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40화 (34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40화

네 번째 분노(怒)의 촬영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프로필 촬영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화장을 깨끗이 지운 서준이 말간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윤정원과 김상미는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조금 전까지 온몸으로 분노를 뿜어내던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에요. 이서준 배우가 더 고생했죠.”

“움직일 때마다 너무 많이 찍은 것 같은데…….”

넘쳐나는 사진의 수가 그걸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포즈를 취해도 감탄만 나오는 훌륭한 피사체에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셔터를 누른 포토그래퍼 윤정원과 김상미가 멋쩍은 듯 웃었다.

서준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많이 찍으면 좋은 사진도 많이 나오겠죠. 많이 찍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평만 하고 갔던 신인 배우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 배우의 모습에 윤정원이 감동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안다호는 막내 직원에게서 서준의 증명사진을 받고 있었다. [노을 스튜디오]라고 프린트된 작은 종이봉투 안에 인화된 증명사진이 들어있었다.

“증명사진 파일은 프로필 사진 파일하고 같이 보내드릴게요. 물론 둘 다 원본하고 작업된 수정본하고 다 보내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 근데…….”

“네?”

흐뭇한 얼굴로 서준의 증명사진을 보던 안다호가 막내 직원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두 볼이 붉게 상기된 막내 직원이 입을 열었다.

“서준이 프로필 사진은 언제 공개하나요?”

여기 ‘새싹’이 있었다.

* * *

토요일 프로필 사진 촬영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출근한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직원들이 노을 스튜디오에서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흑백 버전요?”

“그거 괜찮네요! 같은 사진이라도 컬러 버전하고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맞습니다. 흑백 사진만의 매력이 있죠.”

격렬한 직원들의 반응에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흑백사진이 오면 보고 공개할지 말지 정하도록 합시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회사 홈페이지에는 당연히 올리고…… 팬카페에도 올려야 하겠죠?”

“당연하죠. 오히려 팬카페에 먼저 올리는 편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소식을 들은 서준의 팬들이 동시에 접속한다면 코코아엔터 홈페이지는 잠시 다운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인원이 나뉠 수 있도록 여기저기 올리는 편이 나았다.

“나라별 [새싹부터]에도 올리고요.”

“새싹분들. 엄청 놀라겠네요.”

그 말에 2팀 직원들이 유쾌한 얼굴로 웃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올라오는 서준의 프로필 사진은 깜짝 선물 같을 터였다.

아직 프로필 사진이 도착하지 않아서 2팀 직원들은 평소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안다호가 시계를 살폈다.

‘아침 일찍 간다고 했으니 지금 동사무소에 있으려나?’

4월 마지막 주, 월요일인 오늘은 미리내 예고의 개교기념일이었다.

* * *

같은 시각, 동사무소.

평소처럼 일하고 있던 공무원이 다음 번호를 눌렀다.

띵동, 하고 울리는 소리에 다들 종이를 들어 자신의 번호를 확인했다. 그중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주민등록증 만들러 왔어요.”

“처음 만드는 거예요?”

“네.”

고개를 끄덕인 소년에게 공무원이 신청서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작성해 주시고 신분증 있으시죠?”

“학생증도 되죠?”

“그럼요. 그럼 다 적으시고 주세요. 증명사진도 지금 주시고요.”

소년이 옆에 있는 펜을 들어 신청서를 써 내려갔다. 다 적은 후에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봉투를 꺼내 증명사진 한 장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다 적었어요. 여기 사진이요.”

“확인하고 바로 지문 찍으러 갈게요.”

공무원이 신청서와 학생증을 번갈아 보며 틀린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평소와 힘든 월요일, 평소와 같은 일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름은 이서준. 생년월일이 3월 10…… 일?!’

연예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어 이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공무원이지만 생일까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와 같은 것을 알아차리고 놀라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학생을 보았다.

검은 모자를 쓰고 있던 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스타의 등장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공무원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잠시 후.

물티슈로 열 손가락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는 서준과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공무원이 나타났다. 너무 놀라 정신은 반쯤 가출했는데 몸은 평소대로 신청서를 받고 지문을 찍었다. 입도 익숙하게 정해진 문장을 뱉어냈다.

“발, 발급은 3주 후에 나와요. 그때 오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방긋 웃은 검은 모자의 학생이 떠나고 반쯤 넋이 나간 공무원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옆자리의 동료가 물었다.

“지문 찍는 거 되게 빨리 끝났네? 보통 잘 안 찍혀서 여러 번 찍잖아.”

담당자가 신청자의 손가락을 잡고 하나하나 찍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잘못 찍으면 물티슈로 잉크를 닦아내고 다시 처음부터 찍어야 해서 더 오래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잘 찍혔지? 실수 좀 할 걸 그랬나?”

“응?”

공무원의 의미 모를 말에 동료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걔…….”

“응.”

“……이서준이었어.”

“뭐?”

“배우 이서준이 말이야……!”

사람들에게 들릴까 공무원이 낮게 읊조렸다.

그 말에 놀란 동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진짜 잘생겼어……!’라고 말하는 공무원을 한 번, 반듯반듯한 글씨로 적힌 신청서를 한 번, 그리고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이 나간 동사무소 입구를 한 번 바라보았다.

* * *

“예나야. 생존자들 언제 개봉할 것 같아?”

-글쎄. 데이비스 가렛이 나오니까 올해는 힘들지 않을까?

“헐. 내년에 나온다고?”

-아니, 에셈블4 아직 상영 중이잖아.

4월 초에 개봉한 어셈블4는 5월이 일주일이나 흐른 지금에도 절찬리 상영 중이었다.

-레드본으로 이미지가 콱 박혀 있는데 어셈블4랑 붙여서 개봉하는 건 모험일 거 아니야.

“아, 하긴. 레드본 좋아하는 사람들은 몰입 못 할 수도 있겠다.”

-내년까진 아니더라도…… 빨라 봤자 하반기에나 나오지 않을까?

그 말에 송유정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와. 기다리기 힘들다!”

-그게 배우 팬의 고난이지.

임예나와 송유정이 키득키득 웃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문자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헐! 공지!”

-잠시만!

[새싹부터]의 공지 알림이었다.

서로 통화 중인 친구는 뒷전인 채 송유정은 바로 [새싹부터]에 접속했다.

그리고 공지글을 누르자마자 나타난 사진에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 * *

[공지 : 이서준 배우의 프로필 사진을 공개합니다.]

송유정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심장이 너무 뛰어 숨을 멈췄는지 숨이 가빠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쁨(희喜)>

송유정이 제일 처음 마주했던 첫 번째 사진이 보였다.

새하얗고 포근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은 서준이 이쪽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약간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칼이 보들보들해 보였다. 선명한 검은색 눈동자와 반듯한 콧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송유정은 힘들게 스크롤을 밑으로 내렸다.

계속 보고 싶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사진이 많았다.

두 번째 사진은 새하얀 배경에 새하얀 스웨터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새하얀 빛에 서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기도하듯 모은 두 손.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 부드럽게 감긴 눈 끝에 눈물이 보이지만 그건 기쁨의 눈물일 터였다.

-……여기가 제가 누울 자리인가요ㅠㅠㅠ?

=저도 같이 눕죠ㅜㅜ

-사진 보자마자 숨도 못 쉬었어요.

-최대 백만 원 천사님이 다시 돌아왔네요ㅠㅠ

-난 이미 죽어있다.

-진짜 여기서 못 떠나겠어ㅠㅠ

<즐거움(락樂)>

연한 노란색 배경 앞.

바닥에 앉은 서준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흥미로 반짝였고 두 볼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동네 친구 같은 시원한 웃음에 보는 사람마저 저절로 즐거워졌다.

두 번째 사진은 조금 헝클어진 머리칼의 서준이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앞으로 돌려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두 팔을 올리고 이쪽을 보며 장난꾸러기처럼 웃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콧등을 찡긋거리며 웃는 서준의 모습에 송유정이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 여기. 누움.

=22. 그. 옆에. 누움.

-동네 친구 같은 웃음이지만 현실에 이런 동네 친구는 없죠ㅋ

-찡긋거리는 거 너무 귀여워……!

-사진 네 개밖에 안 봤는데 아파트를 몇 개나 부쉈는지 모르겠다!!

=전 진짜로 쿠션 터뜨렸어요ㅎ

=ㅋㅋ새싹분들 다 흥분하셨어ㅋㅋ

<슬픔(애哀)>

짙은 남색의 배경으로 마치 바다에 잠긴 듯 축 가라앉은 서준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얼굴을 가리고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서준은 눈물을 참는 듯 눈가가 붉었다. 우수에 찬 눈빛과 창백한 피부, 붉은 눈가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한 서준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앞을 바라보는 서준의 검은 눈동자가 슬픔을 가득 머금어 파도처럼 일렁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앙다문 입술과 조금 붉어진 코끝, 눈물에 촉촉하게 젖은 속눈썹에서 송유정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청 슬픈데…… 제 취향이에요…… 전 여기 누울게요ㅠㅠ

-앞 사진까진 어떻게든 넘겼는데 여기서 멈췄습니다.

=22 여기서 내 취향을 깨달을 줄이야…….

-(서준이가 카페에 자주 들어와서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의 외침!)

=동의합니다(진지)

-#아련 #청초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는 다 있어……!

<분노(노怒)>

검은색 터틀넥으로 턱 바로 밑까지 가린 서준은 앞머리를 모두 뒤로 넘기고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앞 사진들보다 짙게 화장한 서준이 이쪽을 바라보며 분노를 풀풀 풀어내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모든 걸 태워 버릴 검은 불길처럼 일렁였다. 인상을 쓰듯 약간 주름진 미간과 사선으로 올라간 눈썹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첫 번째 사진이 밖으로 뿜어내는 분노였다면 두 번째 사진은 속으로 삼키는 분노였다.

이번에는 정면이 아니라 옆모습이었는데 고개를 살짝 돌려 서준의 두 눈동자가 모두 보였다. 그 검은 눈동자에 서린 차가운 분노가 화면 밖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입술을 꾹 다문 무표정한 얼굴에 등골이 오싹하고 겁이 나는데 심장은 쿵덕쿵 뛰었다.

-뜨겁다. 뜨거워……. 근데 좋아! 밑에 건 차갑네. 차가워……. 그래도 좋아!

-턱선……! 턱선……!(쾅! 쾅! 바닥을 내려치는 토끼 이모티콘)

-(아파트 부수는 짤)

-(멱살 잡고 흔드는 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맘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무서워서 심장이 뛰는 건지 좋아서 뛰는 건지 모르겠다ㅋㅋ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진들을 보고 있던 송유정이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 화면이 너무 작아! 컴퓨터! 컴퓨터!”

그날.

서준의 프로필 사진에 푹 빠진 송유정과 임예나는 다시 전화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 * *

[제목 : 아니. 프로필 사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왜 8장밖에 없어!!

흑백까지 하면 16장밖에 안 돼!

(그렇다고 흑백 버전이 싫다는 건 아닙니다. 흑백도 흑백의 매력이 있어요.)

이건 A컷일 테니 B컷, 아니, 찍은 거 다 풀어요ㅠㅠ

특히, 슬픔으로.(진지)

-그래요. 다 풀어요ㅠㅠ 너무 감질나잖아요ㅠㅠ

-전 분노가 좋아요. 분노도 풀어주세요ㅜ

-기쁨……! 기쁨이 최고죠!

-이렇게 새싹들은 4등분으로 나뉘고……!

[제목 : 콬아. 이렇게 네 명이서 그룹 만들어주라.]

콬아(>>코코아엔터야). 진심으로 바라는데 이렇게 네 명이서 보이그룹 만들어주라.

이름은 그린우드(초록나무)로 하고.

코코아엔터는 꼭 이름에 색깔이 들어가고 우린 새싹이니까.

-평생 팬이 되겠습니다(진심)

-이름은 백서준, 황서준, 청서준, 흑서준으로 가죠.

=앜ㅋㅋ이름ㅋㅋ 너무 웃어서 배 아파요ㅋㅋㅋ 전 청서준요(정색)

-황서준 귀엽지 않아요?! 황서준! 황서준!

* * *

[배우 이서준, 첫 프로필 사진 공개!]

<오늘 배우 이서준의 첫 프로필 사진이 공개됐다.

컬러버전과 흑백버전으로 공개된 이서준의 프로필 사진은 ‘희노애락’ 네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코코아엔터 홈페이지와 배우 이서준의 팬카페인 [새싹부터]에 공개 중이며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하략)>

-와……와……!

-생존자들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게 뜰 줄이야!

-코코아엔터 일 잘하네. 근데 더 잘해서 서준이 화보 좀 내줘.

=22 겨우 16장이 뭐냐ㅠㅠ

=333 화보집을 내줘…… 1,000페이지로.

=ㅋㅋㅋ1,000페이지ㅋㅋㅋ예약1(정색)

=예약2(궁서체)

……

=예약31(진지)

-근데 서준이가 ‘즐거움’에서 입고 있는 티셔츠 어디 거임?

=사려고?

=ㅇㅇ서준이랑 커플룩이다!

=정작 서준이는 안 입고 새싹들만 입고 있을 듯ㅎ

=새싹룩ㅋㅋㅋ

-근데 확실히 모델하고는 다르네. 옷보다 얼굴이 먼저 보임.

=그러게. 이서준은 모델은 못 할 듯.

=근데 정작 이서준이 입은 옷은 엄청 잘 팔려서…….

=팔리면 좋긴 한데ㅋㅋ 묘하네ㅋㅋ

-속보) 새싹부터 갠팬 생김.

=……? 새싹부터는 이서준 팬카페잖아? 이서준이 한 명인데 개인 팬이 생길 리가……?

=이서준 네 명 모아두고 그룹 만들어달래ㅋㅋ

=백서준, 황서준, 청서준, 흑서준이라니ㅋㅋ 이름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냐고ㅋㅋ

=그린우드ㅋㅋ 근데 저 그룹 나오면 인기는 되게 많겠다. 가요계 씹어먹을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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