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41화 (34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41화

주민등록증 신청을 끝내고 평소처럼 학교와 집, 코코아엔터를 오가며 발급 날만 기다리던 서준에게 미국에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안다호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은 서준이 환한 얼굴로 얼른 휴대폰을 들어 김종호에게 연락했다.

“종호 삼촌. 들으셨어요?”

-그래. 생존자들 가편집. 끝났다며?

이틀 전 [생존자들]의 가편집이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서준이 들뜬 얼굴로 재잘댔다.

“개봉판도, 감독판도 끝났나 봐요.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 같아요.”

-감독판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걸. 내부 시사회 평일이던데 서준이 너 갈 수 있겠어?

학교 때문에 못 갈까 봐 걱정하는 김종호의 목소리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1학기에 촬영이 없어서 아직 출석 일수는 충분해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다음 주에 같이 가면 되겠다.

“네! 다음 주에 만나요. 종호 삼촌!”

* * *

그리고 일주일 후, 화요일.

일요일에 미국에 도착한 서준과 김종호는 [생존자들]의 내부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어라운드로 향하고 있었다. 킹즈에이전시 직원이 운전하는 차에는 서준과 안다호,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가 타고 있었다.

김종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목요일에 간다고? 토요일에 가도 되지 않아? 시사회 날짜가 어중간해서 아예 일주일을 빠질 예정이라며.”

“금요일에 동사무소 가려고요.”

“동사무소?”

“헤헤. 저 주민등록증 나와요.”

어쩐지 쑥스러운 듯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사람들마다 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벌써 만들어?”

“전 만든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요.”

김종호도 김상우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어른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사무소는 평일밖에 안 여니까 목요일에 한국 도착해서 금요일에 잠시 가려고요. 신청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는데 발급받는 데는 얼마 안 걸린대요.”

“평일에는 학교 가야 하니까 그렇게 하고 주말엔 푹 쉬는 것도 좋겠지.”

김종호가 자신도 일찍 귀국할까 고민하던 사이, 김상우는 문득 떠오른 것에 입을 열었다.

“근데 서준이가 민증 잃어버리면 큰일이겠다.”

보통 사람들도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면 큰일인데 연예인이면 오죽할까.

김상우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지금까지는 휴대폰도 카드도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쉽게 번호를 바꿀 수 있는 휴대폰이나 카드와는 달리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번호가 정해져 있어 재발급받는다고 해도 번호는 그대로일 터였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안다호가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냈다.

“주민등록번호도 바꿀 수 있던가…….”

잃어버리기 전에 대책은 마련해 놔야 할 것 같았다.

* * *

베어라운드 내부 시사회장.

한 프로젝트의 흥행 여부를 확인하는 중요한 행사라 기획팀장과 베어라운드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다시 편집해야 하거나 일정이 뒤로 밀릴지도 몰랐다.

‘뭐. 걱정은 안 하지만.’

잠시 뿌듯한 표정을 지었던 기획팀장이 갑자기 어두워진 얼굴로 미간을 매만졌다.

아니.

[생존자들-개봉판]은 걱정이 없지만 [감독판]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이 들었다.

‘지금 와서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한숨을 내쉰 기획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리 다시 한번 확인해!”

데이비스 가렛과 서준 리가 출연하는 [생존자들]은 베어라운드가 기대하는 작품이라 다른 때보다 참여 인원이 많았다. 베어라운드의 경영진은 물론이고 촬영에 참여했던 주연 배우들과 투자사에서 온 직원들, 그리고 감독판을 보러온 플러스+의 직원들도 있었다.

얼마 후.

내부 시사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관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제프리 감독님!/”

“/어서 와요. 준. 반갑습니다. 킴./”

베어라운드의 내부 시사회장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제프리 감독이 활짝 웃는 얼굴로 서준과 김종호를 반겼다.

먼저 와 있던 다른 배우들도 서준과 김종호와 인사했다.

“/준!/”

방금 안으로 들어온 앤드류 워커가 오랜만에 만나는 서준의 모습에 상기된 얼굴로 서준을 불렀다. 도도도 달려오던 앤드류 워커가 서준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그래서 더 잊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형사님이다!/”

[이스케이프]를 몇 번이고 본 앤드류 워커가 김종호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서준에게서 많이 들었던 아역 배우의 모습에 김종호도 미소를 지었다.

* * *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고 얼마 후 내부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상영한 건 [생존자들-개봉판]이었다.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보고 있던 김종호가 의아함에 눈을 끔벅였다.

‘……대본이랑 다른데?’

내용 유출을 피하기 위해 짧게 짧게 잘린 대본이었지만 대충의 줄거리는 김종호도 알고 있었다.

그때 대본의 처음을 장식했던 건 데이비스 가렛이 연기하는 레이먼드 위시와 그 가족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이 되는 ‘진주인공’이 레이먼드 위시였기 때문이었다.

‘나랑 서준이가 나오는 장면은 과거 회상으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정작 완성된 영화는 어째선지 서준과 김종호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편집 때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봐도 김종호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계속 떠올랐다. 서준에게서 ‘애드리브’가 많이 들어가 내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생소할 정도인지는 전혀 몰랐다.

‘으음. 일단 볼까.’

대본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바뀐 곳을 생각하던 김종호는 그냥 모르는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스크린에 집중했다.

그렇게 김종호처럼 원래의 대본을 아는 사람들은 바뀐 구성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영화에 집중했고 플러스+의 직원들처럼 원래의 대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영화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생존자들-개봉판]의 상영이 끝나고 내부 시사회장이 밝아졌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생존자들-감독판]을 상영할 예정이었다.

기획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사회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영화를 업으로 삼고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니 작품을 보는 눈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었다. 보통 관객들의 평가보다 긴장이 되었다.

‘제프리 감독님은 만족한 눈치지만.’

[생존자들]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인 제프리 감독이 상기된 얼굴로 옆자리에 앉은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우들의 반응도 좋았다.

투자사 직원들도, 플러스+ 직원들도 만족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좋은 반응이 느껴졌다.

기획팀장이 주먹을 꽉 쥐고 기뻐했다.

“영화는 재미있는데…… 서준아. 애드리브라고 하지 않았어? 애드리브 수준이 아닌데? 아예 갈아엎은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온 김종호의 첫 반응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죠?”

“그죠? 가 아니지. 그죠 가. 생존자들 중에 제일 먼저 고립되는 거 이현우 아니었어? 왜 마지막에 탈출해야 하는 레이먼드 위시가 제일 먼저 고립되는 거야?”

김종호의 물음에 서준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제프리 감독님이 그렇게 진행하는 게 레이먼드 위시의 성격에 맞다고 하셔서요.”

제프리 감독의 대본을 본 서준과 데이비스 가렛도 대본 그대로 대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대본 그대로 연기하는 두 배우의 모습에 제프리 감독이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지 몰랐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촬영장의 이야기에 김종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참. 촬영장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궁금하네.”

“엄청 재미있었어요. 아. 삼촌. 대본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대본?”

“네. ‘수정본 1’부터 ‘수정본 완성본’까지 있어요. 안 쓴 대본도 있고 촬영한 것도 있고요.”

[수정본1]부터 [생존자들 감독판_수정7_8_최종_마무리_마무리2_최최종_끝_진짜 끝_완성본]을 만들기까지의 대본이 있었다. 물론 [개봉판]의 대본도 그만큼 있었다.

“그래. 한번 읽어보자.”

서준의 말에 김종호가 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만큼 촬영장의 느낌을 잘 드러내는 것도 없었다.

* * *

휴식 시간이 훌쩍 지나고 [생존자들-감독판]을 관람할 시간이 되었다.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감독판이 더 잘 나오면 베어라운드는 이걸 영화관에 올릴까요?”

플러스+의 직원이 팀장에게 속삭였다.

플러스+는 [생존자들-개봉판]보다 [감독판]을 더 궁금해했다.

“글쎄. 그럴 거라면 우리까지 부를 이유는 없었겠지.”

정확히는 한국지사에서 전해진 제안이었지만 말이다.

팀장이 고개를 돌리자 객석 한쪽, 배우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동양인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플러스+에서 주시하고 있는 배우 서준 리였다.

“그래도 보통 감독판은 시간이 조금 늘어나거나 편집이 조금 바뀌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괜히 온 거 아닌가 싶네요.”

“……아역 배우가 없군.”

“네?”

갑작스러운 팀장의 말에 플러스+직원들의 눈이 배우들 쪽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준 리의 옆에 꼭 붙어 있던 아역 배우가 없었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역 배우게 급한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아까 본 개봉판은 시청 등급을 낮추기 위해서 잔인한 장면이 많이 잘린 것 같아. 아마 이번 감독판에 그런 장면이 많이 들어갔겠지. 아직 미성년자인 리가 있으니…… 대충 저 나이대까지는 봐도 된다는 거겠고.”

“으음.”

“일단 보고 이야기하지.”

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워지는 시사회장에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곧 [생존자들-감독판]이 스크린에 비추었다.

두 시간 후.

내부 시사회장에는 침묵만 맴돌았다.

“……”

[생존자들-개봉판]에 기대 이상으로 만족해 [감독판]도 잘 나온다면 영화관에서 상영할까, 고민하던 베어라운드 경영진은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본 게 뭐인지 모르겠다.

“OMG……!”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에 미리 [감독판]의 편집본을 본 기획팀장은 해탈한 듯 웃으며 양어깨와 이마를 손가락으로 스치며 십자가를 그었다.

‘역시. 개봉은 글렀군.’

* * *

다른 사람들처럼 김종호와 매니저 김상우도 여간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시사회장이 밝아졌지만, 여전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편집본이 더 좋은데?/”

어린 앤드류 워커가 아쉬운 표정으로 떠난 서준의 옆자리에는 데이비스 가렛이 앉아 있었다. 데이비스 가렛의 말에 서준도 웃으며 말했다.

“/그죠? 음악도 좋았어요. 개봉판이랑 비슷해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역시 그렇지? 우리 감독님이 센스가 있으시다니까./”

데이비스 가렛의 말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제프리 감독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충격과 공포가 가득한 내부 시사회장에서 평화로운 건 촬영에 끝까지 참여해 [감독판]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배우들과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편집본으로 보니까 더 충격적이네요./”

제프리 감독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밀란 첼런의 말에 바네사 올슨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개봉은 무리겠죠?/”

“/그렇지 않을까? 저쪽도 난리 난 것 같은데……./”

밀란 첼런의 말에 배우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기획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베어라운드 경영진,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는 플러스+직원들, [개봉판]과 [감독판] 중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개봉판]으로 아예 결정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투자사 직원들이 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감독님?/”

서준이 제프리 감독에게 물었다.

꼭 영화관에 올리고 싶어 하던 제프리 로덕스 감독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충분히 만족해요./”

처음 [감독판]을 만들었을 때는 꼭 영화관에서 상영하게 하고 싶었지만, 촬영을 하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어째서 영화관에 올리지 못하는지, 흥행할 수 없는지.

‘너무 욕심이 많았어.’

자신의 욕심과 대중의 요구가 잘 어우러지도록 조절했어야 했다.

‘다음 작품에선 잘 해보자.’

정말로 만족한 듯한 제프리 감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라고 아십니까?/”

“/성당에 있는 거요?/”

“/그래요. 한 조각일 때는 그저 날카로운, 규칙도 없는 여러 색상의 유리 조각일 뿐이지만 그게 모이면 멋진 그림이 되잖습니까./”

“/그렇죠./”

서준과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영화도 꼭 스테인드글라스 같지 않습니까?/”

데이비스 가렛의 즉흥 연기와 서준 리의 즉흥 연기.

그리고 그것을 잘 다듬어주는 세 배우의 대본 연기에 제프리 감독의 전체적인 편집이 들어가니 아주 멋진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럼 개봉판은 천국이고 감독판은 지옥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데이비스 가렛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