨리 피할 수 있어.”

“……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이현우는 나침반을 잡았다.

북쪽.

북쪽으로 가야 했다.

한시라도 빨리.

하지만 불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아아앙!

제법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터졌고, 이현우보다 빠르게 피할 수 있다고 말했던 잭슨 밀러는 쏟아지는 잔재들을 피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막혀 버린 통로에 잭슨 밀러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게 된 이현우가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고맙다고, 구해줘서 고맙다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신시아 린드버그가 울고 있는 두 아이를 얼렀다.

이제 두 아이를 지켜야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가자. 가야 해. 빨리 구조대를…….”

신시아 린드버그는 눈물과 함께 두려움을 삼켰다.

* * *

나침반을 든 이현우가 절뚝거리면서 앞장섰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 위버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누나. 더는 길이 없어요.”

이현우의 말에 신시아 린드버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그들은 오래 걸어왔다. 북쪽 게이트에 다 와서 지하 1층이 끝난 것일 수도 있고 붕괴한 잔재들에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일 수도 있었다.

신시아 린드버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위로 가자!”

“……위요?”

“북쪽 지하 1층이 그렇게 크지 않거든. 우리 다 왔나 봐!”

신시아 린드버그의 밝은 목소리에 이현우와 이안 위버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나갈 수 있어요? 아저씨들 구할 수 있어요?”

이안 위버의 말에 신시아 린드버그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위로 가자.”

“네!”

빛을 비추니 위쪽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이현우가 천천히 돌을 타고 위로 향했다. 돌들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서 몇 번 발을 헛디디긴 했지만, 무사히 구멍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네!”

“그럼 이안 올릴게! 위에서 잡아!”

신시아 린드버그가 이안 위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현우가 위에서 이안 위버의 두 팔을 잡고 끌어 올렸다. 조금씩 피어나는 희망에 이현우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이안. 누나. 누나도 빨리…….”

이현우가 손을 뻗었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손을 뻗었다.

불행은 갑작스러웠다.

이젠 화가 나기까지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잡고 올라오던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이현우와 신시아 린드버그의 손이 스치듯 닿았다 멀어졌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괜찮, 괜찮아! 현우! 먼저 가!”

“누나!”

무너지는 잔해 속.

신시아 린드버그는 비명도 없이 사라졌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손끝에 남은 온기에 토할 것 같았다.

모두 구하지 못했다. 또 구하지 못했다.

또 나만 남아버렸다.

나만…….

다시 한번 패닉에 빠져들려는 이현우를 따뜻한 온기가 감싸 안았다. 흠칫 몸을 떤 이현우가 눈을 떴다. 걱정스러운 듯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직.

이안 위버와 눈이 마주친 이현우가 볼 안쪽을 깨물었다. 자신도 무섭고 슬프면서도 이현우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마음이 울렁였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다.

“가자! 이안!”

이제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구조대를 불러서 돌아오자!”

이현우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밝아지는 이안 위버의 표정에 이현우는 그제야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 * *

이현우와 이안 위버는 엉금엉금 기어 통로를 이동했다. 튀어나온 철근에 얼굴을 긁히고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많이 지친 두 아이는 기어가다가 쉬고 다시 움직였다.

“막혔네…….”

점점 좁아지던 통로가 완전히 막혔다. 돌을 치워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첩첩산중이라고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휴대폰 조명까지 꺼져 버렸다.

어둠.

모두를 잡아먹은 어둠이 찾아왔다.

이현우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사실을 알아챈 이안 위버가 입을 열었다. 지친 듯 숨소리가 거칠었다.

“형.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마.”

말과는 달리 이현우의 숨이 가빠졌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덜덜 떨리는 이현우의 모습에 이안 위버가 이현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좁은 통로는 두 아이만으로 가득 찼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이현우는 반사적으로 그 온기를 껴안았다.

많은 일이 있었고 두 아이 모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버렸다.

두 아이는 서로의 온기를 위안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아까 레이먼드 아저씨가 여기서 나가면 아저씨랑 같이 살재요.”

“……그래?”

“……형도 같이 살아요.”

“……그럴까?”

이현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안 위버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레이먼드 위시가 돌더미에 깔릴 때부터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던 송유정은 스크린 속 두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다른 관객들도 두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봐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

그때, 소리가 들렸다.

이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막으로도 나오지 않은 희미한 소리에 송유정이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소리가 들렸다.

폭발의 진동인지, 자신에게만 들리는 환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현우는 제 품에서 식어가는 체온을 되돌리고 싶었다.

구하고 싶었다. 이 아이만은.

“……사……!”

크게 소리를 지르려던 이현우는 바짝 마른 목에 켁켁거리고 말았다.

‘안 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른팔을 들어 주먹보다 조금 큰 돌멩이를 잡았다. 그리고 근처를 더듬더듬 만졌다.

조금 넓고 튼튼할 것 같은 곳을 발견했다. 정신을 잃은 이안 위버를 꼭 껴안은 이현우가 손에 쥔 돌멩이로 그곳을 내려쳤다.

퍽!

한 번.

퍽!

두 번.

퍽!

세 번.

바짝 마른 입술에 목 밖으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 이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 다였지만 이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현우의 사투가 계속 이어졌다.

더 이상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돌멩이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이현우는 간간이 이안 위버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다시 돌멩이를 쥔 오른손으로 벽을 내려쳤다.

퍽!

제발.

퍽!

여기에.

퍽!

사람이 있어요.

퍽!

……구해주세요.

퍽!

……우리 좀 구해줘요.

송유정은 이현우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돌멩이와 벽이 부딪히는 소리가 이현우의 외침 같았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관이 아니었다면 대성통곡을 했을 터였다.

스크린 속의 이현우에게,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짧았지만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흘러갔다.

이현우의 힘도 점점 빠져가는 듯 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그때.

후두둑,

모래가 떨어졌다.

이현우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겪은, 학습된 공포였다.

무너질 거다.

이현우가 오른손에 쥔 돌멩이를 버리고 이안 위버를 꼭 껴안았다. 이안 위버를 껴안은 이현우의 몸이 덜덜 떨렸다.

무섭다.

무서워.

정말……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학습된 공포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래나 먼지가 후두둑 떨어질 때마다 벽이 쏟아져 내리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웅크린 이현우의 새까만 머리카락 위로 조금 커다란 돌멩이들이 떨어지자 모두 숨을 멈추었다. 공포에 몸을 웅크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현우의 모습에 심장마저 멈춘 것 같았다.

그때였다.

[생존자 발견. 생존자 발견.]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

송유정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이었다면 고래고래 환호성을 질렀을 거다.

옆자리에 앉은 임예나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차마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영관이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소리가 되지 못한 환호성이 느껴졌다.

크게 몸을 움찔 떤 이현우가 들리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빛이 보였다.

‘아…….’

이현우가 눈물을 흘렸다.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안도감에 금세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구조대원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잔재들을 치우고 통로를 확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가득 찼다. 죽어가던 돌멩이 소리가 아니라 생명력이 가득한 소리가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감격의 눈물이 찔끔 나왔다.

[정신 드십니까? 지금 꺼내드리겠습니다.]

끊어지려는 정신 줄을 붙잡은 이현우는 넓어지는 통로에 가쁜 숨을 내쉬고는 움직였다. 좁긴 하지만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

소년의 아래쪽에서 소년의 손과는 다른, 작은 손과 팔이 나타나자 구조대원들은 순간 말을 잃었다.

[……생존자 두 명! 들것 하나 더 들고 와!]

움찔거리는 작은 손에 구조대원 중 하나가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급하게 외쳤다.

구조대원이 조심스럽게 정신을 잃은 이안 위버를 구멍에서 꺼내 안았다. 그다음 이현우가 밖으로 나왔다.

구조대원들은 구출된 두 아이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밝은 노을빛 아래 관객들도 침묵에 잠겼다. 어두운 지하 속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심각한 상처 하나 없는 이안 위버와 여기저기 상처가 난 이현우의 모습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빨리 구급차 불러!]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를 무사히 구하려고 했던 소년의 마음이 느껴졌다. 구조대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들것에 실린 이현우의 옆에 있던 구조대원이 무언가 잡아당기는 느낌에 옆을 돌아보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던 이현우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에 구조대원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이는 괜찮습니다. 기절한 것뿐입니다. 바로 구급차로 병원에…….]

창백한 얼굴임에도 이현우의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이현우가 입을 달싹였다. 말을 멈춘 구조대원이 무릎을 구부려 귀를 기울였다.

“……아…… 아래쪽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어요.”

……!

숨을 들이마신 구조대원이 떨리는 눈으로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이현우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기, 기어서 30분쯤 걸린 것 같아요. 이름은 신시아, 신시아 린드버그에요…….”

바싹 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기서 남쪽으로 10분…… 서, 서쪽으로 5분…….”

멈추지 않는 이현우의 말에 송유정이 입을 틀어막았다.

관객석에 경악이 내려앉았다.

“……이름은 잭슨 밀러예요.”

……정말, 이 소년에게는 경외감만이 들었다.

구조대원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손짓했다. 누군가 빠르게 녹음기를 켰다. 구조대가 분주해졌다.

“그리고,”

눈을 감은 이현우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거기서 동쪽으로 5분, 남쪽으로 15분…… 다시 동쪽으로 15분쯤…… 남쪽으로 5분…… 이름은 레이먼드 위시예요.”

이현우는 정말로 모두를 구하고 싶었다.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현우의 모습에 구조대원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제야 구조대원의 옷을 잡은 이현우의 손이 풀렸다. 스크린 위로 들것에 실린 이현우의 안심한 얼굴이 비쳤다.

천천히 화면이 어두워졌다.

훌쩍 코를 들이마신 송유정이 임예나가 준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렇게 영화가 끝나나, 싶었지만 그 안에 번들거리는 빛이 보였다.

바닥에 쓰러진 레이먼드 위시의 눈동자였다.

……살아 있었구나!

레이먼드 위시의 등장에 모두 다 같은 마음인지 관객석이 들썩였다. 소리 없는 환호성에 훌쩍이던 송유정이 비실비실 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돌무더기 사이에 하반신이 끼어서 다행이지. 깔렸으면 벌써 과다출혈로 죽었을 터였다. 피가 좀 나긴 하는데 치명상은 아니었다.

“……잘 나갔으려나?”

레이먼드 위시가 기운 없는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폭발음과 붕괴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레이먼드 위시가 깔린 돌무더기 위로 새하얀 빛이 비쳤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레이먼드 위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돌멩이가 구르는 소리는 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 무너지나 싶어 흠칫 몸을 떤 레이먼드 위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주먹만 하던 구멍이 점점 커졌다.

동시에 레이먼드 위시의 눈도 커졌다.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손전등을 든 구조대원 하나가 레이먼드 위시 앞으로 걸어왔다.

[레이먼드 위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레이먼드 위시가 멍한 얼굴로 구조대원을 바라보았다.

[레이먼드 위시 맞으십니까?]

그 많은 생존자들 중에서 ‘레이먼드 위시’를 구하러 온 것처럼, 확신이 서린 구조대원의 목소리에 레이먼드 위시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현우야! 아이고. 우리 현우!

파인패드 화면 너머 붕대로 뒤덮인 엄마 아빠가 보였다. 멀쩡한 부모님의 모습에 구급차 안에서 응급치료를 받던 이현우가 울멍울멍한 얼굴로 파인패드를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우리 아들!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이현우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아 몰은 신원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관광객들이 많아 구조대는 생존자들의 확인을 위해서 영상통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현우에 구조대원 하나가 달려왔다.

[신, 신시아 린드버그, 구조했습니다!]

[잭슨 밀러, 구조했습니다!]

구조대원은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구조 소식을 이현우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레이먼드 위시, 구조했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된 이현우는 크게 울음을 토해낼 수 있었다.

카메라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기쁨에 울고 있는 이현우의 모습이 작아지고 이현우가 탄 구급차가 천천히 작아졌다.

천천히 주위 환경이 보였다.

무너진 갤러리아 몰과 수십 대의 구급차와 소방차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구조견들의 모습과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향하는 생존자들이 보였다.

주황빛 노을이 지상을 비추었다.

* * *

상영관이 조금 밝아지고 스크린엔 엔딩 스크롤이 올라왔다.

[이현우 역 이서준]

[이현우 父 역 김종호]

익숙한 이름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영화가 끝나도 아무도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상영 때보다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훌쩍거리며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새 두 눈이 퉁퉁 부어버렸다.

“N차 뛰어야지.”

“응. 다음에도 휴지 들고 와야겠다.”

엔딩 스크롤이 끝나고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쿠키 영상이 시작하자 일행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무서운 단합력이었다.

* * *

넓은 책상 위.

중앙에는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진들도 가득했다.

신시아 린드버그가 할머니와 꽉 껴안고 있는 사진.

딸아이의 생일 파티를 하는 잭슨 밀러의 사진.

그리고 레이먼드 위시의 가족과 환하게 웃고 있는 이안 위버의 사진.

아니.

사각사각.

샤프를 쥔 단정한 손이 편지지 위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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