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339화 (33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39화

이서준의 등장에 잠시 멍하니 있던 김상미가 팔로 얼어 있는 윤정원을 툭툭 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정원이 입을 열었다.

“아, 반갑습니다. 노을 스튜디오 대표, 윤정원입니다. 오늘 촬영은 제가 할 예정이고 이쪽은 촬영을 도와줄 김상미 작가입니다.”

윤정원은 막내 직원과 서준과 함께 온 안내 직원도 소개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윤정원은 스튜디오를 안내했다.

“촬영은 이쪽에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지금은 흰 배경이지만 바로 다른 색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윤정원이 가리킨 곳에는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배경은 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기에 아직 켜지지 않은 커다란 조명들과 반사판이 모두 의자 쪽으로 향해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니 카메라가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 보는 카메라와는 다른, 자세한 기종은 모르겠지만, 기자나 팬분들이 들고 오는 카메라와 비슷하게 생겼다.

촬영장이 있고, 조명이 있고.

카메라가 있었다.

영화 촬영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진 촬영장에 서준은 조금씩 흥미가 생겼다.

“먼저 증명사진을 찍고 프로필 사진을 찍을게요. 대기실에 코코아엔터에서 온 분들이 계시거든요. 촬영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화장 끝나면 바로 와주세요.”

“네.”

윤정원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는 막내 직원을 따라 대기실로 향했다. 그사이 안내 직원은 로비로 돌아가고 김상미와 윤정원은 촬영을 준비했다.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저도요.”

* * *

대기실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반가운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서준아!”

2팀 직원 두 명과 스타일리스트 두 명이 대기실에 있었다.

2팀 직원들이 안다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스타일리스트는 얼른 서준을 의자에 앉혔다. 그 앞에는 많은 화장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스타일리스트는 서준의 머리를 매만졌다.

“오랜만이네. 서준아.”

“그러게요.”

두 스타일리스트는 평소에는 ‘화이트’와 일하지만, 가끔 서준이 촬영 이외의 일정이 있을 때 서준과 일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작년이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누나. 처음은 증명사진 찍는대요.”

“알고 있어. 그래서 화장은 진하게 안 할 예정이야.”

“머리도 살짝만 만질게.”

“멋지게 해주세요.”

서준의 말에 두 스타일리스트가 빙그레 웃고는 두 손을 움직였다.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운 붓에 서준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 * *

준비가 끝나고 대기실 밖으로 나온 서준의 시선에 촬영장이 들어왔다.

촬영장은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꺼져 있던 조명 기계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밝은 조명에 새하얀 바닥에 홀로 놓여 있는 나무 의자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배우님, 나오셨어요!”

서준의 발견한 막내 직원의 목소리에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고 있던 윤정원과 김상미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보다 차분해진 서준을 잠시 살펴보던 윤정원이 입을 열었다.

“준비 다 됐으면 의자에 앉아주세요.”

“네.”

새하얀 셔츠를 입은 서준이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시선은 카메라로 향했다.

윤정원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카메라 렌즈 안에 서준의 모습이 비쳤다.

단정하게 내린 검은 머리칼이 조명에 반짝이고 새하얀 셔츠가 반사판처럼 서준의 얼굴을 더욱 빛냈다.

“상미야! 오른쪽!”

윤정원의 지시에 김상미는 익숙하게 오른쪽 조명이 조금 위치를 바꾸었다. 조금 어두웠던 서준의 얼굴에서 그늘이 사라졌다.

“정면 보세요. 턱을 약간 아래로 내리고. 네. 시선은 카메라를 보시고. 왼쪽으로 조금 고개를 돌려주세요. 네네. 가만히 계세요. 찍습니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조용한 스튜디오를 울렸다.

카메라와 연결된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찍힌 서준의 사진이 바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상미와 스튜디오 직원들, 2팀 직원들과 스타일리스트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보았다.

“……보정 안 해도 되겠는데요?”

손도 하나 안 댄 증명사진인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평소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반짝반짝한 배우 이서준이 아니라 조금 순한 느낌이랄까. 동적인 느낌이 가득한 영상만 보다가 정적인 느낌이 드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잘 찍혔어요?”

증명사진 촬영을 끝낸 서준이 조금 상기된 얼굴로 모니터 앞으로 걸어왔다.

지금까지 증명사진이 필요할 때는 집 근처 사진관에서 찍었던 터라 이런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 찍은 적이 없어서 조금 떨렸다.

“잘 나왔어.”

“바로 프로필 사진 찍어도 되겠는데?”

엄지를 척 들어 올리는 안다호와 2팀 직원의 모습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 * *

가장 급한 증명사진은 오늘 받기로 했다.

막내 직원이 증명사진의 크기에 맞춰 서준의 사진을 편집하고 있는 동안 서준과 윤정원은 프로필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프로필 사진 컨셉 알고 있죠?”

“네.”

윤정원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첫 프로필 사진의 컨셉은 희로애락.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가장 단순하면서도 많이 활용되는 감정표현이었다.

“처음에는 희를 찍을게요. 분장이 끝나는 대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새하얀 스웨터를 입은 서준이 촬영장에 나타났다.

증명사진과 머리스타일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조금 더 곱슬한 느낌이 강해졌다. 앞머리를 내린 서준이 촬영장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의 앞에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먼저 바스트 샷부터 가겠습니다. 테이블도 자유롭게 사용해 주세요. 필요 없으면 치워드리겠습니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전 증명사진 촬영에서처럼 움직임 하나하나를 자세히 디렉팅할까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윤정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델분이 생각하는 기쁨을 자유롭게 표현해 주세요.”

그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다호와 2팀 직원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2팀이 윤정원을 선택한 이유는 모델의 자유도에 있었다.

모델에게 자유를 주는, 사진작가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모델의 생각과 표현을 이해하고 함께 의논하는 윤정원의 방식이 2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는 조금 걸리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증명사진’은 정해진 규격이 있으니 그렇게 자세하게 알려준 것 같았다.

윤정원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기에 이런저런 사진을 찾아보니 연기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았다. 대사와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와 달리 사진은 그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중급이 발동됩니다.]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중급]

신선들이 키우는 선소나무의 꽃에선 나온 꽃가루입니다.

생물체의 감정을 강화합니다.

‘기쁨.’

부드러운 미소가 서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선명한 검은색 눈동자에 기쁨이 비치고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서준에게서 새하얗고 따뜻한 행복이 번져 나왔다.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벅차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되는 기쁨이었다.

찰-칵.

서준의 눈빛에 잠시 멈칫했던 윤정원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프로필 촬영은 처음이라는 말에 조금 지시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좋아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서준의 표정 변화를 보며 윤정원은 처음으로 영상이 아니라 사진을 선택한 게 조금 아쉬워졌다. 이 미소를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최대한 담아내야지.’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서준은 테이블 위에 두 팔꿈치를 올리고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가장 기뻤던 순간을 떠올렸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던 그때.

‘처음 상을 받았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하면 오히려 눈물이 나온다고 하던가.

부드럽게 감긴 눈 끝에 반짝이는 눈물이 보였다. 그리고 기도하듯 모인 두 손 옆으로 보이는 서준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위로 향했다.

대사가 없어도 앞뒤 상황을 알지 못해도 지금 서준이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찰칵.

찰칵.

윤정원마저 입을 다물어 조용해진 스튜디오에 셔터음만 울려 퍼졌다.

* * *

첫 번째 촬영이 끝나고 두 번째 촬영을 위해 서준이 대기실로 향했다.

윤정원과 김상미,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모니터에 뜬 서준의 사진을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았다.

“모델 해도 되겠어요.”

서준의 사진 촬영이 궁금해서 아예 윤정원에게 허락받아 스튜디오의 문을 잠그고 들어온 안내 직원과 막내 직원이 거의 울 듯 입을 틀어막고 사진을 보았다. 하나하나 빛나는 배우의 모습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갖고 싶다! 사진!

“글쎄. 모델 하기에는 배우가 너무 눈에 띄지. 아니, 너무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얼굴하고 눈에 시선을 뺏겨서 옷은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다 잡아먹고 있잖아.”

“음. 그건 그래요.”

배경이며 소품이며 옷이며. 서준의 미소와 눈빛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윤정원의 말에 김상미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전부 A 컷이라 고르기도 힘들겠어요.”

“그러게요.”

그렇게 말하는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저 매니저님.”

모니터에 뜬 사진들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윤정원이 안다호를 불렀다.

“네?”

“프로필 사진 흑백 버전을 추가해도 될까요?”

* * *

서준의 프로필 촬영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어느 한 컷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윤정원의 손가락이 바쁘게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작가인 김상미도 근질근질한 손가락을 참지 못하고 세 번째 애(哀), 슬픔을 촬영할 때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마침 옆 모습을 찍고 싶었어!”

윤정원은 정면을, 김상미는 오른쪽에서 찍기로 했다.

빠르게 김상미의 맞은편에 배경을 하나 더 세워두고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손발이 잘 맞았다.

찰칵. 찰칵.

셔터음이 들릴 때마다 늘어나는 사진들에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찍을 때마다 마음에 쏙 들어 공개하는 사진을 고르는 게 더 힘들어졌다.

“마지막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촬영은 노(怒). 분노였다.

촬영장의 배경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턱 끝까지 올라오는 검정색 터틀넥을 입고 있는 서준이 그 앞에 섰다.

서준의 머리스타일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마를 살짝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반듯한 이마를 드러냈다. 화장도 처음보다 조금 진하게 한 상태였다.

그것만으로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이서준의 컨셉 소화력에 윤정원과 김상미가 속으로 감탄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올 때부터 밝았던 서준의 모습 때문에 분노는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 나트라가 악당이었지.’

온몸으로 무시무시함을 뿜어내던 모습을 떠올리자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트 샷부터 가겠습니다. 필요한 소품 있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윤정원과 김상미가 카메라를 들었다.

두 개로 늘어난 카메라에도 서준은 자신이 할 일을 했다.

감정변화가 이어져 강약조절이 필요한 연기와는 달리 한순간을 담아내는 사진 촬영에 서준은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으로 강화된 감정을 온전히 담아냈다.

‘분노.’

시선을 아래로 내렸던 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뿐이었는데 스튜디오에 무거운 무언가가 내려앉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모두 서준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찰칵. 찰칵.

윤정원이 서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김상미도 서준의 오른편에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이 윤정원이 들고 있던 카메라 렌즈와 마주쳤다.

……!

잠시 서준과 눈이 마주친 윤정원의 손이 멈추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일 뿐인데도 쭈뼛쭈뼛 소름이 돋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 강렬한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다.

윤정원은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것도 잠시.

찰칵. 찰칵.

귀에 박히는 김상미의 셔터 소리에 정신을 차린 윤정원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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